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
김 화
서울로 돌아가다 길 밖으로 나가
비어 있는 절 하나를 찾아갔다
기울어진 돌축대 위에 걸어놓은 작은 범종을 당목으로 힘껏 한번 내려치는 순간
누군가 산 아래 맑은 단장천을 철벅 철벅 맨발로 건너오는 소리를 들었다
종소리가 허공에 그물을 던지면,
흰 옷고름이 나리꽃 핀 언덕으로 훨훨 날아오는 소리
어디선가 뻐꾹 초시간의 시각을 알리는 뻐꾸기 소리
바람이 대나무숲을 헤치고 나와 명부전 문을 덜컹 여는 소리
바위틈에서 솟아 나온 물이 고무대야 밖으로 철철 넘쳐흐르는 소리
벽에 몸을 기대고 있는 냉장고가 나지막이 우는 소리
당신에게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말이 입안에서 머뭇거리는 소리…
얘야, 연어가 마침내 돌아오는 곳은
지 어미가 죽은 곳이 아니라
자기가 태어난 곳이란다
네 생일을 축하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청동을 두드려
이소산 꼭대기까지 들리도록 종을 치면
불현듯 터져 나온 말 한마디
부드러운 능선을 타고 올라가
적막한 당신의 귓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소리
집으로 돌아가다 길 밖으로 나가
깊은 산속의 다락방 하나를 찾아갔다
주흘산 감나무
붉은 감들이 날아가고 있다 떼 지어 돌고 있다
이마를 맞대고 몸을 기대고 나란히 앉거나 등을 돌리고 홀로 금성이나
화성이 되어
직박구리 한 마리 콕콕 얼굴을 찍어대자 천천히 피어나는 천년의 미소
풍경소리, 남은 잎새들 하나둘 떨구고 중모리 중중모리로 빨라지면
창공에서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붉은 색계를 본다
감꽃 목걸이를 목에 걸고 사립문을 나서 감나무 한 가지까지 오는데 일생이 걸렸다
씨앗이 하나의 길 위에 둥근 얼굴이 되어 나타날 때까지 길고 긴 은둔의 시간이 흘렀다
우주를 돌고 돌아
하얀색이 붉은색이 되고 붉은색이 하얀색이 되어도
그것은 언제나 처음 만나는 색
스스로 떨어지고 열리는 색
가을이 깊어가고 저녁이 오고 눈이 어두워질수록
나는 한껏 목을 뒤로 젖히고 한 가지 끝을 올려다본다
붉은 해 하나를 두 손에 받쳐 들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