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편입 4만명… 의대 광풍에 5년새 최대
올해 모집인원 3만9635명… 대학 신입생 전체 정원의 11.4%
의대 가려고 중도이탈… “한 학과 재학생 20%이상 그만두기도”
올해 전국 4년제 대학의 편입학(정원 내) 모집인원이 총 3만9635명으로 최근 5년 새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대 광풍, 문·이과 통합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부작용 등이 빚어낸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 2학년 학생들이 잇달아 학업을 그만두자 대학 현장에서는 “이러다 대학 교육이 붕괴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2일 동아일보와 김영편입학원이 교육부 대학알리미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3학년도 4년제 대학 편입학 모집인원은 2019학년도(3만3470명)보다 6165명(18.4%) 늘었다. 대학들이 신입생 전체 모집인원(34만9124명)의 11.4%에 해당하는 학생을 편입학으로 모집했다는 의미다. 기존 대학에서 2학년 과정 수료 예정자는 편입시험을 거쳐 다른 대학 3학년에 들어갈 수 있다.
특히 상위권 대학은 편입생 모집 규모가 가파르게 늘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서울 주요 15개 대학의 2019∼2023학년도 편입생 모집인원은 1943명에서 2635명으로 35.6%(692명)가 늘었다. 고려대, 연세대는 약 2배 늘었고 성균관대는 34명에서 246명으로 약 8배 뛰었다. 편입학 모집이 늘었다는 것은 대학에서 1, 2학년 재학 중 학업을 그만두는 학생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매년 모든 대학은 1, 2학년 중도 탈락 규모를 조사하고, 교육부는 이를 반영해 편입생 모집인원을 산정하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 주요 15개 대학 1학년생 중도 탈락률은 지난해 9.2%에 달했다. 5만2842명 가운데 4857명이 중도 탈락했다. 1∼4학년 전체 학생의 중도 탈락률은 3.2%였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 중 하나로는 의대 열풍이 꼽힌다. 이공계 최상위권 재학생들이 ‘의치한약수’(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로 옮겨가기 위해 학업을 그만두고, 대학은 이탈한 인원만큼을 편입생으로 채우면서 ‘편입 붐’이 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5개 대학 자연계(이공계 및 의대 제외) 중도탈락률은 5.2%로 인문계(2.6%)의 2배였다. 이공계는 3.8%였다.
서울의 한 사립대 입학처장은 “의대 재도전을 목표로 재수나 반수에 뛰어드는 학생이 많아지면서 학생들이 연쇄적으로 학교를 옮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의대 열풍으로 입시계는 대혼란”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대학 입학사정관은 “한 학과의 20% 이상이 한꺼번에 나가 버리니 폐강되는 강의가 속출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편입학 붐이 대학 교육 붕괴, 대입 재수생 양산으로 ‘도미노’처럼 이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방→서울, 공대→의대 ‘편입 도미노’…“취업난속 스펙 업글”
[편입에 휘청이는 대학]
15개大 1학년 10명중 1명 이탈
의대-수도권 대학으로 연쇄이동
약대 신입생 중도이탈 25배 급증
2021학년도 입시에서 수도권의 한 대학에 입학한 A 씨는 올해 연세대 공학계열 3학년으로 편입했다. 이전 입시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망쳤다는 생각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국에 비대면 수업을 들으며 1년간 대학생활을 해보니 ‘더 좋은 학벌’에 대한 갈망은 더 커졌고 결국 지난해 1월부터 편입 준비를 시작했다. A 씨는 “편입에 집중하기 위해 2학년 때부터는 최소한의 전공 과목만 수강했다”며 “1년간 편입 준비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주요 15개 대학 1학년 재학생 10명 중 1명(9.2%)꼴로 학업을 그만두고 중도 탈락했다. 의대 열풍, 상위권 대학이나 학과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이는 재학생 이탈로 이어지고, 대학들은 빈자리를 편입으로 채운다. 지방대에서 ‘인(in) 서울’ 대학으로, 자연대 및 공대에서 의대나 약대로 학생들이 대거 이동하면서 도미노처럼 여파가 퍼지고 있다. 이는 다시 ‘재수 열풍’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교육 현장의 분석이다.
● 의대 열풍, 편입학 바람에 한몫
이른바 ‘의치한약수’(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의 인기는 편입학 모집 열풍의 단초로 꼽힌다. 의대 입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최상위권 학생들이 반수, 재수를 통해 의대에 가려고 재도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동아일보가 2일 김영편입학원과 함께 분석한 결과 서울 주요 15개 대학의 자연계 중도 탈락률은 2019년 3.6%에서 올해 5.2%로 늘었다. 인문계 중도 탈락률은 자연계의 절반에 그쳤다. 이공계는 같은 기간 2.8%에서 올해 3.8%로 증가했다.
2022학년도부터 도입된 문·이과 통합수능도 편입학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경계나 인문계 학과로 진학한 이과 학생들 중 상당수가 적성 문제로 학업을 중단했다는 분석이 있다. 이들은 수학, 과학탐구 등 고득점에 유리한 과목에서 강점이 있는데 이를 믿고 상위권 대학 상경계, 인문계 학과에 몰렸다. 일명 ‘문과 침공’으로 불리는 현상이다. 서울의 한 대학 교수는 “경제학과 신입생 대부분이 이과생일 정도”라며 “인문대도 대학 간판만 보고 왔다가 수업에 적응하지 못해 이탈하는 학생들이 꽤 있다”고 전했다.
● 이전 정부 ‘정시 확대’도 원인으로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대입 정시 확대도 편입학 붐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조민 씨의 입시 비리 의혹이 ‘수시 공정성’ 논란으로 이어지자, 당시 교육부는 수도권 대학 정시 비중을 기존 30%에서 40%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내신 위주의 수시보다는 수능 위주의 정시가 공정하다고 본 것. 한 대학의 입학사정관은 “정시로 입학한 학생들은 언제라도 다시 수능을 볼 준비가 된 아이들”이라며 “이들의 중도 탈락률이 최근 20% 정도까지 올라갔다”고 말했다.
내년에 늘어나는 약대 편입 규모는 이러한 현상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선발된 약대 신입생 9550명 가운데 206명(2.2%)은 학교를 그만뒀다. 2021년만 해도 중도 탈락자 수는 8명으로 0.1%에 그쳤으나, 1년 새 중도 탈락자가 25배나 급증한 것. 임형욱 김영편입학원 진로진학연구소장은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대 재도전 등을 위해 빠져나간 걸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약대가 있는 한 대학의 입학처장은 "우리가 충원 가능한 약대 인원을 모두 편입 모집하면 다른 학교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수도권 약대가 충원을 많이 하게 되면 자연과학계열뿐만 아니라 지방권 의약학계열까지 연쇄적으로 이동이 발생해 결원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쉽지 않은 취업난이 한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도권의 한 대학 교수는 “명문대 졸업장, 의사 면허증이 아니면 기대만큼의 연봉을 받기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도 어렵다는 것을 학생들은 피부로 느끼고 있다”며 “졸업이 1, 2년 늦어지더라도 차라리 수능을 한 번 더 치르거나 편입을 해서 학벌을 ‘업그레이드’하자는 것이 요즘 학생들의 생존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최훈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