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의 집적도는 약 2년마다 두 배씩 증가한다(무어의 법칙).“ 많은 직장인은 컴퓨터로 메일을 보내고, 워드로 문서를 작성하며, 엑셀로 데이터를 입력하고 계산하는 데 익숙할 것이다. 심지어 이제는 손바닥 크기의 스마트폰으로 길을 걸으면서 작업을 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칩’이라 불리는 장치를 개발한 덕분이다. 이제 칩은 어디에나 있다. 사무실 컴퓨터는 물론이고, 우리가 늘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에도 칩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정보화 사회’로 대변되는 현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 한다면, 단연코 칩이라 말할 수 있다.
칩 안에는 전기를 이용해 덧셈과 뺄셈은 물론이고, 각종 논리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단위 장치인 트랜지스터가 빼곡히 새겨져 있다. 그리고 하나의 칩이 가지고 있는 트랜지스터의 개수, 소위 칩의 집적도가 우리가 가진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얼마나 빠를지를 결정한다. 현대 사회, 즉 정보화 사회의 진보 수준은 컴퓨터의 데이터 처리 속도에 좌우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속도를 결정하는 것이 칩의 집적도이니, 이것이야말로 현시대의 진정한 진보의 척도라 불릴 자격을 갖춘 셈이다.
그렇다면, 지난 50년간 하나의 칩이 가진 트랜지스터의 개수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1971년 개발된 칩엔 약 2,308개의 트랜지스터가 있었고, 2019년 출시된 칩에는 약 395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들어있다. 약간의 계산을 해보면, 48년간 칩 하나에 들어간 트랜지스터의 개수가 약 1,711만 4,384배 폭증한 것이다. 놀랍게도, 칩 제조기업 인텔의 설립자이자, 실리콘 밸리의 전설로 불리는 고든 무어는 이러한 발전을 크게 틀리지 않은 수준으로 반세기 전부터 예측한 바 있다. 그는 약 2년마다 칩의 집적도가 두 배씩 증가할 것이라는 소위 ‘무어의 법칙’을 주장하였는데, 그의 주장에 따르면 칩의 집적도는 48년 후에는 2를 스물네 번 곱한 값인 1,677만 7,216배(224)만큼 증가해야 한다. 이는 실제값(1,711만 4,384배)과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고든 무어는 48년 후를 정확히 내다본 것이다.
무어가 강력한 칩의 출현을 예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칩의 트랜지스터 개수가 일정한 비율로 증가하는 ‘지수적 패턴’을 보이고 있음을 누구보다 먼저 알았기 때문이다. 무어의 법칙이 대변하는 칩의 집적도 증가 폭은 오히려 이제는 칩 제조업체가 따라잡아야만 하는 황금률이 되었다. 인류가 스스로 문명의 진보 속도를 정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향후 50년도 무어의 법칙이 지속될까? 다시 말해, 칩 산업은 우리에게 앞으로도 2년마다 2배의 집적도 향상을 약속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50년 후의 인류는 지금에 비해 약 3,000만 배 더 강력한 컴퓨터를 가지게 됨을 의미한다.
칩의 집적도를 높이는 가장 쉽고 단순한 방법은 칩의 기본 단위인 트랜지스터 크기를 소형화하는 것이다. 트랜지스터는 전기 흐름을 통제하는 일종의 스위치 역할을 한다. 여기서 문제는 이 스위치가 계속 작아지면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전기의 흐름, 즉 전류는 ‘전자’라 불리는 아주 작은 입자의 흐름이다. 그리고 트랜지스터는 이 전자를 통과시키거나 통과시키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본분을 다한다. 트랜지스터가 문(Gate)을 열어 전자를 통과시키면 스위치를 켜는 것이고, 전자를 통과시키지 않으면 스위치를 끄는 것이다. 트랜지스터를 소형화할수록 전자가 지나다니는 문 역시 얇아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 문이 얇아질수록, 다시 말해 칩 제조 공정이 미세화될수록 아주 작은 세계를 일컫는 양자 세계의 규칙이 고전 세계의 규칙을 대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양자 세계에서는 전자가 정해진 길을 이탈해 다른 곳으로 순간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터널 효과(Tunnel Effect)’가 나타난다. 여기서는 전자가 닫힌 문을 뚫고 지나가는 사건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이는 원하지 않는 상황과 영역에 전기가 흐르는 결과를 만들어내므로 칩의 소비 전력을 증가시키고 기계 오작동의 주요 원인이 된다.
칩 제조사들은 트랜지스터의 구조를 변경하여 전류 누설 등의 문제를 극복해 왔다. 기존 트랜지스터의 한 종류였던 Planar FET의 누설 전류에 대응하기 위해 게이트에 수직한 핀(Fin)을 세워 이 문제를 해결한 새로운 트랜지스터인 FinFET이 등장한 바 있고, 이 덕분에 칩의 집적도를 한층 높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FinFET 구조로도 공정 미세화를 감당하기 어려워져, 말 그대로 전자의 통로를 4면으로 게이트가 감싸는 구조를 가진 GAA(Gate-All-Around) 공정 기반 제품의 개발과 양산이 진행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지금까지 칩 제조업계는 전자가 지나는 문의 형태를 바꿔서 무어의 법칙이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의 50년이 지난 50년과 같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우리 모두는 피할 수 없는 한계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그 시대에 맞는 새로운 진보의 척도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 척도는 기대치를 조금 낮춘 무어의 법칙일 수도, 혹은 인공지능(파라미터의 법칙), 양자컴퓨터(로즈의 법칙)와 같이 급부상하고 있는 분야의 또 다른 법칙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