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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침목
김미정
스위스 빙하 열차의 기울어진 유리잔을 생각했다
버틸 수 있는 각도, 그런 거 있잖아
결빙 구간이 자주 반복되었다
나는 선로를 따라 쩍쩍 갈라지고
아무렇지 않다는 말이 물이 되어 몸이 몸으로 늘어지고
완전히 누우면 각진 하늘이, 조금 측면으로 기울이면 삐죽이
솟아있는 아파트 옥상과 낙상주의가 적힌 사물함이 보였다
신은 나를 물속에 둔 채로 자주 자리를 비웠다
그럴 때마다
몸을 최대한 동그랗게 말고 그 속에 얼굴을 파묻었는데
나랑 같이 있자
사이프러스 큰 나무들은 비켜서 있다
철 지난 비둘기를 부르고 솟대를 걸고 손톱을 물어뜯고,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열두 번 모으면 사랑해 한번
커튼이 열리면 각자의 성호를 긋고 밥상을 마주하는 사람들
비릿한 철 냄새와 밥 냄새가 섞이고
열차는 제시간에 들어오거나 연착되었다
내 자리는 콘크리트가 대신하고, 폐목이 되어 공원으로
옮겨질 거라는데
부유하는 법을 배운 건 그때부터
신은 나를 통과하게 될 것이다
기다림은 다시 기다림으로 연결된다
누구든 꾹꾹 밟고 지나가길
그렇게 홀가분해지도록 나를 분리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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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소감>
"버티려면 단단해져야 하는 침목 같은 시간 지나…이제는 맘껏 시 쓰려 해"
침목, 물에 잠긴 나무가 떠올랐다. 꾹꾹 눌러진 누군가의 삶이 느껴지기도 했다. 검게 타들어 간 나무색, 재에 가까워지는 나무, 버티려면 단단해져야 하는, 침목과 같은 시간을 지나왔다. 그런데도 내게 기다리라고 말하는 순간들은 자주 반복되었다. 읽고 싶고, 쓰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 끊어진 시간을 찾아 거슬러 오르는 중이다. 철로는 휘지 않도록 간격을 둔다. 비록 나의 간격은 길었지만, 이제는 맘껏 휘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시를 쓰려고 한다.
(----)
△1972년 강원 황지 출생 △계명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재학 △경북 칠곡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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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유니크한 발상·언어 구성력 뛰어나…삶 원리를 침목 속성에 은유한 가편"
(----)
오랜 숙의 끝에 상대적으로 유니크한 발상과 언어적 구성력을 가진 김미정씨의 시편들에 주목하였고, 그의 '침목'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이 시편은 철로에 놓인 침목의 외관과 생태와 속성을 삶의 깊은 원리로 은유한 가편이다. 그 안에는 기억의 구체성과 함께 오래도록 버티고 갈라지고 기울어지고 낡아온 시간이 담겨 있고, 나아가 타자를 품은 채 내면으로 신성을 안아들이는 과정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본심 심사위원 장옥관(시인·계명대 명예교수), 유성호(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천문시론의 관점에서 본 시창작 체크리시트(전문수 교수님의 강의 내용을 기초로 하지만 잘못 이해했을 가능성도 있음)
1. 시창작 시 체크 포인트
1) 사물의 동일성, 평등성의 원리
시 정신의 핵심은 평등성에 있다. 이 세상에 가치 없는 존재는 없으며, 모든 사물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이는 최상위 의식이자 우주의 제1원리다. 최상위 의식은 어떤 존재도 멸시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동일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코끼리는 코끼리로서, 개미는 개미로서 각각 고유한 존재 의미를 지닌다. 불교에서는 선과 악, 깨끗함과 더러움조차 본래 구별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필요하면 ‘좋음’이라 여기고, 쓸모없으면 ‘나쁨’이라 단정 짓는다. 원하는 대로 보고, 바라는 대로 구별하고 차별한다. 하지만 참된 존재에는 경계가 없다.
부지깽이는 자신의 몸을 태우며 존재의 의미를 실현한다. 하찮은 직업도, 하찮은 존재도 없다. 각자는 자신의 자리에서 고유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열등감을 가질 이유가 없다. 구별과 차별, 욕망을 내려놓으면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나와 세계를 긍정할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 그러므로 먼저 이러한 의식을 갖춘 인간이 되어야 한다. 겸손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2) (시적 발견) 사물을 통해서 남들이 보지 못한 무엇 즉 어떤 참존재를 깨달았는가? (발견과정은 제대로 되었는가?)
2-1) 발견한 것을 나와 사회에 보편적 가치로 승화, 제언할 수 있는가?
2-2) 그 표현에 가장 적합한 시어를 구사하고 있는가
2-3) 유기적으로 구조화되었는가?
시인은 사물을 바라보며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것은 무엇인가?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인생의 본질을 탐구하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야 한다. 이미 의미가 부여된 것은 단순한 지식에 불과하다. 시는 기존의 해석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통해 참존재를 깨닫는 데서 출발한다.
시인은 신적 진리를 추구하며, 정신과 영혼을 중시한다. 시적 발견 없이 일상을 나열하는 것은 상식과 관습의 반복일 뿐이다. 시가 되려면 사물의 본질을 새롭게 인식하는 눈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시인은 인문학뿐만 아니라 신화, 종교, 과학 등 다양한 분야를 탐구해야 한다.
시인은 새로운 발견을 통해 진리를 전달하는 사람이다. 남들이 보지 못한 참존재를 포착하고, 그것을 시라는 형식으로 제언한다. 시는 개별적인 깨달음을 상위의식으로 보편화하고, 승화하는 과정에서 완성된다.
시는 짧은 문장으로 이루어지므로, 시어 선택이 정밀해야 한다. 플로베르의 일물일어(一物一語) 원칙이 적용된다. 진리는 하나이며, 상황에 가장 적합한 단어만이 그 본질을 담을 수 있다.
3) (음양의 관계론) 시창작에서 사물간의 관계는 음양의 관계처럼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는가?(대립, 의존 ,공존)
시에서 사물 간의 관계는 단순한 병치가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변증법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이는 동양철학의 음양(陰陽) 관계론과도 닿아 있다. 음양의 관계는 서로 대립하면서도 보완하는 원리로, 만물은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변화하는 과정 속에 존재한다. 시 창작에서도 사물들은 독립적인 개체가 아니라 서로 얽혀 있으며, 그 관계 속에서 시적 의미가 형성된다.
이하 챗 GPT 분석
분석틀 - 생의 유비로 분석(사물의 외형을 기술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경험과 정서를 자연물에 투영하여 깊은 의미를 생성하는 창작 방식)
1. 주제 분석
침목처럼 버티며 기다리다 결국 분리되고 사라지는 존재의 숙명.그 과정에서의 종교적 절망과 깨달음
이 시에서 침목의 생애와 화자의 생애는 유사한 구조를 가지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침목은 처음엔 목재로 선택되어 물에 담기고, 방부 처리를 거쳐 철길 아래 깔리며, 오랜 시간 기차의 하중을 견디다가, 결국 폐목이 되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이 과정은 버티고, 사용되고, 폐기되며, 결국 사라지는 존재의 숙명을 보여준다.
침목이 선로에서 필연적으로 부서지고 사라지듯, 화자도 삶의 무게 속에서 점점 분리되며, 결국 누군가의 발자국 아래 밟히면서도 홀가분해지고 싶어하는 감정을 표현한다.
즉, 삶은 버티는 것이지만, 버틴 끝에는 결국 분리와 해체, 이동이 기다리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부유하는 법을 배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시의 핵심적인 주제라고 볼 수 있다.
2. 상징 분석
침목의 생애
1. 수침(水浸): 선택과 기다림
"신은 나를 물속에 둔 채로 자주 자리를 비웠다" → 침목이 방부 처리 전에 물에 담가지는 과정과 유사함.
침목은 이 과정에서 기다려야 하며, 이미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운명을 지닌 존재.
2. 사용과 버팀
"나는 선로를 따라 쩍쩍 갈라지고" → 침목이 철길 아래서 기차의 무게를 견디며 갈라지는 모습과 일치.
침목은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는 도구이며, 그 자체로는 목적이 될 수 없는 존재임.
3. 소멸과 이동
"내 자리는 콘크리트가 대신하고, 폐목이 되어 공원으로 옮겨질 거라는데" → 시간이 지나면서 침목이 폐목이 되어 다른 곳으로 이동.
침목의 생애는 결국 해체와 이동으로 마무리됨.
화자의 생애
1. 어떤 환경에 놓여 있음 (수침 및 버팀)
"버틸 수 있는 각도, 그런 거 있잖아"
화자 역시 버티는 존재이며, 스스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이 아님.
2. 삶의 무게를 견디고 있음 (침목이 선로에서 버티는 과정과 유사)
"비릿한 철 냄새와 밥 냄새가 섞이고" → 현실적인 삶의 냄새, 생존을 위한 식사, 그리고 견뎌야 하는 존재로서의 삶을 암시.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열두 번 모으면 사랑해 한번" → 반복되는 삶 속에서 감정이 쌓여야만 의미 있는 말이 되는 현실.
침목이 기차의 무게를 견디듯, 화자 역시 반복되는 감정과 일상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버티고 견디고 있음.
3. 소멸과 이동 (폐목과 같은 화자의 미래)
"기다림은 다시 기다림으로 연결된다" → 끝없는 기다림 속에서 자신이 점점 분리되고 사라지는 것을 느낌.
"누구든 꾹꾹 밟고 지나가길 / 그렇게 홀가분해지도록 나를 분리하기 시작한다" → 침목이 부서지고 폐목이 되어 이동하듯, 화자도 삶의 무게를 점점 내려놓고, 자신이 사라져 가는 것을 받아들이는 상태.
대비점
1. 침목은 물리적으로 깔리고 부서지며 이동하지만, 화자는 감정적으로 분해됨.
침목은 선로에서 닳아 없어지고 폐목이 되어 공원으로 옮겨지지만, 화자는 삶의 무게를 견디면서 감정적으로 서서히 소멸하는 과정을 겪음.
2. 침목은 필연적으로 버려지지만, 화자는 스스로 분리되는 길을 선택할 수 있음.
침목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교체되지만, 화자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어떤 방식으로 버티고 분리될지에 대한 태도를 선택할 수 있음.
3. 침목은 단단한 물질이지만, 화자는 부유하는 존재.
"부유하는 법을 배운 건 그때부터 / 신은 나를 통과하게 될 것이다"
침목이 물리적으로 고정된 선로에서 버텨야 한다면, 화자는 그 모든 것을 경험한 후 결국 부유하는 존재, 즉 어떤 형태로든 자유로워지는 존재로 변모.
3. 문장 단위 분석
1) 스위스 빙하 열차의 기울어진 유리잔을 생각했다
이미지/상황
스위스 빙하 열차라는 구체적인 장면을 떠올리게 하며, “기울어진 유리잔”이라는 독특한 이미지를 제시한다.
열차의 흔들림 속에서 유리잔이 살짝 기울어져 있는 모습이 연상되며, 그 ‘기울어짐’ 자체가 불안정한 상태를 상징한다.
해석/의미
화자는 ‘기울어진 유리잔’을 통해 불안정한 균형, 혹은 한계 상황을 암시한다.
동시에 여행, 이동(열차)과 관련된 배경이 주어짐으로써 이 시가 ‘이동 중인 상태’, 혹은 ‘경계적이고 불안정한 상황’에서 출발함을 예고한다.
2) 버틸 수 있는 각도, 그런 거 있잖아
이미지/상황
‘버틸 수 있는 각도’는 기울어졌으나 아직은 넘어지지 않고 간신히 유지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한계치에 가까운, 아슬아슬한 균형감각을 떠올리게 한다.
해석/의미
누구나 ‘더는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임계점이나 경계선을 가지듯, 시적 화자는 자신의 견딜 수 있는 정도(각도)를 생각한다.
시 전체에서 반복되는 ‘버팀’, ‘견딤’, ‘기울어짐’의 모티프를 예고한다.
3) 결빙 구간이 자주 반복되었다
이미지/상황
‘결빙 구간’이란 얼어붙은 상태로 인해 멈추거나 미끄러지는 위험한 구간을 떠올리게 한다.
빙하 열차와 맞물려, 실제로도 눈·빙판길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지역을 연상시킬 수도 있다.
해석/의미
화자의 삶에도 여러 차례 ‘멈춤’ 혹은 ‘위기 상황’(얼어붙음)이 반복되었음을 암시한다.
감정이나 상황의 응어리가 계속 쌓여 얼어붙는 과정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4) 나는 선로를 따라 쩍쩍 갈라지고
이미지/상황
‘갈라진다’는 동사는 균열, 분열, 파손을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선로를 따라’ 갈라지는 모습은, 화자 자신이 마치 철로(침목)의 일부가 된 듯한 이미지를 준다.
해석/의미
화자는 스스로가 결빙 상태에서 균열이 일어나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선로’ 위에 놓여 있는 ‘침목(철길 아래 가로놓여 있는 나무나 콘크리트)’처럼, 화자는 이미 갈라지고 있는 상처 혹은 파손의 과정을 겪고 있다.
5) 아무렇지 않다는 말이 물이 되어 몸이 몸으로 늘어지고
이미지/상황
“아무렇지 않다”는 말을 되풀이하지만, 사실상 그 말이 ‘물’처럼 흘러서 결국 몸 안에서 스며드는 듯한 장면이다.
‘몸이 몸으로 늘어진다’는 표현은 힘이 빠져 흐물거리는 듯한 느낌, 또는 녹아내리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해석/의미
겉으로는 괜찮다고 해도, 결국 그 무게가 내면에 스며들어 몸 자체가 힘없이 늘어지거나 해체되는 과정을 암시한다.
화자의 ‘아무렇지 않음’이라는 말은 오히려 고통을 가중시키는 역설적 표현일 수 있다.
6) 완전히 누우면 각진 하늘이, 조금 측면으로 기울이면 삐죽이 솟아있는 아파트 옥상과 낙상주의가 적힌 사물함이 보였다
이미지/상황
화자가 몸을 ‘완전히 눕혔을 때’와 ‘약간 기울였을 때’ 보이는 시야가 다르다는 사실을 묘사한다.
‘각진 하늘’은 경직되고 딱딱한 느낌을 주며, ‘삐죽이 솟아있는 아파트 옥상’과 ‘낙상주의’ 문구가 있는 사물함은 일상 속 위태로운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해석/의미
자세와 각도에 따라 보이는 세계가 달라진다는 점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완전히 누움: 침목처럼 바닥에 깔린 상태, 혹은 포기한 상태.
각진 하늘: 구속된 시야, 자유롭지 않은 하늘.
아파트 옥상: 인간이 만든 구조물, 높은 곳(추락 가능성 내포).
낙상주의 사물함: 위험 경고, 삶에서의 경계선.
→ 삶을 포기하고 싶은 감정과 현실의 위험 사이에서 균형을 잃어가는 모습.
7) 신은 나를 물속에 둔 채로 자주 자리를 비웠다
이미지/상황
화자가 ‘물속에 있는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고 느끼며, 구원자처럼 여겨지는 신(神)이 자주 그 자리를 비워놓는다고 말한다.
익사 직전 혹은 물속에 잠겨 버린 듯한 답답함과 고립감을 연상케 한다.
해석/의미
화자가 바라던 도움이나 돌봄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고, 스스로 고통 속에서 방치된 상황을 표현한다.
신의 부재(不在)는 곧 절망감을 더욱 심화시키는 장치다.
8) 그럴 때마다 몸을 최대한 동그랗게 말고 그 속에 얼굴을 파묻었는데
이미지/상황
보호 본능처럼 몸을 ‘최대한 동그랗게’ 마는 모습은 자기방어의 표상이다.
세상과 단절되고 싶어 몸을 웅크리며 얼굴까지 파묻는 태도는,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해석/의미
화자는 ‘물속’이라는 상황에서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으므로, 오직 스스로를 감싸는 방식으로 견디려고 한다.
자기 안으로 더욱 움츠러드는 고립 상태가 강조된다.
9) 나랑 같이 있자
이미지/상황
이전까지 주로 독백처럼 흘러가던 화자가, 갑자기 타인을 향해 “같이 있자”고 말을 건넨다.
고립된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내면의 욕구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해석/의미
‘절망의 시간’을 함께 버텨줄 누군가를 바라는 간절함이 담긴 짧은 호소.
고독을 타개할 연결(연대)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10) 사이프러스 큰 나무들은 비켜서 있다
이미지/상황
사이프러스(cypress) 큰 나무들이 옆으로 비껴 서 있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보호해줄 것 같지만 정작 직접적으로 끌어안아주지는 않는 상태로도 읽힌다.
이국적이고 신성함을 상징하기도 하는 사이프러스가 물러나 있다는 이미지는 어떤 ‘거리감’을 암시한다.
해석/의미
화자가 원하는 ‘함께 있음’과는 다르게, 주변 존재들은 아직 거리나 여백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도움받고 싶은 상황에서조차, 세상은 곁에 있지만 완전히 다가와 주지는 않는다.
11) 철 지난 비둘기를 부르고 솟대를 걸고 손톱을 물어뜯고,
이미지/상황
‘철 지난 비둘기’를 부른다는 것은, 때를 놓친 행위 혹은 무의미한 부름처럼 느껴진다.
‘솟대’(장승과 함께 마을의 수호·기원을 상징하는 장식물)를 걸고, ‘손톱을 물어뜯는’ 개인적 불안 습관을 동시에 나열한다.
해석/의미
시간적 어긋남(철 지난), 수호나 기원(솟대), 불안 행동(손톱 물어뜯기) 등이 한데 뒤섞여 있다.
구원을 청하거나 불안을 달래려는 다양한 시도가 무질서하게 나열된 모습이다.
12)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열두 번 모으면 사랑해 한번
이미지/상황
“보고 싶다”를 열두 번이나 반복하면 “사랑해” 한 번이 나온다는 식의 과장되거나 다소 엉뚱한 비율이 등장한다.
그만큼 ‘보고 싶다’는 말로 채워야 할 공백과 그 뒤에 오는 ‘사랑한다’는 고백 사이에 어느 정도의 간극이 있음을 보여준다.
해석/의미
한없이 반복해야 간신히 작은 애정의 확인에 도달함을 표현한다.
갈망과 결핍, 그만큼 절실한 관계에 대한 필요를 드러낸다.
13) 커튼이 열리면 각자의 성호를 긋고 밥상을 마주하는 사람들
이미지/상황
‘커튼이 열리는’ 장면은 마치 무대가 열리듯 새로운 일상이나 아침이 시작되는 모습이다.
각자가 성호를 그으며 밥상을 마주한다는 것은, 종교적 예식(기도)과 가장 일상적인 행위(식사)가 결합된 모습.
해석/의미
화자는 저마다의 신앙·방식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평범하게 식사하는 사람들의 삶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 일상의 공간에서도 어딘가 생경함이 감돈다. (앞 문맥과 연결해보면, 화자는 여전히 그 틀 안에 완전히 편입되지 못함을 암시한다.)
14) 비릿한 철 냄새와 밥 냄새가 섞이고
이미지/상황
‘비릿한 철 냄새’는 선로(침목) 혹은 피(철분)를 연상시키는 금속성 냄새일 수도 있고, ‘밥 냄새’는 일상의 온기를 상징한다.
금속 냄새와 음식 냄새가 섞인다는 것은 일상과 위험, 혹은 상처의 기운이 뒤섞이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해석/의미
‘철 냄새’는 앞서 등장했던 결빙, 균열, 침목의 이미지를 다시 상기시키며, 평범한 삶(밥 냄새)와 화자의 상처 혹은 불안(철 냄새)이 공존함을 보여준다.
동시에 ‘비릿함’은 생생하지만 불쾌한 느낌을 주어, 화자의 내면 상태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15) 열차는 제시간에 들어오거나 연착되었다
이미지/상황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열차의 도착 풍경을 묘사. 제시간에 맞추어오거나, 때로는 연착된다.
정상적인 리듬과 어긋난 리듬이 병존한다.
해석/의미
삶은 예측 가능하기도 하고(제시간), 예측 불가능하게 어긋나기도(연착) 한다는 이중성을 드러낸다.
화자는 이 ‘열차’의 표면적 시간표에 자신을 완전히 맞추지 못하는 처지에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16) 내 자리는 콘크리트가 대신하고, 폐목이 되어 공원으로 옮겨질 거라는데
이미지/상황
‘내 자리’를 콘크리트가 대신한다는 것은, 철로에 놓여 있던 ‘침목(나무)’을 이제는 ‘콘크리트 침목’으로 교체한다는 현실적인 상황을 떠오르게 한다.
‘나는 폐목(쓰임을 다해 버려지는 나무)이 되어 공원으로 옮겨진다’는 구체적 이미지가 제시된다.
해석/의미
화자는 스스로를 ‘노후한 침목’과 동일시한다. 쓰임을 다한 뒤, 애초 역할(열차 지탱)을 못 하게 되면 다른 곳(공원)으로 치워진다는 설정이다.
이로써 화자의 소외감, 상실, 혹은 ‘버려지는 존재’로서의 슬픔이 나타난다.
17) 부유하는 법을 배운 건 그때부터
이미지/상황
‘부유한다’는 것은 물 혹은 공중에서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앞서 물속에 잠겨 있던 화자가, 이제는 역설적으로 그 물속에서 어떻게 떠오르는지를 배운 과정으로도 연결된다.
해석/의미
‘침목’은 본디 무겁게 깔려 있어야 하는 역할이지만, 이제는 부유한다는 것은 더 이상 기존 역할이나 무게에 매이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보일 수 있다.
자포자기 혹은 새로운 방식으로 ‘홀가분해지는’ 태도를 배우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18) 신은 나를 통과하게 될 것이다
이미지/상황
이전에 ‘신은 자리를 비웠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신이 화자를 통과하게 될 것’이라 말한다.
‘나를 통과한다’는 표현은 ‘내 안을 지나가며 결국 나와 함께 할 것’ 혹은 ‘나를 관통해 지나가는 어떤 계시’로 해석될 수 있다.
해석/의미
신의 부재에서, 이제는 오히려 ‘신’이 완전한 ‘부재’가 아니라 화자 내부를 ‘통과’하는 형태로 존재할 것이라는 희망 혹은 인식의 전환.
고통과 기다림이 지나가면 ‘신과 하나가 될 수도 있다’는 미래적 관점을 드러낸다.
19) 기다림은 다시 기다림으로 연결된다
이미지/상황
‘기다림이 끝나지 않고 다시 다른 기다림으로 이어진다’는, 어떤 희망도 쉽게 도달할 수 없고 끊임없이 지연되는 순환 구조를 보여준다.
해석/의미
열차의 ‘연착’, ‘시간표’처럼, 인생의 약속된 순간이 도래하기를 계속 기다려야 한다는 무력감과 반복을 시사한다.
동시에 시적 화자는 이 기다림의 순환 자체가 삶의 본질임을 체념적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20) 누구든 꾹꾹 밟고 지나가길
이미지/상황
‘침목’이라는 제목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대목. 철길에 놓인 침목을 ‘누구든 밟고 지나가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을 밟고 열차나 사람이 지나간다는 이미지가 선명해진다.
해석/의미
자신은 이미 기능을 다하고 폐목처럼 버려졌지만, 그마저도 누군가 ‘밟고 지나가며’ 쓰임을 다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일종의 자기희생적·체념적 태도가 엿보이며, 동시에 “내가 짐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밟고 지나가게 해 홀가분해지고 싶다”는 역설적 소망이다.
21) 그렇게 홀가분해지도록 나를 분리하기 시작한다
이미지/상황
‘나를 분리한다’는 것은 화자가 기존의 삶(역할, 몸, 정체성)으로부터 스스로를 떼어내는 행위처럼 보인다.
더 가볍고 자유로워지기 위해, 현재의 자신을 구조적으로 해체·분리하는 과정이다.
해석/의미
결국 화자는 “침목”으로서의 기능(버팀, 떠받침)을 수행해왔으나, 그것을 내려놓고 ‘분리됨’으로써 홀가분해지고자 한다.
자기 해체를 통한 해방감, 혹은 새로운 정체성의 시작을 암시한다.
4. 철로 이미지와 종교 이미지의 연쇄와 교차
철로 이미지 : 붉은 색
종교이미지 : 녹색
교차 이미지 : 파란색
스위스 빙하 열차의 기울어진 유리잔을 생각했다
버틸 수 있는 각도, 그런 거 있잖아
결빙 구간이 자주 반복되었다
나는 선로를 따라 쩍쩍 갈라지고
아무렇지 않다는 말이 물이 되어 몸이 몸으로 늘어지고
완전히 누우면 각진 하늘이, 조금 측면으로 기울이면 삐죽이
솟아있는 아파트 옥상과 낙상주의가 적힌 사물함이 보였다
신은 나를 물속에 둔 채로 자주 자리를 비웠다
그럴 때마다
몸을 최대한 동그랗게 말고 그 속에 얼굴을 파묻었는데
나랑 같이 있자
사이프러스 큰 나무들은 비켜서 있다
철 지난 비둘기를 부르고 솟대를 걸고 손톱을 물어뜯고,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열두 번 모으면 사랑해 한번
커튼이 열리면 각자의 성호를 긋고 밥상을 마주하는 사람들
비릿한 철 냄새와 밥 냄새가 섞이고
열차는 제시간에 들어오거나 연착되었다
내 자리는 콘크리트가 대신하고, 폐목이 되어 공원으로
옮겨질 거라는데
부유하는 법을 배운 건 그때부터
신은 나를 통과하게 될 것이다
기다림은 다시 기다림으로 연결된다
누구든 꾹꾹 밟고 지나가길
그렇게 홀가분해지도록 나를 분리하기 시작한다
5. 리듬 분석
① 짧은 문장과 긴 문장의 교차 배치
짧은 문장은 단속적이고 빠른 리듬을, 긴 문장은 느려지는 효과를 준다.
이러한 변주가 시 전체의 흐름을 결정한다.
② 의성어·의태어를 활용한 강약 변화
‘쩍쩍’과 같은 파열음이 들어가면서 단절된 리듬감을 형성한다.
반면, 비음(ㅁ, ㄴ)과 유음(ㄹ)의 반복은 부드러운 흐름을 만든다.
③ 반복적 구절과 점층적 리듬 형성
특정 단어(‘보고 싶다’, ‘기다림’)가 반복되면서 리듬이 점진적으로 확장된다.
후반부로 갈수록 문장이 길어지면서 리듬이 느려지고, 기다림의 질감을 강조한다.
④ 모음과 자음 패턴을 통한 리듬감 조성
비음(ㅁ, ㄴ), 유음(ㄹ)의 반복 → 부드러운 리듬 유지
파열음(ㅍ, ㄲ, ㄱ)의 삽입 → 단속적인 리듬 변화
이러한 리듬적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침목」은 끊어질 듯 이어지는 불안정한 흐름 속에서 기다림과 소외를 표현하는 리듬을 형성하고 있다.
기타 ㅅ, ㄱ, ㅂ, ㅁ 자음운의 사용, 물, 빙 단어의.빈복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