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해내수면생태환경공원 가운데의 호수 주변으로 왕버들, 팽나무, 단풍나무가 각기 다른 색깔로 가을을 즐기고 있다. 호수 전망대에서 유치원생들이 물속 비단잉어를 내려다보고 있다. 호수 오른쪽에는 갈대가 무성한 나무 데크 길이 열린다.
추풍낙엽! 낙엽이 벌써 땅바닥에 뒹굴었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말처럼, 열흘 붉은 단풍도 없는 모양이다. 가을은 어느새 겨울에게 시나브로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가을도, 겨울도 아닌, 애매한 계절에 경남 진해를 찾았다. 겨울이 조금 더 일찍 찾아온 진해내수면환경생태공원부터 진해 시내의 근대 유산들, 그리고 김달진문학관, 김씨박물관, 박덕배갤러리 등 작은 동네인데도 의외로 볼거리가 많은 소사마을을 잇따라 탐방하고 나니 어느새 하루 해가 기울었다. 멀리 여행 가기에는 해가 참 많이 짧아졌다.
■진해내수면환경생태공원
경남 창원시 진해구 여좌천은 벚꽃으로 유명하다. 전국에서 손가락을 꼽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맘때 바스락바스락하며 밟는 낙엽길 여행지로도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
여좌천 물길을 따라 10분쯤 올라가면 진해내수면환경생태공원에 이른다. 지난 2008년 문을 열었는데, 계절 따라 색깔을 달리하는 수목과 호수 때문에 지역 사진작가들이 자주 찾는 출사지다.
가을에도 꽃 피우는 '춘추벚' 러시아풍의 진해우체국 : "사랑도 소용없을 때 삼포에 가면 위로 받을까"
숲은 아름다웠다. 소나무, 편백나무, 벚나무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경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무슨 조화일까? 겨울이 임박한 계절에 벚꽃이 바람에 휘날렸다. 가까이 가 보니 '춘추벚'이란 이름표를 달았다. 가로수로 많이 사용되는 왕벚나무와 달리 봄, 가을 두 차례 꽃을 피우는 희귀종이었다. 진해의 상징인 벚나무가 봄 한때에만 꽃을 피우는 것을 아쉬워 해 일부러 심었다고 했다. 봄의 벚꽃처럼 꽃이 풍성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매화처럼 정겨운 멋이 있다.
공원 면적은 8만 3천897㎡에 이른다. 상당히 넓다. 호숫가를 걷는 데는 30분쯤 걸린다. 호수에서 곧바로 숲길로 걸음을 옮길 수 있는데, 숲길 어귀에는 누런 갈대가 늦가을을 알리고 있었다. 갈대숲에 이르면 누구나 사랑을 품는 것일까. 고희를 넘긴 듯 보이는 노부부, 막 연애를 시작한 젊은이들이 자연스럽게 손을 잡았다.
■한 번쯤 들어봤음 직한 이색 명소들
진해는 근대유산이 많다. 날을 잡아서 이들 유산만 둘러봐도 한나절 이상이 걸린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진해우체국(사적 제291호). 지난 1912년 10월 준공됐으니 역사가 벌써 100년을 넘었다. 우체국은 중원로터리에서 제황산공원으로 이어지는 도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삼각 모양의 1층 목조건물이다. 당시 주변에 러시아공사관이 있어 러시아풍을 따랐다고 한다. 지난 2000년까지 우체국 청사로 쓰였다. 우체국 내부로 들어가려면 뒤로 돌아가야 한다. 입구가 막혔다. 내부는 생각보다 깔끔했다.
진해우체국 옆의 아이세상장난감도서관 화단에는 유신헌법기념탑이 서 있다. 높이 3.5m, 너비 2m 크기로 회사원, 해군, 대학생 등 어른 네 사람이 법전을 떠받친 모양이다. 한때 진해의 시민단체들이 "부끄러운 역사"라며 철거를 요구했지만, 그 역사조차 남기는 것이 옳다는 주장 덕분에 해체 운명을 피했다. 지금은 전국에서 유일한 유신기념탑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신헌법기념탑을 돌아 북원로터리 방향으로 7~8분쯤 걸어가면 길 한가운데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을 만난다. 양손을 모아 땅에 수직으로 세운 검을 꼭 쥐고 있는 모습이 당당하다. 이 동상은 1952년 4월 세워졌는데, 우리나라 충무공 동상 제1호다. 동상 건립을 기념해 추모제를 지낸 게 지금의 군항제다.
동상이 바라보는 방향을 따라 10분가량 더 걸어가면 남원로터리 중앙에서 1946년 진해를 찾은 백범 김구가 충무공의 시 '진중음(陣中吟)'의 한 구절을 써서 남긴 비석을 만날 수 있다.
창원해양공원도 빠뜨릴 수 없는 명소다. 공원 내부에 창원솔라타워가 최근 개장했는데, 높이 120m의 27층 전망대에서 보는 다도해 전망이 압권이다. 전망대 바닥의 투명 플라스틱 패널에 서면 밭밑으로 120m 아래가 내려다보인다.
창원해양공원 안에 있는 야외 군함전시관.
공원 군함전시관에는 1978년에 퇴역한 강원함(전장 119.0m, 전폭 12.5m, 2천500t)이 바다에 떠 있다. 선실부터 갑판, 실제 쓰던 무기까지 잘 정비돼 금방이라도 출동 명령이 떨어지면 움직일 것 같다. 공원 앞바다에 있는 동섬은 하루 두 차례 '진해판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 물때를 잘 맞추면 동섬까지 바닷길 50m를 걸어서 다녀올 수 있다.
하루 두 차례 신기한 바닷길이 열리는 동섬.
■노래와 시, 사연이 있는 마을들
창원해양공원에서 나와 오른쪽 해안길을 따라 부산 방면으로 3분 정도 가면 오른쪽 바닷가에 아담한 어촌마을이 보인다. "바람 부는 저 들길 끝에는 삼포로 가는길 있겠지/굽이굽이 산길 걷다 보면 한발 두발 한숨만 나오네." 가수 강승철의 '삼포로 가는 길'에 나온 그 마을이다.
행정구역은 창원시 진해구 명동. 노래를 만든 이혜민 씨가 고등학교 시절 여기 들렀다가 너무 아름다워 노랫말에 마을 이름을 넣었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 노래비가 있다. 노래비 단추를 누르면 '삼포로 가는 길'이 나온다. 가사의 한 구절처럼 "사랑도 이젠 소용"이 없을 때 삼포로 가면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진해 웅동 영길만 해안도로에는 '황포돛대 노래비'가 서 있다. 진해 출신 작사가인 이일윤 씨가 짓고, 가수 이미지가 부른 트로트 곡 '황포돛대'를 들을 수 있다. "마지막 석양빛을 기폭에 걸고 흘러가는 저 배는 어디로 가느냐?"라는 가사처럼 노을 질 때 영길만을 바라보며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짠해진다.
진해 출신의 김달진 시인을 기리는 김달진문학관.
김달진문학관이 있는 소사마을도 가깝다. 시인의 생가와 작품을 전시한 문학관, 지금은 대부분 사라진 옛 물건을 전시한 김씨박물관, 박덕배 갤러리 등 조그마한 마을에 볼거리가 참 많다. 잠시 둘러보고 가야지, 했다가 의외로 오랜 시간을 머무는 여행자들이 많을 정도이다. 글·사진=전대식 기자 pro@busan.com
·대중교통 :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1577-8301)에서 진해시외버스정류장(055-547-8424)으로 가는 시외버스는 오전 6시부터 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1시간 30분 걸림. 부산동부시외버스터미널(1688-9969)에서도 진해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단, 하루 6편 밖에 없다. 오전 9시 10분부터 오후 7시 10분까지 운행. 1시간 40분 걸림. 진해시외버스정류장 부근에서 160번, 760번 시내버스를 타고 혜성아파트 정류장에서 내려 400m가량 걸으면 진해내수면환경생태공원에 도착한다. 22분 걸림. 317번, 305번, 305-3번을 탔다면 여좌신흥탕 앞에서 내려 생태공원까지 400m를 걷는다. 24분 걸림.
■연락처 및 이용안내(이하 지역번호 055)
·진해내수면환경생태공원 548-2766. 오전 7시~오후 5시 개장. 무료.
·창원해양공원 712-0525. 오전 9시~오후 6시 개장. 관람료 3천 원(주차요금 대당 1천 원 별도). 해양솔라파크 입장료 3천500원.
·김달진문학관·생가(www.daljin.or.kr) 547-2623. 오전 9시~17시 개장. 무료.
■음식점
진해구 충무동 진해역 앞에 있는 '금강산면옥'(542-4896)은 석쇠불고기(사진)와 냉면을 잘하는 집이다. 고기 맛은 약간 달짝지근한 편. 육질은 입안에 넣으면 슬그머니 녹을 정도로 부드럽다. 고기 한 점에 냉면을 돌돌 감아서 먹으면 면발의 시원함과 고기의 쫄깃함이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낸다. 석쇠불고기 1만 1천 원. 냉면 6천 원. 전대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