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어찌하여 낙심하는가?
09/30금(金) 시 42:1-5, 빌 4:6-7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2:5)
우리에게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염려, 근심, 낙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해방되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고 진정한 나, 자신을 바로 깨달아 오직 하나님께 소망하고 기도할 때 실존적인 두려움과 염려, 근심, 낙심을 몰아낼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빌 4:6-7)
시편을 통해 낙심을 극복하는 길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인간의 진정한 자아(나)가 내 영혼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 사슴이 시냇물 바닥에서 물을 찾아 헐떡이듯이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헐떡입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신 하나님을 갈망하니 내가 언제 하나님께로 나아가 그 얼굴을 뵈올 수 있을까?”(시 42:1-2) 내 영혼이 주님을 찾는 갈급함이 사슴이 사막에서 시냇물을 찾는 갈급함과 같다고 합니다. 인간의 진정한 자아는 보이는 몸이 아니라 내 영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보이는 육신이 자신이라고 속입니다. 그래서 영혼은 생각하지 못하고 세상만 바라보니 어둠의 포로가 되어 목이 마르고 염려, 근심, 낙심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진정한 나, 내 영혼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이것을 알 때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세상에 속지 않는 참 승리자가 됩니다.
▣세상이 주는 악한 생각을 기도로 물리치고 주님의 생각으로 채워야 합니다.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내가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재앙이 아니라 번영이다. 너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려는 것이다”(렘 29:11). 하나님 안에는 절대로 부정적인 생각이나 두려움, 낙심이 없습니다. 번영이고 희망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만일 불안, 염려, 근심, 원망의 생각이 들어오면 이것은 사탄이 주는 생각이구나,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과감히 물리치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딤후 1:7).
▣낙심을 이기려면 환경을 보지 말고 오직 주님을 소망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 괴로워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이제 내가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을 또다시 찬양하련다”(시 42:5)
시편 기자의 현실은 낙심하고 불안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는 이미 다 이루어진 것이니 하나님만 소망할 때 환경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이미 그것을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경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주님께 소망을 가지고 기도할 때 환경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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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있고, 내 속에서 내가 나에게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진정한 나(영)가 나(혼)에게 말하는 기도입니다. 내가 어렵고 힘들 때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갑자기 환경으로 인해 마음에 절망이 왔습니다. 숨이 막히고 답답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 괴로워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이제 내가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을 또다시 찬양하련다” 이렇게 선포하고 나니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내가 나에게 말씀을 선포하는 것도 기도입니다.
프랑스의 수학자, 신학자인 ‘파스칼’은 “인간 속에는 오직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고, 세상이 채울 수 없는 공간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기독교 최고의 성자 어거스틴은 “내 영혼이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참 만족과 안식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나, 내 영혼입니다. 내 영혼에 하나님으로 충만할 때 목마름이 해결되고 염려, 근심, 낙심이 떠납니다.
미국의 영성 지도자 조이스 마이어(Joyce Meyer)는 그의 저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에서 ‘인간이 날마다 싸워야 할 적은 멀리 있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찾아오는 염려, 근심, 두려움에서 오는 낙심과 낙망’이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오는 염려 근심을 물리치지 못하면 믿음의 성장이나 능력, 승리의 삶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하찮아 보여 인식하기도 어렵지만, 실존에서 찾아오는 염려, 근심, 낙심, 낙망은 결국 인간을 쓰러트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천년 가까이 된 고목 나무가 천년의 세월을 버티지 못하고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원인을 찾아보았습니다. 전문가들의 진단은 그 뿌리 속에서부터 침투한 불개미에 의해 결국 그 나무가 쓰러지고 만 것입니다. 작은 개미들이 천년의 고목을 넘어트린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살이에서도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에 카이로스의 시간이 임하려면 혼의 반응을 멈추고 영이 반응해야 합니다. 두려움, 염려, 낙심을 극복하고 하늘의 문이 열리는 마음과 태도에 대해 나누어봅니다.
우리의 영이 움직일 때 하나님의 카이로스의 시간이 크로노스의 시간에 임하게 됩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를 경험합니다. 문자 그대로 하늘이 열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위대한 영적 승리를 거둔 엘리야가 갑자기 하나님께 죽여달라고 합니다. 왜? 두려움 때문입니다. 반드시 죽이겠다는 이세벨의 위협에 두려움이 훅~하고 엘리야의 마음에 들어온 것입니다. 두려움이 역사하기 시작하자 위대한 엘리야조차 영적으로 무장해제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그러자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에 기름이 마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기적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 ‘두려움’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있으면 영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으로 두려움을 몰아내야 합니다. 믿음이 실재가 되어 우리 안에 가득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그냥 아무 말 없이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항상 ‘믿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늘 문이 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영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불안과 염려도 두려움과 마찬가지로 혼을 움직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영적인 역사가 일어날 때 그곳에는 평강과 평안이 가득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불안과 염려, 조바심 가운데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킬 때 비로소 영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기도 가운데 평강이 있는 것, 그것이 영이 움직인다는 증거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역사를 확신하고 응답으로 취하는 사인이 ‘평강’입니다. 하늘을 열기 전에 먼저 내 안에 평강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늘의 문을 여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혼을 움직이는 태도와 생각은 ‘분노와 미움’이고, 영을 움직이는 태도와 생각은 ‘긍휼과 사랑’입니다. 정의, 공의, 평등의 이름으로 이야기할 때 분노와 미움이 있다면 육과 혼이 반응합니다. 영은 분노와 미움에는 반응하지 못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뜻대로 기적을 행하여 백성을 살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를 질책하십니다. 분노함으로 그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기적은 일어났지만, 하나님의 역사가 온전히 행해지지 못했습니다.
스데반이 순교하던 곳에 하늘이 열렸습니다. 영이 움직이고 카이로스의 시공간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때 스데반의 고백이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긍휼의 마음, 자신을 돌로 쳐 죽이는 사람들까지 긍휼히 여기고 사랑했던 스데반의 마음이 하늘의 문을 열었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십자가에 달아 죽이는 사람들을 향해 긍휼과 사랑의 마음을 쏟으셨을 때, 카이로스의 시공간에 있던 위대한 하나님의 구원이 휘장을 가르고 이 땅에 임했습니다. 긍휼과 사랑의 마음은 하늘의 문을 엽니다.
부정적인 생각들에 기초한 기도는 영의 역사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안될 거야’ ‘이런 문제가 일어나면 어떻게 하지’ ‘그 사람이 바뀔까?’ ‘재정이 채워질까?’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은 결코 영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예수님은 부정적인 것을 입에 담지도 못하게 하셨습니다. 영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다’라고 말하라. ‘괜찮다’라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카이로스의 시공간이 열리고, 이 땅에 하늘의 시공간이 임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통로가 되는 사람, 바로 우리 안에 먼저 카이로스의 시공간이 임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완전한 임재와 통치! 그 임재로 인한 평강, 그 통치로 인한 거룩,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긍휼과 사랑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믿음! 이 카이로스의 시공간이 먼저 그 ‘문’인 우리에게 임하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서 이루어질 때, 비로소 우리의 영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 영이 하늘의 문을 엽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을 통해 열린 하늘의 문이 우리 주변으로 확장되기 시작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영은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끌어올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하늘의 약속이 부어졌던 것처럼, 엘리야를 통해 하늘의 불이 임했던 것처럼, 여호수아를 통해 하늘의 능력이 땅을 덮었던 것처럼, 다윗과 솔로몬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의 구름이 성전에 가득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를 통해서도 하늘이 이 땅에 임할 것입니다. 우리는 땅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하늘을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영을 움직이는 마음, 생각, 태도를 품어야 합니다. 영을 움직이는 믿음, 평강, 사랑, 순종의 마음을 구해야 합니다. 두려움, 염려, 후회를 물리쳐야 합니다. ‘안될 거야’, ‘불가능해’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지배한다면 물리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지 않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혼에서 벗어나 영 안에서 낙심을 극복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성준 목사님의 “하나님의 시공간”-
내 맘이 낙심되며
https://youtu.be/puGc0xvhes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