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한 충무공과
고대 그리스의 정치가이자 군인이었던 테미스토클레스는 닮은 점이 너무 많다.
동방을 통일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왕은 세 번에 걸쳐 그리스를 침략했다.
한 번은 풍랑으로 실패했고 두 번째가 그 유명한 마라톤 전쟁이었으며
세 번째가 살라미스 해전이었다.
압도적인 군사를 가지고도 마라톤에서 패한 다리우스대왕은 복수전을 준비하다가 분통이 터저 죽고,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가 왕이 되어 세 번째로 그리스로 쳐들어 왔다.
마라톤 전쟁에서 승리한 아테네 시민들은 평화의 무드에 젖어 있었다.
마침 그 때 질좋은 은광이 발견되어 아테네 시민들은 이를 나누어 가질 기대에 들떠있었지만
집정관이었던 미스토클레스는 페르시아가 반드시 다시 침략해 올 거라며
아테네 시민들을 설득하여 그 돈으로 전함 200여 척을 건조했다.
드디어 페르시아의 16만 대군와 1200척의 함선이 그리스를 침공했다.
수적으로는 게임이 안 되는 상황,
여기서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 시민들을 섬으로 대피시키고,
선단을 험하고 좁은 해협인 살라미스로 집결시켰다.
그리고는 그리스 선단들이 도망을 준비하고 있다며 헛소문을 퍼뜨렸다.
그러자 페르시아 선단은 그리스 선단이 도망가기 전에 침몰시켜야 한다며
좁은 해협 살라미스로 서둘러 진입했다.
이러면 그리스 선단은 살라미스 해협 안에서 활모양으로 진을 치는 반면
페르시아 선단은 일렬 종대로 진입해야 한다.
이것이 학익진법이다.
학이 나래를 편 것 처럼 진을 친다는 의미이다.
그리스 선단은 살라미스로 진입하는 페르시아 선단의 옆구리를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고 있다.
이점이 충무공의 명량 해전과 판박이로 똑 같다.
당시 충무공이 살리미스 해전을 알았을 리 없었을 텐데 어쩌면 그리고 같은 수가 있을까?
경이롭기만 하다.
고대 그리스에는 오스트라시즘이라는 조개껍질 투표가 있었다.
조개껍질에 미운 사람 이름을 써서 투표를 하여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사람을 국외로 추방하는 제도였다.
이 투표에서 전쟁영웅 테미스토클레스가 당선(?) 되어 국외로 추방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나라를 구하고도 추방되어야 했으니...
국외를 전전하던 테미스토클레스는 적국 페르시아로 가서 목숨을 구걸했다.
크세르 크세스 왕은 그를 극진히 환대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그리스와의 전쟁을 준비하면서 그리스 침략의 선봉을 맡아달라고 요구했다.
테미스토클레스의 마음은 참담했을 것이다.
비록 자신을 추방했으나 조국은 조국, 차마 조국을 향해 창을 겨눌 수는 없었다.
결굯 그는 자살로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의 죽음도 충무공과 흡사하다.
충무공은 나라를 구했지만 전과를 거둘수록 그에 대한 선조의 질투도 하늘을 찔렀다.
의심이 많았던 선조...(이그 못난이...)
김훈은 '칼의 노래'에서 당시 충무공의 심경을 이렇게 적고 있다.
"앞에는 왜적의 칼이, 뒤에는 선조의 칼이 기다리고 있다.,.."
결국 충무공은 노량 해전에서 적의 흉탄을 맞고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두 사람의 삶이 참으로 기막히게 일치한다.
노을~
삼국지에서도 공명의 학익진이 나오던데,우리나라에 이순신이 계시듯..
해박하신 지식에 존경을 표함니다.ㅎㅎ
감사합니다. 한포님, 회원정보가 모두 비공개로 되어 있네요...
최소한 성별, 연령 정도는 공개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