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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사명.
창 1: 28~30
저는 앞의 설교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영적인 존재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 창조하시며 독특한 지위를 주셨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독특한 지위는 사명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의 지위와 사명을 알고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실 때 무어라 하시면서 사명을 주시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가라사대~”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명을 주시되 복을 주시며 사명을 주셨습니다. 즉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복을 먼저 주신 것입니다. 복을 안 주시고 사명만 주시면 감당할 수도 없고, 고생만 할텐데, 복을 주시며 사명을 주셔서 능히 감당할 수도 있게 하셨고, 그 사명을 감당하며 사는 것이 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명은 복임을 압시다. 물론 모든 사명이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명을 주실 때 복과 함께 주십니다. 사명을 감당하면 복이 따라다니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명을 무거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담스러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감사함으로 받고, 감사함으로 감당하고, 충성됨으로 감당하려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많아 나아서 번성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많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숫자만 많으면 무조건 만족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조건 많이 나으라고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을 많이 나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다산(多産)만을 기뻐하시는 신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이 많아지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무조건 많이 나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많이 나으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 뜻대로 사는 자녀를 만들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식을 많이 낳아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생기는 대로 막 낳자고 말을 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으니 얼핏 들으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무조건 많이만 낳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의 가정을 봅시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기를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알 같이 많게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아브라함은 다른 이방인들보다 자식을 형편없이 늦게 낳았고 적게 낳았습니다. 숫자적으로 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축복한 대로 그렇게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이방인의 아들 백 명 천 명보다 나은 사람입니다. 그의 경건함이나 신앙은 당대에 가장 뛰어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경건한 이삭을 주시고, 그 이삭으로 말미암아 후손을 낳고, 그 후손들이 번성하도록 축복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번성하라고 하시는 것은 경건한 자식을 나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경건한 자식 낳기를 사모합시다. 이를 위해 기도합시다. 아니 이미 낳은 자녀가 경건한 후손이 되기를 위해 기도합시다. 이것이 우리의 일차적인 사명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러분! 한 가지 정말 우리들이 알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경건한 사람을 이 땅에 두시기 원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사람을 왜 이 세상에 많게 하려고 할까요? 경건한 사람에게만 복을 주고, 경건한 사람들만의 세상을 만들려고 그러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경건한 사람을 많게 하시려는 것은 경건치 못한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이삭과 야곱을 택하시고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모든 만민을 구원하는 일에 쓰려고 택하신 것이지 이스라엘만 복 주시려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건하게 살기를 구하고, 경건한 자녀 낳기를 구하고, 경건하게 살면서 경건치 못한 사람을 많이 구원하는 일을 위해 힘씀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왕성하게 하는데 쓰임 받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즉 인간의 사명을 하나님의 나라를 왕성케 하는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2. 하나님은 땅을 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정복한다고 하는 것은 히브리어로 ‘카바쉬’ 라는 말로 “발로 밟다”, “주무르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점유하거나 사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을 정복한다는 것은 인간의 유익을 위해 자연을 개발하여 적절히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서구 유럽은 복음과 함께 받아들여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과학을 발전시키고 자원을 개발하는 등 적극성을 띠었습니다. 그 결과 서구 유럽은 비약적인 문명의 발전과 함께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들어가지 아니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자연을 숭배의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산을 보며 산신령을 섬기고, 바다를 보며 용왕을 섬겼습니다. 나무를 섬기고 바위를 섬기고 짐승을 숭배하는 등 자연을 숭배의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그 결과는 보다시피 가난과 기근의 땅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지금 굶어죽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며, 복음을 받아들이고도 복음대로 살지 아니하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당연히 받을 것을 받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을 따라 사는 개척정신, 정복 정신을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안일하게 사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것, 도전하고 정복해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가난을 미덕으로 삼는 그런 안일함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개척정신, 정복정신을 가지고 힘있게, 담대하게, 성실하게 진취적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우리가 그런 자세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사 모든 분복을 이 땅에서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복에 대하여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개척정신, 정복 정신으로 열심히 일하고, 그 일에 복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 돌리며 사는 것이 이것이 사람답게 사는 길인 것입니다.
3. 하나님은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생물들의 세계, 즉 이 세상을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대로 잘 관리하라는 말씀입니다. 무작정 자연을 파헤치고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계가 파괴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지혜롭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사람의 편의 때문에 짐승이 살 땅을 빼앗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자연이 파괴되어 사람도 짐승도 살 수 없는 세상을 만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환경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아름답게 조성해 가는 것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 들에 핀 야생화가 계속 아름답게 피도록 환경을 보존하는 것도 인간이 해야할 일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사는 주거 환경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하여 정원에 꽃을 심고, 거리를 아름답게 가꾸는 것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들에 뛰어 노는 짐승들이 사는 땅을 무조건 빼앗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삶의 공간도 어느 정도 확보해 주면서 개발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생물세계를 잘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사람에게 유익을 줍니다. 그러므로 생물 세계를 잘 돌보라는 것은 결국 인간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삶의 공간을 파괴시키지 말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의 사명에 대한 말씀을 이제 정리해 봅시다. 첫째는, 인간 자신이 번성해야 합니다. 이는 경건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손을 많이 낳을 것과 기를 것을 명령하시는 것뿐만이 아니라, 경건치 못한 세상을 구원하는 일을 성실히 해야할 것을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둘째는 땅을 정복해야 합니다. 개척하고 개발하여 이 땅의 소산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려야 합니다. 셋째는 사람이 사는 공간을 잘 보존하고 아름답게 하여 사람이 살만한 공간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도 우리 모두가 힘써야할 일인 것입니다.
이러한 명령대로 살아가기만 하며 인간은 복될 수 있습니다. 즉 사명을 감당할 때에 인간은 복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활이 안정되고 살만해야 사명을 감당한다는 생각을 바꾸어 사명을 감당하면 주님이 모든 생활도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믿고 주님의 뜻대로 살기를 힘씁시다.
1: 28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8)
여기 창세기 1장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은 사람이 원하는 대로 자연과 환경을 다룰 수 있다는 말씀인가?
과연 오늘의 생태계의 균형이 깨진 것은 창세기 1장을 믿는 정통 기독교인들의 책임인가?
화이트(Lynn White Jr.)는 과학지에 우리의 생태학적 위기의 역사적 근거(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al crisis)란 논문에서 그렇게 주장하였다.
서구의 과학적이며 기술적인 주도권은 일반적으로 성경적인 창조설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유대 기독교 유산이 17세기에 과학적 혁명과 18세기에 산업 혁명과 같은 과학적 진보의 가능성을 배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독교의 신앙이 이교의 나라들에서 믿었던 나무나 시내, 산 그리고 언덕 등도 영혼이 있다는 물활론(Animism)을 타파시킴으로서 나루를 자르고 시내를 막고 금광을 만드는 등 자연을 파괴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본문 창세기 1:28이 기독교인들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한 허가장과도 같았다는 것이다.⑴
그러면 과연 위의 본문은 사람이 자연을 그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말씀인가?
먼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부터 살펴보자. 이 말씀이 축복인 것은 27절이 밝히고 있듯이 남녀가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아 번창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오늘날도 무조건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이 축복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신 때는 세상에 사람이라고는 아담과 하와 두 사람뿐이었다. 물론 땅을 채우라는 말씀이 이곳에 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노아의 홍수로 모든 사람이 다 죽고 세상에는 노아의 여덟 식구만이 남았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는 명령을 하셨다(창 9:2).
따라서 위의 명령은 세상에 사람이 없고 땅을 정복하기가 어려울 때 주신 말씀이다. 그들이 생태계를 파괴시키면서까지 사람으로 세상을 가득 채우라는 말씀은 아니다.
다음으로 땅을 정복하고 생물을 다스리란 말씀을 생각해 보자.
이 말씀은 화이트(Lynn White)의 주장대로 자연과 생물을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인가?
화이트의 주장대로 창세기 1장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확신하고 땅을 정복한 것이 기독교인들이요 그런 과정에서 과학과 산업의 발전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지나친 개발과 공해로 생태계를 파괴시킨 데 대해 기독교가 전혀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화이트(White Law)는 이 구절이 식민지의 법으로 간주되었다고 생각했는데⑵ 그 의미는 미국 식민지의 초기 개척 정신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본문 말씀이 제한 없이 땅을 정복하고 산업을 발전시키란 말씀인가? 그렇지 않다. 여기서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씀은 네 맘대로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청지기직인 사명을 가리킨다.
청지기는 주인이 아니므로 그가 한 일에 대해 주인에게 책임이 있다. 하나님께서 세상과 모든 생물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만물의 주인이시며(시 24:1) 삼림에 짐승과 언덕에 가축이 다 그의 것이다(시 50:10-12).
여기서 정복하고 다스린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선정을 베푼다는 뜻이다. 먹이고 입히고 보호하며 지켜주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만물을 다스리되 대리자로서의 권위요, 종속적인 다스림의 권리를 가진 것뿐이다.⑶
그러므로 땅을 정복하되 생태계의 균형을 깨면서까지 무분별하게 파괴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생물을 다스리되 멸종을 시켜서는 안 된다. 더구나 이 말씀을 하신 때는 동물을 죽이는 것을 허용한 것이 아니며 그것들의 고기를 음식으로 사용하도록 허용하시지도 않았다. 짐승의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은 노아 홍수 후였다(창 9:3).
역시 여기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도 정착과 농사와 연관지어 생각해야 한다.⑷ 그것들을 필요에 의해 사용할 수 있으나 남용해서 창조의 질서를 깨뜨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 본보기를 홍수 때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동물들을 살리기 위해 방주를 지은 의인 노아(창 6:9)의 역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⑸ 따라서 창세기 1:28은 2:15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일하게 하셨고 그것을 지키게 하셨다.⑹ 지구와 그 모든 자원(동, 식물, 바다의 고기, 공중의 새 그리고 땅)의 소유주는 하나님이시다(시 24:1; 50:10-12).
우리는 그 청지기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 크리스챤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본래의 계획과 뜻에 따라 지구와 그 안에 있는 모든 생물들의 생명을 지켜 보호하며 그것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건강한 자연 환경을 만들어 줄 막중한 책임이 있다.
주
1. Walter C. Kaiser, Jr., Hard Sayings of the Old Testament(Downers Grove: IVP,1988), pp.16-17
2. H.C.L. Leupold, Genesis, Vol.1(Grand Rapids: Baker, 1987), p.96
3. Beacon Bible Commentary, Vol.1(Kansas City: Beacon, 1969), p.36
4. Victor C. Hamilton, Genesis(Grand Rapids: Eerdmans, 1990), pp.139-140
5. Gordon J. Wenham, Genesis(Waco: Word, 1987), p.33
6. Walter C. Kaiser, Jr., Op, cit., p.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