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평화와 공존은 나날이 쟁취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카자흐스탄 사도 순방 이틀째인 9월 14일 누르술탄에서 카자흐스탄 및 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온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를 주례했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 강론하며 서로 다른 인종적, 종교적 현실 사이의 형제애를 언급했다.
Adriana Masotti / 번역 김호열 신부
프란치스코 교황이 9월 14일 누르술탄 엑스포 광장에서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미사를 거행하고 강론을 통해 하느님의 논리와 세상의 논리의 근본적인 차이를 강조했다. 교황은 십자가가 “죽음으로 이끄는 교수대”이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이를 위한 구원의 도구가 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카자흐스탄에서 십자가는 형제애를 함양하라는 격려이자 호소의 근거가 된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우리는 미움이 아닌 사랑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죽이는 뱀과 살리는 뱀
약 6000명의 신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미사는 라틴어와 러시아어로 봉헌됐다. 보편 지향 기도는 러시아어와 카자흐스탄어로 울려 퍼졌다. 미사는 교황이 주례했으며,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의 아스타나-누르술탄대교구장 토마츠 페타(Tomasz Peta) 대주교가 집전했다. 주요 공동집전자들은 중앙아시아주교회의 의장 겸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알마티교구장 호세 루이스 뭄비엘라 시에라(José Luis Mumbiela Sierra) 주교, 몽골 울란바토르지목구장 조르조 마렌고(Giorgio Marengo) 추기경, 아스타나-누르술탄대교구 아타나시우스 슈나이더(Athanasius Schneider) 보좌주교였다. 말씀 전례 제1독서는 민수기의 한 대목으로, 하느님께서 친히 광야로 보내신 뱀에게 물린 사람이 기둥 위에 달아 놓은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모세에게 약속하신 내용이다. 복음은 요한복음서의 한 대목으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하는 내용이다.
교황이 집전한 미사에 참례하고 있는 신자들
불신과 불평은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이탈리아어로 강론한 교황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물어 죽이는 뱀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독서 내용을 해설했다. 교황은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가던 여정에서 지치고 희망을 잃었다며, 궁극적으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잃고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님께 대한 신뢰나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을 때 개인의 삶이나 공동체의 삶에서 그 순간을 면밀히 살펴보라고 초대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개인적인 광야에서 말라버리는지요! 낙심하고 조급해하다 결국 여정의 목표를 잃어버리면서 말입니다. 여기에도, 이 광활한 땅 카자흐스탄에도 광야가 있습니다. 광야는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면서도 우리가 때때로 마음속에 담고 있는 고달픔과 메마름을 떠올려 줍니다. 더 이상 하느님을 올려다볼 힘이 없는 지침과 시련의 순간들입니다.”
다른 종류의 고통스러운 “물림”을 경험한 카자흐스탄
교황은 이러한 개인적, 교회적, 사회적 차원의 암흑의 순간에 우리가 “불신의 뱀에게 물려” 비관주의와 체념에 빠지고 우리 자신 안에 갇히게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카자흐스탄은 역사적으로 “다른 종류의 고통스러운 물림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저는 폭력의 불 뱀, 무신론자들의 박해의 불 뱀을 생각합니다. 때로는 사람들의 자유가 위협받고 그들의 존엄이 훼손된 험난했던 여정을 생각합니다.”
2022년 9월 14일 오후 카자흐스탄 미사
평화와 정의는 나날이 쟁취해야 합니다
교황은 과거에 대한 기억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가 건너온 어둠이 “과거의 일”이고 선의 길은 이미 끝났다는 착각에 빠지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지난 2001년 9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카자흐스탄 방문 당시 연설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평화는 단번에 얻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나날이 쟁취해야 합니다. 다른 민족과 종교 전통 사이의 공존, 온전한 발전, 사회 정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카자흐스탄이 ‘형제애, 대화, 이해 안에서 (…) 다른 민족, 국가 및 문화와의 연대의 가교를 놓기 위해’(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모든 이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그보다 앞서 우리는 주님께 대한 믿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곧, 주님을 올려다보고, 주님의 보편적 사랑,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랑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죄와 죽음의 독을 짊어지십니다
제1독서가 제시한 두 번째 이미지는 ‘살리는 뱀’이다. 주님께서는 광야에서 모세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 교황은 하느님께서 뱀을 직접 없애 버리지 않으시고 모세를 통해 뱀에 물린 사람들을 살리신 이유가 무엇인지 되물었다. “하느님의 방식은 악, 죄, 인간의 불신 앞에서 당신께서 어떻게 행하시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역사를 통틀어 계속되는 영적 대투쟁에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자유롭게 추구하는 천박하고 무익한 것들을 멸하지 않으십니다.” 교황은 여전히 뱀이 숨어 있고 언제든 물어뜯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무엇을 하시나요?” 예수님께서 당신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몸소 그 대답을 주신다.
“우리 비천함 앞에서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고결함을 주십니다. 곧, 우리가 예수님을 계속 주시하고 있으면 악의 독침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죄와 죽음의 독을 몸소 짊어지시고 그들의 파괴적인 힘을 물리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세상에 악이 퍼지는 것에 대한 성부의 반응이었습니다. 곧,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는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누르술탄에서 거행된 미사
십자가 위에서 벌린 예수님의 두 팔은 형제애의 표징입니다
교황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고” “뱀이 되셨다”며,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을 바라보는 것이 우리의 구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 삶과 역사를 볼 수 있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 주신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우리는 미움이 아니라 사랑을, 무관심이 아니라 연민을, 복수가 아니라 용서를 배웁니다.”
“예수님의 뻗은 두 팔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끌어안으시려는 온유한 사랑의 포옹의 몸짓입니다. 우리가 모두 함께 살도록 부름받았다는 형제애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분의 두 팔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길을 보여줍니다. 그 길은 강요와 강제, 권력과 폭력의 길이 아닙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십자가를 강요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 형제자매들을 위해 당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길은 다릅니다. 구원의 길입니다. ‘만약’과 ‘그러나’가 없는 겸손하고 거저주는 사랑, 보편적 사랑의 길입니다.”
끝으로 교황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독 없는 삶”을 뜻한다고 말했다. “서로 물어뜯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고, 험담하지 않고, 악한 일을 퍼뜨리지 않고, 악마로부터 오는 죄와 불신으로 세상을 더럽히지 않는 것입니다.” 교황은 “새 삶과 사랑과 평화를 기쁘게 증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의미한다며 강론을 마무리했다.
https://www.vaticannews.va/ko/pope/news/2022-09/papa-francesco-viaggio-apostolico-messa-kazakhsta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