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열동기회 2월 여의도 포럼은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 시간에 맞춰 돌담길을 따라 산책하였다, 덕수궁 대한문에 도착했을 때는 수문장 교대식이 이미 거행되고 있었으며, 지나가는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관람하고 있었다. 교대식 도중에 관람객들과 함께 어울려 인증샷할 수 있는 시간을 배려하고 있어, 관람객들은 추억을 담기 위해 너도나도 사진 찍기에 분주하였다. 수문장 교대식은 매일 세번 대한문 앞에서 열려 웅장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 단체사진을 찍고 영국대사관 방향으로 향하였다.
영국 대사관에 이르는 덕수궁 돌담길은 60 년간 끊겼던 길로 2018년 12월에 개통되었다. 그러나 영국대사관 정문을 통과할 수 없어 덕수궁 쪽문으로 들어가 데크길과 야자매트길을 따라 이동하다가 덕수궁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러면 영국대사관 후문이 나오고 돌담길이 이어진다. 돌담길을 따라가면 고종의 길이 나오고 선원전(璿源殿) 터가 보인다. 고종의길은 선원전과 미국 대사관저의 사잇길로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이듬 해인 1896년 2월 아관파천 당시 고종이 일본 감시를 피해 경복궁을 빠져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길 때 비밀리에 이용했던 길로 추정하고 있다.
대한제국 시기에 미국 공사관이 제작한 정동지도에는 선원전과 현 미국 대사관 사이의 작은 길을 왕의 길(King's Road)로 표시하고 있다. 선원전(璿源殿)터는 옛 경기여고가 있던 자리였지만 현 덕수 초등학교를 포함하는 넒은 영역이었다. 선원전은 태조를 비롯한 역대 왕과 왕후의 초상인 어진을 보관하던 곳이었다. 영조대 이후로는 궁궐안에서 선왕을 추모하고 정치를 계승함을 상징하는 장소로 기능하였으며, 중요한 정치적 결단을 행하여 정치적 명분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고종황제가 승하하고 이듬해(1920년)에 일제가 철거하였다.
문화재청은 앞으로 단계별로 복원할 계획이다. 고종의길을 따라가면 구 러시아 공사관이 나온다. 구 러시아 공사관은 1890년(고종27)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립된 건물이지만 한국전쟁 때 대부분 파괴되어 현재는 탑 부분만 남은 상태다. 구 러시아 공사관은 고종 임금이 1년(1896.2.11-1897.2.20)간 국정을 수행하며 대한제국 건설을 구상하였던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 곳이다. 구 러시아 공사관을 벗어나면 정동 근린공원과 정동길이 나온다. 정동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이 있었다는 데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정릉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지만, 태종이 계비 신덕왕후의 무덤을 강제로 성북구 정릉으로 이장하였다. 정동길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역사와 문화의 길로 걷고 싶은 낭만의 길이다. 백년이 넘는 건물들과 아름다운 가로수, 잘 꾸며진 도로가 어우러진 풍경은 아늑하고 포근해서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정동길을 따라가면 이화 여자고등학교와 심슨 기념관이 보이고 정동극장 사잇길로 들어가면 중명전(重明殿)이 나온다. 중명전은 황제 서재로 지은 건물로 덕수궁 대화재 이후 고종이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정사를 논하고 귀빈을 접견하는 장소로 사용하였으며,1907년 강제 퇴위 될 때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그러나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된 대한제국 역사의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다. 약소민족의 뼈아픈 역사의 현장을 느끼면서 다시는 이러한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저녁식사 시간이 다가와 유명한 맛집 '남도식당'에서 추어탕으로 맛있게 식사하고 정동 전망대로 향하였다. 덕수궁길과 정동길이 교차하는 곳에 정동 제일교회가 있다. 정동교회는 3.1운동 당시 이곳 예배당에서 독립선언문과 각종 유인물을 등사했던 독립운동의 근거지다. 일본군에 쫒기던 유관순이 예배당 지하공간에 잠시 몸을 숨겼다고 한다.
정동 전망대는 서울 특별시청 서소문청사 13층에 자리하고 있는 숨겨진 명소이다. 빌딩 숲에 둘러싸인 덕수궁 야간 풍경은 고즈넉하면서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펼쳐진다. 전망대 다락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조망하려고 하였으나 영업시간 종료로 아쉬움이 컸다. 그러나 전망대에서 내려와 커피샆에서 아쉬움을 달랬다. 덕수궁은 본래 이름은 경운궁 이었다. 경운궁은 임진왜란 이후 선조와 광해군의 임시거처였으며, 광해군이 즉위(1608) 후 1611년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경운궁이라고 명하였다.
고종은 아관파천 이후에 경운궁(현 덕수궁)에서 주로 생활하였으며 1907년 퇴위 후에도 이 궁궐에서 머무르다 생을 마감하였다. 순종이 즉위하여 창덕궁으로 옮기자 '덕을 누리고 오래 살라'는 뜻으로 고종의 궁호를 덕수(德壽)라 하고 이때부터 경운궁을 덕수궁으로 불리게 되었다.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길은 역사의 흔적들이 구석구석 스며있다. 덕수궁 돌담길은 약 1,1km로 누구나 부담없이 편안히 걸으면서 100여 년 전의 역사와 문화를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산책로이다. 이번 답사를 통하여 구한말 대한제국의 역사의 현장을 피부로 느끼며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수문장 교대식
고종의 길
구러시아 공사관 달랑 탑만 남아있음
중명전
중명전에서 을사늑약 체결
정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