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시작이 반' 이라고 했던가?
2023년 4월 29일 토요일
음력 癸卯年 삼월 초열흘날
어젯밤 시작한 비가 지금껏 촉촉하게 내리고 있다.
이 비는 오늘 하루종일 내리고 오는 새벽까지 내릴
것이라는 예보이다. 기온도 오랜만에 두 자릿수를
기록한다. 영상 12도, 지금 내리는 봄비가 따스한
공기를 몰고 온 것일까? 더 이상 찬공기와 서리가
내리는 날씨에서 벗어나 그냥 이대로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허나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산골의 날씨변화라서 큰 기대는 않기로 한다.
.
어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꽤 많은 일들이 있었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후다닥
지나간 느낌이었다. 이른 아침에는 명이나물 옮겨
심은 밭에 모습을 보인 어린 더덕을 조심스레 모두
캐내 장독대 앞에 더덕덩굴을 올려 포토존을 만들
생각에 세워놓은 구조물 아래에 옮겨심은 다음에
나머지는 전날 블루베리밭 입구에 자그맣게 만든
더덕밭에 마저 옮겨심었다. 아침나절엔 둘째네와
막내네로 올라가는 돌계단 사이와 옆쪽에 너무나
번식력이 좋은 비비추가 중구난방으로 그 세력을
넓혀가면서 우리들 통행에 불편을 초래하고 있어
정리를 해야겠구나 싶어 손괭이로 모두 다 캐냈다.
그냥 버리기엔 아까워 어디로 옮길까 망설이다가
펜션 초입의 축대 윗쪽에 심으면 좋겠구나 싶었다.
드문드문 심어놓으면 저절로 번식이 되어 보기에
좋을 것 같았다. 그 사이 이서방은 시냇가 주변의
나뭇가지를 장대톱으로 자르고 있어 잠시 도왔다.
점심식사후에 아내와 장평에 나가려고 준비하는데
인천에 사는 처조카가 속초 다녀오면서 들렸다며
생선과 가자미 식혜, 술빵을 놓고 카페에 내려갔다.
아내를 장평에 내려주고 왔는데 그때까지 있어서
이서방과 셋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녀석의
부모님인 처남 부부가 인근 바우골에 살고 계셔서
가끔씩 내려오면 고모들 보고간다며 들리곤 한다.
이서방과 처제가 잠시 나가고 조카 녀석을 보내고
집에 올라오는데 이번에는 마을에서 학열 아우가
휘파람을 불며 불렀다. 또다시 내려가 금방 올라온
이서방과 함께 냉커피를 마시며 두릅을 화제 삼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두릅 사냥을 나간다며 둘이서
산으로 올라가고 촌부는 아내를 데리러 장평으로
향했다.
바우골을 지나고 있는데 촌부의 산골살이 멘토인
마을 아우가 전화를 했다. "형! 오후에 올라갈게요.
거름은 뿌려놓으셨지? 그럼 이따봐요!"라고 했다.
그렇잖아도 아침나절 아내에게 "아무래도 오늘은
승현 아빠가 트렉터 몰고 올라올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나서 혼자 웃었다.
아내와 함께 오면서 밭갈이 하러 올 거라는 이야기
하며 "돗자리 펴도 되겠어!" 라고 하여 또 웃었다.
아내를 집에 내려주고 곧바로 또 장평으로 향했다.
멀칭비닐 사오는 것을 그만 깜빡 잊고 있었던 것,
가다보니 이장집 텃밭에 아우의 트렉터가 보여서
자동차를 세우고 다가갔더니 "형! 어디가? 곧바로
설다목 형님네로 올라갈 건데..." 라고 하여 마음이
바빠졌다. 금방 다녀온다고 하고 철물점에서 급히
멀칭비닐을 구입하여 집으로 달려왔다.
그새 네 군데의 밭 중에 두 군데를 모두 갈아놓고
로타리까지 쳐놓은 것이 아닌가? 두 군데의 작은
밭은 금새 갈아서 로타리를 쳐놓았다. 일을 마치자
아내가 불러 아우와 함께 앞마당 야외탁자에 앉아
시원하고 상큼한 레모네이드와 술빵을 간식으로
먹었다. 아우는 또 갈데가 있다며 이내 내려갔다.
정말 어떻게, 뭐라고 표현을 해도 과함이 없을 만큼
고맙고 감사한 아우이다. 우리가 텃밭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후 지금껏 해마다 와서 밭갈이, 로타리는
물론이고 농사에 관한 많은 조언과 도움을 받는다.
이 아우가 아니었으면 정말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살지만 마을분들과의
교류와 소통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지금껏 나름
열심히 노력하며 매사에 협조를 잘하고 있다.
아우가 내려가고 삽으로 뒷마무리를 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데 산에 간 이서방이 전화를 하여
아무래도 산에서 내려가면 시간이 늦을 것 같다며
원주에서 조카 딸내미가 오고있으니 장평터미널에
가서 픽업을 하여 처제에게 가서 함께 데리고 오면
좋겠다고 했다. 삽을 밭에 꽂아놓고 장평터미널에
나가 조카 딸내미를 반갑게 만났다. 일주일만인데
그래도 너무 반갑다. 오는 길에 처제를 만나 태우고
왔다. 원래 저녁은 대화에 나가서 이모들이 갈비를
사주기로 했는데 얼마전 어느 방송에서 수제버거를
맛있게 잘하는 집이 인근에 있다고 하여 특별식을
먹자고 조카 딸내미가 권했다. 새로운 경험이라서
나이든 우리가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소위 말하는
MZ세대식의 식사 체험을 한 것이다. 맛도 좋았고
양도 많았다. 산골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싶었으며
이런 체험을 하게 해준 조카 딸내미가 너무 고맙고
사랑스럽다. 이모들은 주말동안 어떻게 맛있는 걸
해서 먹일까 머리를 쥐어짠다나 뭐라나? 이서방과
촌부는 조카 딸내미 덕분에 잘 얻어먹게 되었으니
옛말이 생각난다. '원님 덕분에 나팔 분다' 라고...
참 바쁘게 움직인 촌부의 하루였지만 뿌듯한 것은
'시작이 반' 이라고 밭갈이와 로타리를 마친 것이다.
아직 시간이 많으니 천천히, 차근차근 뒷일 준비를
해야겠다. 미주알 고주알, 이러쿵 저러쿵 하다보니
늘어지고 길어져 버렸네. 기록이니까 어쩔 수 없다.
P.S: 긴 글 읽으시느라 눈이 피로하셨을 테니까
'좋아요' 안 누르셔도 됩니다. 그래도 굳이
누르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허허~
이놈의 촌부,
비내리는 날에 횡설수설 날궂이 하는 모양일세!
첫댓글 오늘도
멋진 하루
가족들과 행복으로 일구세요
근정님!
즐거운 주말 되세요.
감사합니다.^^
시골의 향기가 가득하네요
잘 읽고 갑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여느 고장보다 뒤늦게 당도한 산골의 봄입니다. 이제 슬슬 농사준비를 해야겠습니다. 밭갈이와 로타리를 쳐놓은 밭에 멀칭비닐도 덮는 것을 비롯하여 일이 많습니다. 오늘은 비가 내려 공치는 날이라서 한가롭군요. 좋은 날 되세요. 감사합니다.^^
노는 날도 있어야 하늘이 공평하지유
사람이. 일만하다 갈수있나요 쉬는날 드시고싶은거 드시고 오수도 즐겨봐유 ㅎ
그럼요.
이렇게 오늘처럼 비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라 부추 잘라 부침개 부쳐 소주 한잔 하며 쉴랍니다. 감사합니다.^^
예쁜 포토존도 만들고
미적 감각이 좋으신듯해요.
장작 쌓기도 예사롭지 않고 예술 작품 같았거든요..ㅎ
보람된 날되시길요.
포토존은 조카 딸내미의 생각을 실행에 옮겨본 것입니다. 지난해보다는 약간 업그레이드 했죠. 장작쌓기는 그냥저냥 되는 그대로 쌓은 겁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