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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추감사절
오늘은 맥추절입니다. 맥추절(麥秋節)은 한자로 보리 麥(맥)자입니다. 즉 봄농사를 지어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를 말합니다. 가을에선 수장절이 있어 가을 농사를 지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맥추절을 맥추감사절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절기를 지길 때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에 하나님께 감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천지를 만드신 분이시며 이 아름다운 세상에 우리를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필요를 공급하시며 우리들이 살아가도록 일용할 양식과 모든 것을 제공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호흡이 있는
자들은 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낼지어다”
[시편 66:1]
온 땅은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을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가
있습니다. 또한 온 땅은 모든 세상의 사람들을 의미할 수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가 있습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이 인간에게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는 더욱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찬송할지어다”
[시편 66:2]
하나님은 영광스러운 분이시며 그래서 그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온 땅이 주께 경배하고 주를 노래하며 주의 이름을 노래하리이다 할지어다 (셀라)”
[시편 66:4]
온 땅의 모든 백성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우상을 만들어 절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온 세상에 주의 이름을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멘
여기서 보면 (셀라)라고 있습니다. 이 셀라는 잠시 쉬는 것을 말합니다. 시를 낭송할 때 이 구절 후 잠시 쉬고 또 낭송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셀라는 다음 구절을 읽을 때 큰 소리로 읽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셀라가 시편의 맨 뒤에 있으면 다시 한번 더 읽는 것입니다. 성경의 시편을 읽을 때 이해를 하고 읽으면 좋습니다.
그럼 오늘 이 시편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를 해야 하는지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첫째: 구원의 은혜에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와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라 사람의 아들들에게 행하심이 엄위하시도다”
[시편 66:5]
하나님의 행하신 것을 보면 놀랍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생에게 행하신 그 일들이 위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심을 우리가 찬양하고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구체적인 내용은
“하나님이 바다를 변하여 육지가 되게 하셨으므로 무리가 걸어서 강을 건너고
우리가 거기서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였도다”
[시편 66:6]
하나님이 바다를 변하여 육지로 되게 하셨다는 말씀은 출애굽기 14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을 때 구원해 냈습니다. 10가지 재앙과 유월절의 놀라운 기적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냈는데 앞에 홍해가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추격해 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혀 있으니 오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모세가 지팡이로 홍해를 향해 내리치니 바다가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좌우에 물이 벽이 되었고 바다 가운데 길이 열렸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어서 건넜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군대가 추격해올 때 이스라엘이 다 건너간 후에 하나님의 명대로 모세가 지팡이를 다시 내리치니 홍해가 합쳐져서 애굽의 군사들이 다 물에 수장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모세와 미리암과 백성들이 감사찬양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생활의 그 비참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유케 되었습니다. 해방이 되어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으로 말하면 죄의 노예로 살아갈 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셔서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죄에서 해방이 되어 자유케 되었습니다. 주님의 피가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구원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6절 중간에 [~강을 걸어서 건너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 때 요단강을 건넌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모맥을 거둘 시기에 요단강이 불어서 강의 물이 많았습니다. 그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지시한 대로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이 요단강을 밟으니 요단강이 멈추게 되었습니다. 위에서 내려오든 강물은 쌓이게 되고 밑에서 내려가던 물은 흘러가 버립니다. 그렇게 해서 강 바닥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걸어서 그 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이 다 건너고 마지막에 제사장이 강을 건너서 발을 떼니 물이 다시 흐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이 권능으로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이나 노력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힘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찬송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그의 능력으로 영원히 다스리시며 그의 눈으로 나라들을 살피시나니
거역하는 자들은 교만하지 말지어다 (셀라)”
[시편 66:7]
. 하나님은 권능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 역시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입니다. 아멘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교만하거나 감사를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욱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치도 않고 또 오히려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아멘
“만민들아 우리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의 찬양 소리를 들리게 할지어다”
[시편 66:8]
모든 열방과 세계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소리높여 감사 찬양을 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높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지극히 높여 찬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
[시편 66:9]
하나님은 우리 영혼을 구원하시며 돌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은 지극히 찬양합니다.
둘째: 연단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예수 믿는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인데 당연히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고난을 당하고 시험을 당하기도 합니다. 당장 예수 믿었다고 바로 크게 형통하여 기적이 늘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시키시고 훈련시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제대로 된 성도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시편 66:10]
여기서 ‘시험하다’는 말은 ‘바한’이라는 히브리어인데 ‘금속의 순도를 측정하다’은 의미가 됩니다. 즉 금이나 은 등을 순수하게 제련할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만일 은을 제련하려면 은이 있는 돌을 캐서 그 여러 가지를 함께 뜨거운 용광로에 녹입니다. 그러면 다른 불순물은 다 타버리고 순수한 은이 녹아서 내립니다. 그리고 그 은을 다듬어서 보석을 만들거나 화폐가치를 만듭니다. 순수한 은을 제련해 내게 되는 것입니다. 은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도 하나님께서 은을 제련하듯이 연단을 하는 것입니다. 뜨거운 용광로 같은 불의 시험이 있는 것입니다. 그 불의 시험을 통과해야 제대로 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므로 훈계하고 때로는 회초리도 듭니다. 왜냐하면 사람이되게 하려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를 훈계하지 않고 그냥 방치하면 자녀는 나쁘게 행동해도 괜찮은 줄 알고 작은 것이 나중에 큰 일이 되어 바른 사람이 되지 못할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시편 66:12]
여기서 보면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머리를 타고 갈 정도로 얼마 멸시를 당하고 고난을 당하며 노역을 했는지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할 때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들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벽돌을 굽는 일을 죽으라고 했습니다. 조금이라고 게으르면 어김없이 애굽의 군인들의 채찍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심지어 남자 아이를 낳으면 나일강에 던지라고 할 만큼 위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고통의 소리를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어서 그들을 그 고난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아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이 가나안에 40일 정탐하고 돌아와서 보고를 하였습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모세와 백성들 앞에서 보고를 하니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곳에 들어가서 땅을 차지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10정탐꾼은 안 된다고 하면서 그들이 그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다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 가나안 거민은 아낙자손들인데 키가 크고 용맹하여 그들 앞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뚜기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낙심을 하고 원망을 하고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적인 생각만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루를 1년으로 쳐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연단을 받도록 했습니다. 광야에서 농사 지을 곳도 없고 그야말로 사막 같은 곳에서 그들은 40년을 지냈습니다. 때로는 물이 없어서 갈하기도 하고 때로는 고기가 먹고 싶어서 불평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만나를 주셔서 양식을 주시고 메추라기떼를 보내서 고기를 먹게 하셨습니다.
또한 반석을 쳐서 생수를 주시고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시원하게 보호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따뜻하게 보호하셨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적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안전하게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 광야생활을 너무나 큰 연단이었습니다. 푸른 초장도 아니요 시내가 흐르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광야에서 연단을 시키신 것입니다. 낮에 뜨거운 태양이 내리쬘 때 하나님의 구름 아래에서는 시원하였습니다. 밤에 너무나 춥고 무서울 때 하나님의 불기둥 곁에서 따뜻하고 안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훈련시켰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당하도록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훈련시킴으로 애굽에서의 노예건성과 그들 속에 있는 죄성을 거두어 내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을 심어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순수한 은처럼 그들의 마음이 순수하고 깨끗한 성도가 되어 주를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성도가 되었다고 해서 만사형통하고 다 편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때부터 연단을 받고 시련을 겪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때부터 하나님이 우리를 연단시키고 훈련을 시키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은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훈련을 다 마치면 영광스러운 성도가 됩니다.
많은 경우 성도들이 의아해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도 믿고 교회도 다니는데 왜 이렇게 힘들고 고난을 겪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셔서 주를 섬기는 자로 제대로 만들기 위해 그러시는 것입니다 아멘
그래서 우리는 이것마저도 감사해야 합니다.
“13. 내가 번제물을 가지고 주의 집에 들어가서 나의 서원을 주께 갚으리니
14. 이는 내 입술이 낸 것이요 내 환난 때에 내 입이 말한 것이니이다”
[시편 66:13~14]
환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 서원하여 기도하기를 하나님이 이 고난이 다 지나가고 회복이 되면 내가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릴 것입니다. 서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다 회복시키기도 복을 주시니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아멘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시련도 하나님께 감사해야할 이유가 있습니다.
셋째: 풍성한 은혜로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오늘은 맥추절입니다. 이 날은 풍성한 곡식을 거두어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햇빛과 비를 주시고 기름진 땅을 주셔서 농사를 잘 하여 곡식을 거두게 하심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기록할 그 시 시대에는 농경사회에로서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12절 후반절에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의 기름진 기업으로 인도하심을 노래한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헐몬산에서 눈이 내려서 흘러 갈릴리 호수로 옵니다. 갈릴리는 호수요 담수입니다. 호수가 워낙 크니까 갈릴리 바다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짠물이 아니라 민물입니다. 그 물로 농사를 짓고 마시는 물도 되고 물고기도 잡아서 먹습니다. 그리고 그 갈릴리에서 흐르는 요단강은 이스라엘 국토를 따라 흘러서 사해까지 가게 됩니다. 요단강 주변에는 늘 물을 사용할 수 있고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시편 65:9]
그리고 요단강 주변의 지강이 많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샤론의 들녘은 너무나 아름다운 곳입니다. 꽃이 풍성하고 기름진 땅입니다. 중동의 대부분의 사막같은 지역에서 이렇게 물리 풍성하고 땅이 기름진 곳은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게 했습니다. 그리고 풍성한 곡식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절기를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시편 65:10]
우리나라에서는 시골 마을마다 저수지를 만들어 비가 올 때 채워둡니다. 그리고 조금씩 흘러 내보내다가 농사철이 되면 필요한 만큼 물을 흘러 보냅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짓는데 물이 없어서 못 짓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설이나 환경이 세계의 어느 나라든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물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나라들이 많습니다.
“12.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13. 초장은 양 떼로 옷 입었고 골짜기는 곡식으로 덮였으매
그들이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
[시편 65:12~13]
초장에 기름같은 비가 내려서 늘 푸르고 그리하여 양떼가 풍성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들판에 곡식이 가득하였다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 풍성하신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먹는 것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다 잘 먹고 삽니다. 건강한 사람은 벌어서 먹고 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국가가 지원하여 먹고살게 다 했습니다. 지도 제공해주고 생활비도 제공해주고 먹을 수 있도록 해줍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지금까지 지켜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가을의 수장절이 다른 말로 장막절 혹은 초막절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장막을 치고 초막을 얽어서 살았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장막절, 초막절을 지키는 이유는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심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봄의 맥추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풍성한 음식을 주심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아멘
[결론] 하나님께 모든 면에서 감사하는 성도가 됩시다!
우리는 모든 것이 감사입니다. 구원의 은혜 감사, 풍성한 곡식 감사, 지키시고 인도하심 감사, 심지어 고난의 연단도 감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모든 면에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에게 주님은 또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더 크신 풍성한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신앙의 성도를 가장 귀하게 여기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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