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백련사는 동백꽃 피는 계절. 만개한 꽃으로 나무도 바닥도 온통 붉을 것이다. 궁금하여 백련사 홈피에 들어가 뚝뚝 송이째 떨어지는 동백 낙화 사진을 가져왔다. 꽂히면 무조건 떠났던 때가 좋았던걸까? 가슴이 설레이지 않는 지금이 좋은걸까? 정돈된 삶의 모습으로 치부하기엔 아무것도 하기싫어병이 깊어진 요즘이다. -202102.24
미황사, 녹우당에 들렀다 오느라 밥 때가 한참 지났다. 혹 공양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긍정적 몸짓으로 기다리라던 거사님이 보살님께 뭔가 쿠사리를 먹고는 풀죽은 모습으로 오더니 안된단다. 배고픔을 잊고자 엠한 물만 들이켰다. 만대루 아래 샘의 석간수 맛이 어찌나 시원하고 축대의 돌들과 잘 어울리던지, 잠시 배고픔을 잊었다.
한개의 판에 대웅보전을 쓰지 않고 대웅, 보전, 이란 두 개의 현판으로 나뉘어 쓴 백련사 대웅보전, 원교 이광사의 글씨
대웅보전 벽화, 나무 뿌리에 매달린 나그네 위로는 사자가, 아래에는 독사가, 나무 뿌리를 쥐가 갉아먹고 있다. 이 때 꿀 다섯방울이 얼굴로 떨어진다. 그 무시무시한 고통을 잊고 꿀물을 빨아먹는 데 정신이 팔린 나그네가 딱 우리들이다.
‘응진(應眞)’이란 존경받고 공경받을 만하다는 뜻이다. 나한전이라고도 불리며,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16나한상과 영산회상도를 봉안하고 있다.
아주 오래전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바로 전 봄 방학때 백련사에 온 적이 있었다. 97년이었으니 물경 13년만의 남도행이다. 그 때도 비가 와서 구강포와 칠산 앞바다가 보이지 않아 아쉬웠는데 오늘도 구강포는 뿌연 안개 속,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그 땐 백련사 동백숲이 철조망으로 막혀 있었고, 동백꽃도 이미 다 져버려 몹시 실망했었다. 근데 이상하다. 2월말이었으니 동백이 만개하는 시기인데 기억의 왜곡이 어느 지점에서 일어났을까.
13년동안 동백나무는 고목이 되어 울창해진 검은숲이 어두컴컴했다. 고목에서 송이째 뚝뚝 떨어진 붉은 동백꽃이 봄비에 젖어 좀 처연했다. 그 사이 동백숲을 두른 철조망을 철거한 것인지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인지 알수늘 없지만 동백숲을 걸을 수 있어 참 좋았다.
백련사 뒤 만덕산은 야생차가 많아 이를 ‘다산(茶山)’이라고도 불렀다. 강진에 유배왔던 정약용의 호거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만덕산을 오가며 정약용과 깊은 교류를 했던 백련사 스님의 차 이야기가 유명하다.
이 동백숲을 지나 만덕산을 지나 다산 초당까지 걸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 친구가 다산초당에서 만덕산을 넘어 백련사에 왔는데 다산초당에 안경을 두고와서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가 하루에 두번 만덕산을 넘은적도 있었다.
봄비 내리는 동백숲에서 너무 오래 있었나보다. 남편이 날 찾으러 동백숲으로 들어왔다. 함께 동백숲을 구경하면 좋겠지만 남편의 모든 구경은 절대 10분을 넘지 않는 대신 편안히 한시간은 기본, 두세시간도 너끈히 차 안에서 기다린다. -2010.02.08 강진 백련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