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 총리대신 서리(內閣總理大臣署理)인 내부 대신(內部大臣) 박영효(朴泳孝)가 현재 군사 방비가 미약한 것과 관련하여 경무청 순검(警務廳巡檢)에게 서양총〔洋鎗〕을 나누어 주어 사격 연습을 시키는 일을 아뢰니, 제칙(制勅)하기를,-
1895년 4월 27일 조선왕조실록 일자를 보면 내각 총리대신 서리인 내부대신 박영효가 경무청 순검들에게 서양식 소총을 나눠주어 사격 연습을 시키자고 아뢰는 발언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사실 뭐 제대로 나온 정보는 없으나 어느 정도 무엇을 썼는지 정도는 추론이 가능하지요.
1895년이면 기존의 친군영제나 지방 군사제도가 싸그리 날아가고 중앙에는 2,000명 규모의 친위대만 남아서 존속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박영효도 군사 방비가 미약하다 하여 경무청 순검 병력들에게 소총을 쥐어주고 군사훈련을 시키도록 허락을 받은 것이지요.
이 때 이들이 대체 무슨 소총을 썼는지 사실 좀 궁금하기도 한데 의외로 답은 가까이에 있습니다. 우선 중앙의 2,000명 남짓의 친위대 병력이 쓰던 소총이 마우저 소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1895년에 일본에게서 청일전쟁 당시 노획한 수십 만 발의 마우저 소총탄을 제공해달라고 문서를 보냈다는 점이지요.
이 때 총 80만 발의 마우저 소총탄이 넘어왔는데 이것들은 당연하게도 중앙 정예 친위대가 사용했을 것입니다. 조선이 도입한 마우저 소총이 약 2,000정이고 친위대의 병력 숫자도 2,000명 가량이니 딱 숫자가 얼추 들어맞지요.
그렇다면 전에 했던 이야기였지만 조선군의 당시 주력 소총이 레밍턴 롤링블록이었고 점차 마우저로 갈아타려 했다는 글을 보셨으면 아실 것입니다. 수천 정 가량의 레밍턴 롤링블록이 붕떠버린 셈입니다.
아마도 친군영이 해산되면서 남겨진 레밍턴 롤링블록들이 당시 경무청 순검에게 주어지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숫자가 꽤 많은 축이었기도 한데 나중에 러시아 군사교관단이 베르단 소총을 쥐어주고 부족한 총기는 레밍턴으로 때웠다는 이야기도 있었든요.
따라서 당시 경무청 순검들이 받은 소총은 레밍턴 롤링블록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청군이 뜯어가서 탄약이 없으면 어쩌냐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1900년 백성기 육군 참장의 보고대로라면 아마도 레밍턴 롤링블록 탄약은 어느 정도 양산 자체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뭐, 1895년 이전까지는 경무청 순검들은 대체적으로 환도 등으로만 무장했고 총기 사용을 딱히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개항장에서 각종 총기 사고가 벌어졌고, 심지어 구걸하는 아동들에게 미국인이 리볼버 권총을 난사하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순검들이 체포하지 못했었습니다.
상대는 총을 들고 있는데 이쪽은 환도 등 도검류로만 무장을 했으니 말이지요. 1895년에 서양식 소총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1899년이 되어서야 육혈포가 경무청 정규 복식에 이름을 올리는 것으로 보아서 이 때부터 총기를 사용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뭐...사실 이전부터 화승총 같은 것은 또 썼을 수도 있기는 합니다. 지방의 구식감영군이나 포군들도 화승총을 신나게 썼으니 말이지요. 어쨌거나 박영효가 순검들에게 쥐어준 소총은 레밍턴 롤링블록일 공산이 매우 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