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렴. 그 젊은 엄마를!
구운 조기를 발라서 딸 아이 입에 넣어줍니다. 딸은 “내가 알아서 먹을게.”라고 하면서도 연신 받아먹습니다. “엄마의 사랑이야. 너 어린이집 다닐 때 매일 조기 한 마리씩 구워서 먹였는데… 머리 좋아지고 건강해지는 단백질이 많다고 해서… 기억 안 나지?” 기억이 날 리가 없지요. “너 오는 시간만 기다렸어. 따끈한 생선살이 네 입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너무 행복했어.” 딸은 고개만 끄덕입니다.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가 행복을 다시 맛본 기분입니다.
두 딸이 5세, 2세 때부터 일을 했으니 저는 늘 분주했습니다. 아이들은 주로 친정집이나 남의 집, 또는 어린이 집에 다니며 엄마의 빈자리를 메웠습니다. 엄마를 기다리다 지쳐 잠들거나 울었던 기억이 대부분일 겁니다. 따끈한 조기 살을 떼어 먹이며 어린 딸과 행복했던 젊은 엄마는 이내 사회적 존재로 변신합니다. 어린이 집에 혼자만 남아 엄마를 기다리던 큰 딸, 날이 어두워지면 아파트 베란다에서 엄마의 흰색 차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작은 딸, 엄마는 엄마대로 집에 두고 온 아이들 생각에 매일이 눈물 바람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왜 어린 딸들의 심정을 더 이해해주지 못하고, 엄마를 기다리는 슬픔과 불안을 다독여주지 못했을까요. 지금도 철없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면 마음이 아파서 힘들어집니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 내려놓고 엄마 역할만 하고 싶습니다. 조기를 구워 가시를 발라 먹이며 눈을 맞추고, 추운 베란다에서 엄마의 차를 기다리게 하지 않을 겁니다. 두 딸을 양옆에 누이고 살을 비비며 안아 주겠습니다. 제가 일을 시작하기 전, 가족이 소풍가서 깔깔대고 웃었던 때처럼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엄마~ 가지마!”하던 두 딸의 목소리가 생생합니다. “엄마, 빨리 와!” 목이 멥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불렀습니다. “어머니, 우리 애들 어떡해요. 저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자신이 없습니다. 어머니께서 맡아 키워주세요. 먹는 거, 자는 거, 다 중요한데 엄마 품에서 자라는 여느 집 애들처럼 잘 돌봐주세요. 사랑만 받아도 부족한데 어린 마음이 얼마나 외롭고 공허하겠어요. 어머니, 모성적 사랑에 기대어 우리 딸들이 상처를 덜 받고 자라도록 보호해주세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두 아이는 성모님의 딸이기도 했습니다. 엄마의 빈자리를 견뎌내고 잘 자라준건 성모님의 은혜입니다. 그 덕에 성모님과 친밀해져서 묵주기도를 즐겨 바치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영적인 부분까지 양육해주시며 저보다 잘 키워주신 거지요. 저 역시 성모님의 사랑받는 딸입니다. 이 나이가 되어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우리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소리쳐 부릅니다. “어머니, 어디 계세요. 빨리 오세요.”
그러면 성모님께서 다가오시며 말씀해 주십니다.
“요세피나야, 그땐 어쩔 수 없었잖아. 네 탓이 아니란다. 그 힘든 와중에 엄마와 아내로서 얼마나 애썼니. 이제는 용서하렴. 어린 자식을 곁에서 보호하지 못했다고 스스로 미워한 그 젊은 엄마 요세피나를!”
첫댓글 요셉피나님 공유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