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이 홍통(弘通)하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체(體)이고 심(心)이니라, 이십팔품(二十八品)은 용(用)이고 이십팔품(二十八品)은 조행(助行)이며 제목(題目)은 정행(正行)이니라. 정행(正行)에다 조행(助行)을 포함(包含)시켜야 하느니라 운운(云云)."
어의구전 794쪽
"정행(正行)에다 조행(助行)을 포함(包含)시켜야 하느니라" 말씀처럼..
"결국(結局) 말법(末法)에 들어와서 천진독랑(天眞獨朗)의 법문(法門)은 무익(無益)하니라. 조행(助行)으로는 사용(使用)할 것이로되, 정행(正行)에는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말법(末法)에 들어와서 천진독랑(天眞獨朗)의 법(法)을 홍통(弘通)하여 정행(正行)으로 하려는 자(者)는 반드시 무간대성(無間大城)에 떨어질 것은 의심(疑心)이 없도다."
십팔원만초(十八圓滿抄) 미노부에서 59세에 술작 13678쪽
"결국(結局) 말법(末法)에 들어와서 천진독랑(天眞獨朗)의 법문(法門)은 무익(無益)하니라"
"말법(末法)에 들어와서 천진독랑(天眞獨朗)의 법(法)을 홍통(弘通)하여 정행(正行)으로 하려는 자(者)는 반드시 무간대성(無間大城)에 떨어질 것은 의심(疑心)이 없도다" 말씀처럼.."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이 홍통(弘通)하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체(體)이고 심(心)이니라, 이십팔품(二十八品)은 용(用)이고 이십팔품(二十八品)은 조행(助行)이며 제목(題目)은 정행(正行)이니라. 정행(正行)에다 조행(助行)을 포함(包含)시켜야 하느니라 운운(云云)."
어의구전 794쪽
"정행(正行)에다 조행(助行)을 포함(包含)시켜야 하느니라" 말씀처럼..
"결국(結局) 말법(末法)에 들어와서 천진독랑(天眞獨朗)의 법문(法門)은 무익(無益)하니라. 조행(助行)으로는 사용(使用)할 것이로되, 정행(正行)에는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중략>
말법(末法)에 들어와서 천진독랑(天眞獨朗)의 법(法)을 홍통(弘通)하여 정행(正行)으로 하려는 자(者)는 반드시 무간대성(無間大城)에 떨어질 것은 의심(疑心)이 없도다."
십팔원만초(十八圓滿抄) 미노부에서 59세에 술작 13678쪽
"결국(結局) 말법(末法)에 들어와서 천진독랑(天眞獨朗)의 법문(法門)은 무익(無益)하니라"
"말법(末法)에 들어와서 천진독랑(天眞獨朗)의 법(法)을 홍통(弘通)하여 정행(正行)으로 하려는 자(者)는 반드시 무간대성(無間大城)에 떨어질 것은 의심(疑心)이 없도다" 말씀처럼..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봉창(奉唱)하면 멸(滅)하지 않는 죄(罪)가 있겠는가, 오지 않는 복(福)이 있겠는가. 진실(眞實)이고 심심(甚深)하니 이를 신수(信受)할지어다."
성우문답초(聖愚問答抄) 497쪽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봉창(奉唱)하면.."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말씀처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창제근본으로..말법(末法)에 들어와서 천진독랑(天眞獨朗)의 법문(法門)은 무익(無益)하니라. 조행(助行)으로는 사용(使用)할 것이로되, 정행(正行)에는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처음으로 나의 마음이 본래(本來)의 부처라고 아는 것을 즉(卽) 대환희(大歡喜)라고 이름한다,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환희중(歡喜中)의 대환희(大歡喜)이니라."
어의구전(御義口傳) 788쪽 말씀처럼
처음으로 나의 마음이 본래(本來)의 부처라고 알고서..
확신하고서..불경(佛經)이 점차로 도래(渡來)하게 되자, 불경(佛經) 중(中)에 또한 승렬(勝劣)·천심(淺深)이 있었으니 소위(所謂) 소승경(小乘經)·대승경(大乘經)·현경(顯經)·밀경(密經)·권경(權經)·실경(實經)이니라. 비유컨대 일체(一切)의 돌은 금(金)에 대(對)하면 일체(一切)의 금(金)에 뒤지지만·또 금(金) 중에도 가지 가지가 있느니라, 일체(一切)의 인간(人間)의 금(金)은 염부단금(閻浮檀金)에는 미치지 못하며, 염부단금(閻浮檀金)은 범천(梵天)의 금(金)에는 미치지 못함과 같이·일체경(一切經)은 금(金)과 같지만, 또한 승렬(勝劣)·천심(淺深)이 있느니라. 소승경(小乘經)이라고 하는 경(經)은 세간(世間)의 소선(小船)과 같아, 불과 사람을 이인(二人)·삼인(三人) 등은 태울 수 있지만, 백천인(百千人)은 태울 수가 없다. 설령 이인(二人)·삼인(三人) 등은 태운다 하여도 차안(此岸)에 머물 뿐이며 피안(彼岸)에는 가기 어렵다. 또한 작은 것은 넣지만 큰 것은 넣기 어렵다. 대승(大乘)이라고 함은 대선(大船)인데, 사람도 십(十)·이십인(二十人)도 타는데다가·큰 물건도 싣고 가마쿠라(鎌倉)로부터 쓰쿠시(筑紫) 미치(陸奧)의 지방(地方)에까지도 가느니라.
실경(實經)이라고 함은 또한 그 대선(大船)인 대승경(大乘經)과는 전혀 비교도 되지 않느니라. 대량(大量)의 진보(珍寶)도 싣고, 백천인(百千人)이 타고·고려(高麗) 같은 나라에 까지도 건너가니 일승(一乘) 법화경(法華經)이라고 하는 경(經)도 또한 이와 같도다. 제바달다(提婆達多)라고 함은 염부제일(閻浮第一)의 대악인(大惡人)이었지만 법화경(法華經)에 와서 천왕여래(天王如來)가 되었다. 또 아사세왕(阿闍世王)이라고 하는 왕(王)은 아버지를 죽인 악왕(惡王)이었지만 법화경(法華經)의 회좌(會座)에 열석(列席)하여 일게일구(一偈一句)의 결연중(結緣衆)이 되었다. 용녀(龍女)라고 하는 사체(蛇體)의 여인(女人)은 법화경(法華經)을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이 설(說)하시자 부처가 되었다. 게다가 불설(佛說)에는 악세말법(惡世末法)이라고 때를 가리키시어 말대(末代)의 남녀(男女)에게 보내주시었다. 이야말로 당선(唐船)과도 같은 일승경(一乘經)이시니라. 그러므로 일체경(一切經)은 외전(外典)에 대(對)하면 돌과 금(金)과 같고, 또한 일체(一切)의 대승경(大乘經)·소위(所謂) 화엄경(華嚴經)·대일경(大日經)·관경(觀經)·아미타경(阿彌陀經)·반야경(般若經) 등(等)의 모든 경(經)들을 법화경(法華經)에 대(對)하면 형화(螢火)와 일월(日月), 화산(華山)과 의총(蟻塚)과 같으니라. 경(經)에 승렬(勝劣)이 있을 뿐더러, 대일경(大日經)의 일체(一切)의 진언사(眞言師)와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와 합(合)친다면, 물에 불을 합(合)치고, 이슬과 바람이 합(合)치는 것과 같다. 물에 불을 합(合)치고, 이슬과 바람이 합(合)치는 것과 같다. 개는 사자(師子)를 보고 짖으면 창자가 썩고·수라(修羅)는 일륜(日輪)을 쏘았던 바 머리가 칠분(七分)으로 깨어졌다. 일체(一切)의 진언사(眞言師)는 개와 수라(修羅)와 같고·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는 일륜(日輪)과 사자(師子)와 같으니라. 얼음은 일륜(日輪)이 나오지 않을 때는 단단함이 금(金)과 같고, 불은 물이 없을 때는 뜨거웁기가 철(鐵)을 달군 것 같다. 그러나 여름의 해를 만나면 단단한 얼음이 녹기 쉽고·뜨거운 불은 물을 만나면 꺼지기 쉬우니라, 일체(一切)의 진언사(眞言師)는 기색(氣色)이 존귀(尊貴)하고·지혜(智慧)가 현명(賢明)한듯 한데·일륜(日輪)을 보지 못한 자(者)가 단단한 얼음을 믿고, 물을 보지 못한 자(者)가 불을 믿는 것과 같으니라.옛날에는 니치렌(日蓮)을 보지 않겠노라 듣지 않겠노라고 말하던 사람들도 합장(合掌)하고 법화경(法華經)을 믿으리라, 염불자(念佛者)·선종(禪宗)까지도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리라. 대저 법화경(法華經)을 착실히 믿는 남녀(男女)를 어깨에·메고 등에·업으리라고 경문(經文)에 쓰여 있을 뿐더러·구마라염삼장(鳩摩羅琰三藏)이라고 하는 사람을 목상(木像)의 석가(釋迦)가 업으셨느니라. 니치렌(日蓮)의 참수(斬首)는 대각세존(大覺世尊)이 대신하였으니 옛날과 지금과 동일(同一)하니라. 당신들은 니치렌(日蓮)의 단나(檀那)니라, 어찌하여 부처가 되시지않을소냐.법화경(法華經)의 제사(第四)에 가로되 「불멸도(佛滅度)의 후(後)에 능(能)히 그 의(義)를 해(解)함은 이는 모든 천인세간지안(天人世間之眼)이니라」 등(等) 운운(云云).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는 사람은 일체세간(一切世間)의 천인(天人)의 눈이라고 설(說)해졌느니라. 일본국(日本國)의 사람이 니치렌(日蓮)을 박해(迫害)함은, 일체세간(一切世間)의 천인(天人)의 눈을 후벼내는 사람이니라. 그러므로 천(天)도 노(怒)하여 나날이 천변(天變)이 있으며, 지(地)도 노(怒)하여 다달이 지요(地夭)가 겹치느니라. 천(天)의 제석(帝釋)은 야간(野干)을 존경(尊敬)하여 법(法)을 배웠으므로 지금의 교주석존(敎主釋尊)이 되셨으며·설산동자(雪山童子)는 귀신(鬼神)을 스승으로 했으므로 지금의 삼계(三界)의 주(主)가 되었으니, 대성(大聖)·상인(上人)은 모습을 천(賤)히 여겨 법(法)을 버리지 않았느니라. 지금 니치렌(日蓮)은 어리석지만 야간(野干)과 귀신(鬼神)보다 뒤지지 않으며, 당세(當世)의 사람은 훌륭하다 해도 제석(帝釋)·설산동자(雪山童子)보다 뛰어나지 못하리라. 니치렌(日蓮)의 몸이 천(賤)하다고 하여 교언(巧言)을 버리는 고(故)로 나라가 이미 망(亡)하려고 하니 슬프도다, 또한 니치렌(日蓮)을 안타깝다고 말한 제자(弟子)들도 구제(救濟)하기 어려운 것을 한탄(恨歎)스럽게 여기나이다.니치렌(日蓮)의 몸이 천(賤)하다고 하여 교언(巧言)을 버리는 고(故)로 나라가 이미 망(亡)하려고 하니 슬프도다, 또한 니치렌(日蓮)을 안타깝다고 말한 제자(弟子)들도 구제(救濟)하기 어려운 것을 한탄(恨歎)스럽게 여기나이다.어떠한 경우라도 아래 어서말씀대로 십사비방이나 만심에 찬 언행을 자주 행하는 사람과는 가까이하면 안됩니다. 절대로..
만일 가까이 하게되면 환희 중의 대환희의 위대한 불계의 생명을 열 수 없게 될 뿐만아니라 지옥에 찌들게 되고 계속 숙업의 굴레에서 허우적거리며 불행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유의 사람은 어떠한 미사려구로 장황하게 포장하고 변명해도 이미 얼굴은 법화미인과는 거리가 멀게되어 항상 찌들어 있고 남의 비난거리들을 찾아 눈빛은 요동치고 자비심으로 빛나거나 해맑을 수가 없게 됩니다.
이런 유의 사람은 불계의 대자대비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자비한 생명상태를 보이면서 결국에는 주변에 악취를 풍기는 안타까운 부류라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색심불이 의정불이의 생명원리에 의해 판단해볼 때 그 생명상태는 반드시 좋지못한 인상이나 밝지못한 아우라 등의 변변찮은 모습과 가족이나 주변인들과의 관계 또한 녹록치않은 모습을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불법은 엄합니다.
한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법입니다."니치렌(日蓮)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껏 일일(一日) 편시(片時)도 마음 편한 일은 없었다.
이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을 홍통(弘通)하려고 생각할 뿐이니라.
명심(銘心)하고 명심(銘心)하여 자타(自他)의 생사(生死)는 알 수 없지만, 임종(臨終)의 시각(時刻), 생사(生死)의 중간(中間)에 니치렌(日蓮)이 반드시 마중하러 나갈 것이외다.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성도(成道)는 자축(子丑)의 끝, 인(寅)의 시각(時刻)의 성도(成道)이니라.
불법(佛法)의 주처(住處)는 귀문(鬼門)의 방향(方向)으로 삼국(三國) 다같이 서느니라.
이들은 상승(相承)의 법문(法門)이로다 , 상세(詳細)히는 다시 또 말씀드리겠소. 공공근언(恐恐謹言).
굶주려서 먹을 것을 바라고 목말라서 물을 그리듯이 그리워서 사람을 보고 싶어하듯이 병(病)에 약(藥)을 의지하듯이 용모(容貌)가 좋은 사람 연지 분을 바르듯이 법화경(法華經)에 신심(信心)을 다하시라, 그렇지 아니하면 후회(後悔)가 있으리라, 운운(云云)."
우에노전답서(上野殿答書) 미노부에서 58세에 술작 1558쪽
"니치렌(日蓮)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껏 일일(一日) 편시(片時)도 마음 편한 일은 없었다.
이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을 홍통(弘通)하려고 생각할 뿐이니라."
"임종(臨終)의 시각(時刻), 생사(生死)의 중간(中間)에 니치렌(日蓮)이 반드시 마중하러 나갈 것이외다."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성도(成道)는 자축(子丑)의 끝, 인(寅)의 시각(時刻)의 성도(成道)이니라.
불법(佛法)의 주처(住處)는 귀문(鬼門)의 방향(方向)으로 삼국(三國) 다같이 서느니라."
"굶주려서 먹을 것을 바라고 목말라서 물을 그리듯이 그리워서 사람을 보고 싶어하듯이 병(病)에 약(藥)을 의지하듯이 용모(容貌)가 좋은 사람 연지 분을 바르듯이 법화경(法華經)에 신심(信心)을 다하시라, 그렇지 아니하면 후회(後悔)가 있으리라"일심삼관(一心三觀)·일념삼천(一念三千)의 극리(極理)는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일언(一言)에 다 들어 있으니 결코 망실(忘失)하지 말지어다, 결코 망실(忘失)하지 말지어다. 전교대사(傳敎大師) 가로되 「화상(和尙)은 자비(慈悲)가 있어서 일심삼관(一心三觀)을 일언(一言)으로 전(傳)한다」 현지전(玄旨傳)에 가로되 「일언(一言)의 묘지(妙旨)이며, 일교(一敎)의 현의(玄義)니라」고 운운(云云). 수량품(壽量品)에 가로되 「언제나 스스로 이 염(念)을 하고 있다, 무엇을 가지고 중생(衆生)으로 하여금 무상도(無上道)에 들어가서 속히 불신(佛身)을 성취(成就)함을 득(得)하게 하랴」운운(云云). 매자작시념(每自作是念)의 염(念)이란 일념삼천(一念三千) 생불본유(生佛本有)의 일념(一念)이니라, 비장(秘藏)할지어다 비장(秘藏)할지어다, 공공근언(恐恐謹言).
십팔원만초(十八圓滿抄) 미노부에서 59세에 술작 13678쪽"니치렌(日蓮)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껏 일일(一日) 편시(片時)도 마음 편한 일은 없었다.
이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을 홍통(弘通)하려고 생각할 뿐이니라."
"임종(臨終)의 시각(時刻), 생사(生死)의 중간(中間)에 니치렌(日蓮)이 반드시 마중하러 나갈 것이외다."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성도(成道)는 자축(子丑)의 끝, 인(寅)의 시각(時刻)의 성도(成道)이니라.
불법(佛法)의 주처(住處)는 귀문(鬼門)의 방향(方向)으로 삼국(三國) 다같이 서느니라."
"굶주려서 먹을 것을 바라고 목말라서 물을 그리듯이 그리워서 사람을 보고 싶어하듯이 병(病)에 약(藥)을 의지하듯이 용모(容貌)가 좋은 사람 연지 분을 바르듯이 법화경(法華經)에 신심(信心)을 다하시라, 그렇지 아니하면 후회(後悔)가 있으리라""이 어본존(御本尊)을 결코 타처(他處)에서 구(求)하지 말지어다. 다만 우리들 중생(衆生)이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흉중(胸中)의 육단(肉團)에 계시느니라. 이것을 구식심왕진여(九識心王眞如)의 도(都)라고 하느니라. 십계구족(十界具足)이라 함은 십계(十界)가 일계(一界)도 빠짐없이 일계(一界)에 있음이라, 이에 의(依)해서 만다라(曼陀羅)라고 하며 만다라(曼陀羅)라고 함은 천축(天竺)의 ]이름으로서 여기서는 윤원구족(輪圓具足)이라고도 공덕취(功德聚)라고도 이름하느니라. 이 어본존(御本尊)도 다만 신심(信心)의 이자(二字)에 들어 있으니 이신득입(以信得入)이란 이것이니라."
니치뇨부인답서(日女夫人答書) 미노부에서 56세에 술작 1244쪽일체법이 불법이라 하신대로 기원할 때의 일념을 철저히 나의 생명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일체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창제로 꺼집어내고 현실화시킨다는 일념으로 기원해야 본인묘의 내도에 맞는 기원이자 일념이 될 것입니다.
묘각의 산 최정상에서 제불보살(諸佛菩薩)과 함께 상락아정(常樂我淨)의 바람에 산들거리고 오락(娛樂) 쾌락(快樂)하게 되는 것도 우리 자신 속에 있는 묘각의 산이라 알고 일념을 정해야 할 것입니다.내도 중에서도 최상.최극의 내도를 실천해야 하면서 대부분 외도의 일념을 갖고 행하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대어본존님이나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이나 묘각의 산이나 일체(법)가 흉중(胸中)의 육단(肉團)에 상존(과거나 현재나 미래영겁까지도 24시 항상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설사 본존님! 도와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원할 때도 불단 속에 계신 대경(큰거울) 본존님께 기원드리는 일념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흉중(胸中)의 육단(肉團)에 계신 윤원구족(輪圓具足) 공덕취(功德聚)이신 대어본존님께 부탁.맹세.기원드리는 것이 되어야 24시간 환희 중의 대환희의 금강불괴의 생명상태가 되는 것입니다.제목 : 지구를 둘러싼 천체의 변화에 따른 지구촌의 리셋과 신체제 출범에 따른 일념정하기
2023.6.16 ~ 2023. 6.30 태양계 속의 지구와 달, 태양, 화성, 수성, 목성, 금성, 천왕성, 토성 등의 위치 이동 및 분포와 그에 따른 특별하고도 강력한 특정 에너지의 교류와 작용에 의해 지구촌의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시작되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천문학을 연구하는 분들이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지구촌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지진이나 화산폭발 등의 자연현상도 함께 나타나게 될 것으로 예측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신체제 출범은 지구촌 전체를 리셋하여 살기좋은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이기에 다음주 부터는 국제00기구와 00재단과 관련된 미증유의 거대한 본모습.실체가 드러내게 될 것이고 직접 목도하시게 될 것입니다.一 이십팔품(二十八品) 실남묘호렌게쿄지사(悉南無妙法蓮華經之事)
소(疏)의 십(十)에 가로되, 통틀어 일경(一經)을 결(結)함에 오직 네 가지뿐이며 그 추병(樞柄)을 촬(撮)하여 이를 수여(授與)한다고.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일경(一經)이란 본적이십팔품(本迹二十八品)이고 유사(唯四)란 명용체종(名用體宗)의 사(四)이며, 추병(樞柄)이란 오직 제목(題目)의 오자(五字)이고 수여(授與)란 상행보살(上行菩薩)에게 수여(授與)하는 것이며, 이것이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이니라 운운(云云). 이 석(釋) 분명(分明)하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이 홍통(弘通)하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체(體)이고 심(心)이니라, 이십팔품(二十八品)은 용(用)이고 이십팔품(二十八品)은 조행(助行)이며 제목(題目)은 정행(正行)이니라. 정행(正行)에다 조행(助行)을 포함(包含)시켜야 하느니라 운운(云云).
一 무량의경지사(無量義經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묘법(妙法)의 서분(序分)이 무량의경(無量義經)이므로 십계(十界)가 모두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서분(序分)이니라.
一 서품(序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여시아문(如是我聞)의 사자(四字)를 깊이 터득한다면 일경(一經) 무량(無量)의 의(義)는 알기 쉬운 것이니라. 십계호구(十界互具) 삼천구족(三千具足)의 묘(妙)라고 듣는 것이며, 이 소문(所聞)은 묘법연화(妙法蓮華)라고 듣는 고(故)로 묘법(妙法)의 법계호구(法界互具)하여 삼천청정(三千淸淨)이니라. 이 사자(四字)는 일경(一經)의 시종(始終)에 걸치며, 이십팔품(二十八品)의 문문구구(文文句句)의 의리(義理)가 나의 신상(身上)의 법문(法門)이라고 들음을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고 하느니라. 그 듣는 것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므로 개성불도(皆成佛道)라고 하느니라, 이 개성(皆成)의 이자(二字)는 십계삼천(十界三千)에 걸쳐야 하는데, 묘법(妙法)의 개성(皆成)이기 때문이니라. 또 부처란 나의 일심(一心)이며 이것이 또한 십계삼천(十界三千)의 심심(心心)이니라. 도(道)란 능통(能通)에 이름하는 고(故)로 십계(十界)의 심심(心心)에 통(通)하는 것이며 이 때에 개성불도(皆成佛道)로 나타나는데, 개성불도(皆成佛道)의 법(法)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一 방편품(方便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에는 십여시(十如是)를 설(說)함이라. 이 십여시(十如是)란 십계(十界)이며 이 방편(方便)이란 십계삼천(十界三千)이니라. 이미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봉수(奉受)하는 고(故)로 시방불토중(十方佛土中) 유유일승법(唯有一乘法)이며, 묘법(妙法)의 방편(方便) 연화(蓮華)의 방편(方便)이므로 비묘(秘妙)이고 청정(淸淨)이니라. 묘법(妙法)의 오자(五字)는 구식(九識)·방편(方便)은 팔식(八識) 이하(已下)이고, 구식(九識)은 오(悟)이며 팔식이하(八識已下)는 미(迷)이니라,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 방편품(方便品)이라고 부제(附題)하였으므로 미오불이(迷悟不二)이고 삼라삼천(森羅三千)의 제법(諸法)이 이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 방편(方便)이 아니라고 함이 없으며 품(品)은 의류동(義類同)이니라. 의(義)란 삼천(三千)이며 유(類)란 호구(互具)이고 동(同)이란 일념(一念)이니라. 이 일념삼천(一念三千)을 가리켜 품(品)이라고 하느니라. 이 일념삼천(一念三千)을 삼불(三佛)이 합의(合意)하셨으니 따라서 품품(品品)에다 부제(附題)했느니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신(信)의 일념(一念)으로 부터 삼천구족(三千具足)이라고 들렸느니라 운운(云云).
一 비유품(譬喩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의 대백우거(大白牛車)란 「무명치혹본시법성(無明癡惑本是法性)」의 명암일체(明闇一體)의 의(義)이니라, 즉(卽) 삼천구족(三千具足)의 일승(一乘)을 내건 수레이므로 명암일체(明闇一體)로서 삼천구족(三千具足)의 의(義)를 나타내느니라. 법계(法界)에 편만(遍滿)하였어도 일법(一法)임을 일승(一乘)이라고 하느니라. 이 일승(一乘)이란 제승구족(諸乘具足)의 일승(一乘)이며 제법구족(諸法具足)의 일법(一法)인 고(故)로 일(一)의 백우(白牛)이니라. 또 백우(白牛)는 一이라 할지라도 무량(無量)의 백우(白牛)이니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체(體)가 대백우거(大白牛車)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묘법(妙法)의 대백우거(大白牛車)에 묘법(妙法)의 십계삼천(十界三千)의 중생(衆生)이 탔느니라, 연화(蓮華)의 대백우거(大白牛車)이므로 십계삼천(十界三千)의 중생(衆生)도 연화(蓮華)로서 청정(淸淨)함이니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법체(法體)는 이와 같으니라.
一 신해품(信解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신해(信解)는 중근(中根)의 사대성문(四大聲聞)의 영해(領解)에 한(限)하지 않고, 묘법(妙法)의 신해(信解)인 고(故)로 십계삼천(十界三千)의 신해(信解)이니라. 연화(蓮華)의 신해(信解)인 고(故)로 십계삼천(十界三千)의 청정(淸淨)한 신해(信解)이며 이 신해(信解)의 체(體)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이것이니라 운운(云云).
一 약초유품(藥草喩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묘법(妙法)의 약초(藥草)이므로 십계삼천(十界三千)의 독초(毒草)·연화(蓮華)의 약초(藥草)이므로 본래(本來) 청정(淸淨)이니라, 청정(淸淨)하므로 부처이고, 이 부처의 설법(說法)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운운(云云). 그러므로 이 품(品)에는 종상체성(種相體性)의 종(種)의 자(字)에 종류종(種類種)·상대종(相對種)의 두 가지의 개회(開會)가 있는데 상대종(相對種)이란 삼독즉삼덕(三毒卽三德)이며 종류종(種類種)이란 처음의 종(種)의 자(字)는 십계삼천(十界三千)이니라, 유(類)란 호구(互具)이고 하(下)의 종(種)의 자(字)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며 종류종(種類種)이니라. 십계삼천(十界三千)의 초목(草木) 각각(各各)이지만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일종(一種)이니라, 독초(毒草)의 독(毒)도 없고 청정(淸淨)한 초목(草木)으로서 약초(藥草)이니라 운운(云云).
一 수기품(授記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십계(十界) 각각(各各)의 당체(當體)의 언어(言語)는 묘법연화(妙法蓮華)의 수기(授記)이므로 청정(淸淨)한 수기(授記)이니라, 청정(淸淨)한 수기(授記)이므로 십계삼천(十界三千)의 부처로다, 이로써 부처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수기(授記)하느라 운운(云云).
一 화성유품(化城喩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묘법(妙法)의 화성(化城)이므로 십계(十界) 동시(同時)의 무상(無常)이니라. 연화(蓮華)의 화성(化城)이므로 십계(十界) 삼천(三千)의 개락(開落)이니라. 상주(常住)·무상(無常) 다같이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전체(全體)이니라. 화성보처(化城寶處)는 생사본유(生死本有)이며 생사본유(生死本有)의 체(體)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석(釋)에 가로되 「기(起)는 이는 법성(法性)의 기(起)요 멸(滅)은 이는 법성(法性)의 멸(滅)」이라고.
一 오백품(五百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에는 오백제자수기작불(五百弟子授記作佛)한다고 현문(現文)에 쓰여 있느니라. 그러나 묘법(妙法)의 오백(五百)이므로 십계삼천(十界三千) 모두가 오백(五百)의 제자(弟子)이니라. 연화(蓮華)의 제자(弟子)이므로 또한 청정(淸淨)이니라. 결국(結局) 십계삼천(十界三千)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제자(弟子)가 아님이 없으며, 이 경(經)의 수기(授記)가 바로 이것이니라 운운(云云).
一 인기품(人記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에는 학(學)·무학(無學)의 성자(聖者)가 와서 성불(成佛)하느니라. 이미 묘법(妙法)을 봉수(奉受)한 학(學)·무학(無學)이므로 십계호구(十界互具)·삼천구족(三千具足)의 학(學)·무학(無學)이니라. 묘법(妙法)의 학(學)·무학(無學)이므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십계(十界)에 번뇌(煩惱)를 아직 다 없애지 않았으며, 연화(蓮華)의 학(學)·무학(無學)이므로 십계삼천(十界三千) 청정(淸淨)의 개락(開落)이니라. 이 학(學)·무학(無學)은 무엇이뇨, 학(學)이란 법(法)이고 무학(無學)이란 묘(妙)이며,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운운(云云).
一 법사품(法師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묘법(妙法)의 법사(法師)이므로 십계(十界) 모두 묘법(妙法)을 수지(受持)한 일구일게(一句一偈)의 법사(法師)로다. 연화(蓮華)의 법사(法師)이므로 십계삼천(十界三千)이 청정(淸淨)한 법사(法師)니라. 십계중생(十界衆生)의 색법(色法)은 능지(能持)의 사람이며 십계(十界)의 심성(心性)은 소지(所持)한 법(法)이니라. 따라서 색심(色心) 다같이 법사(法師)로서 자행화타(自行化他)를 나타냄이니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법사(法師)이기 때문이니라 운운(云云).
一 보탑품(寶塔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보탑(寶塔)은 보정세계(寶淨世界)로부터 용현(涌現)하느니라. 그 보정세계(寶淨世界)의 부처란 사상(事相)의 의(義)는 차치(且置)하고, 증도관심(證道觀心)의 때는 모(母)의 태내(胎內)가 이것이로다. 그러므로 부모(父母)는 보탑조작(寶塔造作)의 목수(木手)이니라. 보탑(寶塔)이란 우리들의 오륜(五輪)·오대(五大)이니라, 그런데 탁태(詑胎)의 태(胎)를 보정세계(寶淨世界)라고 하는 고(故)로 출태(出胎)하는 곳은 용현(涌現)이라고 하느니라. 대체로 중생(衆生)의 용현(涌現)은 지륜(地輪)으로부터 출현(出現)하는 고(故)로 종지용출(從地涌出)이라고 하느니라. 묘법(妙法)의 보정세계(寶淨世界)이므로 십계(十界)의 중생(衆生)의 태내(胎內)는 모두 이는 보정세계(寶淨世界)이니라. 연화(蓮華)의 보정(寶淨)이므로 십계(十界)의 태내(胎內)는 남김없이 무구청정(無垢淸淨)한 세계(世界)이니라. 묘법(妙法)의 지륜(地輪)이므로 십계(十界)에 걸치는 것이며 연화(蓮華)의 지(地)이므로 청정지(淸淨地)이니라. 묘법(妙法)의 보정(寶淨)이므로 우리들의 신체(身體)는 청정(淸淨)한 보탑(寶塔)이며 묘법연화(妙法蓮華)의 용출(涌出)이므로 십계(十界)의 출태(出胎)의 산문(産門)은 본래(本來) 청정(淸淨)한 보탑(寶塔)이니라. 법계(法界)의 탑파(塔婆)로서 십법계즉탑파(十法界卽塔婆)이며 묘법(妙法)의 이불(二佛)이므로 십계삼천(十界三千)·모두 경지(境智)의 이불(二佛)이니라. 묘법(妙法)의 일좌(一座)에는 삼천(三千)의 심성(心性) 모두가 이존(二尊)의 소좌(所座)이며 묘법연화(妙法蓮華)의 이불(二佛) 일좌(一座)이므로 불가사의(不可思議)이고 청정(淸淨)이니라. 묘법연화(妙法蓮華)의 견(見)이므로 십계(十界)의 중생(衆生)·삼천(三千)의 군류(群類)·모두가 자신(自身)의 탑파(塔婆)를 보느니라, 십계(十界)가 부동(不同)이라 해도 나의 몸을 봄은 삼천구족(三千具足)의 탑(塔)을 보는 것이고 나의 마음을 보는 것은 삼천구족(三千具足)의 부처를 보는 것이니라. 분신(分身)이란 부모(父母)로 부터 상속(相續)하는 분신(分身)의 의(意)이니라, 미혹(迷惑)할 때는 유전(流轉)의 분신(分身)이고, 깨달을 때는 과중(果中)의 분신(分身)이로다. 그런데 분신(分身)이 일어나는 곳을 배우자면 지옥(地獄)을 배워야 하느니라. 이와 같은 보탑(寶塔)도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 이외(以外)에는 없느니라,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보면 보탑즉일체중생(寶塔卽一切衆生)·일체중생즉(一切衆生卽)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전체(全體)이니라 운운(云云).
一 제바품(提婆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에는 석존(釋尊)의 본사(本師)·제바달다(提婆達多)의 성불(成佛)과 문수사리(文殊師利)가 교화(敎化)한 용녀성불(龍女成佛)을 설(說)하느니라. 이는 또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제바(提婆) 용녀(龍女)이므로 십계삼천(十界三千) 모두가 조달(調達) 용녀(龍女)이니라. 법계(法界)의 중생(衆生)의 역(逆)의 쪽은 조달(調達)이며 법계(法界)의 탐욕(貪欲)·진에(瞋恚)·우치(愚癡)의 쪽은 모두가 용녀(龍女)이니라. 조달(調達)은 수덕(修德)의 역죄(逆罪)·일체중생(一切衆生)은 성덕(性德)의 역죄(逆罪)이며, 일체중생(一切衆生)은 성덕(性德)의 천왕여래(天王如來)이고 조달(調達)은 수덕(修德)의 천왕여래(天王如來)이니라. 용녀(龍女)는 수덕(修德)의 용녀(龍女)·일체중생(一切衆生)은 성덕(性德)의 용녀(龍女)이니라. 결국(結局) 석존(釋尊)도 문수(文殊)도 제바(提婆)도 용녀(龍女)도 하나의 종자(種子)인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공능(功能)이므로 본래(本來) 성불(成佛)이니라. 따라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涇)라고 봉창(奉唱)할 때는 십계(十界) 동시(同時)에 성불(成佛)하느니라 이것을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제바달다(提婆達多)라고 하느니라. 십계삼천(十界三千) 용녀(龍女)이므로 무구세계(無垢世界)가 아님이 없으며, 용녀(龍女)의 일신(一身)도 본래성불(本來成佛)로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당체(當體)이니라 운운(云云).
一 권지품(勸持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의 이모(姨母)·야수(耶輸)의 기별(記莂)은 십계동시(十界同時)의 수기(授記)이니, 묘법(妙法)의 이모(姨母)·묘법(妙法)의 야수(耶輸)이기 때문이니라. 십계(十界)의 중생(衆生)의 심성(心性)은 소지(所持)한 경(經)의 체(體)이며 이는 즉(卽) 권지(勸持)의 유통(流通)이니라. 심성(心性)에 소지(所持)한 경(經)을 권지(勸持)하여 자행화타(自行化他)로 향(向)해 가는 것이니라. 이모(姨母) 야수(耶輸)는 여인(女人)의 성불(成佛)이고 이만(二萬)의 대사(大士)는 남자(男子)의 유통(流通)이며 이 문(文)은 음양일체(陰陽一體)로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당체(當體)이니라 운운(云云). 一 안락행품(安樂行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묘법(妙法)의 안락행(安樂行)이므로 십계삼천(十界三千) 남김없이 안락행(安樂行)이니라. 자수용(自受用)의 당체(當體)이며 신구의(身口意) 서원(誓願) 모두가 안락행(安樂行)이니라. 연화(蓮華)의 안락행(安樂行)이므로 삼천십계(三千十界)가 청정(淸淨)한 수행(修行)이고 제법실상(諸法實相)이므로 안락행(安樂行) 아닌 것이 없다. 본문(本門)의 의(意)는 십계(十界)의 색심(色心)이 본래본유(本來本有)로서 진실(眞實)한 안락행(安樂行)이니라, 안락행(安樂行)의 체(體)란 소위(所謂) 상행소전(上行所傳)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이것이니라 운운(云云). 영산정토(靈山淨土)에 안락(安樂)하게 행예(行詣)해야 할 것이니라 운운(云云).
一 용출품(涌出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은 적문유통(迹門流通)의 후(後)·본문개현(本門開顯)의 서분(序分)이니라. 고(故)로 우선 본지(本地)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을 현현(顯現)하기 위(爲)해 석존(釋尊)·소구(所具)의 보살(菩薩)인 고(故)로 본지본화(本地本化)의 제자(弟子)를 부르느니라. 이는 또한 묘법(妙法)의 종지(從地)이므로 십계(十界)의 대지(大地)이며 묘법(妙法)의 용출(涌出)이므로 십계(十界) 모두 용출(涌出)이니라. 십계(十界) 묘법(妙法)의 보살(菩薩)이므로 개요익유정계(皆饒益有情界)의 자비심중(慈悲深重)한 대사(大士)이고 연화(蓮華)의 대지(大地)이므로 십계(十界)의 대지(大地)도 십계용출(十界涌出)의 보살(菩薩)도 본래(本來) 청정(淸淨)이니라. 결국(結局) 오도(悟道)의 입장에서 종지(從地)란 십계(十界)의 중생(衆生)의 대종(大種)의 소생(所生)이고, 용출(涌出)이란 십계(十界)의 중생(衆生)의 출태(出胎)의 상(相)이며, 보살(菩薩)이란 십계(十界)의 중생(衆生)의 본유(本有)의 자비(慈悲)이니라. 이 보살(菩薩)에게 본법(本法)인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부촉(付屬)하기 위(爲)해서 종지용출(從地涌出)함이니라.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종지용출(從地涌出)의 보살(菩薩)이니, 이 밖에서 구(求)하는 일 없을지어다 운운(云云).
一 수량품(壽量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수량품(壽量品)이란 십계(十界)의 중생(衆生)의 본명(本命)이니라. 이 품(品)을 본문(本門)이라고 하는 것은 본(本)에 들어가는 문(門)이라고 하는 것이니라, 범부(凡夫)의 혈육(血肉)의 색심(色心)을 본유(本有)라고 말하는 고(故)로 본문(本門)이라고 하느니라, 이 중(重)에 이르지 않음을 시각(始覺)이라 하며 적문(迹門)이라고 하느니라. 이것을 깨달음을 본각(本覺)이라고 하며 본문(本門)이라고 하느니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본유(本有)의 재처(在處)이니 이를 가지고 경(經)에 아실성불이래(我實成佛已來)라고 하느니라 운운(云云).
一 분별품(分別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은 상(上)의 품(品)의 때 본지무작(本地無作)의 삼신여래(三身如來)의 수(壽)를 듣는 고(故)로 이 품(品)에서는 위의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을 신해(信解)하느니라. 그 공덕(功德)을 분별(分別)함이며, 공덕(功德)이란 십계(十界) 각각(各各)의 당체(當體)의 삼독(三毒)의 번뇌(煩惱)를 이 품(品)에서 그대로 묘법(妙法)의 공덕(功德)이라고 분별(分別)하느니라, 그 공덕(功德)이란 본유(本有)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운운(云云).
一 수희품(隨喜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묘법(妙法)의 공덕(功德)을 수희(隨喜)하는 것을 설(說)하느니라. 오십전전(五十展轉)이란 오(五)는 묘법(妙法)의 오자(五字)이며 십(十)이란 십계(十界)의 중생(衆生)이고 전전(展轉)이란 일념삼천(一念三千)이니라. 교상(敎相)의 때는 제오십인(第五十人)의 수희(隨喜)의 공덕(功德)을 교량(校量)했으며 오십인(五十人)이란 일체중생(一切衆生)을 말함이니라. 묘법(妙法)의 五十인(人)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전전(展轉)하기 때문이로다.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전전(展轉)하느니라 운운(云云).
一 법사공덕품(法師功德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무작(無作)의 삼신(三身)도 여래(如來)의 수(壽)도 분별공덕(分別功德)도 수희(隨喜)도 자기 신상(身上)의 일이니라. 그러므로 부모소생(父母所生)의 육근(六根)은 청정(淸淨)하며 자재무애(自在無碍)이고, 묘법(妙法)의 육근(六根)이므로 십계삼천(十界三千)의 육근(六根)이 모두 청정(淸淨)하니라. 연화소구(蓮華所具)의 육근(六根)이므로 전연(全然) 부정(不淨)이 아니로다, 이 육근(六根)으로써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견문각지(見聞覺知)할 때는 본래본유(本來本有)의 육근청정(六根淸淨)이니라 운운(云云).
一 불경품(不輕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보살(菩薩)의 예배(禮拜)의 행(行)이란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일이니라. 자타일념(自他一念)의 예배(禮拜)이고, 부모과박(父母果縛)의 육신(肉身)을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예배(禮拜)하느니라. 불성(佛性)도 불신(佛身)도 중생(衆生)의 당체(當體)의 색심(色心)이므로 바로 예배(禮拜)를 행(行)하느니라. 따라서 개당작불(皆當作佛)의 사자(四字)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종자(種子)에 의(依)하느니라.
一 신력품(神力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십종(十種)의 신력(神力)을 나타내서 상행보살(上行菩薩)에게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부촉(付屬)하심이니 이 신력(神力)이란 십계삼천(十界三千)의 중생(衆生)의 신력(神力)이니라. 범부(凡夫)는 체(體)의 신력(神力)·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은 용(用)의 신력(神力)이고 신(神)이란 심법(心法) 역(力)이란 색법(色法)이며 역(力)은 법(法) 신(神)은 묘(妙)이니라. 묘법(妙法)의 신력(神力)이므로 십계(十界)가 모두 신력(神力)이니라. 연화(蓮華)의 신력(神力)이므로 십계청정(十界淸淨)의 신력(神力)이니라, 통틀어 삼세제불(三世諸佛)의 신력(神力)은 이 품(品)에 다하였으며 석존출세(釋尊出世)의 신력(神力)의 본의(本意)도 이 품(品)의 신력(神力)이로다. 소위(所謂)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신력(神力)이며, 십계개성(十界皆成)이라고 말하는 이외(以外)에 제불(諸佛)의 신력(神力)이란 없으며 일체(一切)의 법문(法門)이 신력(神力)이 아님이 없느니라 운운(云云).
一 촉루품(囑累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에는 마정부촉(摩頂付囑)을 설(說)하여 이 묘법(妙法)을 멸후(滅後)에 남기셨느니라, 이 또한 묘법(妙法)의 부촉(付囑)이므로 십계삼천(十界三千)이 모두 부촉(付屬)된 보살(菩薩)이니라 또한 삼마(三摩)하는 것은 능화소구(能化所具)의 삼관(三觀) 삼신(三身)의 어수(御手)로써 소화(所化)의 정상(頂上)에 명주(明珠)를 물려 주셨다는 뜻이니라, 대저 정상(頂上)의 명주(明珠)는 각오지견(覺悟知見)이며, 정상(頂上)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가 이것이니라 운운(云云).
一 약왕품(藥王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은 약왕보살(藥王菩薩)이 부처의 멸후(滅後)에 있어서 법화(法華)를 홍통(弘通)함이니라, 결국(結局) 소신소비(燒身燒臂)란 소(燒)는 조(照)의 의(義)이며 조(照)는 지혜(智慧)의 의(義)이고 지(智)는 능(能)히 번뇌(煩惱)의 몸 생사(生死)의 팔꿈치를 태움이니라, 천태대사(天台大師)도 본지(本地)는 약왕보살(藥王菩薩)이로다. 능설(能說)의 입장에서는 석가(釋迦)이며 중생(衆生)의 중병(重病)을 소제(消除)하는 면(面)에서는 약왕(藥王) 약사여래(藥師如來)이고 또 이물(利物)의 면(面)에서는 약왕(藥王)이라고 하며, 자오(自悟)의 면(面)에서는 약사(藥師)라고 하느니라. 이 약왕(藥王) 약사(藥師)가 출세(出世)할 때는 천태대사(天台大師)이며, 약왕(藥王)도 멸후(滅後)에 홍통(弘通)하고 약사여래(藥師如來)도 상법(像法) 잠시(暫時)의 이익(利益) 유정(有情)이로다, 시(時)를 가지고 신체(身體)를 나타내고 이름을 가지고 의(義)를 나타내는 일을 부처가 나타내셨느니라, 약왕보살(藥王菩薩)은 지관(止觀)의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법문(法門)을 홍통(弘通)하셨는데 그 일념삼천(一念三千)이란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이것이니라 운운(云云).
一 묘음품(妙音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보살(菩薩)은 법화홍통(法華弘通)의 보살(菩薩)이니라, 고(故)로 삼십사신(三十四身)을 현현(顯現)하고 십계호구(十界互具)를 나타내시어 이익설법(利益說法)하느니라. 이는 또한 묘법(妙法)의 묘음(妙音)이므로 십계(十界)의 음성(音聲)은 모두 묘음(妙音)이니라, 또 십계(十界)가 남김없이 삼십사신(三十四身)의 소현(所現)의 묘음(妙音)이니라, 또 연화(蓮華)의 묘음(妙音)이므로 십계삼천(十界三千)의 음성(音聲)은 모두 무염청정(無染淸淨)하니라, 그러므로 지카쿠대사(慈覺大師)를 묘음(妙音)의 출세(出世)라고 하며 이에 의(依)해 당결(唐決)의 시(時)·인성묘음(引聲妙音)을 전(傳)해 받았는데, 무슨 까닭으로 법화(法華)를 비방(誹謗)하여 대일경등(大日經等)보다 열등(劣等)하다고 하였는가 운운(云云). 소위(所謂) 법계(法界)의 음성(音聲)·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음성(音聲)이 아님이 없느니라 운운(云云).
一 관음품(觀音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은 심심(甚深)한 비품(秘品)이고, 식재연명(息災延命)의 품(品)이며 당도왕경(當途王經)이라고 이름한다. 그러므로 이 품(品)에 있어서 직위법문(職位法門)을 계승(繼承)한다고 배우느니라. 천태(天台)도 삼대부외(三大部外)에 관음현(觀音玄)이라는 소(疏)를 만들고 장안대사(章安大師)는 양권(兩卷)의 소(疏)를 만드셨는데 깊고 깊은 비품(秘品)이로다. 관음(觀音)·법화(法華)·안목이명(眼目異名)이라 하여 관음즉(觀音卽) 법화(法華)의 체(體)이고,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체(體)이니라 운운(云云).
一 다라니품(陀羅尼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은 이성(二聖)·이천왕(二天王)·십나찰녀(十羅刹女)·다라니(陀羅尼)를 설(說)하여 지경자(持經者)를 옹호(擁護)하시느니라, 결국(結局) 묘법다라니(妙法陀羅尼)의 진언(眞言)이므로 십계(十界)의 어언(語言)·음성(音聲) 모두가 다라니(陀羅尼)이니라. 그러므로 전교대사(傳敎大師) 가로되, 「묘법(妙法)의 진언(眞言)은 타경(他經)에는 설(說)하지 않았고 보현상호(普賢常護)는 타경(他經)에 설(說)하지 않았느니라」 다라니(陀羅尼)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용(用)이니라, 이 오자(五字)속에는 묘(妙)의 일자(一字)로부터 다라니(陀羅尼)를 설(說)해 내느니라 운운(云云).
一 엄왕품(嚴王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은 이자(二子)의 교화(敎化)에 의(依)해서 부(父)인 묘장엄왕(妙莊嚴王)이 사견(邪見)을 바꾸고 정견(正見)에 주(住)하여 사라수왕불(沙羅樹王佛)이 되었느니라. 사라수왕(沙羅樹王)이란 범어(梵語)이며 여기서는 치성광(熾盛光)이라고 한다, 일체중생(一切衆生)은 모두 이는 치성광(熾盛光)으로부터 출생(出生)한 일체중생(一切衆生)이니라, 그런 고(故)로 십계중생(十界衆生)의 부(父)이니라, 법화(法華)의 심(心)으로서는 자수용지(自受用智)이며, 홀연화기범소사택(忽然火起焚燒舍宅)이란 이것이니라, 번뇌(煩惱)의 일념(一念)의 불이 일어나서 미오불이(迷悟不二)의 사택(舍宅)을 불태움이니, 사견(邪見)이란 이것이로다, 이 사견(邪見)을 사견즉정(邪見卽正)이라고 조명(照明)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지혜(智慧)이니라. 소위(所謂) 육범(六凡)은 부(父)이고 사성(四聖)은 자(子)이며, 사성(四聖)은 정견(正見)·육범(六凡)은 사견(邪見)인 고(故)로 육도(六道)의 중생(衆生)은 모두 나의 부모(父母)라고 함은 이것이니라 운운(云云).
一 권발품(勸發品)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은 재연(再演) 법화(法華)이고, 본적이문(本迹二門)의 극리(極理)는 이 품(品)에 지극(至極)하느니라. 지카쿠대사(慈覺大師) 가로되, 십계(十界)의 중생(衆生)은 발심수행(發心修行)이라고 석(釋)하신 것은 이 품(品)을 말하느니라, 결국(結局) 이 품(品)과 서품(序品)은 생사(生死)의 이법(二法)이며 서품(序品)은 우리들 중생(衆生)의 생(生)이고, 이 품(品)은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사(死)이며 생사일념(生死一念)임을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하느니라. 품품(品品)에 있어서 처음의 제호(題號)는 생(生)의 쪽이요, 끝의 면(面)은 사(死)의 쪽이로다, 이 법화경(法華經)은 생사생사(生死生死)로 유전(流轉)하느니라. 생(生)인 고(故)로 시초(始初)에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 썼는데 여(如)는 생(生)의 의(義)이며 사(死)인 고(故)로 끝에다 작례이거(作禮而去)라고 결(結)했느니라, 거(去)는 사(死)의 의(義)이며 작례(作禮)의 언(言)은 생사간(生死間)에 이루는 바의 모든 아등중생(我等衆生)의 소작(所作)이로다, 이 소작(所作)이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이니라. 예(禮)란 불란(不亂)이란 의(義)이며 법계(法界) 묘법(妙法)이므로 불란(不亂)이니라, 천태대사(天台大師) 가로되 「체(體)의 자(字)는 예(禮)라 읽으며, 예(禮)란 법(法)이니라, 각각(各各) 그 어버이를 어버이로 하며 그 자식(子息)을 자식(子息)으로 하듯이 출세(出世)의 법체(法體)도 또한 이와 같다」고. 체(體)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가리키며 우선 체현의(體玄義)를 석(釋)하느니라, 체(體)란 십계(十界)의 이체(異體)이고, 이것을 법화경(法華經)의 체(體)로 했는데 이런 것을 작례이거(作禮而去)라고 설(說)했느니라. 법계(法界)의 천초만목(千草萬木) 지옥아귀(地獄餓鬼) 등(等) 어느 계(界)도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작례(作禮)가 아님이 없으며 이는 즉(卽) 보현보살(普賢菩薩)이니라, 보(普)란 법계(法界) 현(賢)이란 작례이거(作禮而去)이며 이는 즉(卽)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이니라, 이로써 품품(品品)의 처음에도 오자(五字)의 제목(題目)을 붙이고 끝에도 오자(五字)를 가지고 결론(結論)했으며 전후(前後)·중간(中間)·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칠자(七字)이니라, 말법(末法) 홍통(弘通)의 요법(要法)은 오직 이 일단(一段)에 있느니라, 이러한 뜻을 잊고 요법(要法)에 결(結)하지 않는다면 말법홍통(末法弘通)의 법(法)으로는 부족(不足)한 것이며, 더구나 니치렌(日蓮)의 본의(本意)를 잃는 것이니라.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는 이외(以外)의 재각무익(才覺無益)하니라, 묘락(妙樂)의 석(釋)에 가로되 「자(子)가 부(父)의 법(法)을 홍통(弘通)하면 세계(世界)에 이익(利益)이 있다」라고. 자(子)란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이고 부(父)란 석존(釋尊)이며 세계(世界)란 일본국(日本國)이고 익(益)이란 성불(成佛)이며 법(法)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지금 또한 이와 같으니, 부(父)란 니치렌(日蓮)이며, 자(子)란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이고 세계(世界)란 일본국(日本國)이며 익(益)이란 수지성불(受持成佛)이고 법(法)이란 상행소전(上行所傳)의 제목(題目)이니라.
어의구전권하(御義口傳卷下)
홍안원년무인정월일일(弘安元年戊寅正月一日) 집필닛코(執筆日興)
어의구전(御義口傳) 종(終)제목 : 지구를 둘러싼 천체의 변화에 따른 지구촌의 리셋과 신체제 출범에 따른 일념정하기
2023.6.16 ~ 2023. 6.30 태양계 속의 지구와 달, 태양, 화성, 수성, 목성, 금성, 천왕성, 토성 등의 위치 이동 및 분포와 그에 따른 특별하고도 강력한 특정 에너지의 교류와 작용에 의해 지구촌의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시작되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천문학을 연구하는 분들이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지구촌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지진이나 화산폭발 등의 자연현상도 함께 나타나게 될 것으로 예측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신체제 출범은 지구촌 전체를 리셋하여 살기좋은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이기에 다음주 부터는 국제00기구와 00재단과 관련된 미증유의 거대한 본모습.실체가 드러내게 될 것이고 직접 목도하시게 될 것입니다.
2023년 ~ 2043년 기간에 세상은 뒤짚히고 일체가 근본적으로 바뀌면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선순환의 살기좋은 세상으로 차츰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이 시기에 우리들은 2023.4.28~2033.4.28을 1차년도로 하여 750만명을 절복하고..
2033.4.28.~2043.4.28을 2차년도로 하여 7500만명을 절복하려는 것입니다.
이 시기를 지나면서 남묘호렌게쿄 정법 중심의 세상이 자리하게 되면서
2043.4.28~2053.4.28을 3차년도로 하여 7억5000만명 이상 75억명 까지도 절복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어서말씀대로 본문사도 최승지에 왕성과 동소에 건립하게 되겠지요.
하여 우리들 각자도 각자 각자가 목표를 최대한 크고 원대하게 정해서 창제근본으로 24시간 내내 환희 중의 대환희의 위대한 불계의 생명 즉 본불로 발적현본하여 인류의 구원자로서의 사명을 다해가야 할 것입니다.
우주삼라만상 일체가 묘호렌게쿄의 당체이고 자신의 일념 속에 모두 구비되어 있기에 어떠한 불가능도 가능하게 하는 비법 중의 비법인 남묘호렌게쿄 제목을 제대로 정확하게 최대한 많이 불러서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의 어유명대로 입정안국의 세계광선유포를 실현해가는 삶을 살고 또 살아가야겠지요.
24시간 환희 중의 대환희의 위대한 생명상태로 끝없이 발적현본하면서..
감사합니다.비타민C를 먹으면 살찐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건 잘못된 거다. 반드시 공복을 피해서 식후 바로 먹어야 한다. 우리 병원에 소화기내과 하시는 분에게 물어보니 한국 사람은 위장이 멀쩡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한다. 그런데 비타민C를 먹으면 위가 좋아지긴 하지만 공복에 먹으면 큰일 난다. 눈 뜨자마자 먹으면 큰일 난다. 위에서 출혈이 있을 수 있다. 비타민C는 산이다. 그래서 위장 망가진 데 딱 닿으면 부식이 돼서 출혈을 할 수 있다. 식사를 어느 정도 하고 한 알 먹고, 식사 끝나자마자 한 알 먹으면 된다. 그게 어려우면 식사 끝나고 물 마실 때 2알을 한꺼번에 먹으면 된다. 30분 기다리면 안 된다. 30분 동안에 발암물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반찬이라고 생각하면 딱 맞다. 그러니 밥하고 같이 먹는 게 비타민C다. 오늘부터 맛은 없지만 반찬이 하나 더 생겼다고 생각하자. 사람만 대장에 나쁜 균이 많이 들어가 있다. 원래는 사람이 먹은 음식 중 소화 흡수 안 된 것이 대장을 통과할 때 사람에게 좋은 물질을 만드는 게 유산균이다. 유산균 많이 먹는 사람들이 오래 산다. 그게 장수의 비결이다. 대장에 좋은 균만 있기 때문이다. 암이 꼭 아니더라도 대장이 나쁘면 오래 못산다. 그런데비타민C를 먹으면 대변냄새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나는이미 23년 동안 비타민C를 10g 이상 먹어왔기 때문에 방귀 냄새도 없고 대변 냄새가 없다. 우리 식구들 다 그렇다. 비타민C를 잘 먹는사람, 6알씩 먹은사람, 3알씩 먹은 사람, 안먹는 사람에게 실험을 해봤다. 대변을 받아다가 그 속에 어떤 균들이 사는가를 직접 배양을 했다. 결과를 보니 나를 비롯한 하루에 10알 이상 먹는 사람은 균의99%가 유산균과 같은 좋은 균이다. 1%가 썩는 균이다. 그래서 냄새가 안 난다. 그런데 6알씩 먹는 사람은 썩는 균이 5%로 올라가고,3알씩 먹은 사람은 나쁜 균이 20%로 올라간다. 안 먹는 사람은 똥냄새가 지독했다. 아니나 다를까 60∼70%가 썩는 균이다. 60∼70% 썩는 균을 가진 사람하고 1% 썩는 균을 가진 사람 중 누가 대장암에 빨리 걸릴지는 쉽게 알 수 있다.
묘법만다라공양사(妙法曼陀羅供養事)
文永十年 五十二歲御作
與千日尼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어본존(御本尊)에게 공양(供養)하였소. 이 만다라(曼陀羅)는 문자(文字)는 오자(五字) 칠자(七子)이지만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스승이며, 일체(一切)의 여인(女人)의 성불(成佛)의 인문(印文)이니라. 명도(冥途)에는 등(燈)불이 되고 사출(死出)의 산(山)에서는 양마(良馬)가 되며, 하늘에서는 일월(日月)과 같고 땅에서는 수미산(須彌山)과 같으며, 생사해(生死海)의 배이고 성불득도(成佛得道)의 도사(導師)이니라.말법(末法)의 때를 위하여 교주석존(敎主釋尊)·다보여래(多寶如來)·시방분신(十方分身)의 제불(諸佛)을 모이게 하시어, 하나의 선약(仙藥)을 남겨놓으셨으니 소위(所謂)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다섯 문자(文字)이니라. 이 문자(文字)를 법혜(法慧)·공덕림(功德林)·금강살타(金剛薩埵)·보현(普賢)·문수(文殊)·약왕(藥王)·관음(觀音) 등(等)에게도 부촉(付囑)하지 않으셨는데, 하물며 가섭(迦葉)·사리불(舍利弗) 등(等)에 있어서랴. 상행보살(上行菩薩) 등(等)이라고 하여 사인(四人)의 대보살(大菩薩)이 계시는데, 이 보살(菩薩)은 석가여래(釋迦如來)의 오백진점겁(五百塵點劫)부터 지금까지 제자(弟子)가 되시어서 일념(一念)도 부처를 잊어 버리지 않고 계시는 대보살(大菩薩)을 불러 내셔서 수여(授與)하시었다.이 양약(良藥)을 갖는 여인(女人)들을, 이 사인(四人)의 대보살(大菩薩)이 전후좌우(前後左右)에 붙어서서 이 여인(女人)이 일어서시면 이 대보살(大菩薩)도 일어서시고, 내지(乃至) 이 여인(女人)이 길을 갈 때는 이 보살(菩薩)도 길을 가시는데, 비유하면 그림자와 몸, 물과 물고기, 소리와 울림, 달과 빛과 같으니라. 이 사대보살(四大菩薩)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여인(女人)에게서 떨어진다면, 석가(釋迦)·다보(多寶)·시방분신(十方分身)의 제불(諸佛)의 감죄(勘罪)를 이 보살(菩薩)의 몸에 받게 되시느니라. 제바(提婆)보다도 죄(罪)가 깊고, 구가리(瞿伽利)보다도 대망어(大妄語)의 자(者)가 된다고 생각하시라. 아, 기쁘도다·아, 기쁘도다.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日蓮花押묘법만다라공양사(妙法曼陀羅供養事)
文永十年 五十二歲御作
與千日尼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어본존(御本尊)에게 공양(供養)하였소. 이 만다라(曼陀羅)는 문자(文字)는 오자(五字) 칠자(七子)이지만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스승이며, 일체(一切)의 여인(女人)의 성불(成佛)의 인문(印文)이니라. 명도(冥途)에는 등(燈)불이 되고 사출(死出)의 산(山)에서는 양마(良馬)가 되며, 하늘에서는 일월(日月)과 같고 땅에서는 수미산(須彌山)과 같으며, 생사해(生死海)의 배이고 성불득도(成佛得道)의 도사(導師)이니라.
이 대만다라(大曼陀羅)는 불멸후(佛滅後) 이천이백이십여년간(二千二百二十餘年間) 일염부제(一閻浮提) 내(內)에서는 아직 홍통되지 않으시었다. 병(病)에 따라서 약(藥)이 있으니, 경병(輕病)에는 범약(凡藥)을 베풀고 중병(重病)에는 선약(仙藥)을 주어야 하느니라. 불멸후(佛滅後)부터 지금까지 이천이백이십여년간(二千二百二十餘年間)에는, 사람의 번뇌(煩惱)와 죄업(罪業)의 병(病)이 가벼웠기 때문에, 지자(智者)라고 하는 의사(醫師)들이 잇달아 나오셔서, 병(病)에 따라 약(藥)을 주시었다. 소위(所謂) 구사종(俱舍宗)·성실종(成實宗)·율종(律宗)·법상종(法相宗)·삼론종(三論宗)·진언종(眞言宗)·화엄종(華嚴宗)·천태종(天台宗)·정토종(淨土宗)·선종(禪宗) 등(等)이니라. 그 종(宗)들에게 일일(一一)이 약(藥)이 있으니, 소위(所謂) 화엄(華嚴)의 육상십현(六相十玄)·삼론(三論)의 팔부중도(八不中道)·법상(法相)의 유식관(唯識觀)·율종(律宗)의 이백오십계(二百五十戒)·정토종(淨土宗)의 미타(彌陀)의 명호(名號)·선종(禪宗)의 견성성불(見性成佛)·진언종(眞言宗)의 오륜관(五輪觀)·천태종(天台宗)의 일념삼천(一念三千) 등(等)이니라.
지금의 세상(世上)은 이미 말법(末法)에 임(臨)하여 제종(諸宗)의 기(機)가 아닌데다가, 일본국(日本國) 일동(一同)이 일천제(一闡提) 대방법(大謗法)의 자(者)가 되었느니라. 또 사리(事理)에 비유(譬喩)하면 부모(父母)를 죽인 죄(罪)·모반(謀叛)을 일으킨 죄과(罪科)·출불신혈(出佛身血) 등(等)의 중죄(重罪) 등(等)보다도 더함이니라.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사람의 눈을 뺀 죄(罪)보다도 깊고, 시방세계(十方世界)의 당탑(堂塔)을 불태워 버린 것보다도 더한 대죄(大罪)를 혼자서 지은 만큼의 중생(衆生)이 일본국(日本國)에 충만(充滿)하였다. 그러므로 천(天)은 나날이 눈을 부릅뜨고 일본국(日本國)을 노려보며, 지신(地神)은 분노(憤怒)를 일으켜 때때로 몸을 떠느니라. 그런데 이 나라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은 모두 자신(自身)에게 죄과(罪科)가 없다고 생각하여 반드시 왕생(往生)하리라·성불(成佛)을 이루리라고 생각했느니라. 혁혁(赫赫)한 일륜(日輪)도 눈이 없는 자(者)는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 비유컨대 북소리와 같은 지진(地震)도 잠자는 자(者)의 마음에는 느끼지 못하듯이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도 이와 같으니라. 여인(女人)보다도 남자(男子)의 죄과(罪科)는 많고, 남자(男子)보다도 비구니(比丘尼)의 죄과(罪科)는 무거우며, 비구니(比丘尼)보다도 승려(僧侶)의 죄과(罪科)는 많고, 파계(破戒)의 승(僧)보다도 지계(持戒)의 법사(法師)의 죄과(罪科)는 무거우며, 지계(持戒)의 승(僧)보다도 지자(智者)의 죄과(罪科)는 무거우리라. 이것들은 나병(癩病) 중(中)의 백라병(白癩病)·백라병(白癩病) 중의 대백라병(大白癩病)이니라.
말대(末代)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은 어떠한 대의(大醫) 어떠한 양약(良藥)으로써 고쳐야 하느냐 하고 생각해 보건대, 대일여래(大日如來)의 지권(智拳)의 인(印) 및 대일(大日)의 진언(眞言)·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의 사십팔원(四十八願)·약사여래(藥師如來)의 십이대원(十二大願)과 중병실제(重病悉除)의 서원(誓願)도 이 약(藥)으로는 미치지 못하느니라. 조금도 병(病)이 소멸(消滅)되지 않은데다가 더욱더 배증(倍增)하리라. 이러한 말법(末法)의 때를 위하여 교주석존(敎主釋尊)·다보여래(多寶如來)·시방분신(十方分身)의 제불(諸佛)을 모이게 하시어, 하나의 선약(仙藥)을 남겨놓으셨으니 소위(所謂)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다섯 문자(文字)이니라. 이 문자(文字)를 법혜(法慧)·공덕림(功德林)·금강살타(金剛薩埵)·보현(普賢)·문수(文殊)·약왕(藥王)·관음(觀音) 등(等)에게도 부촉(付囑)하지 않으셨는데, 하물며 가섭(迦葉)·사리불(舍利弗) 등(等)에 있어서랴. 상행보살(上行菩薩) 등(等)이라고 하여 사인(四人)의 대보살(大菩薩)이 계시는데, 이 보살(菩薩)은 석가여래(釋迦如來)의 오백진점겁(五百塵點劫)부터 지금까지 제자(弟子)가 되시어서 일념(一念)도 부처를 잊어 버리지 않고 계시는 대보살(大菩薩)을 불러 내셔서 수여(授與)하시었다. 그러므로 이 양약(良藥)을 갖는 여인(女人)들을, 이 사인(四人)의 대보살(大菩薩)이 전후좌우(前後左右)에 붙어서서 이 여인(女人)이 일어서시면 이 대보살(大菩薩)도 일어서시고, 내지(乃至) 이 여인(女人)이 길을 갈 때는 이 보살(菩薩)도 길을 가시는데, 비유하면 그림자와 몸, 물과 물고기, 소리와 울림, 달과 빛과 같으니라. 이 사대보살(四大菩薩)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여인(女人)에게서 떨어진다면, 석가(釋迦)·다보(多寶)·시방분신(十方分身)의 제불(諸佛)의 감죄(勘罪)를 이 보살(菩薩)의 몸에 받게 되시느니라. 제바(提婆)보다도 죄(罪)가 깊고, 구가리(瞿伽利)보다도 대망어(大妄語)의 자(者)가 된다고 생각하시라. 아, 기쁘도다·아, 기쁘도다.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日蓮花押이즈(伊豆)의 지방(地方)에 유배(流配)되고·문영(文永)에는 사도도(佐渡嶋)에 유배(流配)되고·혹(或)은 다쓰노구치(龍口)의 참수(斬首)의 좌(座) 등(等) 이 밖에 종종(種種)의 난(難)은 부지기수(不知其數)로다. 경문(經文)대로라면 나는 정사(正師)이고 선사(善師)니라·제종(諸宗)의 학자(學者)는 하나 같이 모두 사사(邪師)이며 악사(惡師)라고 생각하시라. 이 외(外)에 선악(善惡) 이사(二師)를 분별(分別)하는 경론(經論)의 문(文)들이 널리 있기는 하나 전(前)부터 알고 계시므로 말할 필요(必要)도 없소이다.
지금의 글월에 자금이후(自今以後)는 평소의 사사(邪師)를 버리고 오로지 정사(正師)로서 의지(依持)하겠다는 말씀은 의아스럽게 생각 되나이다. 우리들의 본사(本師)인 석가여래(釋迦如來)가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하기 위해 출세(出世)하셨을 때는 타방(他方)의 부처·보살(菩薩)들이 내림(來臨) 영향(影響)하여 석존(釋尊)의 행화(行化)를 도우셨다. 그래서 석가(釋迦)·다보(多寶) 시방(十方)의 제불(諸佛) 등(等)이 사자(使者)로서 와서 화(化)를 일역(日域)에다 시현(示現)하셨으리라. 경(經)에 가로되 「아어여국견화인(我於餘國遣化人)·위기집청법중(爲其集聽法衆)·역견화수순불역(亦遣化隨順不逆)」이 경문(經文)에 비구(比丘)라고 함은 귀하(貴下)의 일이로다, 그 까닭은 문법신수(聞法信受)·수순불역(隨順不逆)·안전(眼前)의 일이니 어찌하여 이를 의심(疑心)할 수 있겠느뇨, 설령 또 재재제불토(在在諸佛土)·상여사구생(常與師俱生)의 사람일지라도 삼주(三周)의 성문(聲聞)과 같이 하종(下種) 후(後)에 퇴대취소(退大取小)하여 오도(五道)·육도(六道)에 침륜(沈輪)하고 계셨는데 성불(成佛)의 기(期)가 내지(來至)하여 순차(順次)로 득도(得度)시키기 때문이로다. 염불(念佛)·진언(眞言) 등(等)의 사법(邪法)·사사(邪師)를 버리고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가 되신 것은 희유(稀有)한 일이니라.
어떠한 경우에도 나와 같이 제종(諸宗)의 방법(謗法)을 책(責)하고 그들로 하여금 사사귀정(捨邪歸正)케 하시어 순차(順次)로 삼불(三佛)이 자리를 나란히 하시는 상적광토(常寂光土)에 참예(參詣)하여 석가(釋迦) 다보(多寶)의 어보전(御寶前)에 있어서 우리들 무시(無始)로부터 이래(已來) 사제(師弟)의 계약(契約)이 있었음인가·없었음인가·또한 석존(釋尊)의 사자(使者)로서 와서 화(化)하신 것일까·그렇다고 말씀을 들음으로써 자기 마음에도 알게 되리라. 어떻게라도 노력(努力)하시고 노력(努力)하실지어다.
왠지 모르게 귀하(貴下)에게 지난 이월(二月)경부터 중요(重要)한 법문(法門)을 가르쳐 드렸으며, 결국(結局)은 묘월(卯月) 팔일(八日)·야반(夜半)·인(寅)의 시(時)에 묘법(妙法)의 본원계(本圓戒)를 가지고 수직(受職) 관정(灌頂)해 드린 것이니라. 이 수직(受職)을 받은 사람이 어찌하여 현재(現在)일지라도 묘각(妙覺)의 부처를 이루지 못하리요. 만약(萬若) 금생(今生)의 묘각(妙覺)이라면 후생(後生)은 어찌 등각(等覺) 등(等)의 인분(因分)이 되겠느뇨. 실(實)로 무시광겁(無始曠劫)의 계약(契約)·상여사구생(常與師俱生)의 이치(理致)라면 니치렌(日蓮)이 금번(今番) 성불(成佛)할 것인데 귀하(貴下)는 어찌 서로 떨어져 악취(惡趣)에 타재(墮在)하시겠느뇨. 여래(如來)의 기문(記文)은 불의(佛意)에 의해 볼 때 세출세(世出世)에 있어서 결코 망어(妄語)가 없지요, 그런데 법화경(法華經)에는 「나의 멸도후(滅度後)에 있어 응당(應當) 이 경(經)을 수지(受持)할지어다, 이사람은 불도(佛道)에 있어 결정(決定)하여 의심(疑心)이 있을 수 없으리라」 혹(或)은 「속위질득(速爲疾得)·무상불도(無上佛道)」 등(等) 운운(云云). 이 기문(記文)이 허무(虛無)하여서 우리들의 성불(成佛)이 금번(今番) 허언(虛言)이 된다면 제불(諸佛)의 혀도 잘리고 다보(多寶)의 탑(塔)도 깨져 떨어지고 이불병좌(二佛並座)는 무간지옥(無間地獄)의 열철(熱鐵)의 마루로 되고 방(方)·실(實)·적(寂)의 삼토(三土)는 지(地)·아(餓)·축(畜)의 삼도(三道)로 변(變)할 것이로다. 어찌하여 그러한 일이 있겠느뇨, 아, 믿음직스럽고 믿음직스럽도다. 이와 같이 생각을 계속하노라면 우리들은 유인(流人)이지만 신심(身心)이 함께 즐거우니라.
중요(重要)한 법문(法門)을 주야(晝夜)로 연구(硏究)하고 성불(成佛)의 이치(理致)를 시시(時時)·각각(刻刻)으로 맛보는데, 이와 같이 지나 간다면 세월(歲月)을 보내더라도 멀지 않으며 지나는 시각(時刻)도 잠깐이리라, 예(例)컨대 석가(釋迦)·다보(多寶)의 이불(二佛)·탑중(塔中)에 병좌(並座)하여 법화(法華)의 묘리(妙理)를 서로 수긍하실 때·오십소겁(五十小劫)·부처의 신력(神力)으로써 제대중(諸大衆)으로 하여금 반일(半日)과 같다고 생각케 한다고 한 것과 같으니라, 겁초(劫初)로부터 이래(以來) 부모(父母)·주군(主君) 등(等)의 감죄(勘罪)를 받고 원국(遠國)의 섬으로 유죄(流罪) 당(當)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들과 같이 기쁨이 몸에 넘치는 자(者)는 아마 없으리라. 그러하니 우리들이 거주(居住)하고 일승(一乘)을 수행(修行)하는 곳은 어느 곳일지라도 상적광(常寂光)의 도읍(都邑)으로 될 것이로다. 우리들의 제자(弟子) 단나(檀那)로 되는 사람은 한 걸음을 옮기지 않아도 천축(天竺)의 영산(靈山)을 보고 본유(本有)의 적광토(寂光土)로 주야(晝夜)로 왕복(往復)할 것이니 기쁨은 말할 수 없도다, 말할 수 없도다.
너무나 기쁘기에 계약(契約) 한가지를 말씀드리리라, 귀하(貴下)의 감죄(勘罪)가 빨리 빨리 용서되셔서 교토(京都)로 올라 가신다면 니치렌(日蓮)도 가마쿠라전(鎌倉殿)은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시더라도 제천(諸天) 등(等)에게 말씀드려 가마쿠라(鎌倉)에 돌아가 교토(京都)로 소식(消息) 전(傳)하리라, 또 니치렌(日蓮)이 앞서서 용사(容赦)받아 가마쿠라(鎌倉)로 돌아가게 된다면 귀하(貴下)도 천(天)에 말씀드려 고경(古京)으로 돌아가시게 하겠나이다, 공공근언(恐恐謹言).
사이렌보답서(最蓮房答書) 사도에서 51세에 술작 1342~3쪽"십호(十號)라고 함은 부처의 열가지 명호(名號)인데 십호(十號)를 공양(供養)함보다도 말대(末代)의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공양(供養)하는 공덕(功德)이 뛰어났다고 쓰셨느니라."
《 어서본문 》
"이렇게도 존귀(尊貴)한 교주석존(敎主釋尊)을 일시(一時) 이시(二時)도 아니고 하루 이틀도 아니며, 일겁(一劫)동안 합장(合掌)을 하고 두 눈을 부처의 존안(尊顔)에다 대고 머리를 숙이고 타사(他事)를 버리고 머리에 붙은 불을 끄려고 하듯이 목이 마를 때 물을 생각하고, 배고플 때 음식을 생각하듯, 간단(間斷)없이 공양(供養)하여 받드는 공덕(功德)보다도 희론(戱論)으로 한 마디 계모(繼母)가 의붓아들을 칭찬하듯 마음에는 없을지라도 말대(末代)의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칭찬하고 공양(供養)하는 공덕(功德)은 저 삼업상응(三業相應)한 신심(信心)으로 일겁(一劫) 동안 생신(生身)의 부처를 공양(供養)하여 받드는 것 보다도 백천만억배(百千萬億倍) 더하다고 설(說)하셨느니라. 이것을 묘락대사(妙樂大師)는 복과십호(福過十號)라고 쓰셨느니라. 십호(十號)라고 함은 부처의 열가지 명호(名號)인데 십호(十號)를 공양(供養)함보다도 말대(末代)의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공양(供養)하는 공덕(功德)이 뛰어났다고 쓰셨느니라."
호렌초(法蓮抄) 미노부에서 54세에 술작 1044쪽"이렇게도 존귀(尊貴)한 교주석존(敎主釋尊)을 일시(一時) 이시(二時)도 아니고 하루 이틀도 아니며, 일겁(一劫)동안 합장(合掌)을 하고 두 눈을 부처의 존안(尊顔)에다 대고 머리를 숙이고 타사(他事)를 버리고 머리에 붙은 불을 끄려고 하듯이 목이 마를 때 물을 생각하고, 배고플 때 음식을 생각하듯, 간단(間斷)없이 공양(供養)하여 받드는 공덕(功德)보다도 희론(戱論)으로 한 마디 계모(繼母)가 의붓아들을 칭찬하듯 마음에는 없을지라도 말대(末代)의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칭찬하고 공양(供養)하는 공덕(功德)은 저 삼업상응(三業相應)한 신심(信心)으로 일겁(一劫) 동안 생신(生身)의 부처를 공양(供養)하여 받드는 것 보다도 백천만억배(百千萬億倍) 더하다고 설(說)하셨느니라. 이것을 묘락대사(妙樂大師)는 복과십호(福過十號)라고 쓰셨느니라. 십호(十號)라고 함은 부처의 열가지 명호(名號)인데 십호(十號)를 공양(供養)함보다도 말대(末代)의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공양(供養)하는 공덕(功德)이 뛰어났다고 쓰셨느니라."
호렌초(法蓮抄) 미노부에서 54세에 술작 10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