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제비뽑기
1835년 25세의 영국 군관 롤린슨이 이란의 서쪽 비시툰에서 한 노인의 안내로 큰 암석 위에 새겨진 비문을 발견했다. 베히스툰(‘神의 땅’이란 뜻) 비문이라고 알려진 이 비문에는 고대 페르시아어, 엘람어, 바벨론어로 기록되어 있었다. 비문은 높이 15m, 폭 100m에 이르는 비문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다리우스 왕>이 이르기를 이것들이 나에게 복속한 나라들이다. 페르시스, 엘람, 바빌로니아, 앗시리아, 아라비아, 이집트, 바닷가에 있는 나라들, 리디아, 그리스, 메디아, 아르메니아, 카파도키아, 파르티아, 드란기아나, 아리아, 코라스미아, 박트리아, 소그디아, <간다라>, 스키티아, 서타기디아, 아라코시아 그리고 마카 모두 23개의 땅들이다.』
이 비문을 세운 주인공은 에스더서 1장에 나오는 아하수에로 왕의 아버지 다리우스I세였다. 에1:1을 보자.
“이 일은 아하수에로 왕 때에 있었던 일이니 아하수에로는 <인도>로부터 구스까지 백이십칠 지방을 다스리는 왕이라”
에1:1에 나오는 <인도>는 베히스툰 비문에 나오는 간다라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간다라는 고대 인도 땅이었고 페르시아(바사) 제국의 동쪽 끝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막강했던 군주가 아하수에로 왕이었고 그의 왕비가 바로 에스더였다. (서론이 길어졌는데, 에스더서는 누구의 문학작품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이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예측하지 못하는 “변수”로 일하신다는 사실을 내 생활 속에서 깨우칠 때가 많았다. 며칠 전에도 그런 일이 있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아하수에로 왕의 최측근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하만”이었다. 그는 모든 대신들 위에 있는 사람으로(에3:1) 왕의 신하들 중 가장 존귀한 자였다.
그는 자신의 막강한 권력을 이용하여 평소 눈엣가시로 보이던 유대인들을 모두 학살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결심을 실행할 吉日을 제비뽑기로 결정했는데 그날은 첫째 달 13일이었다.(출12:18을 보면 그날은 유월절 양 잡는 날 곧 첫째 달 열나흗날 前 날이었다)
이런 사실을 사촌 오빠인 모르드개로부터 전해 들은 에스더 왕후는 왕에게 나가 자신이 베풀 잔치에 하만과 함께 오기를 간청했다. 이때 하만의 기분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했다. 그래서 그는 자랑하고 다녔다. “왕후의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은 왕과 나밖에 없다!!”
왕후의 잔치 자리에 나간 왕은 기분이 너무 좋아 왕후에게 이렇게 말했다(에7:2).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냐.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냐. 곧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
물론 이 말은 남자의 뻥이었지만 그만큼 그의 기분이 좋았다는 뜻이다. 이에 에스더는 이렇게 말했다(에7:3).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
이 말에 충격을 받은 왕은 “감히 그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냐!”고 물었고, 에스더는 “그는 하만”이라고 지칭했다. 그 순간 들끓어 오르는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왕은 잠시 왕궁 후원으로 나갔다.
위기를 직감한 하만은 왕후 앞에 엎드려 살려달라고 애걸했다. 그때 후원에서 돌아온 왕이 그 장면을 목격하면서 이렇게 외쳤다(에7:8).
“저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
갑자기 생각지 못했던 “변수”가 하만에게 일어난 것이다. 왕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즉시 호위 병사들이 하만의 얼굴을 싸서 끌고 나갔다. 하만은 모르드개의 목을 달려고 준비해두었던 높은 장대에 자신의 목이 달렸고, 그의 측근들도 모두 처형되었다.
이후부터 유대인들은 “멸절 위기”에 살아난 이 날을 부림절로 오늘날까지 지키고 있다. 에9:18을 보면 당시 페르시아의 수도인 수산 城에 살았던 유대인들은 15일에 부림절로 지켰고, 그 외 지역에서는 14일에 지켰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오늘날 유대인들은 수산 城처럼 성벽으로 둘러싸인 예루살렘에서는 15일에, 성벽이 없는 텔아비브에서는 14일에 부림절을 지키고 있다.
부림절(פּוּרִים 푸림)은 하만이 “제비(פוּר 푸르)”를 뽑았던 사건에서 유래된 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