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박일일 즉흥 여행
(저는 이 홈피 주인장의 맏딸 김선형입니다. 방금 끝낸 여행의 기행문을 올립니다.)
어제(2016년 9월 3일, 토요일) 저녁 아빠와 엄마가 KBS ‘인간극장’을 보셨는데, ‘황도’라는 섬에 사는 아저씨 이야기와 캠핑카를 타고 여행 다니는 가족 이야기가 나왔다. 그것을 보시더니 둘 다 급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기신 모양이다. 아빠가 즉흥여행을 제안하셨다. 웬일인지 엄마도 내일 교회를 빠져도 괜찮다고 하셔서 엄마, 아빠, 선린이, 나 이렇게 4명이 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다시 엄마가 아무리 생각해도 교회일이 바빠서 못 가겠다고 마음을 바꿔서 선린이가 엄청나게 절망하고 말았다. 선린이는 가족끼리 단란하게 여행가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데 그 꿈이 깨졌기 때문이다. 엄마 빼고 가는 건 싫다고 울면서 방에 들어가면서, 저도 집에 남겠단다. 같이 가자고 설득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아빠와 나, 둘이 여행을 떠났다.
2016년 9월 4일 일요일 오전 12시 15분에 집을 나섰다. 출발하기 전부터 난리를 겪었는데 나와서 주차장에 있는 차를 빼려고 하니 앞에 차가 너무 이상하게 세워져 있어서 나갈 수가 없는 2차 어려움에 봉착했다. 차에 적혀있는 번호로 전화를 거는데 너무 늦은 시각이라 안 받을까 봐 걱정이 됐다. 다행히도 바로 전화를 받았고 또 바로 내려와서 차를 빼주셨다. 하여튼 12시 30분에 본격적으로 마산에서 출발!
우리의 목적지는 전라북도 전주였다. 아빠는 아직도 스마트폰도, 차에 네비게이션도 없어서, 내 폰에 네비를 깔고 전주 전동 성당을 찍었다. 둘만 가는 여행은 처음이라서 느낌이 색달랐다. 둘만 긴 시간 이야기한 적이 별로 없어서 그런 것 같았다. 차를 타고 가며 새벽 3시 반까지 계속 이야기를 했다. 선린이, 엄마, 가족 이야기를 많이 했다. 중간에 산청 휴게소에 들러서 아빠는 우동을 드시고 나는 고추장 불고기를 먹었다. 음식이 좀 짰다. 다시 출발하여 가다가 이번에는 진안 마이산 휴게소에 들러 자판기 커피를 한잔씩 마셨다. 역시 자판기 커피가 좋네 라고 생각했다. 차의 앞 유리창이 더러워서 앞이 흐릿하게 보여, 화장실에서 휴지에 물을 적셔 둘이 같이 막 닦았다. 닦는 것도 재미있었고 유리창이 깨끗해진 걸 보니까 기분이 좋았다.
계속 떠들면서 가다보니 금방 전주에 도착했다. 도착시간은 새벽 4시 반쯤. 도착하니까 맘도 편하고 자고 싶었지만 아빠가 돌아다니자고 해서 차에서 내렸다. 앞에 예쁜 다리가 있어서 가봤다. 다리 이름은 남천교고 그 위에 청연루라는 큰 정자가 있었다. 청연루에 대한 설명이 적힌 안내판이 있어서 읽어봤다. 한 문장이 너무 길어 한글인데도 뭔 말인지 못 알아듣게 써놨다면서 아빠랑 막 웃었다. 청연루는 나무 냄새도 좋고 꽤 크고 예뻤다. 거기에 지역 주민 몇 명이 술 마시며 놀고 있었고, 자는 사람도 있었다. 노숙하기 딱 좋은 곳이라고 아빠한테 말했다. 정자에 있는 사람하고 다리 밑에 있는 사람하고 싸우고 있었는데 전라도 말로 욕하고 싸우니까 재미있었다. 다리 밑에도 산책로를 잘 꾸며놓았다.
그리고 바로 옆으로 전주 한옥마을로 이어지기에 들어갔다. 어두운 새벽에 조용한 한옥 거리를 걸으니까 전에 느끼지 못했던 분위기가 느껴졌고, 주변은 아름다웠다. 걷다가 전동성당에 들어갔다. 저번에 친구와 왔을 때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들어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새벽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아빠와 함께 들어갔는데 오르간 연주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성당 안은 조명과 인테리어가 아름다웠다. 잠시 앉아있었더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기분이 좋았다. 곧 나와서 다시 돌아다니다 보니 해가 뜬 건 아닌데 주변이 약간 밝아졌다. 아빠는 시간이 애매하니 바로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고 하셨고 그 이후 나는 차에서 잠이 들었다.
잘 자고 있는데 아빠가 갑자기 7시 쯤 나를 깨웠다. 여기는 새만금 방조제 북쪽(군산 쪽) 출발 지점이라고 아빠가 말해줬다. 도로의 오른 쪽도 바다, 왼 쪽도 바다였다. 바다 가운데 길이 있는 거다. 약간 신기했지만 졸려서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아빠는 그 이후로도 계속 억지로 나에게 고군산군도의 신시도와 무녀도를 보게 했다. 나중에 말씀하시길 아빠는 안 가본 길을 가는 걸 좋아하는데 새만금 방조제 길을 처음 가봐서 되게 신났었다고 하셨다. 다시 잠이 들었고 꽤 푹 자고 일어나니 부안군 변산 해수욕장이었다. 아빠는 전날에도 3시간만 주무셨다고 하는데 운전하느라 계속 못 주무셨다. 해수욕장 가는 도중에 피곤이 몰려와서 내가 자는 사이에 아빠도 30분 정도 차를 세우고 주무셨다고 한다.
서해안이라서 역시 달랐다. 물이 많이 빠졌는데 조개, 게 등의 생물들이 많았고 갈매기들이 가까이에서 먹이를 먹으며 놀고 있었다. 사람들은 갯벌에서 뭔가를 채집하고 있었다. 나는 하얀 신발을 신고 있어서 조심조심 축축한 땅을 걸었다. 나중에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맘 편히 맨발로 진흙과 바닷물을 밟으면서 놀았다. 갈매기들이 매우 가까이에 있어서 내가 따라다니기도 했다. 모래가 정말 부드럽고 느낌이 좋았다. 물이 좀 깊어질 때까지 들어가 볼까 하고 바다 쪽으로 계속 걸어갔는데 걸어도 걸어도 계속 물이 얕았다. 1m도 안돼서 물이 목까지 오던 강릉 동해 바다와 확연히 달랐다. 물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10시쯤에 곰소항 젓갈 정식이 유명하고 맛있다고 해서 먹으러 갔다. 식당들이 너무 많고 검색을 해도 알바들이 추천해 놓은 곳 밖에 없어서 아무 데나 갔는데 약간 실망스러웠다. 아빠도 이전에 왔을 때 먹었던 곳보다 별로라고 하셨다. 젓갈은 8가지 종류가 나왔다. 그 중 5가지는 맛이 거의 똑같고 3가지만 달랐다. 김하고 싸먹으니까 짠맛도 좀 사라지고 맛있었다. 그 식당에서 내 폰은 배터리가 나가서 꺼져버렸다. 그래서 여행 사진을 한 장도 못 찍었다. ㅜㅜ. 아빠가 조개젓을 좋아하셔서 만원 어치를 샀는데 나중에 엄마가 싸게 잘 산 거라고 알려주셨다.
밥 먹고 차에 타니까 또 잠이 왔다. (아빠 주: 선형이가 자는 동안 부안읍을 거쳐 30번 도로를 타고 태인, 칠보, 장금리, 순창을 지났다.) 잠결에 아빠가 춘향이로 유명한 남원이다 하고 깨우셨지만 북적거리는 거리만 잠깐 보고 바로 다시 잠들었다. 그 사이에 구례에 도착했다. 구례 시장에 뭔가 맛집이 있지 않을까 하고 아빠와 같이 둘러봤다. 그런데 너무 시골이고 사람도 없고 장사도 안 돼서 밥집이 제대로 된 데가 없었다. 슈퍼에서 아이스크림, 껌 하나 사고 그냥 떠났다.
4시쯤에 '섬진강 다슬기 전문점' 식당에 도착하여 다슬기 토장탕을 먹었다. 여기는 성공이었다. 다슬기탕은 처음 먹어봤는데 다슬기를 씹을 때 모래 씹는 느낌이 난다고 아빠한테 말했더니 그게 알이라고 말해주셨다. 느낌이 약간 거슬렸지만 괜찮았다. 탕에 다슬기, 된장, 아욱, 수제비가 들어있는데 맛이 일품이다. 밑반찬도 맛있고 심지어 김도 맛있었다. 하지만 내 배가 너무 작아서 조금 남겼다. 나와서 보니 바로 맞은편에 토지초등학교가 있었다. 아빠가 여기는 구례군 토지면이고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하동 악양면 평사리가 있다고 말해주셨다.
집으로 가기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다시 차를 탔다. 그러다 섬진강 어류 생태관을 발견했고 아빠가 가보자고 했다. 생태관 주변은 잘 꾸며져 있었고 깨끗했다. 들어가는 길도 예쁘다. 입구 앞에는 투호가 있기에 해봤다. 꽤 잘 넣었다. 입장료는 어른 2천원인데 아빠가 지갑을 차에서 놓고 오셔서 내가 냈다. 들어가서 보니 잉어, 붕어 등이 있다. 손가락을 물에 넣어보니 물고기들이 먹이인줄 알고 문다. 잉어는 이가 없어서 괜찮고 느낌이 신기했다. 물레방아랑 연결한 자전거 페달을 돌리면 산소가 공급된다고 해서 타 보았다. 세게 팍팍 돌려서 공기 공급을 해주고 내려와서 보니 표지판에 세게 돌리면 물고기들이 놀라니까 살살 돌리라고 써놓았다. 아빠가 앞장서서 가시고 내가 따라갔다. 물고기들이 갇혀있는 것을 심심하게 구경했다. 사람 형상을 만들어 섬진강 역사를 알려주는 곳에 갔다. 사람이 정말 리얼하게 생겼다. 이리저리 만져보고 말도 걸어보니 재미있었다. 아빠는 영상 보는 곳에서 영상을 보셨다. 나는 물고기에 대한 퀴즈를 터치 화면으로 맞추기 하는 게 있어서 시도했다. 시시하게 생겼어도 은근히 공부도 되고 재미있었다. 덕분에 물고기 내장은 뭐가 있는지, 꼬리 종류는 뭐가 있는지 알게 됐다. 우리 외에 관람객이 소수 있는데 아이들을 데려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떤 아이는 잘 구경하는데 어떤 아이는 무서워서 할아버지 뒤에만 딱 붙어있었다. 걷다보니 큰 수족관에 큰 메기, 철갑상어, 향어, 잉어가 있었다. 원통형이어서 물고기들이 가장자리를 빙빙 돈다. 정말 코앞에서 볼 수 있어서 물속에서 구경하는 것 같았다. 그런 큰 수족관이 하나 더 있었다. 마지막 방에 두꺼비 색칠하는 게 있었다. 유치하지만 나는 유치한 것도 좋아하기 때문에 색칠도 해보았다. 내가 했지만 잘 한 것 같다. 그 색칠종이에 섬진강의 ‘섬’자가 두꺼비를 뜻한다고 써있다. 아빠는 다 보고 먼저 나가셨다. 나도 다 보고 나오니 아까 봤던 투호, 제기차기, 팽이치기, 링 던져 넣기가 있었다. 싹 다 해봐야 한다. 제기차기는 여전히 못했다. 팽이치기를 어릴 때 되게 못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오랜만에 커서 해보니 팽팽 잘 돌았다. 자랑하고 싶었는데 아빠는 이미 가버려서 혼자 좋아했다. 나와서 이제부터 집으로 출발! 이때가 오후 5시 10분쯤.
오는 중에 차에서 아빠랑 사이좋게 껌을 나눠 씹었다. 나는 아까 잠을 많이 자서 잠은 안 온다. 아빠가 섬진강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갈수록 폭이 넓어진다고 설명해주셨다. 도로 양편의 가로수는 벚나무이고 그 위 산에 있는 나무들은 매화나무이며, 매화가 하얗게 피면 벚꽃보다 더 예쁘다고 한다. 꽃필 때 와서 보고 싶다. 여기 광양 다압이 전국에서 매실이 가장 많이 난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아빠한테 집에 가는 데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어보니까 2시간 반이라고 하신다. 섬진강을 따라서 전남 광양 땅을 달리다가 다리를 건너 경상남도 하동으로 들어섰다. 그 이후 고속도로에 들어서 사천, 문산, 반성을 지나 드디어 집 도착! 7시 반쯤 도착할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7시 정각에 도착했다. 17시간 30분 동안 620km를 달린, 알차고 보람 있고 재미있는 여행이었다!
첫댓글 제가 사는 진주를 통과하셨네요. 다음에 진주오시면 연락주세요. 촉석루 구경에 진주냉면 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