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려낸 무늬
변종호 수필선집 『주천강의 봄』을 읽고
김정옥
‘수필은 작가 개인의 체험에서 글감을 찾아 자신의 존재와 삶을 성찰하는 글쓰기다. 문학이기 전에 생활의 기록이며 삶의 의미 찾기이다. 일상에서 소재를 찾아 의미화하고 형상화하는 작업이다.’ 수필 공부를 하며 수도 없이 듣고 보고 한 명제들이다. 수필처럼 살고 싶어 자아를 찾아 헤맨다. 이 봄에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골똘히 성찰하는 중이다.
코로나 19 때문에 집 안으로 꽁꽁 숨어서였을까. 금년 봄은 봄이 아니었다. 코로나 불똥이 튀어 힘들어 하는 큰딸 때문에 봄을 억지로 밀어내고 있었다. 마음이 편하질 않으니 봄도 달갑지 않았는데 『주천강의 봄』이 내게로 왔다. 변종호 충북수필 회장께서 내신 선집이다. 주천강에 물든 봄은 어떤지 호기심이 인다.
2006년에 등단하여 그동안 치열하게 글을 쓰고 문단 활동을 하신 분이다. 그래서 현대수필가 100선으로 우리 곁에 왔으니 더욱 기뻤다. 작가의 삶은 어떤 무늬가 그려져 있을지 궁금하다. 잔잔한 물결무늬일까, 자연을 품은 나뭇결무늬일까. 옹기장이가 항아리에 그려 넣은 풀 무늬일까, 불교의 상징인 만卍자 무늬일까. 밋밋한 민무늬 일까.
처음부터 강했다. 숫돌과 다마스카스 칼에 의미를 담았다. 사물의 도구에도 남성성과 여성성이 있나.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모탕과 모루가 낯설다. 숫돌이나, 모루나, 모탕이나, 밑에 받치고 있어 가슴팍이 푹 패여 나가거나 두드려 맞아도 공도 없다. 칼이 잘 갈리도록 물이나 조금 받아먹으며 묵묵히 인생을 감내하는 숫돌이 그처럼 보인다. 일부러 새겨 넣지 않아도 본질이 강하고 잘 드는 칼을 만들다 보면 덤으로 명검의 무늬가 생긴다고 한다. 그의 삶에도 바람결에 저절로 생긴 갯벌의 결 같은 무늬가 생기지 않았을까.
사람의 몸에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어디 있을까.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는 말도 있으니 눈도 중요할 것이고. 귀로 들어야 소통할 수 있으니 귀도 중요하다. 모두 소중하니 모두 말하고 싶었을 터이다. 그런데 그 중 무릎에 대하여 통찰을 하고, 손을 살폈으며, 목을 고찰하고, 허리에 대해 말한다. <입을 논하다> 에서는 입속에 있는 이와 잇몸과 혀와 입술을 함께 논한다. 인체에 신비롭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 조물주의 기막힌 솜씨라고 해야 할까. 하나하나 유기적으로 순조롭게 굴러가고 있다. 작가도 나도 아직은 크게 말썽 피우지 않고 돌아가느라 애쓰고 있는 듯하다. 그러느라고 나무에 나이테를 만들듯 세월 따라 예닐곱 개쯤 나뭇결무늬가 새겨졌을지 모르겠다.
인간은 자연에서 인생을 배운다. 사람들은 들꽃에서, 산에서, 흐르는 강물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관조하며 삶을 돌아본다. 작가는 고향의 <섶다리>를 통해 아버지를 부르고 <재>를 넘으며 성찰한다. <요선암>의 경치에서 자연의 섭리를 배우고 <사성암 마을버스>에서 사람들의 따뜻한 정을 느낀다. <주천강의 봄>은 세월의 허무함에 인생이 무상하다. 강에서 성정 깊은 어머니를 보고 나눔과 포용의 강의 본질도 깨닫는다. 고향에는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가 계시고 가정을 버린 아버지도 보인다. 내 안에 강물이 말라 이기적이고 아집을 부린다며 평생 강과 함께 살기를 소망하는 그다. 내 안에 잔잔한 파문이 이는 것을 보니 지금 그의 삶이 그려낸 무늬는 아침 햇살이 강물에 비친 윤슬 무늬는 아닐까.
어머니는 그리움이다. 나도 그렇다. 얼마 전 노래 경연에서 참가자가 부르는 나훈아의 ‘홍시’를 들으며 많은 방청객이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보았다. 누구에게나 ‘울엄마’하면 코끝이 찡하나 보다. 내 글을 읽은 작은 딸이 ‘엄마 글에는 외할머니가 들어 있어.’ 하던 생각이 난다. 작가의 글에도 곳곳에 그리운 어머니가 있다. 작가가 해준 구리반지를 저승에 갈 때까지 가지고 가신 <구리반지>가 그렇고, <까막눈>이 그렇다. 군대 가는 막내아들이 아끼고 아껴 모은 돈을 소중히 가지고 계셨는데, 형편이 어려운 큰딸이 잠깐 쓰고 다시 채워 넣었다는 말만 믿고 텅 빈 통장을 꽁꽁 싸맨 채로 갖고 계신 어머니. 글을 가르쳐 드리지 않은 것을 잘했다는 반어법에서 나의 가슴도 같이 무너진다. 아, 그리움은 어떤 무늬로 그려야 할까.
옛날에는 이웃이 참 따뜻했다. <옴살>을 보며 처음 옴살의 뜻을 알았다. 우리 엄마에게도 옴살이 있었다. 엄마, 엄마하며 살갑게 하던 어머니의 수양딸이다. 나는 어려서 엄마의 속엣말 상대가 되지 않았을 때였다. 일찍 전염병으로 죽은 큰딸, 전쟁 때 죽은 둘째딸과 같아 품고 보듬어 주었을 것이다. 그때 그 수양언니도 이미 이승을 건넜겠지. <남여사의 금고>는 얼마나 진실하고 믿음을 주었으면 작가의 통장으로 입금을 할까. 이렇게까지 사람을 믿어준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했으니 아마 기네스북이라도 올려야 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그의 진솔한 삶이 보인다. 사람과 관계에서 믿음과 따뜻함이 식지 않는 질그릇 뚝배기처럼 오래 갈듯하니 옹기장이가 독에 새긴 풀 무늬를 큼직하게 새겨 넣어야 할까 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는 격언을 남겼다. 돌아보면 성급하게 저지르고 후회한 적이 많았다고 그는 쉼 없이 성찰을 한다. ‘착’ 어깨를 내리치는 죽비 소리에 흔들리는 마음을 곧추세운다. 오욕칠정에 물든 마음이 건들거리는데…. 나를 오롯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구리거울 하나를 내안에 들여놓고 마음을 정화하며 재충전하고 있다. 이런 그에게 불가의 공덕이라고 만卍자 무늬를 그려야 할 듯하다.
사람이 평생 살면서 어찌 고운 무늬만 그릴 수 있을까. 돌아보니 가끔은 얼쑹덜쑹한 어지러운 무늬도 있었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희미한 무늬로 애를 태운 적도 있었다. 이제 내 삶이 그리는 무늬는 큰 무늬보다 자잘한 무늬면 좋겠고 화려한 무늬보다는 수수하면 더 좋겠다. SNS에 올라온 다복하게 피어 있는 백리향을 보니 향기까지 품은 꽃무늬는 어떨까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어찌됐든 나만의 독특한 무늬로 은은한 향기를 품은 인생이길 소망한다.
( 2020. 4 )
첫댓글 회장님 선집을 읽고 잘 읽었다는 감사의 표현을 하고싶어 허접한 글 한편 써서 올렸습니다. 주제넘다고 흉보지 마세요.
흉이라니요, 고맙습니다. 큰박수를 보내드립니다.
김정옥 선생님의 이 글 한 편으로 한 권의 책을 다 읽은 듯 합니다. 읽고 난 후 글로 표현하시다니 대단하세요.
선생님 덕분에 한가지 배웠습니다.
'책을 읽고 난 후 짧게라도 한 편의 글로 남기기'
잘 읽었습니다.
대단한 건 아닌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좋긴 하지요~~^^ 선생님도 실천해 보세요.
삶이 그려낸 무늬
한편의 감상수필로 한권의 수필집을 꿰뚫으셨군요.
선생님의 글을 읽고 저도 주천강의 봄을 읽어야겠습니다.
수필도 공부하는 과정에서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모양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께 배운 것을 토대로 열심히 이론 공부도 하려고 합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요.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수필집으로 평론가의 평을 받아봤지만
객관적인 독자의 입장에서 보고 느낀 진솔한 글을 대하니 무한 감동입니다.
이 글을 읽으며 작가의 아픔이 독자의 아픔과 비교할 수 있다는 점과 그 아픔을 통해
공감대가 이뤄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 권의 선집을 끝까지 읽으시고
이 정도의 독후감을 쓸 수 있다는 건 대단한 내공이 쌓인 증거일 겁니다. 고맙습니다.
훗날 평론에 도전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회장님께서 무한 감동이시라니 미흡한 글이나마 쓴 보람을 느낍니다. 회장님과 동시대를 살아온 삶에서 더욱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멋지십니다 정말^^
아영샘, 너무 짧은거 아닙니까? ㅋ
@김정옥 우헤헷~~감히 댓글 달기가 거시기 했나 봅니다. 선생님~~^^
과연 독서수필 문학상을 받으신 분의 글이 확실합니다. 수필집 한 권을 읽고 또 한 편의 수필이 탄생했네요.
내공이 짱입니다요!!
내공은 아직 한참 더 쌓아야하지요. 관심가지고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코로나 사태로 신천지 교회가 부각될 때, 또 선집 '주천강의 봄'을 일독하면서 변종호회장님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아버지의 부재가 이런 훌륭한 작품을 탄생하게한 배경이 되었구나. 역시 세상에 의미없는 일은 없다.'
이렇게만 생각했는데 김정옥 선생님은 하나 하나 정성스럽게 기록을 하셨네요
회장님 말씀처럼 평론에 한번 도전해보세요
나중에 훌륭한 평론가가 되실 작품 잘 읽었습니다
평론이라니요.가당치도 않습니다.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