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가 없어서 이사를 못 간다? 美, 공산품 품귀..중고제품값도 고공행진
[US REPORT]
뉴욕에서 첫 주택을 마련해 이사를 계획 중인 A씨는 최근 여러 자리에서 답답함을 토로한다. 냉장고 배송이 지연돼 계획한 8월에 제때 입주를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A씨는 “판매 업체에서 밀린 주문량이 많다며 두 달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냉장고 하나 주문해 배송받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다른 가전제품은 몰라도 이유식을 먹는 어린 자녀가 있기 때문에 냉장고가 없으면 입주하기 어려워 이사를 미룰지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 냉장고는 주문하면 수일 내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부동산 계약 이전에 미리 주문하지 않은 게 패착이었다.
▶세상에 없는 것이 없던 美…물건이 없다
기자도 침대를 알아보다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여러 가구 업체를 찾아가본 이후 주문하는데 마지막 결제 단계에서 배송 예정일이 11월로 뜬 것. 실제 미국 유명 백화점인 메이시스(Macy's), 가구 전문 브랜드인 West Elm 등 대부분 가구 유통 업체들이 재고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뉴저지주 파러무스에 있는 이케아를 직접 찾아 확인해봤는데도 침대를 비롯 각종 가구가 가을 이후에나 재고가 확보되는 품목이 많았다. 온라인으로 전국 매장을 뒤져봐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하반기에도 재고가 없어 구매를 미뤘는데 여전히 공급난이 해소되지 않은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제는 유통 업체가 갑이 됐다. 뉴저지주에 사는 B씨는 “대형 백화점에서 소파를 주문했고 두 달 걸려서 배송을 받았는데 주문한 것과 다른 세트가 배송됐다. 잘못 배달된 소파를 반송하고 다시 원주문 소파를 받는데 추가로 두 달이 소요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금은 공급난이 어느 정도 해소됐지만 자전거 역시 물량 부족 현상이 극심했던 품목 중 하나다.
팬데믹이 선언된 지난해 3월부터 연말까지 자전거 구입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었다. 월마트 자전거 코너 ‘바이크숍’은 지난해 말까지 거의 텅텅 비어 있었다. 자전거 주요 생산지인 중국, 대만의 생산시설 가동이 한동안 중단됐기 때문이다. 부품 생태계까지 무너지며 회복되는 데 반년 이상이 걸렸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각종 공산품 공급이 차질을 빚어왔다. 이런 상태에서 수요가 급증하자 여러 품목의 극심한 수급 불균형이 초래되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중고차, 신차 가격이 치솟은 것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전년 동기 대비 5.4%나 상승했는데 중고차 가격 상승이 3분의 1을 기여했을 정도다. 신차 가격 역시 딜러에게 웃돈을 줘야 하는 상식을 초월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인기 SUV인 기아 텔루라이드와 현대차 팰리세이드는 MSRP(권장 소비자 가격)에 5000달러 안팎을 더 줘야 차를 살 수 있다. 이제까지 미국에서 차를 살 때는 딜러가 MSRP에서 얼마를 깎아줄 것인지를 놓고 협상을 했는데, 완전히 반대 상황이 된 것이다.
리스나 할부를 하지 않고 현금으로 일시불로 지불하겠다고 하면 손사래를 치는 딜러도 많다. 이 경우 오히려 딜러에게 웃돈을 추가로 줘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딜러가 리스나 할부 금융 회사를 소개하며 받게 되는 리베이트가 있는데, 일시불로 결제할 경우 딜러 수입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지난해 팔린 중고차가 신차보다 가격이 높아지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례 없는 팬데믹이 초래한 이런 공급난이 단기간에 해소되지는 않을 듯하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 등이 창궐하며 각종 제조 생태계가 다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뉴욕 = 박용범 특파원 life@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