2023년 4월 23일 부활절 셋째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38장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
찬송 21장입니다.
광고/ 헌금/ 기도하겠습니다.
성경은 민 22:41-23:12(구 235쪽)입니다.
찬송 16장입니다.
제목 : “거짓 선지자 발람의 예언”
우리 교회는 요즘 민수기를 날마다 공부하고 있습니다. 민수기는 이스라엘이 40년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히브리 원전에서는 책 제목이 민수기가 아니라, ‘광야에서’(뻬 미드바르)입니다. 광야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책이라는 의미입니다.
광야는 먹을 음식도, 마실 물도 없어서 사람이 주도적으로 무엇을 할 수 없는 곳입니다. 민수기는 광야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통해서 인간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대비해서 보여 줍니다. 하나님과 지도자들을 끊임없이 원망하고 불평하는 악한 인간의 본성과 과거(애굽)로 돌아갈 수도 없고 오직 목적지(텔로스, 죽음)을 향해 가야만하는 무기력한 인간의 존재론적인 한계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민 22,23장에 기록한 거짓 선지자 발람의 예언을 통해서 이런 인간의 모습과는 대비되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 민수기 개요 >
민수기는 광야를 행진하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의 역사입니다. 홍해를 갈라 물을 건너게 하시고, 바위에서 먹을 물을 내 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부르게 하시고, 그들을 앞서 가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제사와 율법을 주셔서 광야를 사는 그들에게 인생의 목적을 알게 해 주시고, 환난 속에서도 그들과 함께 하시고 기어이 언약하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내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열심을 볼 수 있습니다.
민수기의 대전환점은 민 13,14장의 가데스 반역사건입니다. 하나님의 군대로서 시내 산을 출발한지 11일이 지나 가나안의 남쪽 끝 가데스에 도착한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탐꾼들의 보고를 받고 낙심하여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 땅을 올라가서 차지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함으로 인해서 38년의 방랑 생활을 해야 했고 출애굽한 1세대는 모두 죽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광야에서 새로 태어난 세대는 다시 가데스에 집결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에돔 땅을 우회하여 거칠고 험난한 아라바 광야를 지나야 했습니다. 그들은 아라바 광야에서 불뱀과 놋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체험하고 계속 가나안을 향해 이동하여 요단 강 동쪽에 사는 아모리 족속과 싸워 승리하고 마침내 가나안 땅이 보이는 모압 평지에 진영을 세웠습니다.
< 모압 왕 발락이 점술사 발람을 초청 >
민 23, 24장은 모압 왕 발락이 아모리 족속을 무찌르고 모압 땅 경계까지 이른 이스라엘을 두려워하여 점술사 발람을 불러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한 기사입니다.
모압 왕 발락은 멀리 유브라데 강가에 사는 점술사 발람에게 사신을 보내어 “나를 위하여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 앎이니라.”(민 22:6) 라고 할 정도로 발람은 미디안의 유명한 선지자였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 사람들은 전쟁을 사람들의 전쟁으로 보지 않고 그들이 숭배하는 신들의 전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여호수아와 갈렙이 다른 열 명의 정탐꾼들과 달리 가나안 땅을 치러 올라가자고 한 이유도 그들이 우리보다 장대하지만, 그들의 신은 떠났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민 14:8,9)
모압 왕 발락도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저주하기만 하면 아모리 족속을 무찌르고 요단 동쪽을 차지한 이스라엘이라 할지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미디안의 점술사 발람을 초청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발람에게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들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22:12) 그러나, 발람은 복채(卜債)를 보고, 또 더 높은 고관들이 와서 높은 벼슬을 약속하자 다시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19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발람은 이미 마음을 정해 두고서 더 기도해 보겠다고 사신들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미 알면서도 재물과 명예를 더 탐하여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기의 뜻대로 신탁을 하고자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발람 같이 돈과 명예를 추구하고,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하는 이단들이 많이 있습니다. 말세에는 이런 이단들이 나라를 어지럽게 하고 많은 사람을 미혹한다고 예수님이 예언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마 24:4,5)
오직 예수님만이 “양의 문”(요 10:7)입니다. 예수님만이 양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십니다. 거짓 선지자는 양들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입니다.(요 10:10) 우리는 그들의 말보다 그들의 행함과 열매를 보고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 발람의 1차 예언 >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거짓 선지자 발람의 입을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저주가 아니라, 축복의 예언을 하게 하십니다.
발락이 발람을 인도하여 바알의 산당에 오르게 하여 제단을 쌓고 발락 자신을 위하여 그의 원수인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발람의 입에 하나님이 임하셔서 저주가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예언을 합니다.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민 23:8,9)
거룩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바알의 산당에도 찾아가시고, 이방의 점술사를 통해서도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노래를 부르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은 이방의 여러 신들 중에 하나의 신이 아니라 세상에 오직 한 분이신 유일한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도 여러 나라 중의 한 나라가 아니라, 홀로 우뚝 서 만국을 다스리고, 땅의 티끌만큼 번성할 것을 예언합니다. 이 예언은 새로운 예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창 13:15,16)을 확인시켜 주는 예언입니다.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세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창 13:15,16)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감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창 13:15,16)은 일차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또한 이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영원히 성취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네 자손’(창 13:15)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 라고 말씀합니다.(갈 3:19) 이 축복의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인 것입니다.(갈 3:22)
< 발람의 2차 예언 >
모압 왕 발락은 발람을 이스라엘의 진영 끝자락이 보이는 비스가 산 꼭대기로 데리고 와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발람의 입을 통하여 두 번째 축복의 노래를 부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내가 축복할 것을 받았으니 그가 주신 복을 내가 돌이키지 않으리라.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야곱을 해할 점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냐 하리로다.”(민 23:19-23)
하나님은 거짓말하고 변덕스런 사람의 본성을 가지신 분이 아닙니다. 이스라엘과 언약하신 것은 그들에게 허물이 있고, 때로는 반역을 한다고 해도 언약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의 행함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 영원한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고대 근동의 신들은 인간의 행함에 따라 변덕이 심하고 이기적이어서 사람들을 많이 괴롭혔습니다. 사람들은 신들의 노여움을 사지 않기 위해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과 불신앙을 보지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환난을 통해서라도 인내와 연단을 거쳐서 우리를 하나님의 의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캘빈의 5대 교리 중에 성도의 견인(堅忍, Perseverance of the Saints)이란 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굳게 참고 인내하게 하여 구원을 완성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①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들을 ② 무조건적으로 택하시고, ③ 택하신 사람들을 십자가의 구속으로 의롭게 하시고 ④ 불가항력적인 은혜와 ⑤ 성도의 견인으로 구원을 완성하십니다. 구원은 인간의 행위나 의지에 따라서 좌우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롬 8:39) 우리는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신 것처럼 “복을 받은 자들”(민 22:12)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발람의 3차 예언의 축복과 가나안 족속 멸망 예언 >
모압 왕 발락은 발람을 인도하여 이스라엘의 진영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브올 산 꼭대기로 데리고 와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합니다. 발락은 이스라엘 진영에 더 가까운 곳으로 발람을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거기까지 그들을 쫓아 오셔서 세 번째 축복의 노래를 부르게 하십니다.
“야곱이여 네 장막들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들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 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 같고 물 가의 백향목들 같도다....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지로다.”(민 24:6-9)
하나님은 발람의 입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세 번이나 축복의 노래를 부르게 한 후에 에돔과 모압을 비롯한 가나안 족속의 멸망을 예언합니다. 민 24:10-25절은 발람의 마지막 예언의 노래입니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그의 원수 에돔은 그들의 유산이 되며 그의 원수 세일도 그들의 유산이 되고 그와 동시에 이스라엘은 용감히 행동하리로다.”(민 24:17,18)
언제나 사랑이신 하나님은 가나안과의 전쟁을 앞두고 모압 평지에 장막을 친 이스라엘을 보고 아름답다고, 이방의 여러 나라들을 쳐서 이기고 승리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전쟁은 민족 간의 세속적인 영토 전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속사를 방해하는 악한 우상들과 싸우는 영적 전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거룩한 군대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속한 전쟁이 아니라, 세상의 재물과 명예를 탐하는 악한 사탄의 세력과 싸우는 영적 전쟁입니다.(엡 6:12) 전능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고, 승리의 그 날까지 우리를 위해 축복의 노래를 계속 부르고 계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찬송 350장(은혜로신 하나님 우리 주 하나님)을 부르신 후에 통성기도와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