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곶으로
근래 시조를 더러 남기고 있다. 교정 동백꽃 망울이 몽글몽글해져 붉은 꽃이 몇 송이 피기 시작했다. 그래서 몇 해 전 다녀온 지심도가 떠올라 ‘지심도 동백꽃’을 남겼다. 지난 주말엔 함안 대산에서 합강정을 거쳐 낙동강 강변 용화산 벼랑을 탔다. 그 때 본 남지 철교를 시조로도 남겼다. 그 밖에도 최근 ‘주남 고니’, ‘겨울 우포’, ‘을숙도 근처’, ‘세병관 돌벅수’, ‘용선대 돌부처’ 등이다.
열흘 전 아침 교무부장이 동료들에게 메신저를 한 통 보내왔다. 방학식날 전 교직원들이 작년처럼 기장 대게를 먹으러 간다고 했다. 그때는 귀로에 해운대 동백섬 산책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되던 이중섭전을 둘러보았다. 올해는 점심 식후 간절곶을 다녀온다고 했다. 사전 동료들에게 선호도 조사를 거쳐 결정되었다. 최종 후보에 통영 횟집도 올랐으나 기장 대게에 더 쏠렸나 보다.
나는 교무부장으로부터 기장과 간절곶을 통보 받은 이후 짧은 시간에 ‘간절곶 우체통’을 남겼다. “붉은 해 밀어올린 아득한 수평선에 / 파도는 출렁거려 뭍으로 달려와서 / 포말은 등대 아래서 헐떡이다 삭는다 // 지우고 또 지우다 지문이 다 닳도록 / 새카만 바위만큼 타버린 가슴인데 / 그리움 그래도 남아 우체통에 담는다” 몇 해 전 다녀온 간절곶을 떠올려 삭혀둔 시심을 건져냈다.
“그대를 잡기 위해 어부가 배를 띄워 / 검푸른 바다 나가 드리운 그물이다 / 활어가 아닐지라도 그냥 마냥 좋단다 / 입에선 방울 거품 가픈 숨 헐떡이고 / 집게발 접다 펴다 갑판에 허우대며 / 둥그런 갈색 등딱지 갑옷처럼 보여라 / 투명한 수족관에 갑갑히 갇혔는데 / 손님이 찾아오니 주인은 냅다 덥석 /찜통에 집어넣고는 열을 가해 삶아라 /뜨거워 뜨거워요 끝내는 숨이 끊겨 …”
위는 방학식날 아침 출근 전 남긴 ‘대게의 항변’ 부분이다. 방학식날 오전 아이들이 하교한 뒤 당일치기 교육과정 2차 워크숍을 떠났다. 일부 학교는 1박2일도 다녀온다만 희망자가 적은 것으로 안다. 교직원들은 학교와 이웃한 극동방송국 곁에 세워둔 관광버스 2대에 분승했다. 친목회원이 아닌 급식소 조리종사원들도 합류했다. 창원터널을 벗어나 김해를 거쳐 양산에서 부산에 닿았다.
우리가 탄 버스는 어제 부분 개통된 부산 외곽고속도로를 달렸다. 그 고속도로는 진영휴게소에서 김해 산자락 대부분 터널로 빠져 대동에서 낙동강을 지나 금정산을 지하구간으로 지난다. 부산 노포동에서 기장까지가 먼저 개통 되고 나머지 구간은 달포 뒤 설날 직전 개통된다고 했다. 부산 시내를 통과하지 않으니 예약된 기장 대게 식당까지는 금방이었다. 작년 들린 그 집이었다.
학교 바깥에선 의사 진행이 교무부장이 아닌 친목회장이 맡았다. 엊그제 장학사 공채 전형을 통과한 두 부장교사와 모범공무원상을 수상한 행정실 과장을 불러 세워 축하 박수를 보냈다. 셋 다 여성으로 당당한 우먼파워를 실감했다. 이어 잔을 채워 건배하고 모두들 좋아하는 대게를 실컷 먹었다. 1인분 차림에 6만원이 더 한다던가. 그간 쓰지 못해 남겨둔 친목회비를 소진시킨 셈이다.
나는 맞은편 동료에게 맥주를 두어 잔 건네고 맑은 술을 더 많이 받았다. 여성 동포들이 많은지라 빈 술병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게살을 다 발라먹고 게딱지에 채워 나온 볶음밥까지 들었다. 나는 남들보다 먼저 타고 갔던 버스에 올랐다. 뒤이어 오는 동료 가운데는 미리 주인에게 부탁한 삶은 게를 담은 박스를 들고 타기도 했다. 집에 머문 가족들을 위해 개별적으로 준비시킨 듯했다.
일행이 탄 버스는 고리원자력을 지나 울주 서생 근처 간절곶으로 갔다. 지자체에서는 이틀 뒤 해맞이 행사를 앞두고 진입도로와 주차장을 잘 정비해 놓았더랬다. 탁 트인 동해안 바다를 보니 탄성이 나올 만했다. 소망우체통과 박제상 아내상도 보였다. 파도가 밀려와 부서지는 해안 산책로를 걸어 산언덕 커피전문점에 들렀다. 새해 해돋이 장면은 못 보아도 미리 마음속으로 그려보았다. 17.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