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신곡 (연옥16곡)】
분노의 죄 씻기, 마르코와의 대화
우리 주위에 쏟아져 내리는 검은 연기(분노의 연기)를 견뎌내기가 어려워 길잡이의 어깨에 의지하여 걸었습니다.
단테는 수많은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기도하는 소리였습니다.
그 기도는 '하느님의 어린양'의 첫머리로 시작되었습니다. 모두가 같은 가사에 같은 가락이었고 완전한 조화를 연출해 내었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영혼들은 분노의 죄를 씻고 있는 중입니다.
아뉴스 데(Agnus De) 하느님의 어린양.
그리스도교 전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선생님, 이 소리는 망령들이 내는 것입니까?”
바로 그렇다. 망령들이
분노의 죄를 씻고 있는 거란다.“
벨기에 겐트(헨트)의 바프성당에 제단화 '어린양의 경배'가 있습니다.
겐트의 바프성당의 겐트 제단화 '어린양의 경배'입니다. 얀 반 에이크의 15세기 플랑드르 회화의 불후의 명작으로 거대하고 웅장한 제단화입니다. 그림의 크기가 3.4m X 4.6m이고 방탄유리로 덮여 있어 사진을 찍을 수가 없습니다.
얀 반 에이크, 겐트 바프 성당제단화 '어린양의 경배', 1432년
- 2019년 벨기에 겐트 여행 중에서
겐트 바프 성당제단화 '어린양의 경배' 하단 부분
제단에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라고 써 있습니다.
2010년에 갔을 때는 일요일이어서 보지 못했는데 2019년에야 보게 되었습니다.
벨기에 겐트 성바프 대성당
그때 “당신은 누구이기에 우리의 연기를 헤치며 가는가”라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러자 단테가 당신은 죽기 전에 누구였는지 또 이 길이 맞는지 말해주라고 했습니다.
나는 롬바르디아(이탈리아 북부, 주도는 밀라노) 사람 마르코(롬바르디아 귀족 가문, 베네치아 기사, 완고한 기질로 관대한 사람)인데 당신이 들어선 길을 가면 계단에 이를 것이라며 당신이 위에 오르거든 부디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단테는 마르코에게 나에게 전 둘레(2둘레)에서 만났던 귀도 델 두카와의 대화에서(연옥편 14곡. 세상의 타락의 원인이 환경이 열악해서인가? 아니면 습관이 나빠서 인가?) 의문이 있었는데 당신 말을 듣고 보니 그 의문의 실체가 이제 명확해졌으니 궁금했던 것을 묻겠다고 합니다.
세상은 사실, 당신도 방금 말했지만,
미덕은 싹이 말라 버려 황량하기 그지없고
사악함으로 뒤덮여 더욱 무성해지고 있소.
단테는 "이렇게 된 원인이 무엇이오? 누구는 하늘에, 누구는 땅에 있다고 합디다만."이라고 묻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이 어떤 예정된 계획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하고
모든 원인을 하늘에 돌리려고 하오만,
인간의 모든 행위가 하늘의 필연성의 결과로 돌아간다는 이론의 오류를 말하고,
“하느님이 사람들의 행동을 주관하지만 모든 것을 주관하는 것은 아니고 사람들은 그릇된 것과 옳은 것을 구분하는 스스로의 빛,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소. 인간에게 하느님을 닮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어떤 일을 이루고자하는 마음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지라는 것이오. 인간들은 더 위대한 힘을 가진 자유로운 주체들이요. 하늘은 이것을 넘어 통제하지 않지요.”
그러니 오늘날 세상이 어지럽다 해도
원인은 사람들 자신에게 있는 것이오!
이제 그 점을 잘 설명해 주겠소.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애로운 손에서 마치 어린애처럼 생겨나왔다오. 그 단순한 영혼은 길잡이나 재갈이 그 욕망을 바꾸지 않는다면 장난감에 속아 그 뒤를 따라다닐 거요. 그래서 통치자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법률의 구속을 필요로 하며
적어도 진정한 도시의 탑(정의)을 구별할 수 있는
통치자가 필요한 것이지요.
마르코는 세상이 사악함으로 덮여가는 것은 세상의 정의를 구별할 수 있는 통치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진정, 법은 있소. 그런데 누가 법을 지키고 있소?
아무도 없소. 앞에서 이끄는 목자(교황)는
되씹기는 하지만 갈라지 발굽은 가지지 못했소.
법은 있으나 이를 지키게 할 지도자가 없습니다.
앞에서 이끄는 목자(교황)는 사색, 묵상은 하지만 시비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정통성을 지닌 듯 보이지만 사실은 스스로의 권력을 넘어서서 세속의 권력까지 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들의 목자가 세속적인 재화를 탐하는 것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세상을 혼란하게 했던 원인은
사람들의 썩어 빠진 본성이 아니라
잘못된 통치였소.
세상의 부패의 원인은 썪은 본성이 아니고, 인간성이 속임을 받을 위험은 있으나 가장 큰 원인은 지도자(교황)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중세 스콜라 철학에 의한 가톨릭 사상입니다.
이에 대해 개신교는 이와 반대 입장으로 인간성의 타락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로마는 선을 아는 세상을 실현했지만,
두 개의 태양이 두 개의 길을 밝혀 주었으니,
하나는 세상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길이었소.
하나의 태양은 다른 태양의 빛을 끄려 했고
목자의 지팡이에 칼이 더해졌으니
서로 뒤엉켜서 악으로 흐를 수밖에요.
세상의 평화는 교황권과 황제권이 분립되어 각자 자기의 영역을 지켜나갈 때 유지됩니다.
정신적 권력 즉 교황의 권력이 황제의 권력 즉 세속적인 권력까지 탐해서 세상의 정의가 파괴되었다는 뜻이겠지요.
당신은 이제 세상에 이런 얘기를 들려주시오.
로마의 교회는 두 개의 권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수렁에 빠져 자신은 물론 자신의 역할도 더럽힌다고!
마르코, 당신 말은 구구절절 옳소.
레위의 자손들이 왜 유산을
상속하지 못했는지 이제 알겠소이다.
레위의 자손들이 사제의 임무를 맡았으나 레위의 자손들에게 땅을 분배하니 않은 이유를 이제 알겠다고 합니다. 교권이 돈을 알면 반드시 부패하기 때문이란 뜻입니다.
두꺼운 연기를 뚫고 더 밝아진 빛줄기가 보이자, 천사가 가까이 있으니 천사가 날 보기 전에 떠나야 한다며 마르코는 훌쩍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