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과 시술 빙자해 투약… 마약쇼핑 창구된 병원 89곳
마약 전과자 등 병원 처방 악용
‘단골 병원’서 마약류 상습 투약
작년 오남용 처방 병원, 집계후 최다
벌금형 등 솜방망이 처벌… 대책 시급
“왜 위험하게 텔레그램으로 마약을 사느냐고 합니다. 병원 가서 돈 주고 맞으면 된다면서….”
2일 서울 시내 경찰서 강력팀에서 일하는 한 경찰관은 “여전히 텔레그램으로 약속하고 이른바 ‘던지기’ 수법으로 거래하는 이들도 있지만, 마약류 전과가 있거나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이들 사이에선 병원에서 마약류를 처방받는 수법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배우 유아인(본명 엄홍식) 등을 비롯해 수면 마취 명목으로 프로포폴이나 졸피뎀, 케타민 등 의료용 마약류를 상습 투약했다가 적발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이를 두고 경찰 안팎에선 ‘불법 마약 쇼핑’ 창구 역할을 하는 병원에 대한 강도 높은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피부 시술 받기 위해 마약류 투약”
마약류를 투약했다가 붙잡힌 초범의 경우 집행유예형을 선고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재범의 경우 실형을 면하기 어렵다 보니 마약류를 끊지 못한 투약자들이 강화된 마약 단속을 피해 적발 우려가 적은 병원으로 몰리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올 8월 마약류를 투약한 채 고가의 외제차를 몰고 인도로 돌진해 20대 여성을 뇌사에 빠지게 한 이른바 ‘롤스로이스남’ 신모 씨(28) 역시 과거에도 수차례 마약을 투약했다 적발돼 징역형까지 선고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신 씨는 체포 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검사에서 케타민 등 마약류 7종을 투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 씨는 “피부과 치료를 위해 사용했던 마취제 때문”이라고 해명했는데 이를 두고 그가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단골 병원’에서 마약류를 상습적으로 투약해 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달 11일 주차하다 시비가 붙은 상대를 흉기로 협박해 구속된 이른바 ‘람보르기니남’ 홍모 씨(30)도 케타민 등 마약류가 검출됐는데 “피부 시술을 위해 병원에서 수면 마취를 한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마약 수사를 전담하는 수도권의 한 경찰관은 “최근에는 마약류 양성 반응이 나오면 일단 ‘병원에 다녀왔다’고 둘러대는 피의자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 솜방망이 처벌에 난립하는 ‘마약 병원’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받은 환자는 약 1946만 명으로 역대 최다였다. 또 마약류 의약품 과다(오남용) 처방으로 적발된 병원 역시 지난해 89곳으로 집계 이후 최고치였다. 식약처는 2018년 도입된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을 통해 병원, 약국 등 마약류 의약품 취급 현황을 모니터링하고 특이점이 발견되면 수사를 의뢰한다. 유아인 역시 식약처의 모니터링을 통해 마약류 투약 정황이 드러났다.
하지만 병원의 경우 재판에 넘겨지더라도 초범의 경우 벌금형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행정처분 역시 최대 영업정지 12개월 등으로 수위가 낮은 편이다. 임상현 경기 마약류중독재활센터(DARC) 센터장은 “돈만 주면 병원에서 쉽게 마약류를 처방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마약류 투약으로 재판을 받는 중에도 병원에서 마약류 처방을 받고 투약한 사례도 있었다”며 이른바 ‘마약 병원’에 대한 강도 높은 단속을 주문했다.
최미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