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대왕의 모친은 최숙빈이며 창평에서 출생하는데 무척 가난한 농부의 여식으로 탄생하였다 , 그 당시는 못 먹고 배고픈 세상이라 전염병이 돌았다 하여 온 식구가 이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으니까
동네서 쫓겨났다 ,전염병에 걸리면 마을 전체가 전염하기에 사람들이 없는 용구산으로 들어가게 된다 용구산에
작은 암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서 매일 불공을 드렸다고 한다 ,온 식구들이 다 없어지니 나날이 슬픔의
나날이었다 ,매일 불공을 드리던 어느날 꿈을 꾸게된다 .암자 뒥산 용구산 산신령이 나타나
;;너의 효성과 불심이 지극해 좋은 길로 안내할 것이니 ,내일은 이 암자를 내려가 장성 갈재를 가면 나주목사
부임행차를 만날 것이고, 너는 그곳에서 길을 얻응 것이다 라고 말하고는 이내 살아졌다
산신령의 말대로 다음날 아침에 갈재을 떠났다 ,얼마 후 꿈속의 이야기처럼 나주목사의 부임행차가 이곳을 지나고 있었다 .복순(영조대왕의 어머니의 어렸을때 이름)이는 길에 엎드려 목사 만나기를 청하여 꿈 애기를 했다
사실 저는 이러이라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어젯밤에 정말 이상한 꿈을 꾸어 이렇게 목사님을 아련하려 왔어요
하고 아뢰니 옆에서 가만히 애기를 듣던 목사부인이 민씨가 보기에 최복순이가 얌전하고 영리해 보였으므로
목사님, 이 처녀를 데리고 갑시다 .했다. 그래서 몸종으로 삼았다 .그런데 민씨부인은 조선19대 왕인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의 친척이었다고 한다, 숙종의 첫 왕비가 죽고 둘째 부인으로 들어간 사람이 민비인데 (인현왕후)
민비를 이 최복순이가 모시게 되었던 것이다 . 나무목사 부인이 최복순이를 궁녀(무술이)로 추천한 것이다
최복순이 무수리로 들어가 인현왕후 민씨를 모시는데 인형왕후가 후사가 없으므로 숙종이 또 궁인 장씨를
후궁으로 맞아들이고, 그 사람이 바로 장희빈인데, 장희빈이 2년만에 경종을 낳았다 . 그리고 장희빈이 온갖 모함을 해서 민씨를 쫓아내버렸다 . 한편 민왕후를 가까이서 모셨던 최복순은 민 왕후 (인현왕후)를 잊지 못해 해마다 민씨 생일날 남몰래 생일상을 차려놓을 정도로 그러기를 4년이 흘렸다, 4년 동안 인현왕후의 만수무강을
빌었는데 어느날 궁궐을 순시하던 숙종에게 발각되었다 . 숙종이 최복순을 불러놓고 그 연유를 물으니 ,
;;안국동에 홀로 있는 중전마마가 너무나 불쌍해서 제가 미역국을 좀 끓이고,생일상을 차려놓았습니다 .
하니 숙종이 깜짝 놀라 았다. 이로부터 이렇게 기특하니 무어라 말 할수가 없구나 ! 하여 왕의 성은을 받았다
이로부터 몇달이 되자 무수리 복순이의 배가 불러가고 이 소문이 궁녀들의 입을 통해 세도당당하던
장희빈의 귀에 들어가게된다. 투기와 질투가 심해 이내 ,가두어 굶겨 죽이려구 하였다
마무도 모르게 복순이를 죽이려구 항아리속에 가두어 놓았는데 , 아느날 숙종대왕이 이상한 꿈을 꾸었다
숙종이 꿈을 꾸는데 ,궁궐 뜰에서 용새끼 한 마리가 하늘에 오르려다 늘 떨어지는 장면을 보았다
숙종은 이상한 꿈에서 깨어 나보니 , 한방중이었다.그런데 어디선가 여자의 신음하고 울부짓는 소리가 들려
그 연고를 알어 본즉, 옹기속에 복순이를 구하고 장희빈을 페위하고,, 민비도 다시 복위시켰다고 전한다
꿈에서 다시 살아난 복순이는 이듬해 아들을 낳았다, 이 아들이 조선제위 20대인 영조대왕인 임금이
보위에 오르게한다 .영조가 즉위해 어머니 최씨가 살았던 용구산의 암자터에 용흥사를 지어 어머니를 기쁘게
해주었던것이다 . 이후로용흥사는 夢聖寺라 부르고 영조를 죽음으로 부터 , 구하는 꿈을 꾸게한 영험스러운 산이라 하여
몽성산이라 전한다.
( 숙종의 언찰본과 영조대왕의 어진이. 저한태 영인본으로 소장 중이다 , 귀중한 자료이기에
잘 간수하여 보관중이다 ) 글; 장강/강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