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재로 올라
방학 첫날은 한 내가 저무는 세밑 주말 아침이었다. 평소 출근 시간대에 창원중앙역으로 나가 열차를 탔다. 마산에서 출발해 서울로 가는 상행 무궁화호였다. 내가 가려는 목적지는 밀양이었다. 그곳에 사는 지인을 만나 산행을 하기 위해서였다. 배낭 속에는 지인에게 건네려고 여름에 담가 놓았던 돌복숭 담금주를 두 병 넣었다. 비음산 터널을 빠져 진영이고 낙동강 철교를 지났다.
삼십 분 남짓 걸려 밀양에 닿았다. 지인은 역전으로 차를 몰아 나와 있었다. 행선지를 가까운 종남산으로 가자기에 난 조금 멀리 잡았다. 얼음골 근처 아랫재로 올라 운문사 계곡으로 가보자고 제안했다. 김밥을 두 줄 마련해 시내를 벗어났다. 밀양강이 돌아가는 암새들을 지나 칠탄정을 거쳤다. 금곡 삼거리에서 산내면으로 들었다. 차창 밖으로는 나목이 된 사과나무들이 스쳐 보였다.
둘이서 그간 밀려둔 얘기에 열중하다 남명에서 나들목을 깜박 놓쳐 아주 긴 가지산터널을 지나쳐 석남사 앞에까지 갔다가 다시 터널을 되돌아왔다. 남명에서 내려서 상양마을로 갔다. 볕바른 양지에 있는 마을로 상양, 중양, 하양으로 셋을 묶으면 삼양리다. 마을 끝에 닿아 차를 세웠다. 나는 몇 차례 다녀본 아랫재고 운문계곡이었다. 아랫재로 오르는 들머리를 찾아 산행을 시작했다.
가랑잎이 쌓인 등산로는 사람들이 지난 흔적이 보였다만 연말 겨울 산행객은 아무도 없었다. 소나무들이 참나무들에 끼어 맥을 못 추었다. 주로 참나무 계열 낙엽활엽수들이 우거진 숲이었다. 삭은 참나무 그루에 붙은 운지버섯을 몇 줌 땄다. 아랫재까지는 한 시간 가량 걸렸다. 운문산에서 억산을 거쳐 백운산으로 가는 잘록한 부분이 아랫재다. 백운산에서는 가지산으로 이어진다.
아랫재 산마루에는 환경감시단 초소가 있었지만 문은 닫혀 있었다. 봄날처럼 포근한 날씨였다. 구름이 끼어 간간히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초소 앞에 앉아 배낭에 넣어간 김밥으로 곡차를 몇 잔 비웠다. 맞은편은 표충사에서 솟아오른 재약산 산등선이 얼음골 케이블카로 이어졌다. 십자형 이정표에서 억산이나 가지산으로 갈 생각은 없었다. 산세가 워낙 가파르고 높은 봉우리였다.
지인은 되돌아 내려가자는데 나는 운문계곡으로 더 가보자고 했다. 아랫재에서 운문사까지 걸으면 서너 시간 족히 걸린다. 그런데 근래 사리암에서 운문계곡으로는 일반인의 통행을 막아 길이 막혔다. 국립공원이 아님에도 상수원과 보호와 생태계 보존을 위해서였다. 운문계곡은 대구 지방환경청에서 생태관광보존지역으로 정해 놓았다. 생태 깃대종인 꼬리말도리와 담비가 서식한다.
우리는 운문계곡으로 비스듬히 내려섰다. 사리암 쪽에서는 등산로를 폐쇄시켜도 아랫재에서 계곡으로 가는 길은 막지 않았다. 나목이 된 활엽수가 우거진 숲이었다. 겨울에 눈이라도 내리면 한동안 녹지 않고 숫눈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가지산으로 가는 학심이계곡 입구까지 가보고 싶었는데 지인이 더 걸으려고 하지 않아 아랫재로 다시 올랐다. 아까 남긴 곡차를 마저 비웠다.
고개를 내려서서 산행을 마치고 밀양으로 복귀했다. 시내로 바로 들지 않고 상동면 유천으로 갔다. 지인의 집안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민물어탕 식당으로 갔다. 잡어 조림과 추어탕으로 곡차를 몇 잔 보탰다. 늦은 점심을 들고 지인이 은퇴 후 생활하는 농장 농막으로 갔다. 토종닭을 여러 마리 풀어 놓았다. 참나무 토막에는 표고버섯을 키웠다. 가을에 심어둔 양파와 마늘도 보였다.
지인은 내가 가져가라고 시래기와 구지뽕나무를 잘라 놓았더랬다. 나는 전정가위로 밭둑에 자라는 가시오가피 가지를 잘라 더 보탰다. 구지뽕나무와 가지오가피는 내가 달여 먹는 영지버섯과 감국 등을 넣는 재료에 섞을 셈이다. 배낭에는 시래기를 넣고 약재는 박스에 담았다. 예림서원 곁 지인 농장에서 밀양역으로 가니 무궁화호 전에 KTX가 먼저 와 탔더니 금방 창원에 닿았다. 17.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