췩, 췩, 쓰읍.... 치익.. 하아... 빈은 담배를 핀다. 아주 오랜 시간 그는 담배를 태워왔다. 담배를 태우는 그의 모습은 다양하다. 괴롭고, 즐겁고, 슬프고, 아무렇지 않고, 습관이고, 그렇고. 지금 그의 모습은 만족감이다. 다시 한 번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고. 마치 경건한 의식이라도 하는 것 마냥 들이마시고 살짝 입으로 연기를 밖으로 흘리곤 다시 남김없이 들이 마신다. 검지와 중지사이에 깊이 담배를 꽂아 놓곤 손으로 턱과 입술을 감싼 체 입술 언저리에 필터 끝부분을 살짝 대고 있다. 나머지 한 손으론 침대보를 비스듬히 집고 있다. 하얀 침대보에 주름이 패어있다. 반쯤 누운 듯한 자세를 한 팔로 그렇게 지탱하고 있는 걸 보면 용하다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곤 자신의 옆에 있는 전라의 인에게 눈길을 한번 주곤, 자신의 전라를 눈으로 살피고, 다시 눈을 돌렸다.
인은 깊게 담배를 태우는 빈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담배 냄새, 안 빠진다니까. 어차피 집도 아니고 모텔이니까 상관없을까. 하지만 머리에 냄새 배는 건 싫은데. 시추 같은 단발머리를 한 인은 무심코 도리질을 한다. 그리곤 빈이 태우는 담배를 본다. 황색 필터. 말보로...레드던가? 술을 마셨구나. 오늘. 술 냄새는 안 났던 것 같은데. 고개를 갸우뚱 하곤 자신이 지독한 코감기에 걸려 냄새를 잘 못 맡는 다는 것을 깨닫는다. 갸우뚱한 채로 고개를 세운 무릎에 파묻는다.
“우리 만나지 말자.”
담배를 피던 빈이 나직이 읊조린다.
“응.”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인이 나직이 대꾸한다. 빈은 인의 대답을 듣고도 반응이 없다. 그저 태우던 담배를 마저 태울 뿐이다. 빈의 이별선고를 들은 인도, 그리고 대답을 한 인도 반응이 없다. 그저 가만히 무릎에 얼굴을 기대고 있을 뿐이다. 갸우뚱한 채로 무릎에 얼굴을 기대던 인은 갸우뚱한 표정을 짓는다. 몇 번째 이별 선고더라.
“이건 아니야.”
담배를 거의 다 태운 빈이 이야기 한다.
“난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인은 대꾸하지 않는다. 그냥 갸우뚱한 체 빈과 시선을 맞추고 있지 않을 뿐이다. 사실, 대꾸할 말도 없다. 전 같으면 나는 뭐냐는 둥, 관계를 어떻게 할 거냐는 둥 소리도 지르고 두드려도 보겠지만, 그러기엔 몇 번째 이별 선고인지조차 떠오르지 않는 시간이 흘렀다. 빈은 대꾸하지 않는 인에게 어떠한 대답을 바라지 않는다. 인에게 하는 듯, 자신에게 하는 듯한 빈의 고백은 담배가 다 타오를 때까지 계속되었고, 그 긴 듯한 짧은 시간동안에 빈의 이야긴 끝이 났다. 빈은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곤 침을 뱉어 나머지 불씨를 껐다. 크리스털 재떨이라 불이 날리는 없겠지만, 빈은 습관처럼 자신이 피고 난 담배에 침을 뱉어 마무리를 짓는다.
“담배 다 태웠어?”
인은 그런 빈을 보지도 않았지만 그가 담배를 다 피우고 껐다는 사실을 안다. 이야기를 했고, 침을 뱉었으니까. 인은 그런 자신이 빈에게 길들어져 있는 걸까 하고 잠깐 생각해본다.
“응.”
“그럼 먼저 나가. 난 피곤해서 좀 자다 갈 거야.”
인은 세운 무릎을 내리고 반듯한 자세로 누워 천정을 보다 빈에게로 몸을 돌려 모로 눕는다. 빈은 대답을 하지 않고 천천히 옷을 입는다. 그는 늦었다. 그의 연인이 곧 그에게 전화를 할 것이다. 그는 이제 급해졌다. 하지만 티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인은 알 수 있다. 그가 급하다는 사실을. 인은 조용히. 먹이를 사냥하는 포식자의 눈으로 빈을 바라보고 있다. 빈은 천천히, 그러나 서둘러 다 입곤 서둘러 입은 티를 지운다. 빈은 인을 한번 보곤, 그녀의 전신을 천천히 훑어본다. 인은 그런 빈의 눈길엔 아랑곳 하지 않고 그저 빈 자체를 바라본다. 빈의 목젖이 한번 크게 출렁이고 빈은 고개를 돌린다. 말없이, 아무런 말없이 빈은 자신이 산 말보로 레드를 탁자위에 올려놓곤 문으로 향했다. 신발을 신고, 앞코를 툭툭 쳐서 발을 밀어 넣는다. 문손잡이를 잡고 아무 찰나의 시간만큼 망설인다. 그리곤 힘차게 그러나 망설임을 담은체로 문을 연다. 인은 나간 빈의 뒤를 밟듯 잠시 멍하니 바라본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일어나서 빈이 남기고 간 담뱃갑을 집고 손으로 무릎으로, 허벅지로, 어깨로 굴리다가 한 대를 꺼내 문다. 인은 담배를 태우지 않는다. 담배는 빈이 태우는 것이다. 가만히 담배를 물고 있다 퉤 하고 뱉고는 풀썩 소리가 나게 천정을 향해 드러눕는다.
“지랄..”
나직이 읊조리곤, 인은 이내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