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
내 또래의 사람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종종 군대를 제대한지 30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아직 군에서 제대를 못한 꿈을 꾼다든지 하는 좋치 않은 꿈을 꾼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나 역시 군대를 다녀왔지만 내 경우 군 시절에 대한 악몽은 없었다.
대신 늘 무언가에 쫒기는 듯한 시기를 보냈던 이십대 후반 복학 이후의 대학 생활에 대한 꿈울 꾼다.
쿼바디스!
80년대 후반 오일쇼크가 끝나고 석탄을 캐는것 보다 석유를 사서 쓰는 것이 더 경제적으로 이득이란 것을 알게되자 노태우 정부는 '석탄산업합리화'란 정책으로 폐광을 유도했고 그 결과 90년대 초반까지 몇 년사이 태백과 정선에 있던 수 백개의 크고 작은 광산들이 폐광됐다.
한때 인구 10만을 넘보던 태백의 인구는 9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이미 급격하게 반토막 났고 폐광으로 일자리를 잃은 광부들은 새로 생기기 시작한 안산이나 시화 등의 공단으로 하나,둘 떠났다.
지역 출신이 아닌 외부에서 들어왔던 나를 비롯해 함께 광산지역에서 운동을 했던 선배들과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평등한 사회주의를 추구했던 이념적 지향은 현실 사회주의인 소련의 붕괴에 따라 좌표를 상실했고, 더불어 탄광이란 삶의 토대가 사라졌기에 그 혼란과 충격은 컸다.
무엇을 해야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절망과 혼란의 끝에서 삶은 또 다른 길을 제시했다.
김영삼 정부시절 소위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사회운동을 하던 사람들을 대규모로 복할 시키는 정책을 실시했다.
당시 유명한 정치인들을 비롯해 7-80년대 입학을 했던 사람들이 90년대 초, 중반 학교로 돌아갔고 나 역시 이십대 후반 다시 복학을 했다.
그러나, 졸업을 하기까지 많은 학기가 남아있었고 그동안 벌어놓은 돈도 없었기에 복학과 더불어 내내 돈을 벌어야 했다.
농촌에 있는 집안도 가난했지만 지금은 고인이 된 집안의 가장이었던 큰 형님은 나의 정치적 성향이나 신념을 이해하려하지 않았고, 또 신학을 공부하는 것도 못 마땅해 했기에 집에서는 십원 한 장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방학 때는 주로 건설현장 오야지를 따라다니며 잡부로 일을 하거나, 어떤때는 겨울방학내내 낮선 섬에서 살을찢는 차가운 바닷 바람을 맞으며 미역을 재배하고 채취하는 일을 하면서 다음학 기 등록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또한 학기 중 주말 대부분은 새벽 녘 부터 인력사무소에 찾아가 하루치의 일당을 받아 일주일을 생활했다.
그렇게 입학한지 10년이 훨씬 넘어 졸업을 했지만 언제나 그 시절은 춥고 가난했고 쫒기는 듯한 기억만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30년이 훨씬 지나서도 군대에서 제대를 하지 못해 애태우는 꿈을 꾸듯이 나 역시 대학에서 졸업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쫓기는 듯한 꿈들을 종종 꾸게되었다.
어제 다시 대학 생활에 대한 꿈을 꾸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꾸었던 그런 쫒기는 듯 불안했던 그런 것과는 정 반대였다.
겨울방학을 했는데 부엌에는 방학 내내 때고도 남을 만큼의 연탄이 그득하게 쌓여있고, 또한 먹을 것도 방학내내 먹고 남을 만큼 있었다.
무엇보다 더 좋았던건 다음 학기 등록금을 위해 방학기간동안 일을하러 가지 않아도 되고도 남을 정도의 충분한 돈도 있었다.
모든 것이 풍요로왔고 마냥 행복했다.
그리고 이 풍요로움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했다.
꿈에서 깬 후 이러한 풍요로움은 지금 현재 내 존재의 변화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란걸 단박에 알아챘다.
내가 갑자기 로또를 맞아 갑부가 된 것도 아니고 급작스럽게 환경이 변한 것도 아니다.
다만, 언제부턴가 삶의 모든것이 완전하며,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변화된 것은 외부의 환경이 아니라 내가 변한 것이다.
이미 늘 있던 그 모든 것들이 그 자체로 부족함 없이 완전하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그래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경험될 뿐이다.
예수께서 '탕자의 비유'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러한 상태를 가르키는 것으로 이해한다.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아 나간 둘째 아들은 얼마가지 않아 모든 재산을 탕진하게 되었고 결국은 돼지 먹는 열매 조차 먹을 수 없는 상태까지 내 몰린다.
그때서야 그는 비로서 모든 것이 풍족한 아버지 집이 생각하며 돌아온다.
다시 아버지의 집을 가기 위해서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집착과 추구함조차 내려놓는 것, 그리고 다가오는 삶에 온전히 자신을 내맡기고 받아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부족한 욕망의 포로가 된 '나', 즉 '에고'를 벗어나면 바로 모든 것이 풍족한 아버지 집이다.
그것은 늘 있는 풍요이자, 충만이고, 기쁨이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글이 불편하신 것 같습니디.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 올리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임제선사의 풍모를 뵙는듯해 너무 반가왔습니다
영성이란 결국 하느님의 풍요를 만끽하며 날마다
춤만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요? 때로 현실은 많이 부족해도 적어도 믿음으로는 그런 당당한 고백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화나무 애독자입니다
혹시 상처를 주었다면 위에 댓글은 삭제하겠습니다
아 그렇군요 ~
여기 글을 올리면서 글을 올리는 행위가 어떤 의미인지, 폐는 되지 않는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지 생각합니다.
스스로 검열을 하다보니 제가 오해를 했습니다.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항상 그렇듯 누군가가 상처를 준것이 아니라 제가 상처를 만드는 것입니다.
날씨가 참 좋습니다.
매순간 풍요로운 삶의 기쁨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
이심전심
금방 확통해 감사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 아버지시고
가장 가난하게 사셨지만 가장 풍요로운 삶을 사신 예수님이 우리 주님이신데 무엇이 부족한듯 헐떡거리며 살겠습니까?
같은 길을 가는 형제 분을 만나게 돼 반갑고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