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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책장수 조신선』
정창권 지음/김도연 그림/사계절출판사 (징검다리 역사책 2)
<기이한 책장수 조신선>
제목 : 징검다리 역사책 2 - 기이한 책장수 조신선
글 : 정창권 / 그림 : 김도연
156쪽 / 190*235 / 컬러 / 값 11,000원 / ISBN 978-89-5828-654-7 74900 / ISBN 978-89-5828-647-9(세트) / 2012년 12월 20일 출간
■ 출간 취지
책장수 조생과 함께 보는 조선 시대 책의 역사
조선 시대의 북마케터 조신선
‘징검다리 역사책’ 시리즈의 두 번째 권 『기이한 책장수 조신선』이 나왔습니다. 조선 후기 한양을 주름잡았던 최고의 책장수 조생(조신선)의 이야기에 그 무렵의 책 문화사를 결합한 어린이 역사 교양서입니다. 조생은 조선 시대의 책장수로서 그 무렵의 책의 역사를 가장 잘 보여 줄 수 있는 인물입니다. 조생은 현대의 ‘책장수’인 서점 영업인이나 출판사 마케터들보다 훨씬 더 넓은 영역에서 활동했습니다. 조생은 “천하의 책은 모두 내 책이다.”라고 큰소리칠 정도로 책에 대해 박식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책을 누가 지었고, 몇 권 몇 책으로 되어 있는지, 어디에 사는 누가 소장하고 있는지에 대해 누구보다 훤히 알았다고 합니다. 또한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무리 구하기 어려운 책이라도 꼭 구해 주곤 했답니다. 그러니 “조선 땅에서 나보다 책을 많이 아는 자도 없다.”라고 호언장담할 수 있었지요. 말하자면 조생은 단순히 책을 판매해서 이익을 얻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당대 책의 서지학에도 통달한 최고의 책장수였던 것입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조선 시대 책의 역사
초등학교 5학년 사회 교과서의 조선 후기 문화사 부분에는 ‘서민 문학의 발달’이라는 꼭지가 있습니다. 본문에는 한글 소설 『홍길동전』 이미지와 함께 조선 후기에 한글 소설이 많이 보급되는 등 평민들의 문화 수준이 높아졌다는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 책을 어떻게 짓고, 만들고, 팔고, 읽었는지에 대한 내용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문화에서 책이 차지하는 비중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크다고 볼 때, 조선 시대 문화사를 이해하기 위해 책의 역사를 아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입니다. 이제 아이들에게도 우리나라 책의 역사를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귀한 책을 다루는, 천한 책장수의 이야기
저자 정창권은 여성이나 장애인, 하층민 등 역사 속 소외된 사람들을 세밀하게 복원하는 작업을 해 왔습니다. 『기이한 책장수 조신선』은 저자 정창권이 조선 후기의 문필가 조수삼이 쓴 「육서 조생전」에 기록된 조생의 이야기에다 조선 시대의 역사를 바탕으로 좀 더 살을 붙여 쓴 어린이 책입니다. 책에는 조생을 비롯해 기록에 남아 있는 실제 책장수들이 등장하며, 1771년 조선 최대의 책장수 탄압을 불러온 『명기집략』 사건도 등장합니다. 책이라는 소중한 물건을 사고파는 일을 했지만, 정작 사회적으로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던 책장수들. 저자 정창권은 그들을 통해 조선 후기의 책과 책을 둘러싼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내용 소개
“나는 책장수 조신선이다.
천하에 모르는 책이 없고, 구하지 못하는 책이 없노라.”
책장수 조생, 독서 영재 추재를 만나다
조생은 한양의 책장수였습니다. 책을 팔러 다닌 지가 아주 오래되었고, 또 언제나 나는 듯이 뛰어다녔기 때문에 당시 한양 사람들은 누구나 바로 조생을 알아보았답니다. 하루는 조생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운종가를 쌩하고 달려갈 때였습니다. 그런데 맞은편에서 한눈팔며 다가오는 꼬마 아이를 피하려다가 조생은 길가 풀밭에 개구리처럼 풀썩 널브러졌지요. 그러자 조생의 몸속에서 책이 튀어나와 온 사방에 흩어졌습니다. 조생은 다른 책장수들과 달리 책을 품속이나 소매 속에 가득 넣어서 다니곤 했지요. 그런데 어린아이가 떨어진 책의 제목을 곧바로 알아보는 게 아니겠어요? 그 아이의 이름은 추재인데, 알고 보니 예닐곱 살에 『논어』와 『맹자』를 뗀 독서 영재였습니다. 최고의 책장수 조생과 독서 영재 추재의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금서를 읽고 싶어 하는 간서치 유만주
하루는 조생과 추재가 한양의 유명한 간서치(책만 보는 바보) 유만주의 집에 책을 팔러 갔습니다. 간서치라는 별명답게 유만주의 서재에는 만 권이 넘는 책이 쌓여 있었습니다. 유만주는 조생에게 중국의 역사가 주린이 쓴 『명기집략』과 『강감회찬』을 구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그 책들은 나라에서 읽지도 지니지도 말라고 엄히 금해 놓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조선 시대판 ‘금서’였던 것이지요. 조생이 극구 말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만주는 걱정 말고 구해 달라고 했습니다. 조생은 걱정되었지만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만 하고 나왔지요.
『주자대전』을 구해 오라 : 조선 시대의 서점, 출판사, 종이 공장을 찾아서
한편 조생은 숭례문 근처에 사는 어느 부유한 양반에게서 100여 책으로 된 『주자대전』 한 질을 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천하에 구하지 못하는 책이 없는 조생이지만, 『주자대전』은 찍은 지 하도 오래되어서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었답니다. 현대의 광화문 교보문고와 같이 규모가 크고 책이 빠짐없이 잘 갖추어진 서점인 광통교의 ‘박도량 서사’에 일단 가 보았지만 책은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국립 출판사 격인 ‘교서관’으로 가 보았습니다. 교서관에는 틀린 글자 하나당 볼기를 30대씩이나 맞아야 하는 관리들이 열심히 교정을 보고 있었습니다. 조심스레 그들에게 『주자대전』이 있는지 물어보았더니 지금은 재고가 없고, 일단 주문장을 쓰고 종이를 구해 오면 목판으로라도 찍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조생과 추재는 세검정에 있는 종이 공장인 ‘조지서’를 찾아가서 종이를 샀습니다. 책을 구하기 위해 서점과 교서관은 물론이고 종이 공장까지 누비고 다니는 조생의 집념에 추재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조선 후기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조선 시대 베스트셀러에는 어떤 책들이 있었을까요?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한글 소설이었습니다. 한글 소설은 특히 부녀자들에게 단연 인기 만점이었습니다. 집 안에 꼭꼭 갇혀 살면서 별다른 유흥거리가 없던 조선 시대 여성들에게 한글 소설은 요즘의 텔레비전 드라마 같은 최고의 즐거움이었지요. 하지만 양반 남성들은 여성들의 한글 소설 읽기 열풍을 무척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책을 구하느라 재산을 낭비하고, 소설의 내용이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힌다는 이유에서였지요. 이런 상황이다 보니 조생은 삼청동 윤 판서댁 마님에게서 180책으로 된 『완월회맹연』을 구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무척 난감했습니다. 윤 판서댁 마님이 그런 부탁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큰 사단이 나거니와 그렇게 분량이 많은 책을 어떻게 완질본으로 구할 수 있을지 막막했기 때문이지요.
도서 대여점, 세책가
고민하던 조생은 ‘세책가’에 가 보았습니다. 세책가는 반지나 팔찌 같은 물건을 저당 잡히거나 돈을 내면 책을 빌려 주는 도서 대여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책가에서도 『완월회맹연』 전질은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책가 주인이 좋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세책가에서 소설 필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궁녀에게 부탁해 궁궐에서 『완월회맹연』을 빌려 오게 한 후 그 책을 필사해서 완질본을 만들자는 거였습니다. 조생은 드디어 책을 구할 수 있게 됐다는 기쁨에 어깨춤을 추며 곧장 윤 판서댁 마님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신선 같은 책장수, 조신선
이렇듯 조생은 모르는 책이 없고, 구하지 못하는 책이 없는 최고의 책장수였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신기한 면이 많았습니다. 조생은 스스로 말하기를 더러운 것을 손에 대기 싫어 밥을 일절 먹지 않고 술만 마신다고 했습니다. 나이는 몇이고 가족은 있느냐고 물으면, 조생은 나이는 세어 보지 않아 모르고 가족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조생은 이렇듯 기이한 면모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놀라운 점은 세월이 지나도 그의 얼굴이 하나도 늙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조생을 알고 지낸 사람이 수십 년이 지나 그를 다시 보아도 늘 30대 청춘의 얼굴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생을 일컬어 늙어 죽지 않는 신선과 같다 하여 ‘조신선’이라고 불렀답니다.
금서를 파는 책장수 배경도
조생과 같이 활동하던 책장수로 배경도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배경도는 나라에서 금서로 정한 『명기집략』을 종종 팔곤 했습니다. 조생은 배경도에게 그러다가 봉변을 당할지도 모르니 그런 책은 절대 팔지 말라고 충고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배경도는 “다른 책장수도 모두 팔고 다니는데 왜 나만 가지고 그러는가.”라고 쏘아붙이고는 돌아서 가 버렸습니다. 조생은 위험한 욕심을 부리는 배경도의 뒷모습을 걱정스레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책장수를 모조리 잡아들여라!
어느 날 밤, 조생은 자신에게 『명기집략』을 부탁했던 간서치 유만주의 집을 급히 찾아갔습니다. 다행히 유만주는 아직 『명기집략』을 구해서 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명기집략』은 주린이라는 한 중국인의 개인 역사서이지만, 조선 왕실의 계보를 왜곡해 놓은 아주 고약한 책이었습니다. 왕조 시대에 왕실의 계보를 왜곡하는 일은 참을 수 없이 큰 모욕이었지요. 게다가 그 책은 영조의 탕평책을 비판하는 세력들이 임금을 비난하려는 마음에서 즐겨 찾고 있기도 했습니다. 때마침 『명기집략』을 문제 삼는 상소가 올라오자 영조는 『명기집략』을 읽은 사람은 물론이고 지니고 있거나 팔던 자들까지 모조리 잡아들이라는 어명을 내립니다. 당장 이희천을 비롯한 양반들과 『명기집략』을 취급했던 책장수들이 몽땅 잡혀 들어가지요. 그중에는 조생의 충고를 무시했던 배경도도 있었습니다. 임금은 죄의 경중을 가려 참형에 처하거나 흑산도로 유배를 보내고 그 가족들을 노비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명기집략』이라는 책 한 권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참혹한 형벌을 받은 것이지요.
나는 지상에 사는 신선이로다
『명기집략』 사건은 영조 47년(1771년)에 실제로 일어난 일로서 요즘으로 치면 대형 공안 사건이었습니다. 한양의 책장수들이 모조리 잡혀 들어간 마당에 우리의 조생은 어찌 되었을까요? 간서치 유만주를 급히 찾아간 날 밤, 조생은 그 길로 남쪽으로 내달려 한양을 빠져 나왔습니다. 조생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자 사람들은 그가 어명을 받들어 『명기집략』을 거두어 없애기 위해 중국으로 갔다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고도 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한양의 책장수들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책장수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임금이라도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막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때는 추재도 어느덧 중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추재는 그날도 광통교를 지나며 이야깃거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리의 맹인 가수 손 봉사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자리에 조생이 떡하니 나타난 게 아니겠습니까! 수십 년 만에 조생을 다시 만난 추재는 눈물을 글썽이며 반가워했습니다. 그러고는 품속에서 조생을 위해 써 두었던 시 한 수를 꺼내 주었지요. 시를 읽은 조생은 매우 흡족해하며 말했습니다. “나보고 전우치와 장생이라! 아무렴, 그렇지, 나야말로 지상에 사는 신선이지. 하하하!” 그러고는 책을 팔러 가야 한다면서 또 쌩하니 달려가 사라졌답니다.
■ 책의 역사 알아보기
조선 시대 사람들은 책을 어떻게 짓고, 만들고, 팔았을까
조선 시대의 문화 일번지, 광통교
광통교는 청계천에 놓인 다리 중 가장 컸는데, 종로와 남대문로가 만나는 교통의 요지에 놓여 있어 늘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서화 가게, 골동품 가게, 서점들이 많이 생겼지요. 광통교 주변은 지금으로 치면 인사동 같은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헷갈리는 ‘권’과 ‘책’
요즘은 제본된 책 하나를 한 ‘권’이라고 하지만, 옛날에는 한 ‘책’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책에 같이 제본되어 있지만 내용별로 따로 묶일 수 있는 것을 한 ‘권’이라고 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상정고금예문』은 50권 28책으로 되어 있다고 기록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50가지 내용이 28개의 책으로 제본되어 있었다는 것이지요.
조선 시대 책값은 얼마였을까?
요즘 책값은 일반적으로 두 사람의 한 끼 점심값 정도입니다. 하지만 조선 시대에 『논어』 한 권은 무려 쌀 두 말 값이었다는군요. 그러니 평민들은 먹을 식량도 모자란 판국에 쌀을 두 말이나 주고 책을 살 수는 없었던 게지요.
세계에서 가장 긴 소설을 지은 우리나라
우리나라는 출판에 관한 세계 기록이 많습니다. 일단 목판 인쇄와 금속활자가 세계 최고를 자랑하지요. 그런데 조선 후기에 세계에서 가장 긴 소설이 바로 우리나라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바로 『완월회맹연』이라는 한글 소설인데 무려 180책이나 되는 초대형 스케일의 대하소설이었습니다. 국문학자들도 이 소설을 다 읽으려면 꼬박 3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작가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고 다만 이씨 부인(1694~1743년)이라고만 짐작하고 있습니다.
궁녀들의 소설 필사 아르바이트
영조는 자기 어머니가 궁녀 출신이었기 때문에 궁녀들에게 ‘특별 휴가’를 주어 집에 다녀올 수 있게 해 주었답니다. 그런데 가난한 궁녀들은 휴가 중에도 집안 살림에 보태려고 소설을 베껴 쓰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습니다. 궁녀들은 궁체를 아주 잘 썼기 때문에 세책가에서 인기가 아주 많았지요.
■ 작가 소개
지은이 정창권
고려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여성이나 장애인, 하층민 등 역사 속 소외된 사람들을 세밀하게 복원하여 이야기로 재미있게 들려주는 전문 역사 스토리텔러입니다. 고려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도 합니다. 지은 책으로는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 『향랑, 산유화로 지다』,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거상 김만덕,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 『역사 속 장애인은 어떻게 살았을까』 등이 있습니다.
그린이 김도연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습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다가 그림책의 매력에 푹 빠져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습니다. 그린 책으로는 『장발장』, 『마마신 손님네』, 『심청가』, 『탄생의 신, 당금애기라』, 『구운몽 : 인생사 덧없다』, 『판도라의 항아리』, 『박혁거세』 등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만난 분은 어린이문화연대 이주영 선생님입니다. 이주영 선생님은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재직하셨고, 어린이책 독서운동을 오랫동안 하고 계십니다.
우리 시대의 조신선 ②
어린이문화연대 이주영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주영 선생님! 독서운동을 시작하신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제가 어린이책 독서운동을 처음 시작하게 된 것 역시 1980년대라는 시대 상황 때문이었어요. 당시 어린이책 출판과 유통 시장에는 국내 창작동화책이 단행본으로 출판되지 못하는 상황이었거든요. 대형 전집출판사가 만드는, 20세기 이전에 나온 외국동화책을 세계명작동화전집으로 방문판매를 하고 있었고, 교보문고나 종로서적같은 대형 서점에서도 매장에 어린이책이 없었지요.
어린이문학작가들 대부분은 자비 출판으로 몇 백 부 찍어서 동료문학인들한테 돌려보는 정도였답니다. 당시 시민독서운동을 펼치고 있던 서울양서협동조합 이사였던 저는 서울양서협동조합 산하단체로 어린이도서연구회를 만들어 교사와 학부모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독서운동을 시작하였어요. 어린이 독서에 영향을 끼치는 초등학교 교사와 부모들한테 ‘어린이책을 읽는 어른’(동화읽는어른)이 되자고 한 것이지요.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두 시간동안 어린이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을 만들기 시작하였어요. 어린이와 함께 어린이책을 읽고, 전집을 사지 말고 단행본을 사서 읽고, 한 달에 한번은 서점에 나가서 어린이책 단행본을 한 권씩 사자는 운동을 펼쳤어요. 단행본 권장도서목록을 만들어서 교사와 학부모 회원들에게 배포하기도 했고요.
1990년대 들어서면서 동화읽는어른모임에서는 다양한 독서문화 만들기 활동을 창의적으로 펼쳤어요. 자신들이 권장하는 어린이책을 보급하기 위해서 작은 동네서점과 마을 어린이도서관, 그리고 어린이전문서점까지 만들었지요.
그 속에서 저도 30여 년 동안 좋은 어린이책을 권장하고 보급하고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독서문화를 만들기 위해 참 바쁘게 뛰어다녔네요. 지금은 2010년부터 어린이문화연대를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어요. 어린이문화연대는 어린이책을 중심에 둔 마을문화와 학교문화와 사회문화 만들기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또 어린이책을 바탕으로 하는 좋은 공연예술을 비롯한 문화 만들기를 지향하고 있고요.
한국 현대사에서 마치 조신선과 같은 역할을 하신 것 같으신데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조신선이 당시 어떤 역할을 하셨다고 생각하시나요?
조신선은 조선 시대 당시 책을 구입하고 싶은 사람들한테 필요한 책을 빠르게 구해다 주기도 하고, 또 사람에 따라 필요한 책에 대한 정보를 적극 알려주기도 했지요. 그러나 그 내용이 옳지 않다고 보는 책은 팔지 않았고, 동료 책장수들한테도 팔지 말라고 말렸어요. 책이 꼭 필요한데 가난해서 못 사는 학동한테는 조금씩 나누어서 낼 수 있도록 했고요. 나아가 책을 만드는 사람들한테 한글 소설을 방각본으로 만들어 팔라고 권유하기도 했다지요.
곧 조신선은 책 읽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좋은 책을 권유하고, 유통시키고, 한글 소설을 많이 읽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그 시대 풍토에 맞는 독서운동을 펼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늙을 시간도 없이 바쁠 정도로.
『기이한 책장수 조신선』에서 보면 조신선을 따라 다니며 조선시대의 책의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는 '추재'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추재는 실제 조수삼이라는 조선의 유명한 문필가를 모델로 한 인물인데요, 이 책을 읽고 미래의 추재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추재는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많았고, 직접 보고 듣고 겪은 일을 글로 쓰기를 좋아한 사람입니다. 조생이라는 책장수도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높은 벼슬을 한 사람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지요. 그러나 조생을 자세히 살펴서 그 사람이 갖고 있는 특성을 잘 붙잡아 글로 썼습니다. 여러분도 주변을 잘 살펴서 보고 듣고 겪은 일을 글로 써 보세요. 세상을 보는 눈이 훨씬 넓어지고 깊어질 겁니다.
이 책 『기이한 책장수 조신선』의 추천평을 200자 내외로 해주신다면요?
우리는 흔히 역사라고 하면 전쟁이나 큰 사건을 떠올립니다. 또 위인전이라고 하면 큰 공을 세운 임금이나 장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책처럼 조선 시대 책을 중심으로 사람 사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도 역사의 한 자락을 살펴보는 길입니다.
또 조생처럼 한낱 책장수라 할지라도 자기 삶을 즐겁게 온 힘을 다해서 살았던 사람 이야기도 좋은 인물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역사와 인물을 참 독특한 만나는 맛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라 하겠습니다.
독자들에게 꼭 읽어보라 권하고 싶으신 책이 있다면 두 권만 골라주세요.
『얼음 장수 엄기둥, 한양을 누비다』 이영서?이욱 글 / 김창희?김병하 그림 / 사계절
사계절 역사일기 시리즈 8권으로 조선 후기의 생활과 문화를 그 시대에 살았던 어린이 눈높이로 쓴 책입니다. 주인공 엄기둥이 쓰는 일기체로 그 시대 농사짓기, 장터, 보부상, 수원 화성, 청계천, 음식, 의학, 한강에서 얼음 뜨기, 세시 풍속, 한글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여러분이 쓰는 일기도 미래 어린이들한테 요즘 시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기록이 된다면 재미있겠지요?
『삐삐야 미안해』 이주영 글 / 류충렬 그림 / 고인돌
이 책은 제가 초등학교 5, 6학년 때 겪은 일을 쓴 글인데, 길게 쓴 일기라고 생각하면 되겠지요? 내가 맡아서 기르던 꽃노루 네 마리를 내 실수로 한 마리씩 죽이고 말았던 미안한 일이 오랫동안 마음에 맺혀 있었는데, 그 맺힌 마음을 풀기 위해 쓴 겁니다. 여러분도 동물이나 식물을 가르다 죽이게 된 일이 있다면 한번 읽어보세요. 그리고 여러분이 길렀던 동물이나 식물 이야기를 자세히 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