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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쇼펜하우어 (shopenhauer 1788-1860)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로서 생철학의 시조이다. 젊은 시절에는 불우한 환경으로 말미암아 염세주의자가 되었으나, 만년에는 불교를 접하고 행복을 위한 삶의 지혜를 설파했다.
모친 요한나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대학자 괴테와는 신뢰 있는 우정을 나누었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출판했지만 너무 난해하여 철저하게 외면당했으나, 훗날『인생론 집』과 『격언 및 삶의 예지』가 큰 인기를 얻으며,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찬사를 받았다.
아트만이라는 충성스러운 개와 함께 평화로운 말년을 보냈고 인식의 중요성과 생의지를 강조하였다.
*소장하고 싶은 명언들*
불쾌한 일을 무시하고 과소평가하는 것은 행복을 위한 훌륭한 처세법이다.
행복을 위해서는 타인의 판단을 중시하는 명예욕과 일종의 허영심을 버릴 필요가 있다.
힘들고 괴로울 때 최상의 위안은 자기보다 더욱 고통받는 존재를 바라보는 일이다.
흔히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 철학자의 대표로 인식되고 있지만 실제로 그는 고통으로 점철된 세계에서 행복을 위한 삶의 지혜도 많이 발견해낸 철학자입니다.
국내에 주로 번역되어 있는 쇼펜하우어의『인생론』에는 실제로 비관적인 사상들이 많이 나오지만, 『세상을 보는 방법(동서 문화사)』이라는 책에 수록된 <삶의 예지>에는 행복을 위한 지혜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지혜의 등불』에 수록된 명언은 주로 후자에서 발췌했는데, 이를 통해 비관주의자라는 그에 대한 오명이 벗겨지고, 톨스토이가 인정했듯이 뛰어난 통찰력을 갖춘 천재이자 행복을 가르친 철학자로 인식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괴테처럼 뛰어난 인물은 쇼펜하우어가 젊었을 때부터 그의 지성에 감탄하여 자신의 제자로 삼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심지어 모친조차) 그를 멸시하고 그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젊은 시절은 고뇌의 연속이었고 그의 사상도 지극히 염세적이었으나, 만년에는 인정을 받고 많은 사람들의 환대 속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사후의 평가도 자살을 부추긴 장본인이라는 평가와 시대의 천재이자 최고의 철학자라는 평가가 엇갈리는 것은 사람마다 보는 눈과 이해력이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뒤따르는 그의 명언을 살펴보고 어떤 평가를 내리시겠습니까?
많은 철학자들이 육체를 무시하고 정신적인 것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짙었지만, 쇼펜하우어는 육체적인 건강이야말로 행복의 원천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육체적인 강인함, 에피쿠로스의 절제된 삶, 칸트의 규칙적인 산책에서도 우리는 건강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정신적인 깨달음은 물론 육체적인 건강에도 신경을 써야한다는 것은 위대한 철학자들의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모든 사람은 그 자신의 이해 정도와 인식의 한계 내에서만 세상을 바라볼 뿐이다.
대중은 일반적으로 귀와 눈은 밝지만 우둔한 판단력과 희미한 기억력을 갖고 있다.
인간 됨됨이가 상반되는 사람은 서로를 미워하고,볼품없는 자가 뛰어난 자를 멸시하는 일은 흔하다.
사물을 올바르게 평가하는 일이 드문 이유는 올바르게 판단할 만큼 총명한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건강한 거지가 병든 왕자보다 더 행복하다.
행복은 쾌활함의 정도에 비례해서 커지고 쾌활함은 육체와 정신적인 건강에 좌우된다.
나무가 튼튼해지기 위해서는 바람이 필요하듯, 인간이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운동이 필요하다.
최상의 보물은 명랑한 표정과 쾌활한 마음이다.
행복의 90%는 건강에 달려 있다!
세계는 곧 나의 인식의 반영이다!
행복은 주어진 환경 그 자체보다는 세상을 인식하는 개인의 기질에 좌우된다.
모든 진리는 인정받기 전에 세 단계를 거친다.
첫째 조롱받고,
둘째 반대에 부딪히고,
셋째 자명한 진실로 간주된다.
남성은 여성에 비해 극기, 용기, 노력에 능하고,
여성은 남성에 비해 인내, 순종, 위로에 능하다.
남자는 여성의 나이, 건강, 체격, 얼굴을 중시하고,
여자는 남자의 어깨, 근육, 체력, 성격을 중시한다.
지력이 뛰어날수록 고통에도 민감한 편이지만 그는 뛰어난 통찰력과 굳센 의지로 세상에 맞설 줄 안다.
인생에서 가장 강렬하고 놀라운 사건은 대부분 사랑이라는 감정에 의해 만들어진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정신이나 신체적인 불완전성을 보완해주는 이성에게 끌린다.
조건을 고려해서 이성적으로 선택한 결혼에는 본능에 이끌린 사랑과 같은 정열이 없다.
사랑은 성욕과 태어날 후손과 관련이 있다.
성적인 매력에만 이끌려서 결혼하면 평생 후회와 탄식을 안겨줄 반려자를 얻을 것이다
정치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궁극적인 해법은 소수의 현자와 선인이 전제정치를 행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과 닮은 것을 좋아한다.
비슷한 영혼은 멀리서도 알아보고 인사를 나눈다.
아무리 좋은 돌도 연약한 팔로 던지면 멀리 못 가듯 위대한 걸작도 우둔한 사람을 만나면 빛을 잃는다.
지나치게 가벼운 배는 뒤집어지기 쉽듯이 삶에도 고통이나 근심이 없다면 방종에 빠지고 만다.
교만의 그늘이 무수한 장점을 가려버리는 일은 흔하다.
소중한 깨달음도 기록해두지 않으면 소멸하고 만다.
일기는 경험과 지혜를 축적하는 매우 훌륭한 수단이다.
지나치게 몸이나 정신을 혹사시키는 것은 수명을 줄일 뿐 아니라 신체적인 활력도 앗아간다.
예의는 지혜에 속하고 무례는 무지에 속한다.
흘러가는 시간은 권태에 사로잡힌 자들을 벌한다.
정신이 빈약한 사람들이 재물로 남을 앞서려고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생각과 말 사이에 간격을 유지한다.
예술이야말로 인간을 고통과 욕망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신성한 탈출구이다.
음악이야말로 예술 중에서 으뜸이며 훌륭한 음악을 듣는 것은 정신을 목욕시키는 것과 같다.
한 사람의 천성은 결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관대하고 다정하면 상대방은 무례해진다.
인간은 자신을 찬양하는 사람보다 자신을 경멸하는 사람에게 더 신경을 쓴다.
이기적인 성품을 지닌 사람은 늘 비탄에 빠지며 타인의 감정 따위는 무시한다.
격한 어조로 말하지 말라. 그것은 언제나 비이성적인 말을 동반한다.
환경이 변하면 이해관계도 변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태도나 행위도 달라질 수 있음을 명심하라.
젊은 시절은 통찰력과 상상력에서 뛰어난 시기이고,
노년 시절은 통합력과 분별력에서 뛰어난 시기이다.
뛰어난 예술품도 반복해서 보면 감흥이 없어지는 것처럼,
관찰력이 가장 뛰어난 시기는 노년이 아니라 청년기이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무엇으로 자신의 마음을 가득 채우느냐에 달려 있다.
교육의 실패는 실제 경험에 앞서 학생들에게 지식을 먼저 주입시키려고 할 때 일어난다.
성격이 소유물보다 행복에 더 큰 영향을 끼치지만
사람들은 정신을 수양하기보다는 재산을 늘리려고 애쓴다.
성공은 자신의 천성에 유리한 것은 취하고 천성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배척함으로써 만들어진다.
[필자 후기] : 여러분은 쇼펜하우어라는 철학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분명 쇼펜하우어는 젊은 시절에 자신의 뛰어난 지성을 알아주는 이가 없어서 폐쇄적이고 염세적인 사상을 지니게 되었지만, 중년부터는 불교를 접하게 되고 참된 행복에 관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는 인간은 고통에 찬 괴로운 존재라고 역설했고 (많은 비평가들이 그러한 주장을 바탕으로 비관주의자로 묘사했지만) 그의 참된 의도는 삶은 본래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림으로써 고통받는 이들에게 위안을 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인생은 그저 행복하고 평화롭다고 말했다면 현실에서 그렇지 못한 이들은 얼마나 자괴감을 느끼겠습니까? 시중에는 그에 관한 많은 번역서가 존재하지만, 저는 <세상을 보는 지혜 - 동서문화사>를 추천하고 싶군요.
그 안에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인생론', '삶의 예지',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번역본'이 모두 포함되어 있어 그의 사상을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상에서 정신적인 고독과 외로움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생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바탕으로 행복의 지혜을 설파한 그의 책이 적잖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인생명언] 쇼펜하우어 명언...(지혜의 등불 中) 에서 발췌함- 편저자 이창호
쇼펜하우어 인생론 (베스트 모음)
Click! https://youtu.be/iYBNdYl373o
2️⃣ 알렉산드르 푸시킨(Aleksandr Sergeevich Pushkin)
러시아의 국민 시인이자 소설가
1837.2.10 사랑과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결투 끝에 세상을 떠나다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세르게 비치 푸시킨(푸시킨, 푸시킨)이 38살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꽃다운 16살 소녀 곤차로바를 처음 만나 ‘아! 저토록 아름다운 여인이여! 내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여인이야!’라며 정열을 불태웠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건만,
매혹적인 자태의 아내 나탈리아 곤차로바와 1831년에 결혼해 네 명의 자녀들을 남겨두고
푸시 킨 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평소 시(詩)나 문학에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푸시킨에 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유명한 시를 접해 본 경우가 많지 않을까 한다. 서럽고 슬프고 화가 나고 우울한 우리의 비루한 삶. 푸시킨은 그런 삶을 담담히 받아들이라 하면서도 미래의 기쁜 날을 향한 소망을
간직할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푸시킨 자신의 최후는 사랑이 푸시킨을 속인 끝에 슬프고 노하여
맞이하게 된 셈이라 하겠으니, 이 또한 삶의 아이러니라 할까.
푸시킨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 그의 이름을 딴 도시가 생기다
화가 일리아 레핀이 그린 '차르스코예 셀로 시절의 알렉산드르 푸시킨'(1911)
오늘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남쪽으로 2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도시 푸시킨. 러시아 황실의 여름 궁전이 있는 이 도시의 본래 이름은 차르스코예 셀로, 즉 ‘황제의 마을’이었다.
18세기 초 표트르 1세가 건설한 도시로, 특히 예카테리나 여제가 세운 별궁(이후 황실 여름 궁전으로 이용됐다)이 있었던 곳. 1937년에(푸시킨 서거 100주년) 오늘날과 같은 푸시킨 시로 명명된 것은 알렉산드르 1세가 그곳에 세운 학교 리체이에서 푸시킨이 공부했기 때문이다.
푸시킨은 1815년 리체이의 상급반 시험장에서 ‘차르스코예 셀로의 회상’이라는 자작시를 낭송하여 시인으로서 자질을 인정받았다(화가 일리야 레핀은 ‘차르스코예 셀로 시절의 알렉산드르 푸시킨’
(1911)이라는 그림으로 당시의 상황을 묘사했다).
리체이 시절(1811~1817) 푸시킨은 자유주의적 기풍에 물들며 진보적인 낭만주의 문학 그룹에 참여했다. 학업을 마치고 외무성에 근무했지만 혁명적 사상가 및 운동가들과 교류하면서 러시아의 전통적인 농노제를 타도해야 한다는 사상을 굳혀나갔다.
‘네가 주인이다 / 홀로 살아가라 / 걸어가라 자유로운 길을 / 자유로운 정신이 너를 이끄는 곳으로’ 하고 노래했던 푸시킨은 바로 그렇게 자유를 찬양하는 내용의 시가 화근이 되어 남부 러시아로 유배당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그는 러시아의 낙후된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사회를 꿈꾼 데카브리스트 구성원들과 교류하며 그들에 공감했고, 1824년에는 국외 망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집안 영지인 미하일로프스코에 유폐되어 계속 창작에 몰두했고, 유폐라는 고독하고 불우한 상황이 푸시킨을 예술적, 사상적으로 더욱 성숙하게 만들어 주었다. 1825년 데카브리스트가 괴멸당한 뒤 유폐 생활에서 풀려났지만, 러시아의 역사적, 정치적 상황에 대한 예민한 성찰과 민중에 대한 관심은 푸시킨에게 호흡과도 같았다.
새로운 단어나 표현을 고안해 러시아어의 발전에도 기여
푸시킨의 시적(詩的) 단편 드라마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는 피터 셰이퍼의 [아마데우스]에 영감을 제공했고, 푸시킨 자신이 큰 애착을 갖고 있던 시적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은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영역(英譯)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러시아 국민 음악파의 창시자로도 평가 받는 미하일 이바노비치 글린카는 푸시킨의 [루슬란과 류드밀라]에 바탕을 두어 동명 같은 제목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글린카는 ‘국민이 음악을 창조하며 음악가는 그것을 편곡한다’는 생각으로 민중의 삶과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에게 푸시킨의 문학 세계야말로 음악적 영감의 마르지 않는 원천이 되었다. 비단 글린카뿐만이 아니었다. 차이콥스키의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 [스페이드의 여왕], [마제파] 등도 푸시킨의 작품이 원작이며, 무소륵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 라흐마니노프의 [알레코](푸시킨의 작품 ‘집시들’에 바탕을 둠),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술탄 황제 이야기] 등도 마찬가지다.
푸시킨의 시 [예언자]의 내용을 그려낸 작품(1905년, 알렉산드르 푸시킨 뮤지엄 소장)
푸시킨은 러시아 문학의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낭만주의라는 말만으로 그의 문학 세계 전체를 규정하기는 힘들다. 많은 비평가들은 그가 신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를 거쳐 리얼리즘으로 가는 길을 반영한다고 본다. ‘낭만주의적이었으되 낭만주의적이지 않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푸시킨은 또한 러시아 문학의 발전뿐 아니라 러시아어 자체의 발전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어 표현에서 부족함을 느낄 때 그는 과감하게 새로운 단어나 표현을 고안해내기도 했고, 풍부한 감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문장 표현은 러시아 문학을 푸시킨 이전과 이후로 나누게 할 정도였다.
서유럽에 비해 문화적으로 뒤떨어졌던 19세기 러시아에 푸시킨은 유럽의 모든 문학 장르를 도입시켰다. 서정시, 서사시, 소설, 단편, 에세이, 희곡 등 모든 장르에 걸쳐 창작의 불꽃을 피워 올린 것이다. 푸시킨이 아니었다면 이반 투르게네프, 이반 곤차로프, 톨스토이 등이 가능하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다.
내 그대를 사랑했노라
사랑이라는 게 존재하는 한, 내 영혼에서 완전히 꺼지지 않나니
그러나 나의 사랑은 더 이상 그대를 괴롭히지도 방해하지도 않나니
내 그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니
내 다만 그대를 사랑했노라
이야기도 희망도 없이
때로 나의 소심함과 때로 나의 질투가 나를 괴롭혔지만
내 다만 그대를 사랑했노라, 그토록 진심으로 그토록 조심스레
신의 섭리에 따라 다른 이들이 그대를 사랑한 것만큼
곤차로프와 결혼하기 전 안나 올레니나라는 여인을 열렬히 사랑했던 푸시킨이 당시의 심정을 담은 시다. 이룰 길 없어 보이는 사랑에 대한 푸시킨의 애절한 마음. 그 마음은 문학을 향한 열정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 것
러시아( Russian Federation) 문학의 창시자,
푸시킨(Pushkin )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영문 번역 -
Click! https://youtu.be/FSAqgYp9s_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