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729) - 광복절 전후에 접한 사연들
가을 문턱의 처서가 내일모래, 한두 차례 태풍과 호우 지나며 찌는 듯한 폭염도 고개를 숙이고 아침저녁 제법 선선한 날씨다. 작열하는 태양 볕 받아 며칠새 부쩍 자란 들판의 곡식과 잎새들, 온 땅에 풍년가 울려라.
처서를 앞두고 아침 일찍 들판을 살피는 농사군, 어둔 밤 오기 전에 열심히 일하세
제74주년 광복절이 낀 한 주간의 일상을 간추려 소개하다.
1. 재일동포 안정일 씨의 부음을 듣다
광복절 아침, 한국체육진흥회 선상규 회장으로부터 여러 차례 한일우정걷기에 참가한 재일동포 안정일 씨의 부음을 전해 들었다. 직전에 엔도 일본걷기 대표로부터 8월 9일에 별세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알려온 전화, 이미 장례를 치른 후라 삼가 애도를 표한다는 뜻을 폰으로 주고받은 후 몇몇 지인들에게 그 소식을 알려주었다. 이를 접한 몇 분의 반응을 소개한다.
대구로 내려가던 버스에서 보낸 아내의 응답, ‘일본의 오빠가 돌아가셨네요. 작년에 함께 걸은 제주도의 추억이 새롭습니다. 내 유머집도 그분 덕에 빛을 보았는데요’
제주도 걷기에서 친분을 쌓은 안순애 씨의 반응, ‘슬픈 소식이네요. 다시 한 번 뵙고 싶었는데.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안씨 3자매는 처음 만난 같은 본의 안정일 씨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을 닮았다며 오누이처럼 다정하게 지냈다.)
일본에 거주하는 김승자 씨의 소식, ‘안정일 씨 소식 매우 안타깝습니다. 제주도에서 식탁을 같이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너무 외롭습니다. 김태호 선생님 글을 번역하는 매신저 역할을 맡기도 하였고 번역본에 삽화를 그려 넣기도 한 추억이 떠오릅니다.’
안정일 씨는 5년 전 남한일주 때와 작년 제주도 걷기 때 내가 쓴 글에 본인의 삽화를 첨부한 기행록 번역본을 만드는 수고를 해주었고 여러 차례 조선통신사 걷기, 대만일주 걷기 등을 함께 하는 등 각별한 사이였다. 7년 전 제1차 남한걷기 때 그의 본향인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사무소에 들러 최근에 소식을 알게 된 사촌의 이름을 대고 할아버지의 호적을 확인하게 한 인연, 뒤늦게 서울의 한국어학당에서 열심히 한글공부를 한 고국 사랑도 생각난다. 아내의 유머에 관심을 보여 이를 책으로 펴내기를 권유하기도.
지난 5월, 제7차 조선통신사 한일우정걷기 때 일본 시가현의 비와코 호반에서 부근에 사는 안정일 씨와 재회하였다. 작년 제주도 걷기 때 전보다 체력이 부친 것을 확인하였으나 1년 사이에 몰라보게 수척해진 모습이 안타까웠다. 약해진 몸으로 걷기동호인들과 잠시 상면한 후 헤어지는 발걸음에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이처럼 속히 먼 길 떠날 줄 그때는 미처 몰랐지요.
지난 5월에 만난 안정일 씨 모습
그는 내 글을 번역하면서 한글작업이 일본어 쓰기보다 어렵다고 술회하였다. 일본어가 모어(母語)가 되는 재일동포들의 고단한 삶, 고국에서도 현지에서도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재일동포의 신산함을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을까. 어느 때보다 엄중한 한일 간의 불협화와 갈등을 목도하며 눈을 감은 안정일 선생이여, 반목과 불화의 세상 벗어나서 영원한 평화와 안식을 누리소서.
2. 곳곳에 서린 역사와 문화의 자취
지난 주말, 천안과 고양에서 동호인들과 걷기에 나섰다. 무더운 날씨에도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걷기를 지속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곳곳에서 살피는 민초들의 가없는 공동체사랑이 가슴을 울린다. 토요일 천안걷기의 집결지는 천안역 광장, 출발시간보다 30여분 일찍 도착하여 역사 안 홍보판에 전시된 천안의 이모저모를 살폈다. 광복절 직후여서일까, 유관순∙이동녕∙이범석 등 기라성 같은 독립지사들을 많이 배출한 지역에 독립기념관이 세워진 것을 새기고 천안삼거리 능수버들의 유래도 살폈다. 홍보판에서 살핀 천안의 모습, '천안은 석기시대의 유허가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유구한 역사를 지닌 고장, 중부권의 문화를 주도해가며 서해안시대의 교통∙유통∙스포츠의 거점 도시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며 민족사의 전통과 영광의 새 장을 열게 된 독립기념관을 안고 충절의 고장으로, 삼거리 문화를 활짝 꽃피워가는 아름다운 고장으로 발전하고 있다.' 선선해진 날씨에 역사 주변의 10여km 천변 길 걷기가 쾌적하였고 논골 식당의 푸짐한 점심식탁이 입맛을 돋우었다. 제95회 천사걷기를 주선한 주최 측에 감사.
천안역 출발에 앞서 기념촬영
일요일은 고양시 일원의 평화누리길 걷기, 35명의 동호인들이 오전 10시 행주산성입구에 모였다. 행주산성을 찾기는 수십 년 만, 30여분 일찍 도착하여 산성 안을 살폈다. 임진왜란 3대 대첩을 이끈 권율 장군의 동상이 입구에 세워져 있고 울창한 숲길 따라 잠시 오르니 ‘권율 장군과 동산동 밥할머니 ~ 조선 최초의 여성 의병장, 행주치마와 노적봉의 전설’을 소개한 쉼터가 나타난다. 판화에 새겨진 내용, ‘1593년 2월, 행주산성에는 권율 장군이 이끄는 1만 명의 조선 민∙관∙군과 3만 명의 일본군이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시간이 갈수록 성안엔 무기가 떨어져 불리하게 되자, 밥을 짓고 부상병을 돌보던 여성의병장 밥할머니는 여자들에게 앞치마에 돌을 주워 나르게 하고, 군인들이 돌을 무기로 쓰게 하여 대승을 거두게 하는 지혜를 발휘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인조는 밥할머니의 공적을 인정하여 정경부인에 봉하였고, 후세 사람들은 밥할머니의 석상과 비석을 북한산이 잘 보이는 창릉모퉁이에 세워 호국정신을 기렸다.’
행주산성 안 쉼터에 걸린 권율장군과 밥할머니 행적
10시에 행주산성입구를 출발한 일행은 평화누리길이라 새긴 푯말을 따라 행주나루터, 일산호수, 킨택스, 공설운동장, 대화역에 이르는 16km를 중간 중간 휴식을 취하며 즐겁게 걸었다. 그길 길게 이어져 북녘 땅까지 걸어가는 소망을 꿈꾸며.
3. 감정가 0원의 독립운동가 수기
KBS TV쇼 진품명품, 세월 속에 묻혀 있던 진품∙명품을 발굴해 전문 감정위원의 시선으로 진가를 확인하는 감정 프로그램이다. 때로는 창고 안에 방치되어 굴러다니던 족자가 대단한 보물로 밝혀지기도 하고, 집안 대대로 내려온 도자기가 가치가 없는 것으로 밝혀져 출품자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8월 11일, 1944년 전후 작성된 회고록 한 점이 진품명품에 출품되었다. 작성 당시 상황이 열악했는지 비싼 원고지가 아닌 당시에 쓰인 세금계산서 용지에 작성된 회고록이었다. 얼핏 초라해 보이는 이 회고록의 출품자는 희망 감정가로 100, 815원을 적어서 내었다. 그런데 전문가들의 감정가는 모두를 더욱 깜짝 놀라게 했다. '0원'
전광판에 나온 '0'이라는 글씨는 이 회고록에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황하는 사람들 가운데 회고록을 감정한 전문가가 결연하게 말했다. "이 기록은 한 사람의 개인적인 것이지만 나라를 잃은 많은 애국자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한 흔적이 남아있다. 이분들의 행적을 감히 돈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해 감정가를 추산할 수 없다."
이 회고록은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 항일 무장투쟁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이규채 선생이 자필로 적은 일명 '이규채 연보'였다. 이규채 선생의 증손자인 출품자 이상옥 씨가 100,815원을 적어낸 이유는 올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100과 광복절을 의미하는 8.15를 뜻하는 숫자로 조합한 것이다.
1932년 9월 만주에서 활약하던 한국 독립군과 중국인들로 구성된 항일 의용군의 '쌍성보 전투'를 회고하고, 독립운동가의 재판기록도 작성된 이 회고록에 그 어떤 전문가라도 가격을 매기는 일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날 의뢰품을 들고 나온 이상옥 씨는 증조할아버지와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되새길 수 있도록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 박물관에 기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가 독립된 주권을 가진 대한민국에서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피와 눈물로 싸운 그분들의 투쟁과 의지와 역사가 바로 그 보물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0원짜리 보물을 남겨 주신 모든 독립투사 분들에게 경의와 존경과 감사를 바친다.
# 오늘의 명언
‘2,000만 민중이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죽임을 당하기 전까지 독립운동은 종식되지 않을 것이다. - 이규채 -(이를 시청하며 크게 감동하였는데 인터넷에 이를 정리한 글이 올라와서 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