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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형식과 창조된 탈의 시학
박권숙(시조시인)
1. 시적 담화의 유형과 개성론
R. 야콥슨은 언어기능의 각도에서 언어학과 시학에 접근하였다. 그래서 시적 담화형식을 이루는 세 요소, 즉 화자(시인), 화제(텍스트), 청자(독자) 사이의 관계를 해명한 수평설을 내세웠다. 시적 화자를 염두에 둘 때, 시적 화자의 말 건넴에 귀 기울이는 청자의 개념이 설정되고, 이는 유기적이고 내면적으로 연결되는 하나의 허구적 요소다. 이에 대해 R. P. 파킨은 “시는 함축적 화자와 함축적 청자 사이의 거래이며, 거래의 규모와 종류는 화재와 이 화재에 대한 화자의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라고 정의하였다. 여기서 작품 밖의 실제 시인의 경험적 자아와 작품 속에 구현된 화자의 시적자아가 동일시되는가, 혹은 구분되는가 하는 문제에 주목하게 된다. 전자는 낭만주의 시에서 보여지듯 시의 목적은 자기표현이며 이는 실제 시인과 시적화자를 동일시함으로써 시를 가장 고백적이고 자전적 장르로 보는 개성론이다. 반면, 현대시의 두드러진 양상 중 하나로 시적화자는 화제에 대한 태도를 표명하기 위해 창조된 극적개성이며, 이는 시 역시 허구적이고 극적인 성격을 띤다는 몰개성론이다. 실제 시인의 경험적 자아와 작품 속의 시적 자아(페르소나)를 구분하는 것이다. 페르소나(탈)는 배우의 가면을 의미하는 personando에서 유래된 연극용어로서 처음에는 목소리를 집중, 확대시키는 가면의 입구를 뜻하다가 배우의 역할 등의 의미를 거쳐 어떤 뚜렷한 인물이나 개성을 가리키게 되었다. 연극의 가면은 다른 비예술적 가면과 같이 혼돈상태의 내면상태나 개성적 인격을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양식화하거나 구체화시키는 수단이다. 이와 같이 시의 화자를 양식화된 가면(stylized mask)인 페르소나로 명명함으로써 시인의 태도나 인생관, 나아가 우주의 한 단면까지 심오한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이 글에서는 2017년 『서정과 현실』상반기호에 실린 시조작품들을 통하여 인간의 경험을 양식화하는 방법인 페르소나(탈)가 어떻게 창조되고 있으며, 시인의 구체화된 대행자인 이 페르소나의 선택은 바로 시점(point of view)의 선택이므로 각 작품들에서 다양하게 구현된 극적개성인 페르소나(탈)와 그 시점의 선택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내 겨울이 오면 처방전이 바뀌겠지 까닭 없는 슬픔에도 익숙해진 이마 위로 찬 계절 채비를 하듯 여우비가 지나간다
파도가 밀고 오는 꼬였던 발자국들, 그 흔적 쓸어 주던 늦은 가을볕이 등 굽은 어깨를 치며 단풍 진다 서두르네
뉘 모를 보푸라기 다독이는 아내에게 바람에 구겨진 옷 다림질만 시켰구나 아픔을 혼자서 삭인 그 눈물을 몰랐구나
빗금 친 시린 날들 허전한 삶의 뒤끝, 몸보다 마음의 병 깊어가는 시간 앞에 내 은발 기대선 와온 노을빛도 은빛이네 -김연동, 「은빛 와온」전문
이 작품에는 “*와온: 순천만의 아늑하고 아름다운 어촌 마을”이란 주석이 붙어 있다. 공간적 배경은 와온, 시간적 배경은 늦가을 황혼녘이다. 화자는 일몰명소로 유명한 순천만의 와온 해변 쓸쓸한 풍경에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투사시킨다. 늦가을 갈대숲의 은빛 노을에 물든 와온과 은발의 화자는 감정이입에 의해 일체감을 이루게 되고, 작품 속에 표현된 대상인 표제「은빛 와온」은 마침내 시인 자신의 삶으로 윤색되어 세계를 자아화 한다. 이 작품은 시적 체험을 상상력보다는 자전적 기억으로 밀고 감으로써 ‘삶의 허망함’을 고백하는 1인칭 화자 ‘나’는 시인 자신이다. 실제 시인의 경험적 자아와 작품 속의 시적 자아가 동일시되는 개성론의 전형에 속한다. 이 작품은 화자가 와온에서의 체험을 겪으면서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을 택하고 있다. 화자가 작품 세계의 주인공으로서 ‘와온’에서의 일상적 체험을 통하여 ‘허전한 삶의 뒤끝’이라는 진리를 발견한다. 첫수 ‘처방전’ ‘까닭 없는 슬픔’ 둘째 수 ‘꼬였던 발자국들’ ‘등 굽은 어깨’ 셋째 수 ‘아픔’ ‘눈물’ 넷째 수 ‘허전한 삶의 뒤끝’ ‘마음의 병’ 등에서 일관되게 느껴지는 1인칭 화자의 비애에 찬 감상적 목소리는 작품의 통일성에 기여함으로써 한 목소리, 한 어조의 단일한 의미만이 존재하는 서정시는 독백적인 개인발화의 장르임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첫수와 둘째 수에서는 ‘여우비’ ‘파도’ ‘늦은 가을볕’ ‘단풍’ 등의 겨울이 오는 와온의 풍경을 화자자신의 주관적 감정으로 환치시켜 읽어내고 있다. 셋째 수에서는 ‘보푸라기 다독이는’ ‘바람에 구겨진 옷 다림질만 시킨’ ‘아픔을 혼자서 삭인 눈물’의 아내를 떠올리며 깊은 회한과 자책에 탄식하고 있다. ‘-시켰구나’ ‘-몰랐구나’의 영탄을 통하여 자신의 감정을 전혀 양식화하지 않고 솔직하게 노출시킨다. 그리고 마지막 수에서 ‘빗금 친 시린 날들’ ‘허전한 삶의 뒤끝’ ‘마음의 병 깊어가는 시간’이라는 인생의 황혼을 겸허하게 반추하며 ‘내 은발’과 ‘와온 노을빛도 은발’이라는 자아와 세계의 일체감을 깨닫는 아름다운 성찰로 귀결된다. 이 작품은 초로의 시간을 맞이한 한 시인이 생애의 ‘은빛 와온’을 투명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로 형상화함으로써 숙연한 자성과 애상적 심경을 모든 독자에게 현재감각으로 고백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적 담화형식의 3요소인 화자, 청자, 화제의 관계에서 이 작품은 언술행위의 주체인 화자에게 모든 초점이 집중되는 화자 지향으로 화자의 이미지가 가장 생생하게 환기되는 체험시, 인간상 제시의 시라 불리는 것이다.
음력 이월 초파일 어머니 다녀가시면 산에 들에 모유 냄새 뭉클한 꽃이 핀다 꽃으로 피어서라도 젖 물리고픈 내 어머니
꽃이 피면 나도 몰래 웃음종지 놓고 가신 거다 몇 날 며칠 어린 새가 슬픔에만 잠길까봐 봄에서 가을까지 피다가 눈꽃까지 피우신거다
제 아무리 사는 일이 눈물겹다 칭얼대도 어느 능선 어느 절벽 매달려서까지 젖 물리신
어머니, 그 꽃만 할까
우주를 덮는
향기 만발 -임성구, 「꽃이 핀다」전문
이 작품은 객체로서의 ‘꽃이 핀다’ 라는 하나의 실체로 부각되는 자연현상을 주체와의 관계에 의해 해명하고자 하는 시적화자의 몽상적 일체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즉, 앞의 작품 「은빛 와온」이 투사의 원리에 의해 세계와의 동일성을 이룬 반면, 이 작품은 대상을 자아의 욕망, 가치관, 감정에 적합한 것으로 변용시켜 동일화를 이루는 동화의 원리를 사용한다. ‘꽃’은 자연의 순환적 질서에 의해 피어나는 단순한 객관적 현상이 아니라, 화자에게 있어서는 ‘어머니 다녀가시면’ 피는 필연적 존재인 것이다. ‘음력 이월 초파일’은 돌아가신 화자의 어머니 기일이며, 화자에게 젖도 못 물리시고 떠난 애절한 비원이 ‘모유냄새 뭉클한 꽃’으로 핀다는, 경험이 아니라 상상력에 의해 자아를 세계화하고 있다. 소월의 「산유화」 역시 이 작품과 마찬가지로 꽃이 피고 지는 자연현상을 통하여 생명 순환적 질서의 본질을 노래한 인식의 시다. 그러나 소월의 ‘꽃’은 주체와 객체와의 관계보다 객체인 꽃의 의미형성에만 주력하고 있는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라는 심리적 거리 밖의 꽃이며, ‘작은 새’ 역시 주체인 화자와는 전혀 무관하게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의 존재이다. 그러나 동일한 제재인 ‘꽃이 핀다’와 ‘어린 새’가 이 작품에서는 주체인 화자가 부여한 가치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객체인 것이다. 이 작품은 시인과 시적 화자는 동일시되지만, 발화행위의 주체인 ‘나’라는 화자가 발화내용의 주체인 ‘내 어머니’에 대해 서술하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을 택하고 있다. 첫수에서 중대한 세계인식의 계기가 되는 ‘어머니’를 상실한 비극적 자아는 ‘꽃으로 피어서라도 젖 물리고픈 내 어머니’라는 신화적 상상력을 통하여 현실의 죽음을 극복하고 세계와의 영원한 동일성을 갈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둘째 수에서 어머니인 ‘꽃’과 화자인 ‘어린 새’가 애틋한 사랑과 간절한 그리움으로 아름답게 조응하면서 ‘봄부터 가을까지 피다가/ 눈꽃까지 피우신 거’라는 계기성의 시간개념이 사라지고 현실의 한계를 넘어선 영원한 현재인 신화적 시간이 열린다. 그리고 셋째 수에서는 화자는 ‘사는 일이 눈물겹다 칭얼대’는 세상의 모든 ‘보편적 자식’으로, 어머니는 “우주를 덮는// 향기 만발”의 ‘대지적 모성’으로 의미가 심화 확장된다. 여기서 시상전개에 따라 각수 종장을 행 구분과 연 구분의 미적의장을 통하여 감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는 시인의 섬세한 의도가 빛을 발하고 있다. 이는 유한한 삶 속에서 무한을 지향하는 재생적 삶의 인식이다. 어머니와 꽃은 재생, 풍요, 영원한 생명력이라는 원형적 상징으로 ‘할미꽃 전설’ ‘심청전’ ‘콩쥐팥쥐’등과 같이 죽은 여인이 꽃으로 환생한다는 한국전통설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소를 빌려옴으로써 표제「꽃이 핀다」라는 세계인식은 오랜 시간 종족의 환상 속에서 형성된 낯익은 구원의 가치로 뜨겁게 육화되고 있는 것이다.
재개발 골목길에 문 닫은 문집들
문과 문 사이에서 문이 되던 문들이
하나 둘 문 닫으며 길들이 끊겼다
말을 잃은 목구멍엔 먼지가 쌓여갔다
한 조각 달마저도 먹구름에 갇히던 날
바람만 이사 온 골목 네게 가는 문이 없다 -이송희, 「문」전문
이 작품은 표제 「문」이 작품 속에서 계속 되풀이되면서 교묘한 이중성의 언어유희(pun)에 의해, ‘출구’를 뜻하는 공간적 이미지인 ‘문’이 ‘소통’이라는 사회적 이미지의 ‘문’으로 재해석되는 극적인 국면을 날카롭게 제시하고 있다. 이런 언어의 이중성으로 시인은 자기정체성을 상실한 현대인의 소외와 단절의 위기감을 한 편의 고발영상물을 보여주듯 선명하게 환기한다. 이 작품의 시점은 화자가 체험을 겪고 난 뒤, 어느 한 시점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주인공서술자 시점을 택하고 있다. 체험이 선행되고 발화행위가 후발되는 유형이므로 시가 소설이나 극의 서사문학과 같이 과거시제를 사용한다. 이 작품에서도 첫수 초장의 “재개발 골목길에/ 문 닫은 문집들”이라는 사건에 대해 “길들이 끊겼다” “먼지가 쌓여갔다” “먹구름에 갇히던 날” “바람만 이사 온 골목”등 화자의 서술은 과거시제로 일관한다. 순간형식의 장르인 서정시는 현재시제를 본질로 하지만 ‘시인은 예민한 기억의 소유자이며 활용자’라는 S. 랭거의 지적처럼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주관적으로 자유롭게 변용 구성된 기억은 창조적인 시적질서를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화자는 첫수 ‘재개발 골목길’ 둘째 수 ‘바람만 이사 온 골목’이라는 사회의 무관심 속에 비정하게 방치된 현실상황에서 ‘문 닫은 문집들’이란 변두리인간들의 상실의식을 자신의 주관적 감정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첫수 초장 “문 닫은 문집들”의 실제 폐문현상이 중장 “문과 문 사이에서 문이 되던 문들이” 인간존재 사이의 교섭과 소통의 의미로 확대되면서 종장 “하나 둘 문 닫으며/ 길들이 끊겼다”고 자아가치의 문의 상실이 외부와의 통로인 길의 단절로 인식된다. 둘째 수 초장 “말을 잃은 목구멍엔/ 먼지가 쌓여갔다”고 문의 상실은 길의 단절에서 다시 인간의 사회적 소통수단인 말의 상실로 이어져 자기폐쇄의 병적현상으로 심화되고, 중장 “한 조각 달마저도/ 먹구름에 갇히던 날” 종장 첫구 “바람만 이사 온 골목” 이라는 결국 모든 가치의미가 사라져버린 캄캄한 절망감과 공허한 무상함만이 남은 현실에서 종장 결구 “네게로 가는 문이 없다”고 내적인 자아 ‘문’의 상실이 결국은 외적인 세계 ‘너’마저 상실해버리게 되는 극단적 소외와 단절의 사회현상을 탄식하고 있다. ‘문(출구)은 문(소통)이다’라는 언어의 이중성이 시대적 삶의 이중성을 반향 하는 핵심제재 ‘문’은 C. 융의 페르소나(persona)와 같이 인간이 외부세계와 관계를 가지는 자아의 한 기능이다. 이는 문예 비평적 의미의 극적개성(페르소나)과는 달리 인간이 세계에 적응하는 개인적 체계이며 세계를 처리하는 태도인 것이다. 즉, 이 작품은 고립된 자아의 파편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은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을 완전히 상실해버린 비극적 존재임을 시인에 의해 의도적으로 유형화되고 추상화된 ‘문’의 상징을 통하여 비판하고 있음이 참으로 흥미로웠다.
2. 극적 개성의 창조와 몰개성론
아내와 벗 가운데 어느 편이 더 귀한가? 당연히 벗보다는 아내가 먼저라고? 천만에, 아내 따위가 어찌 벗을 따를라고
아내야 죽고 나면 새장가를 들면 되지 두세 번 새장가를 다시 가도 좋은 거고 서너 명 첩을 둔대도 안 될 일이 무에 있어
깨어진 그릇 따위를 새것으로 바꾸듯이 늙고 헌 아내를 새 아내로 맞바꾸면 새 아내, 헌 아내보다 더 좋기가 십상이지
하지만 벗이 죽으면 그 누구와 맛을 보며 보고 듣고 향기 맡고 그 누구와 같이 하나 게다가 대체 누구와 내 마음을 나눌 건가 -이종문, 「새장가를 들면 되지」전문
이 작품에는 “역사를 시로 읊다①”는 부제와 “*여인(與人)이란 편지글에 나오는 연암 박지원의 말임”이라는 주석이 붙어 있다. 이 작품은 ‘역사를 시로 읊다’라는 연작시조 중 첫편으로 실재하는 역사적 기록을 원전으로 삼아 현대시조의 감각으로 변형시킨 패러디 형식을 취한다. 패러디는 모방적 인유의 한 장치로서 풍자의 목적을 위해 채용된다. 이 작품 역시 『연암집』에 실려 있는 연암 박지원의 편지글 중 「여인(與人)」을 원전으로 삼아 엄숙하고 진지한 어조와 태도를 화자가 유희적 태도로 독자에게 직접 말 건네는 담화형식을 통하여 패러디의 본질인 풍자와 골계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 글 중에 이덕무(李德懋)가 사망한 사실이 언급되어 있음을 보면, 1793년 여름 무렵에 씌어 진 편지로 짐작된다. 연암은 여러 벗의 안부를 묻다가 재선(在先 박제가(朴齊家))가 벼슬을 그만두고, 조강지처와 무관(懋官 이덕무(李德懋)) 같은 훌륭한 벗을 잃은 쓸쓸함을 애석해하며 다음의 원전을 싣고 있다.
嗚呼痛哉。吾甞論絶絃之悲。甚於叩盆。叩盆者。猶得再娶三娶。卜姓數四。無所不可。如衣裳之綻裂而補綴。如器什之破缺而更換。或後妻勝於前配。或吾雖皤而彼則艾。其宴爾之樂。無閒於新舊。至若絶絃之痛。我幸而有目焉。誰與同吾視也。我幸而有耳焉。誰與同吾聽也。我幸而有口焉。誰與同吾味也。我幸而有鼻焉。誰與同吾嗅也。我幸而有心焉。將誰與同吾智慧靈覺哉。
이 작품은 시인이 자신의 목소리로서가 아니라 작품 속에 존재하는 특정한 인물의 입을 통하여 발화하는 배역시에 속한다. 송강의 「사미인곡」「속미인곡」소월의「진달래꽃」이나 1980년대의 유배시형에서와 같이 시적화자는 연암 박지원의 입을 통해 조선조 선비들의 구시대적 사고와 입장을 주장함으로써 이는 시인과 극적개성이 분리되는 몰개성론이다. 첫수 초장 “아내와 벗 가운데 어느 편이 더 귀한가?”라는 정서적 담론이 여기서는 원전의 외연이 되고 있다. 연암 당대의 왜곡된 관습을 현대적 감수성으로 비판하기 위해 중장 ‘벗보다는 아내’라는 대립된 사고를 먼저 제시하고 이를 철저히 부정하는 종장 ‘아내 따위가 어찌 벗을 따를 라고’ 원전의 담론을 완강히 고수한다. 둘째 수 초장에서는 표제 「새장가를 들면 되지」의 호기로운 태도가 중장 ‘두세 번 새장가’ 종장 ‘서너 명 첩’ 으로 더욱 고조되고, 셋째 수에서는 초장 ‘깨어진 그룻 따위’ ‘새것’ 중장 ‘늙고 헌 아내’ ‘새 아내와 맞바꾸면’ 종장 ‘새 아내, 헌 아내’ 등 단순한 소모품으로 전락한 비속한 혼인관념과 남존여비의 풍습적인 사고가 희극적 어조로 패러디된다. 그리고 기승전결의 시상전개에서 마지막 수에서는 초장 ‘맛을 보며’ 중장 ‘보고 듣고 향기 맡고’ 종장 ‘내 마음을 나눌’ 그 ‘누구’인 벗의 우월성을 반어적으로 내세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시인에 의해 조성된 극적긴장에 기여하는 구체적 인물인 연암의 페르소나에 의한 직접화법의 대화체로써 의문, 청유, 호소 등 청자도 자기처럼 반응하거나 동조하도록 요구하는 청자 지향의 담화형식을 택하고 있어, 패러디의 이중성인 원전에 대한 적대감과 친밀감을 동시에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보다 먼 데서 왔는지도 모른다 태고의 바람이 훌쩍 그네를 밀어 처음엔 그저 밀려서 출발했을 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주저앉고 싶었으리 근육이 찢어지고 심장은 터질 듯해 공포의 혓바닥 위에서 콰르릉 우짖었으리
주문진 푸른 광장 완주 앞둔 저 파도 월계수 잎새로 튕겨내는 은빛 포말 흰 새는 그 속에서 태어나 하늘로 오를 것이다 -강현덕, 「마라토너」전문
이 작품은 화자가 시 세계 밖에서 시 세계를 진술하는 유형으로 화자는 전적으로 타인의 체험을 진술하는 전지적 시점이거나 보고자로서의 작가관찰자 시접을 택하게 된다. 이 작품은 화자나 청자가 아닌 화제(텍스트)인 ‘파도’에 초점이 맞추어진 논증시이다. 이러한 묘사위주의 화제지향 시에서는 언술행위의 주체인 함축적 시인의 목소리는 존재하지만 독자는 함축적 시인의 숨어 있는 존재를 의식하지도 포작하려 하지도 않는다. 다만 언술내용인 사물과 그 사물의 감각적 인상만이 존재한다. 이 작품의 텍스트인 ‘파도’에는 ‘마라토너’라는 내적 인격이 부여되어 있다. 화자인 함축적 시인은 화제인 ‘파도’를 자연 자체가 아니라 자연을 자신이 갖고 싶어 하는 형태인 ‘마라토너’로 변용하여 묘사함으로써 그 의미가 재해석되는 조화와 지속성을 띤 존재로 형상화하고 있다. T. S. 엘리엇은 1919년 「햄릿과 그의 문제들」에서 ‘객관적 상관물’을 기술하며 “특수한 정서의 공식이 되고, 독자에게 똑같은 정서를 환기하게 되는 사물, 사건, 상황이다”고 규정하였다. 이 작품에서도 ‘파도’에 대한 화자의 감정을 직접 진술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상관물인 ‘마라토너’가 환기하는 이미지들에 의해 동일한 감각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마라톤은 42.195km를 달리는 최장거리 육상 종목으로, 지구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경기다. 이 작품은 파도와 마라토너를 동일선상에 놓고 통찰함으로써 여기서의 ‘파도’는 실체가 아니라 인간정신이 내재된 ‘마라토너’로서의 파도다. 첫수에서는 ‘생각보다 먼 데서’ ‘태고의 바람’ ‘처음엔 그저 밀려서’ 등 마라톤의 출발선에서 처음 경주를 시작한 마라토너인 파도에 대해 인간의 경험적 한계를 넘어서는 전지적 상상력으로 함축적 청자 혹은 실제독자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둘째 수에서는 마라톤 경주의 노정에서 겪는 극심한 고통을 ‘주저앉고 싶었으리’ ‘근육이 찢어지고’ ‘심장이 터질 듯’ ‘공포의 혓바닥’ ‘우짖었으리’ 등으로 인간적 감각과 기관이미지로 생생하게 형상화한다. 셋째 수 초장 “주문진 푸른 광장 완주 앞둔 저 파도”에서 현실적 공간과 화제가 구체화되면서 마라톤 완주를 앞둔 마라토너인 파도는 중장 ‘월계수 잎새’에서 우승의 영광을, 종장 ‘흰 새’의 눈부신 비상을 통하여 이 시인의 놀라운 상상력의 힘으로 재조직된 일체감과 영속성을 추구하는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3수로 이루어진 각 장면의 연결은 초심자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끊임없는 충격과 시련을 통과하는 원시시대 성년식처럼, 마라톤에 의한 자아인식과 세계인식이라는 임사(initiation) 모티프가 반영되어 있음이 작품의 몰입도를 높여주었다.
‘달셋방, 구옥 두 칸 월 20에 놓습니다’
줄광고에도 끼지 못한 만국기 같은 벽보들
헐렁한 저 흔들림은 절망 속의 희망이죠
뻗으면 손 닿을 듯 나지막한 굴다리
사라진 임항선 타고 샛바람 모여 들면
좌판 위 허둥대던 시간들 물갈 걱정 없어요
열 살에야 겨우, 유치원에 간 우리 찬이
임신중독이 앗아간 엄마 얼굴 모르지만
젖 냄새 그리운 철길에서 혼자서도 잘 놀아요 -황영숙, 「회산다리 근처」전문
이 작품에는 “*회산다리: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전통시장 주변의 다리”라는 주석이 붙어 있다. 마산 도심을 가로지르는 임항선이 폐선 된 뒤에도 회원구 철길시장이 시작되는 부분부터 회산철교를 지나는 구간 사이는 정비되지 않은 채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작품은 굴다리 아래의 철길 위까지 좌판을 펼치고 생계를 이어가는 철길시장 가난한 소시민들의 삶과 꿈의 풍속도를 담화형식을 통하여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담화를 이끌어가는 작품속의 화자는 ‘우리’라는 1인칭을 사용하지만 실제시인과는 전혀 동화되지 않는 인물로서, 회산다리 근처의 전통시장에서 장사하는 좌판 할머니의 목소리와 인격으로 발화하는 극적개성이다. 시인에 의해 창조된 탈(페르소나)인 작중화자의 눈을 통해 소외된 도시기층민의 삶과 그 소박하고 단순한 인간상을 직접화법을 통해 실감으로 제시하는 3인칭 관찰자 시접을 택하고 있다. 시적 담화형식은 크게 시인과 독자와의 소통체계와, 작품 속의 화자와 청자 사이의 소통체계라는 이중구조를 가진다. 이 작품은 후자의 소통체계로서 서사양식의 액자(frame)소설과 같이 작품 밖과 작품 내의 세계가 압축된 이야기의 형태로 구분되는 몰개성론의 배역시에 속한다. 첫수는 “달셋방, 구옥 두 칸 월 20에 놓습니다”는 ‘만국기 같은 벽보들’중의 하나를 초장에 그대로 옮겨놓으면서 극심한 가난에 내몰린 절망적 삶의 현실을 환유한다. 그러나 화자는 그 벽보들의 ‘헐렁한 저 흔들림’에서 ‘희망’을 읽어내는 긍정적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둘째 수에서는 ‘굴다리’와 ‘좌판’을 통하여 낯익은 전통시장의 허름하고 부산한 풍경을 정감어린 시장상인의 어투로 생생히 그려낸다. 중장 ‘사라진 임항선’은 마산의 향토색을 강하게 반영하여 표제 「회산다리 근처」의 시간적, 공간적 실체감에 탄력을 부여하고 있다. 임항선은 마산항 제1부두선으로 겅전선 마산역에서 마산항역을 잇는 총연장 8.6km인 철도노선으로 1905년 개통하여 석탄과 화물을 실어 나르다 2012년 1월 26일 폐선 되었다. 셋째 수에서는 손자인 ‘우리 찬이’의 열악하고 불행한 처지를 애정 어린 여성화자의 따뜻한 어조와 밝고 화해적인 시선으로 가슴 뭉클하게 조명해내고 있다. 이처럼 이 작품은 ‘절망 속의 희망이죠’ ‘물갈 걱정 없어요’ ‘혼자서도 잘 놀아요’라는 허구적 인물의 친숙한 행위와 대화, 전통시장의 먼 전경에서 가까운 전경으로 다시 개인적 삶의 장면들을 제시하는 설화성의 시는 시인의 경험적 자아와 창조된 극적개성 사이에 M. 바흐진이 말하는 ‘내면적 거리’를 양식화함으로써 ‘회산다리 근처’라는 소외계층의 집약된 인간상을 보다 극적으로 환기하는 효과를 노린 작가의 치밀한 의도를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박 권 숙 1991년 중앙일보 중앙시조지상백일장 연말장원 중앙시조대상, 이영도시조문학상, 최계락문학상, 한국시조작품상 등 수상 시집<시간의 꽃> <모든 틈은 꽃핀다> <뜨거운 묘비> 외 다수
《서정과현실》2017. 하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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