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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ubf 주일메시지 성전을 깨끗게 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11장 12-마가복음 11장 19
요절 마가복음 11장 15.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오늘 말씀은 조금 무섭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오래참으시고 온유하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무화과 나무를 영원토록 저주하십니다. 성전에 장사하는 자들의 상을 둘러 엎으십니다. 예수님은 성전에 있는 돈의 우상을 제거하고 깨끗하게 하십니다. 예루살렘이 성전에 우상을 제거하지 않으면 이곳에 큰 심판이 오게 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사람들이 큰 심판을 피하게 하기 위해서 성전의 우상을 제거하였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성전의 우상을 제거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마음과 교회와 가정의 성전에 우상을 제거하고 깨끗하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야 가정과 교회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환난과 곤고가 사라지고 평안과 기쁨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 우상을 제거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히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예수님)
“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나귀새끼를 타시고 들어가셨습니다. 이튿날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오리쯤 떨어진 베다니에 나왔을 때에 예수님께서 시장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셨습니다. 대부분 잎이 무성한 무화과 나무는 열매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있을까하여 가보셨습니다. 그때는 부활절이 가까운 4월초쯤 됩니다. 사월초는 묵은 나뭇가지에서 무화과가 열립니다. 이 열매는 시고 상품가치가 없어서 주인이 따지 않습니다. 나그네들이 시장할 때 따먹습니다. 상품가치가 있는 무화과는 9월쯤에 새 가지에서 열리고 무화과가 맛이 있습니다. 저자 마가는 이것을 보고 무화과의 때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배가 고프셔서 신무화과라도 먹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에 가보니 잎사귀 외에 열매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제자들은 예수님이 저주하시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제자들이 그 이튿날 보자 예수님이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가 뿌리채 말랐습니다. 예수님이 무화과 나무를 왜 저주하셨을까요? 예수님이 저주하실 때 제자들이 들었다는 것을 볼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교육적인 효과를 위해서 저주하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무화과나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수업을 하다가 학생들이 말을 듣지 않고 떠들면 막대기로 교탁이나 칠판을 탕탕칩니다. 이는 교탁이나 칠판이 죄를 지은 것이 아닙니다. 너희도 말을 듣지 않으면 교탁이나 칠판처럼 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듯이 사람도 영원히 저주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축복을 하러 오셨습니다. 자신이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시고 우리를 복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나 다음에 오실 때는 구원도 하시지만 심판도 하시고 저주도 하십니다. 예수님이 저주하는 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 영원히 고통합니다.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심으로 후에 인간도 심판받는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날 심판을 피하고 영생을 얻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자를 저주하실까요?
(첫째 위선적인 자를 저주하십니다.)
우리가 일차적으로 보면 열매가 없는 것을 저주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맞는 말입니다. 인간이 거룩의 열매, 사랑의 열매, 공의의 열매를 맺지 않으면 저주받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저주하신 더 근본적인 이유는 열매가 없어서 저주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의 위선적인 면을 저주하신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는 멀리서 보면 잎이 무성하여 열매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보면 열매가 전혀 없습니다. 무화과나무는 거짓으로 사람들을 속였습니다.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 나무와 같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겉은 거룩하였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안식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하고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였습니다. 그들은 행위로는 간음도 살인도 도둑질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썩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물질에 대한 탐심과 방탕한 음심이 가득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책망하였습니다. 겉은 회를 칠해서 깨끗하지만 속은 시체썩는 냄새가 가득하고 구더기가 가득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죄인인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거룩한 사람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들은 자신도 속고 다른 사람들도 속이는 자들이니다. 이들은 회개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에 대해서 분노하시고 화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공인된 죄인인 세리나 창녀에 대해서는 따뜻하게 대하셨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고 다른 사람도 죄인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들은 치료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진실해야 회개할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요즘에 많은 사람들이 병이 걸립니다. 여러 병중에 가장 무서운 병은 겉으로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속으로 병이 드는 병입니다. 췌장암이 무서운 것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화가 안되는 정도로 생각하여 소화제만 먹습니다. 환자가 증상을 이야기하면 의사도 속아 소화제만 처방합니다. 소화제를 먹으면 얼마간은 좋아져서 정말 소화가 안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증상이 심하여져서 병원을 찾았을 때는 벌써 췌장암 말기로 손을 쓸 수 없습니다. 이렇게 위선적인 신자들은 회개를 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심판을 받습니다. 이사야 시대도 이런 위선적인 자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겼습니다. 그들은 어두운 데서 일을 행하며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보시고 그들의 패역함이 심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두운데서 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행하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내면을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게 드러내야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드러내야 하지만 가족과 세계 모든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도 떳떳하게 살아야합니다. 경기북부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3일 36된 여인과 65살 된 보험설계사를 하는 그의 어머니를 사기 및 사기미수 혐의로, 여인의 남자친구는(33) 사기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이 여자는 2007년 4월 승용차를 타고 가다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해 척수 내부에 구멍이 생겨 신경을 손상시키는 척수공동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보험설계사인 어머니는 딸에게 사지마비(장애 1급) 환자 행세를 시키고 이를 이용해 후유장애 진단을 받았다. 이후 10년간 병원 14곳을 옮겨 다니며 4개 보험사로부터 보험금 3억 원을 타냈습니다. 그러나 한 생명보험사와 자동차보험사는 “교통사고와 척수공동증, 사지마비 사이에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습니다. 모녀는 두 보험사를 상대로 21억 원에 이르는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보험사로부터 11억 원을 받으라는 일부 승소 판결까지 얻었습니다. 그들은 거짓말로 14억원을 받았습니다.
모녀의 행각은 지난해 5월 인천의 한 요양병원에서 심야에 화장실에 가는 여자를 같은 병실 다른 환자가 목격하며 탄로 났습니다. 이 환자는 “귀신이라도 본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경찰이 확보한 폐쇄회로(CC)TV와 여인의 휴대전화에는 여자가 다리를 들어 자동문 개폐기를 조작하거나 그네를 타는 등 팔다리를 자유자재로 쓰는 영상이 담겨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탄로나고 나서 경찰에서 “맘고생이 컸다. 차라리 속 시원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진실하게 사는 것이 조금 가난하더라도 속이 시원한 것입니다. 나도 죄를 회개하고 드러나고 징계를 받아도 그때가 시원하고 마음이 행복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항상 진실하게 살아야합니다.
(성전에서 돈을 우상으로 섬길 때 저주하십니다.)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예루살렘에 가신 예수님은 가장 먼저 성전을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성전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되게하는 것을 바로 성전입니다. 성전은 아버지의 집이요 하나님의 집입니다. 성전에는 하나님이 계셔야합니다. 이스라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이유는 그곳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서가 절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광야가 많고 강수량이 적습니다. 예루살렘에는 돌이 많고 강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소망합니다. 예루살렘에 가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고 그곳에 하나님이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있고 성령의 강물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모형입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새예루살렘도 바로 하나님이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전은 예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는 제물에 쓸 짐승 파는 소리로 시끄러웠습니다. 그들은 제물에 쓸 짐승을 비싼 가격에 팔아서 이윤을 남기고자 하였습니다. 또한 성전세를 성전세겔로 반세겔내야하는데 환전을 해주며 많은 이익을 챙겼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 아니라 돈버는 시장터가 되었습니다. 폭리를 취하는 도둑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전이 아니라 돈의 집 곧 돈전이 되어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보고 분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장사치를 성전에서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짐승들을 쫓아내시고 돈 바꾸는 상을 둘러엎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대신 돈을 숭배하는 자들에 대해서 분노하셨습니다. 성전을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전이 되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돈의 우상을 몰아내고 하나님이 계시는 곳으로 회복하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하나님 나라의 모형으로 만들고자 하십니다. 세계만국이 예루살렘에 나와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원하십니다. 세계가 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세 가지 우상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의 성전은 무엇일까요? 일차적으로 하나님이 계시는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두세 사람이 내이름으로 모인 곳에 내가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음에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영접하면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와 계십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의 몸을 성령의 전 곧 성전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모임인 가정도 성전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와 우리의 마음과 가장에 하나님이 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대신에 다른 것이 우상으로 들어와 있으면 예수님은 분노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역사적으로 사단은 세 가지 우상을 섬기도록 유혹해왔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 여자가 선악과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였습니다. 먹음직도 한 것은 육신의 정욕이고 보암직도 한 것은 안목의 정욕이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한 것은 이 생의 자랑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이 세 가지 우상을 섬깁니다. 첫째가 바알신입니다. 이것은 육신의 정욕입니다. 돈의 우상입니다. 돈이 행복을 줄 것처럼 유혹합니다. 비트코인의 가격이 폭락한 후에 두명의 젊은이가 자살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또한 돈을 잃고 이혼하는 가정도 몇가정이 생겼습니다. 이들은 돈을 우상으로 섬기다가 돈을 잃자 삶의 의미를 잃고 이혼하고 자살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아세라와 아스다롯의 우상입니다. 이것은 안목의 정욕입니다. 남자나 여자들은 아름답고 멋있는 사람들을 원합니다. 이들은 서로 결혼하여 자녀를 낳습니다. 이들에게 가정이 또 하나의 우상이 됩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데 가정이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엘리와 같이 하나님보다 자녀를 더 사랑합니다. 자녀가 죄를 지어도 책망을 하지못합니다. 이들은 자녀와 함께 망합니다. 저는 한 부부가 자녀를 끔찍이 아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부부에게 마음이 떠났지만 자녀들 때문에 이혼하지 않고 참고 살아갑니다. 돈이 없는데도 자녀를 위해서는 빚을 얻어서라도 유학을 보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어머니의 몸에 손찌검을 하였습니다. 아버지를 비방하고 욕을 합니다. 우리가 자녀가 우상이 되는 것은 같이 망하는 것입니다. 셋째 이스라엘은 바벨론이 섬기는 벨신을 섬기고자 합니다. 이들은 바벨탑을 만든 것으로 자신을 자랑하는 이생의 자랑입니다. 사울이 망한 것은 바로 자신을 자랑하고자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으로 딸을 이용하여 사위를 죽이고자 합니다. 그는 아들에게 딸에게 국민들에게 버림 받고 하나님께도 버림 받아 쓸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명예를 버릴 줄 알아야합니다, 자신의 명예에서 도망갈 줄을 알아야합니다. 큰 일을 하고 자신을 숨길 줄 아는 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사람들에 대한 아무런 의식 없이 살아야 우리는 이런 명예심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 싸우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것입니다. 제가 예배 때 사람들이 의식 될 때가 있습니다. 이를 깊이 회개합니다. 오지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종교지도자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9.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책망을 듣고도 회개치 않았습니다. 그들이 회개하였다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혜를 주셨을 것입니다. 그들을 제사장 나라로 하여 세계선교를 이루셨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영광을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전의 이권을 포기하지 않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해서 가족들과 함께 좀 가난하게 살 각오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크게 심판하십니다. 성전은 무너지고 종교지도자들은 로마 사람에 의해서 죽임을 당합니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처럼 예루살렘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로마의 침략으로 이백만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성전은 돌 하나도 돌위에 남지 않을 정도로 무너져내렸습니다. 이것은 죽은 후에 받을 심판의 그림자에 불과 합니다. 우리가 우상을 제거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반드시 망한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검증된 사실입니다. 솔로몬 성전도 도둑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성전 안에서 우상을 섬기고 쾌락을 추구하였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착취하였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선을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서 이들을 회개하도록 도왔지만 이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보내서 성전을 다 무너뜨렸습니다. 젊은이들은 삼차에 걸쳐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공산화 된 것도 그 이면에는 교회의 타락이 있습니다 교회가 우상숭배를 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기독교가 많은 욕을 먹고 있습니다. 예전에 주체사상을 교육받은 사람들이 정치계 법조계에 많이 들어왔습니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세 가지 우상을 섬기므로 하나님이 하시는 심판입니다. 우리의 삶의 중심에 돈과 자녀와 명예를 둔다면 철저히 멸망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면 하나님이 천대까지 은혜를 주실 줄을 믿습니다. 아멘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교회)
결론적으로 출애굽기 40장 34.“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성막을 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을 때 구름이 회막을 덮었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습니다. 구름이 빽빽하게 임하여 모세가 성막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예수님이 바라신 이상적인 성전은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곳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임하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 속에, 가정에, 그리고 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우상을 몰아내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우리의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도 나의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계속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과 입으로 고백해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성령을 주셔서 우상을 몰아내고 하나님만 섬기게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천안ubf 주일메시지 성전을 깨끗게 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11장 12-마가복음 11장 19
요절 마가복음 11장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2018.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