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의 여울(木洞의 灘)◈
5). 따뜻한 동행들! 선잠을 들쳐 없고 부스스 마지막 일정의 평지에 오른다. 아침식사는 도중에 하기로 하고, 이른 아침 7시 출발 강릉 「오죽헌(烏竹軒)」을
경유지로 하고 7번 국도에 올랐다.
언제고 파란 물들로 동해는 이 땅에 새로운 날을 담아 든다. 크고
우람한 대평양을 가로막는 “야누스”랄지, 일본 해와 우리바다를 오가는 물길은 언제고 정겹고 따뜻한 동행인데도, 미투리와 나막신의 혈통은 따뜻한 동행이 아니다. 두 얼굴의 뭍을 오가는 저 물결, 이 아침 손사래를 치며 우리 곁으로
밀려든다. “물가를 따라가는 동해의 소설(小說)네 여! 유혹의 은유투성인 여인을 훔치듯 설악을 줌인 하면서 먼산
계곡을 더듬어 오르시란다. 철부지로 금수강산을 노래하면서 터득한 님들!”
하면서. “시인은 모든 나이는 아름답다/ 다만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라 했는데, 우린 지금 이 아름다움을 끼니로 3일의 여행을 누린다. 비슷한 무게의 짐을 지고 살아댄,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라는
에고(자아)는 그리 교활하지 않지만. 그저 오늘을 돌보는 우리들 문화로, (생존을 위한 메커니즘쯤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빈 가슴 하나 채워가기 힘들고, 흘러가는 세월을
잡고 쉬어 갈 곳을 찾아 바람이 부는 대로 젊음도. 나이도. 흘렀더라” 며, 동해의 물질에서 퍼 올린 노학(老學)의 갈무리를 휘젓는 갈매기의 초롱초롱한
날개 짓에 늙음의 연민이 묻어난다.
동해시를 지나고 망상해변을 스치고, 7번 국도의 숨결은 정동진 이정표를
앞두고 할딱인다. 들려가자는 중론에 군말 없는 차는 앞 발질인지 뒷발질인지 돌멩이에 채여 덜커덩 발질을
해댄다.
이곳 정동진도 동해바다를 이야기하며 사는 바다 쪽 동네! 백두
대간이 지리산으로 흐르는 대장정이 쉬엄쉬엄 쉬어가다 큰기침 한듯싶은 곳 어데였을지, 휘어가는 물색에 취해 어름거린 곳에 고깃배도 쉬다 정동쪽 포구라 거들지나 안 했을지?. 아무튼 근세 창궐하는 미디어문화로 이곳에서 모래시계라는 TV드라마를
촬영하면서 선남선녀들을 애절한 사랑의 로망으로 벗겨댄 질곡으로 동남아를 휘 젓은 우리 영화산업의 당찬 한 거름을 도왔고, 배용준 배우의 겨울연가는 일본의 여심을 품어댄 이 땅 남정네의 미색을 혼자 다 누린 염치가 있었다. 어쨌든, 잔물결 두런거리는 물가로 정동진의 조촐한 드라마 소품들이
우리를 살핀다. 퇴역한 기차의 영민을 곱게 색칠로 다듬었고, 바다를
등진 모래시계는 졸고, 깨끗한 유니폼으로 화장실을 청소하는 아주머니 또한 그저 상서롭다. 크다만 해시계도 곁에서 서성인다. 오가는 방문객들! 곤히 잠든 기차머리 앞에서 스마트폰으로 한 컷 사진을 찍어대며 왁자지껄한다.
중국 관광객들도 있고, 일본 사람들도 있다. 너무도
단조로운 관광지로 허기진 정동진의 허리띠를 추슬러주며 다리를 건너 차에 오른다.
다시 7번 국도에 올라, 산
지형 따라 바닷가로 맘대로 꾸불꾸불한 엮는 길, 쉴새 없는 잔심부름들 이곳 저곳 이정표와 위험표지판들, 한여름의 숲길로 시원히 내뱉는 뿌리침을 뒤로 한다. 이렇게 얼마를
달려오다 강릉통일공원 그리고 함정전시관 표지를 지나쳤다. 한 친구가 저곳에 들려가자면서 이북잠수정을 보고 가자 한다. 그래서
한참을 오르다 쉼터에서 차를 돌려 다시 얼마를 되돌아 내려오니 우리 해군에서 퇴역한 916함
위용이 잠든 채 안내원의 설명으로 곤 잠에서 부스스 눈을 비빈다. 옛날 해군에서 익힌 모습의 추념을
함초롬히 담아낸다. 당시 91함이 구축함으로는 단 한 척
진해만에 계류되었었는데 아마 내가 퇴역 한 뒤 취역한 듯싶다. 옛 생각을 더듬으며 이곳
저곳을 누벼가며 산화된 녹슨 구석들을 훔치곤 시린 내 추념들이 서먹하니 저 큰 녀석의 소진을 전시한 행정의 얇은 관념이 얄팍하다 싶었다. 그리고 눈을 돌려 작은 거리를 두고 저쪽에 덩그런이 이북 잠수정이 방청 색을 입은 채 움츠린 참호를 비집고 이야길 듣는다. 어쩌다 물에 뜬 쇳덩이로 그저 건져진 운명적 치유에 녹슬어 고철남새를 품고 곤히 잠들었나 싶다. 가증스런 탐욕을 동해물속으로 채찍질한 잘못된 네 들의 버림에 소스라쳐 지른 비명을 겨울 찬바람도 돕지 못 했을, 숙적(宿賊)의 전령으로 거든 비애를 어느 이 수첩에
담겨지고, 뭇 과객은 어렴풋이 완악한 네 동네 집기를 조금은 짐작하게도 한다. 그래! 통일되게 열심히 기도나 하렴. 손짓을 남긴다.
멀지 않고 그리 화사하지도 않은 우리의 옷깃들, 가면서 오면서 가까운
근처에서 반기는 고운 웃음들, 이 땅을 누리는 이야기들에 잔정으로 사무치고, 어울려 흔든 길옆 서성인 풀 잎새들, 뜀박질하는 계절 따라 흙을
곱게 입히고, 우리의 간결한 사색에 아침이슬로 이야기들이 촉촉하다. 산은
산대로 멀직이 높게 자중하고, 바다의 짙푸른 물색은 변치 않고 국란을 돕고 거두며, 해옹(海翁)의 낚시에 고기를 들려주고, 돛단배를 이끌 순풍에 출렁인 슬기도 풍성했다. 이처럼 우리를 돕는
은유들을 어찌 다 날수 있을까? 산머리에 걸린 구름도 멈칫하니 지루한 관념은 비가 될 곳을 묻나 싶지만
찌푸린 속앓이가 얼마나 무서운데, 그리 너그럽잖은 선운(鮮雲)은 해질녘 엉엉 운다.
늘 그러한(自然)이의 주심을 누리며 깊지 않은 여울물에 찰박찰박 아이는 즐겁듯, 이
얕은 글에 가 숨는 나의 마지막 일정이 달음박질로 지난 일들을 또 뒤로한다. 강릉에 이른 길에서 율곡의 사당 오죽헌(烏竹軒)의 안내를 알리는 이정표 따라서 7번 국도에서 내린다.
차 엔진 RPM을 낮추고 「오죽헌」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그리고 곤한 무릎을 집고 차에서 내려, 조선시대의
대표적 학자이며 경세가인 이이(李珥)의 요람지(搖籃地)요, 신사임당(申師任堂) 어머니와 함께, 한 시대를 누린 역사의 후원 앞에 선다. 보물 165호인 오죽헌은 우리나라 어머니의 사표가 되는 신사임당이
태어나고, 또한 위대한 경세가(經世家)요 철인(哲人)이며 정치가로서 구국 애족의 대선각자(大先覺者)인 율곡(栗谷) 이이(李珥)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초원의 잔디 밑으로 흐르는 간결한 물줄기에
후세의 어떤 풀이 촉촉이 젖는 마음을 드리며, 어미도
나시고, 자식을 낳은 성소(聖所)의 진혼(鎭魂)이 그윽한 「오죽헌」
뜰에서 머리를 숙인다. 심오한 선계의 고뇌를 쓸어 내리는 듯싶은, 선
거름이 고픈 600년 된 배롱나무 헝클어진 가지들의 회오를 잡고, 아뢰지
못한 상념을 조아린 마음 붉힌 한낱 과객을 저편 설악을 넘든 바람 옷깃을 잡는다. 그 위대하심에 뭇
세속은 한없이 겸손하게 오죽헌 뜰을 내리게 하고, 설악이 동으로 넘겨다보며 짙푸른 물결 우짖는 물가에
고운 상념을 흘리는 이의 글머리에 악령(嶽嶺)을 고여주며, 거센 바람 속에서 강한 풀을 알고 품으신 내력을 이야기
한다.
정오를 넘어선 햇살! 부신 눈이 뿌리치니 일행들과 어울려 지낸 일정을
챙겨야 될듯하다. 산 넘어
집으로 헤어질 마지막 일정이 서성인다. 같이한 승합차 곁으로 모여
등 굽은 은자는 아니로되 늙은 우릴 뫼 실 윤택한 문명의 은총이 너그럽게 기다렸음에, 내
겸손을 실어준다.
애(崖)애(崖) 한 산기슭 조심스레 오르내린 옛길! 산의 눌변은 물소리만 철철 하던, 대관령(大關嶺)진한 솔 향기 피톤치드(phytoncide)창을 열고 닫던 때, 즈음하여 동해의 잔정에 여간
사무쳤었는데, 이젠 옛 그 악령(嶽嶺)을 엮어댄 터널(Tunnrl)들로 회유한 「영동고속도로」의 겸손에 씁쓸한 추억을 가슴에 담는 나! 어느새 옛 과객이
되고. 「평창」 이정표에 실린 2018년
동계올림픽으로, 「평창」을 기점으로 모여드는 여러 공사가 저돌적으로 분주함에 이
땅의 자잘한 내홍(內訌)들이 아니길 바란다. 어느새 「원주」
곁을 벗어난다. 멀찍이 「문막」 휴게소를 알리는 이정표에 모두들 잠시 쉬어가자 한다. 오후 2시가 지났다. 2박3일의 “늘그막 환타지아(fantasia)”를 이렇게 접는다. “저 먼 길이 내친 이들이여! 돈까스가
반긴다”. 나무보다는 숲을 읽고 보려 한 여울물로 흘러내린 나들이, 다양한
색과 향의 지혜를 누린 졸졸거림을 담는다. 자유롭게 나이든 삶을 사는 노년의 산 기슭, 대로(大老)의 기개를 다 못한 물소리로, 저 먼 바다 거친 물결 우러름이 고와
조잘조잘 여울 되여 만절(晩節)을 이리 뇌어본다. 저 만개한 삶들, “죽음이라는
저 바다로 흘러드는 강과 같다” 한 말처럼, 각성하는 힘이 날뛰며 화산처럼 폭발하고 묘안들이 섬광처럼 번쩍이는 오만은 모든 한계를 넘어, 스스로 법칙을 지닌 경이로운 자연에, 지독히 집요함으로 대적하는
서늘한 대담함을 좀 머뭇거리며, 서툴게 더듬어 냈으면 하는 염려에 성찰이 계심을 본다.
“옛 선객(仙客) 산을 보고 길을 부탁하고/ 흘러내린 행려(行旅)를 잡는 물소리에 씻긴 거나한 한숨 뱉어/ 외진 산길 구름 하나 떠돈 허물없는 공허에
멧새를 날리고/ 사뭇 한세상 지절댄 선(禪)의 자비로 목을 적시니/ 저 정적 속에 침묵하고 있는 산채가 허허 그런다.”
이처럼 지금 우리일행의 한세상 풍류가 흐르고, 삶의 경험과 지혜로 나이 듦이란 그윽한 성숙의 텃밭을 일궈낸 곤한 숙취로, 늙어댄
대 서사시를 읊는 은유 랄지 다. 시간은 상당히 윤택한 똑딱 이였다.
「늘그막 탱고」 2박 3일의 행려에 수고들 하셨습니다.
최경재님!
박경산님! 이주영님! 지해근님! 그리고 기아카니발 리무진님! 아 듀 !
2016. 6. 25. 목동에서 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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