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다.” / 박선애
한가하고 편안한 주일날이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기분이 좋다. 차분히 준비하고 교회에 가려고 나서는데 고향 교회 김 장로님에게서 전화가 온다. 이분은 5~6년 전부터 내가 안 가는 주일날에 어머니를 모시고 교회에 다니는 고마운 사람이다. ‘약속 장소로 나오지 않아서 전화했겠지.’ 하며 아무 걱정 없이 받았다. 어머니가 새벽에 넘어져서 꼼짝도 못 하고 있다고 한다.
하늘이 무너질 만큼은 아니어도 내 마음은 무너진다. 얼마나 다친 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내가 가면 해결할 수 있을지 등 순간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어머니한테 전화했더니 새벽 네 시에 화장실 갔는데 어지러워서 넘어졌다고 한다. 나오려고 몸부림치다 거실까지 겨우 나왔다. 한동네 사는 사촌 언니를 불러야겠는데 전화가 있는 곳까지 갈 수 없었다. 다행히 언니가 평소보다 빠른 시간인 여덟 시에 와서 돌보다가 교회 갔다고 한다. 상황 설명이 끝나자, 나한테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듣지 않았다고 장로님을 탓한다. 막내아들이 예배 마칠 때까지 참았다가 읍에 있는 병원 가면 될 것인데 뭐하러 전화해서 나를 걱정시키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괜찮으니 오지 말라고 몇 번이나 당부한다. 답답해서 화를 냈다. 상황을 들으면 심각한 것 같은데도 좀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여러 번 말해서 많이 다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필이면 내가 없는 주일에 넘어져서 네 시간이나 혼자서 몸부림친 것이 가슴 아팠다. 내가 있었어도 다치는 것을 막지는 못했겠지만, 고통 속에서 몸살을 앓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날에 꽃구경 가느라 혼자 있게 한 것이 후회되었다.
오빠에게 먼저 알렸다. 광주로 모시고 가기로 했다. 남편은 바로 가자고 하는데 예배는 드려야 할 것 같다. 하필이면 성경 공부반 수료식을 한다고 늦어진다. 집중이 안 된다. 마음은 떠도는데 중간에 나갈 수도 없다. 출발하면서 전화하니 사촌 언니가 와 있다. 많이 아파한다고 전한다. 마음이 급하다.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눕지도 못하고 소파에 기대고 방바닥에 앉아서 견디고 있다. 아침이면 물 발라 빗어 늘 단정하던 머리는 부스스하고, 얼굴은 찡그리고 입술은 보랏빛이다. 왼쪽 허벅지가 퉁퉁 부었다. 다리를 살짝 건드려도 엄청나게 고통스러워한다. 옷을 갈아입히는 데 애를 먹었다. 짐을 챙기고, 검은 봉지에 신발을 담는데 이걸 다시 신을 수 있을까 생각이 들어 울컥했다. 업거나 들어서 승용차에 태우고 가면 될 줄 알았는데 안 되겠다.
119를 눌렀다. 위치를 확인하더니 10분 안에 구급차가 왔다. 고관절 골절로 판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병원으로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목포나 해남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자식 넷에 배우자까지 하면 여덟이나 되지만 24시간 간병할 사람은 없다. 개인 간병인을 쓰기에는 비용이 무섭다. 공동 간병인실이 있는 데다 정형외과 평이 좋은 병원이 언니네 집에서 가까이에 있어 거기로 가기로 언니, 오빠와 의논한 상태라 광주로 가야 한다. 소방 공무원인 제자가 미리 귀뜸해 준 대로 광주의 병원에서 치료하고 있는 지병이 있어 거기로 꼭 가야 한다고 거짓말을 해 봤지만 내가 들어도 허술하다. 안 넘어간다. 남편이 연락처를 구해 사설 응급 구조 센터(911)와 연결되었다. 119 대원이 병원에 인계해야 한다고 우긴다. 움직일 때마다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를 목포 중앙병원 침상을 거쳐 911로 옮겨 광주로 갔다. 응급실에 가서 검사하니 고관절 골절이 맞다. 수술이 가능할 거라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어머니는 아픈 중에도 자식들 고생시킨다고 미안해한다. 못 걷게 될까 봐 걱정이 많은 눈치다. 수술하고 치료하면 낫는다고 안심을 시켰다. 전부터 언니는 고관절 골절로 어렵게 된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어머니에게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자주 당부했다. 어머니는 그 말을 잘 따르고, 혹시 못 걷게 될까 봐 능력에 맞게 운동도 열심히 했다. 그래서 혼자서도 잘 지내는 편이었다. 전화하면 항상 “나는 괜찮다. 내 걱정은 말아라.”로 끝을 맺었다. 언니는 자식들 신세 안 지려고 애쓰다가 다쳐서 더 짠하다고 마음 아파한다. 옆에서 돌보며 말벗이라도 해 주면 훨씬 안정될 텐데, 낯선 곳에 남에게 맡겨 놓고 오려니 발걸음이 무거웠다.
3일 후 어머니는 깨진 뼈를 잘라내고 인공 뼈를 넣어서 붙이는 수술을 했다. 나이가 많아 모두가 걱정했는데 어머니는 잘 견뎠다. 수술실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가 어머니를 보고 뛰어가 부르자 손을 들어 인사한다. “안 아프게 잘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라는 말까지 해서 우리를 놀라게 한다. 하반신 마취만 한다고는 했지만 저렇게 초롱초롱하게 나오실 줄은 몰랐다. 일단 안심했다. 워낙 고령이라 중환자실에서 하루 지켜보겠다고 한다. 밤에 섬망 증상이 나타나면 가족이 돌보든지 개인 간병인을 써야 한다고 겁을 준다.
어머니는 밤을 잘 보내고 다음 날 일반 병실로 옮겼다. 물어보면 엄청 아프다고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큰 수술 했는데 이만큼도 안 아프겠냐고, 괜찮다고 했다. 같은 수술을 하고 건너편에 있는, 어머니보다 열 살 적은 할머니는 간병인이 체위 변경을 하니, “살살 좀 하쇼. 남의 삭신이라고 그렇게 함부로 하요?”라고 악을 쓰더라고 언니가 전해준다. 우리 어머니 참을성은 알아 줘야 한다고도 한다. 간병인들이 어머니보고 점잖다고, 지시에 따라서 잘한다고 칭찬한다.
수술 후 2일쯤 후부터 물리치료실에 가서 재활 운동을 시켰다. 처음에는 발이 안 떨어진다고 실망하더니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10일이 지난 지금은 보조기구를 의지해서 꽤 걷는다. 운동을 더 하고 싶은데 빨리 끝내서 불만이다. 얼른 집에 가고 싶은 마음으로 잘 이겨내고 있다. 다음 주말에 오겠다고 인사하는 나에게 “그때 갈 때는 나도 따라 같이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한다. 그러자고 하는 말이 안 나왔다. 어머니는 늘 괜찮다고 거짓말을 잘도 했는데 나는 못했다.
첫댓글 이런 큰 일이 있으셨네요. 가족 모두 놀라셨겠어요. 자식들 고생 안시키려고 재활 열심히 하던 울 엄마랑 똑같으셔요. 좋아지실 거에요.
선생님, 어머니 좋아지셔서 선생님 마음도 편해졌으면 좋겠어요.
에구, 다행입니다. 엄마들이 말하는 "괜찮다"는 다 거짓말이에요.
괜찮다는 어머니, 안 괜찮은 자식.
빠르게 쾌유하고 계시다니 다행입니다.
이런 일이 있으셨군요. 다 좋아지길 바랄게요.
닮고 싶은 어른, 글에서 어머니의 점잖은 성품을 봅니다.
쾌유를 빕니다.
정말 어머니의인품이 훌륭하시다는 게 느껴집니다. "괜찮다."는 안 괜찮다로 들어야 될 것 같네요.
어며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시는 것처럼, 자녀 사랑은 끝이 없나 봅니다.
수술 자리 잘 아물고, 재활 운동도 열심히 하시어 걸어다니시는데 지장이 없길 바랍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빠른 쾌유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