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엘리야를 시돈 땅 사르밧으로 옮기셔서 과부에게 음식을 공급받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선지자를 통해 죽은 과부의 아들을 소생시키십니다.
8,9절 바알 숭배의 주동자인 이세벨의 고향인 사르밧으로 엘리야를 보내십니다. 사람들은 바알 신앙의 심장부인 시돈만큼은 하나님이 내리신 가뭄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할 거라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시돈 역시 죽음의 땅이 되었고, 이제 하나님만이 그 땅에 생명을 주실 수 있음을 보이려 하십니다.
10-12절 말라버린 그릿 시냇가에서 보내신 곳이 식량이 바닥난 과부의 집입니다. 과부에게 준비시켰다 하신 음식은 굶어 죽기 직전에 아들과 마지막으로 나눠 먹을 한 끼 식사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고백하지만, 살리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과부에게, 엘리야를 통해 믿음을 선물하시려는 것입니다.
13,14절 마지막 남은 음식을 다 먹으면 죽는 것밖에는 다른 대책이 없다며 탄식하는 여인에게, 작은 떡으로 하나님의 선지자를 섬길 것을 요구하십니다. 야박하고 매정하게 들리지만,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요구입니다. 살고 죽는 것이 그 떡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양식이 없을 때만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때 죽기 때문입니다.
15,16절 이방 여인이 믿음의 강력한 한 걸음을 내딛자(참조. 눅 4:25,26), 기근으로 죽어가던 바알의 땅에 곡식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도록 공급하십니다. 자식과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신뢰한 과부의 믿음을 보시고, 그가 내놓은 작은 떡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크게 갚아주십니다. 크신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시는 작은 믿음은 무엇입니까?
17-24절 아들의 죽음을 엘리야의 방문과 자신의 죄와 연관시키는 것은, 사르밧 과부가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통제 안에 있음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엘리야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하나님이 아들을 살리실 수 있음을 믿고, 세 번이나 아이와 몸을 포개어 간절히 기도하여, 삶과 죽음을 통제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가 됩니다. 상황을 하나님의 일로 해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매일성경, 2023.09/10, p.144-145,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열왕기상 17:8-24에서 인용).
① 하나님은 엘리야를 시돈 땅 사르밧으로 옮기셔서 과부에게 음식을 공급받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선지자를 통해 죽은 과부의 아들을 소생시키십니다. 바알 숭배의 주동자인 이세벨의 고향인 사르밧으로 엘리야를 보내십니다. 사람들은 바알 신앙의 심장부인 시돈만큼은 하나님이 내리신 가뭄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할 거라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시돈 역시 죽음의 땅이 되었고, 이제 하나님만이 그 땅에 생명을 주실 수 있음을 보이려 하십니다.
② 말라버린 그릿 시냇가에서 보내신 곳이 식량이 바닥난 과부의 집입니다. 과부에게 준비시켰다 하신 음식은 굶어 죽기 직전에 아들과 마지막으로 나눠 먹을 한 끼 식사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고백하지만, 살리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과부에게, 엘리야를 통해 믿음을 선물하시려는 것입니다.
③ 마지막 남은 음식을 다 먹으면 죽는 것밖에는 다른 대책이 없다며 탄식하는 여인에게, 작은 떡으로 하나님의 선지자를 섬길 것을 요구하십니다. 야박하고 매정하게 들리지만,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요구입니다. 살고 죽는 것이 그 떡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양식이 없을 때만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때 죽기 때문입니다.
④ 이방 여인이 믿음의 강력한 한 걸음을 내딛자(참조. 눅 4:25,26), 기근으로 죽어가던 바알의 땅에 곡식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도록 공급하십니다. 자식과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신뢰한 과부의 믿음을 보시고, 그가 내놓은 작은 떡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크게 갚아주십니다. 크신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시는 작은 믿음은 무엇입니까?
⑤ 아들의 죽음을 엘리야의 방문과 자신의 죄와 연관시키는 것은, 사르밧 과부가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통제 안에 있음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엘리야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하나님이 아들을 살리실 수 있음을 믿고, 세 번이나 아이와 몸을 포개어 간절히 기도하여, 삶과 죽음을 통제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가 됩니다. 상황을 하나님의 일로 해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