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2명의 퇴임을 앞두고 후임 임명 절차가 진행 중이다. 대통령이 이념성향을 이유로 특정 후보에 대한 거부 의사를 밝힌 가운데, 대법원장은 이들 후보가 아닌 다른 두 명의 후보를 임명 제청했다. 이번 논란은 다음 달 퇴임하는 두 대법관의 후임을 찾는 문제로 불거졌지만, 앞으로 더 많은 산이 남아있다. 올해 하반기에 대법원장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장도 임기가 끝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을 포함해 대법관 13명으로 구성된다. 애초에 이렇게 많은 대법관으로 구성하도록 한 것은, 다양한 의견이 대법원 판결에 반영되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전원합의체 판결문에는 대법관들이 '소수의견'도 기재한다. 과거엔 대법관들의 성별, 출신대학, 연령, 살아온 이력 등이 다 비슷비슷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재임한 6년간 여성 대법관 수는 대법원장 포함 14명 중 4명이었다. 역대 최다였지만, 인구 구성과 여성 판사 비율을 생각하면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윤석열 정부가 젠더·여성 문제에 일관되게 소홀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성 대법관이 늘어나기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 문제는 해외에서도 계속 논의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학력, 경력, 성별에 더해 출신 지역 정도가 주목되는데 미국에선 종교와 인종 등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미국에서도 대통령이 누구를 대법관으로 지명할 지는 공약으로 논해질 만큼 중요한 이슈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공약한대로 흑인 여성 커틴지 브라운 잭슨을 연방대법관으로 지명했다. 미국 역사 233년 만에 첫 흑인 여성 미국 대법관이 나왔다. 잭슨은 국선 변호인으로 일한 이력이 있다.
미국 건국 이래 대법관을 지낸 115명에게 없던 국선변호인 경력이 있기에, 잭슨을 영입함으로써 연방대법원이라는 영예로운 기관은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새로운 관점과 경험을 수혈 받게 되었다. 변호사, 로스쿨 교수 또는 항소법원 법관이 대부분의 경력인 기존 대법관에게 없는 시각을 얻으려면 그들과 다른 삶의 궤적을 가진 사람을 임명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우리나라 대법원에 어떤 다양성이 필요한가. 진보성향이냐, 보수성향이냐. 하는 것은 매우 모호하고도 정치적인 기준이다. 대법관이 될 사람을 이런 기준으로 나눠 선택하는 것은 다양성 확보에 걸림돌이 된다. 대통령실이 이번에 이념성향을 들어 특정 후보에 대한 거부 의사를 표시한 것은, 다양성을 향해 나아가는 흐름에 역행하는 일이다.
역대 대법관 가운데 판사 또는 검사를 하지 않고 대법관이 된 사람은 현재 김선수 대법관이 유일하다. 노동법 전문 변호사 출신의 김선수 대법관이 임명된 것은 2018년이다. 당시 다수 언론들은 순혈주의 타파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그 후로 판·검사를 거치지 않은 대법관은 나오지 않았다.
대법원장이든 대통령이든, 자기 입맛에 맞춘 인사를 하지 않게끔 견제하려면 계속해서 다양한 장치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현재 대법원장은 대통령 마음대로 지명하게 돼있다. 대법원장도 추천위를 도입해 시민과 각계각층 의견을 반영하는 방법이 있다. 윤석열 정부는 대선 과정에서 '대법원장 후보추천위원회 신설 방안'을 검토한 적 있지만, 실제로 추진한다는 소식은 없다.
구성원 다양성이 확보될 때 대법원은 우리 사회가 지킬 가치와 나아갈 방향에 대한 바람직한 준거틀을 제시할 수 있다. 대법관을 임명할 때 ‘이념’이라는 모호하고 정치적인 기준을 내세우지 않도록, 구성원 다양성과 인사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