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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5.17.주일오전 예배설교
설교본문/ 디모데후서 1:3~8(신약342쪽)
설교제목/ <신앙의 명문가문을 세우라>
서론/
오늘 오전예배 말씀은 <신앙의 명문가문을 세우라>는 제목으로 전하고자 합니다. 다같이 설교제목을 두번 읽겠습니다.
<신앙의 명문가문을 세우라>*2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가정을 향한 우리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과 은혜가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세상 모든 가정, 모든 부모의 공통된 바람은 무엇일까요? 이구동성으로 자녀들이 잘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고생하는 것은 자신으로 끝나고 자녀들은 더 좋은 환경에서, 더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며, 물질적인 유산을 남겨주기 위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진짜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가장 가치 있는 유산이 무엇일까요? 재산일까요/ 명예일까요? 현금 다발일까요? 하지만, 세상의 것은 아무리 많이 물려주어도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사라지지 않고 자자 손손의 인생을 영원히 붙들어주는 최고의 유산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의 유산>입니다.
오늘 성경본문에 등장하는 디모데는 바울 사도가 <믿음의 아들>이라 부르며 끔찍이 아꼈던 교회 지도자요, 동역자요, 아들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당시 바울은 로마의 차디찬 감옥에서 인생의 마지막을 바라보며, 유언적인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가정의 달 5월 셋째주일에 <신앙의 명문가문을 세우라>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가정과 우리 자녀들의 가정이 어떤 가정이 되어야 하는지를 깊이 배우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본론/
1.조상의 신앙을 이어온 디모데의 신앙
첫번째로 살펴볼 점은 조상의 신앙을 이어온 디모데의 신앙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감옥에서 갇혀 있으면서, 밤낮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조상의 신앙을 이어온 디모데의 신앙입니다.
디모데의 신앙은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의 신앙을 이어온 것이며, 거짓이 없는 믿음인데, 그의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디모데의 신앙의 특징은 청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온 것이며, 거짓이 없는 믿음이었는데, 이러한 신앙은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신앙을 그대로 전수받은 것입니다.
청결한 양심이란 깨끗한 양심, 순수하고 순결한 양심인데, 여기서는 청결한 믿음의 양심, 신앙의 양심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분들 중에도 비교적 청결한 양심을 가진 분들도 있지만, 신앙의 양심은 하나님에 의해서 깨끗하게 된 양심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거짓이 없는 믿음이란 그냥 믿음이 아니라 진실한 믿음, 참된 믿음을 가리킵니다. 거짓이 없는 믿음의 원래적인 의미는 <위선이 없는, 가면을 쓰지 않은>이란 뜻인데, 어디에서나 똑같은 진짜 믿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세상에서나, 한결같은 믿음의 모습이 거짓이 없는 믿음의 모습인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있는 믿음이 그의 외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이어진 것을 강조해서 말하면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것입니다. 디모데의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오랜 세월동안 청결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왔는데, 그런 신앙의 모습이 디모데에게도 고스란히 전수된 것입니다.
여러분,
디모데의 신앙의 좋은 모습이 어떻게 형성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도바울은 외부적인 영향보다도 가정과 가문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강조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말을 듣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살아가는 모습, 교회에 다니는 모습, 교회에서 거룩하고 신실한 장로님으로 권사님으로, 집사님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나도 장차 어른이 되면, 저렇게 되어야 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청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 눈물로 기도하시는 모습, 성경책을 읽으시는 모습, 거짓없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은 디모데에게 깊이 박힌 믿음의 모습이었습니다. 디모데는 3대째 이어온 신앙의 명문가문이 되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신앙의 몇대 가문입니까? 3대가 되신 분도 계실 것이고, 3대가 되신 분도 계실 것이고, 이제 1대로 시작한 분도 계실 것입니다. 한국교회 초창기 때는 자녀들이 먼저 교회를 다니다가, 자녀들의 전도를 받아서 교회를 다닌 분들도 상당히 많았는데, 요즘은 시대가 완전히 달라져서 부모님은 다니고 자녀들이 다니지 않은 가정들이 많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부모님들이 좋은 신앙을 갖고 다시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된 것을 알고, 청졀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을(깨끗하고 진실된 믿음을) 회복해가면서, 신앙의 명문가문을 세워갈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 금일소망교회 성도님들 가문은 모두 신앙의 명문가문을 이루어가면 좋겠습니다. 가문의 영광은 신앙의 가문이 될 때 세워지는 것입니다. 아멘.
2. 하나님의 은사를 불일 듯 일이키는 신앙
두번째로 살펴볼 점은 하나님의 은사를 불일 듯 일으키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사도바울은 앞부분에서 믿음의 아들 디모데의 신앙, 그의 신앙의 명문 가정을 칭찬한 후에 6절부터 8절에서는 그의 신앙적인 자세를 권면해주고 있습니다.
디모데가 조상적부터 청결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좋은 신앙의 명문가문을 이어오고 있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자라가며, 더 좋은 신앙의 모습으로 나가도록 권면해준 것입니다.
사실 아무리 좋은 신앙이라 하더라도 완성된 신앙, 완전한 신앙은 없고, 오직 주님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목표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더 좋은 신앙, 완전한 신앙을 나아가는 것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하며 바라는 것이지만, 바울 자신도, 빌립보서 3장 12절에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고백하였고, 에베소서 4장 13절에서도,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될 것>을 말씀해주었습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이 더 좋은 모습,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만큼 이르고자 하였을뿐만 아니라 디모데를 비롯하여 모든 성도들이 더 좋은 신앙의 모습이 되도록 권면해준 것입니다. 좋은 신앙의 모습은 누구도 완성된 모습이 아니라 완성된 모습으로 나아가고 자라갈 뿐인 것입니다.
오늘 6절과 7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할 것과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가져야 함을 권면해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디모데에게 안수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은사를 주셨는데, 그 은사를 작을 불꽃이 큰 불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씀해준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디모데에게 주신 은사를 알고 있었는데, 디모데는 그 은사를 일으키지 못하고, 잠재우고 있어서 다시 그 은사를 불을 일으키듯이 일으켜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명문가문을 일으키고, 신앙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잠재워두면 안되고, 마치 모닥불을 피우듯이 일으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그의 아들을 믿는 우리에게 성령님을 통해서 각자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받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사는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며, 달란트이며 그 사람이 잘 하는 역할이나 분야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2장과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은사의 종류에 대해서, 롬12장에는 총 7가지의 은사- 예언, 섬기는 일, 위로하는 일, 구제하는 일, 다스리는 일, 긍휼을 베푸는 일, 등이고, 고전12장에서는 총 9가지의 은사-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고치는 은사, 능력행함, 예언, 영들 분별함, 각종 방언말함, 방언통역함, 등을 알려주고 있는데, 모든 은사는 교회의 덕을 세우며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디모데에게 주신 은사를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언급하고 있지 않은 것은 디모데 자신이 받은 은사를 알고 있었는데, 그 은사를 발휘하지 않고 있어서, 다시 생각나게 해주고 위로해준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위로해준 말씀이 7절인데,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디모데에게 부족한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디모데는 눈물이 많은 사람이고, 순수하고 착하고 온유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으나, 두려움이 많고 소심한 점이 있어서 하나님의 은사를 가지고도 목회사역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한 점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인 것을 알려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의 크고 작은 직분을 맡았든지, 거친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아갈 때에 때로는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어찌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능력도 없고, 은사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소극적으로 하며 뒤로 빠지려고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사를 불을 일이키듯이, 일으켜서 은사를 발휘해야 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고, 절제하는 마음으로 맡겨진 일, 맡겨진 직분을 힘써 감당해야 합니다.
신앙의 명문가정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사용해서 맡은 직분을 감당하게 되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나라에 엄청난 복을 주셨는데, 어느 도시 어느 성읍 어느 동네를 가더라도 교회 십자가 불빛이 어둔 밤을 비추게 해주셨고, 수많은 교회, 전국 6만여 교회를 세워주셨습니다. 교회가 크고 작든 각 교회마다 신앙의 가정들이 있고, 소문난 명문가정들도 많습니다.
우리 가정이 신앙의 명문가정이 되려면, 하나님의 은사를 잠재우지 말고, 불일듯하게 하며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가정을 잘 되게 해주실 것입니다. 아멘.
3.복음과 함께 고난을 달게 받는 신앙
마지막 세번째로 살펴볼 점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달게 받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사도바울은 8절의 말씀에서 결론적으로 신앙의 명품가문을 세워가도록, 더 좋은 신앙으로 나아가도록 권면해주고 있는데, 다같이 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주님을 증거하다가 주님을 위하여 감옥에 가게 된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해준 것입니다. 당시 로마 사회에서 죄수로 감옥에 갇히는 것은 극도의 수치요,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이런 시대 상황속에서 디모데는 스승이요, 영적 아버지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이 부끄러움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전하다가 예수님을 위하여 감옥에 가고 고난을 받는 것에 대해서 전혀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해줍니다. 자기 자신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디모데나 당시 그리스도인들이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나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은 어디에서나 누구앞에서나 고난을 받고 감옥에 갔을지라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여겼기 때문에, 디모데와 모든 성도들에게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한 것이고, 또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말씀해준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한 것은 자신의 힘이나 의지나 열정으로 고난을 이겨낼 수 없기에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고난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것은 복음때문에 고난을 받으라는 것도 되고,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받으라는 의미됩니다. 성도들이 고난을 받는 것은 무슨 잘못을 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복음때문에 주변의 시기와 미움과 몰이해로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사람이 고난을 받는 경우는 세 가지가 있는데, 자신의 잘못이나 죄때문에 고난을 받는 경우도 있고, 애매하게 옆에 있다가, 옆을 지나다가 억울하게 고난을 받는 경우도 있고, 또 정말 의롭게, 복음을 전해주다가 악한 반대자들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전하다가 주님을 위하여 살다가, 욕을 보고 고난을 당하는 것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상받을 일이요, 참 신앙의 모습이요, 복받을 일이다는 것을 알고, 고난가운데 위축되거나 물러서지 말고 고난을 달게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10절에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고 하셨고, 마가복음 10장 30절에서는 <자신과 복음을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은 백배나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고 하셨고, 사도바울은 로마서 8장 16절과 17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면,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인데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라>고 증거해주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달게 받으며 감당할 때, 영광과 상급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받는 일반적인 고난은 별로 의미가 없지만, 복음과 함께, 예수님과 함께, 주님의 몸된 교회와 함께 고난을 감당하면, 상급이 있고 영광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복음을 위하여 살 때 하나님은 그 사람과 그의 가문을 명문가문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금일지역에 신앙의 명문가문이라 할 수 있는 집이 있을까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금일소망교회 성도님들 중에, 신앙의 명문가문들이 많이 세워지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잘 보이지 않아도, 지금은 알 수 없어도, 우리 각자가 복음을 위해서 고난도 잘 감당할 때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때에, 신앙의 명문가문들이 여기저기 보이게 될 것입니다. 우리 그 때를 위하여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잘 감당하면 좋겠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오전에 우리는 <신앙의 명문가문을 세우라>는 주제로 말씀을 들었습니다.
미국이란 나라는 처음부터 특히하게 기독교인들이 세운 나라로 국교가 기독교입니다. 미국에는 오랜 이야기로 같은 세대에 살았던 두 가문이 비교되는 통계가 있는데, 조나단 에드워드 가문과 맥스 쥬크 가문입니다.
미국의 한 학자가 신앙으로 자녀를 기른 에드워드 가문과 하나님 없이 살았던 쥬크 가문의 5대 후손들을 샅샅이 찾아서 비교 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에드워드 5대 후손이 모두 약 1400명이었는데, 부통령1명, 대학총장 13명, 교수65명, 의사60명, 목회자/선교사 100명이상, 법조인 130명, 고위 공직자 80명을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가문이 미국사회와 교회에 끼친 영향력은 엄청난 것이다고 합니다.
반면에, 쥬크 후손은 약 1200명정도인데, 유아사망자 310명, 거지440명, 부량자 130명, 범죄자 150명, 의존중 환자 100명이상, 그외 그럭저럭 사는 가문이었다고 합니다. 이 한 사람의 가문이 사회에 끼친 해악으로 엄청난 비용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여러분
세상의 모든 가문이 에드워드 가문처럼 되는 것도 아니고, 쥬크 가문처럼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가문과 하나님 없이 사는 불신앙의 가문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명문가문을 세우는 소원을 가져야 하고, 기도해야 하고, 먼저 우리 자신이 디모데의 가문처럼 신앙의 좋은 유산을 자손들에게 물러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불일듯 일으켜서 항상 하나님을 섬기는데 힘써야 하고, 주님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어려움도 고난도 기뻐이 감당함으로 주님께 인정받고 상급받고 축복받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금일소망교회 성도들은 앞으로 신앙의 명문가문을 세워서,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는 가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공동기도> 다같이 따라서 공동기도를 하겠습니다.
1)하나님 아버지, 저희 가문이 신앙의 명문가문으로 세워져가도록 도와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