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앞줄 오른쪽)와 남편 안막, 딸 안승자.(정병호 교수 제공)
북한 조선중앙TV가 최근 보도한 TV 화면을 통해 최승희가 1969년 8월 8일 작고했음이 확인됐다
최승희가 1930년 만든 현대풍의 '학춤'
1937년 최승희가 발표한 '화랑무'
최승희가 1943년 일본 도쿄에서 발표한 '신에게 바친다'는 뜻의 명상 춤 '생찬'
최승희가 1951년 소련 순회공연을 마친 뒤 통역을 맡은 모스크바대 한인 학생 한 마르크스씨에게 사인해준 사진
최승희 국제무용축제에서 옌볜대학교 무용단이 최씨의 대표적 작품인 '쟁강춤'을 추고 있다
최승희가 1920년대 일본 동경에 있을 당시 모델활동을 하며 찍었던 것으로 보이는 사진
2002년 8월1일부터 10월20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본관2층 하정웅기증 작품실에서 열린는 '춤꾼 최승희 사진전’.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씨의 생애 를 조명한 첫 전시회인 이번 사진전에는최승희 연구의 권위자인 정병호 중앙대 무용과 명예교수가 시립미술관 명예관장인 재일동포 하정웅씨에게 기증한 최씨의 사진138점이 선보였다. 사진은 1937년 한국무용 '화랑의 춤'을 추는
최승희.(호남 지방판)
무용가 최승희씨 자료사진 무용가 최승희씨가 1949년 평양 시내 한 중국식당에서 당시 유명 예술가와 함께 찍은 사진. 앞줄 오른쪽부터 최승희 딸 안성희 무용가 김백봉 네번째가 최승희 맨 왼쪽 위가 최승희 남편 안막. 그 오른쪽 옆에 중국 인민해방군가 작곡자 정율성. 2002.7.24
(서울=연합뉴스)
첫댓글 멋쟁이며, 아름다운 여인이었군요.
우리 곁에 없기에 더욱 간절하게 바라보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최승희의 자서전 `불꽃`에서 그녀의 기구한 삶의 역정을 알았었지요.
불꽃의 자서전을 보면서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기두 했었는데~~~
여기서 다시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을 회상합니다.
`인생의 행복은 늘 괴로운 언덕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양입니다`라는 글귀를 보며
그토록 사랑했던 남편의 숙청때 오열하던 그녀 최승희~~~......마음이 아려옵니다.
... 유성기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를 들으니 `앵두나무처녀`~~ 노래가 생각나네요....*^^*
보지도 듣지도 못했지만 그전설의 무용가 최승희의 이야기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비록 58살에 생애를 끝마쳤지만 그의 타고난 재질과 그가 만든 작품은 이렇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귀한 자료 잘 보았습니다.
손기정 할아버지가 아주 미남 이시네요. 아름답고 귀한 사진 잘보았습니다.
대단한 희귀한 자료입니다.
사실은 제가 교직에 있을때 [교사지도서]로 이분 최승희에 대해 만든 책이 있는데
지금 경북도교육청(예전 도교육위원회]이나 대구광역시교육청 어딘가에서 찾을수있는지
도계님 좀 알아봐 주신다면요?
아주 오래전이지요.
월북 무용수 회승희 사진으라도 보여 주어 감사합니다.
그녀가 우리 어머니 보다 한살 아래네요 지금 살았으면 101세가 되는군요.
어려서 대구 키네마에서 공연 할때 부모님 따라서 공연을 보았습니다. 어떠게 기억 하냐고요. 부모님이 펜이라서 공연장에서 커다란 사진 석장 사서 집 마루에 걸어 두었거던요. 근데 월북 소식과 함께 사진 때어 내어서 어디다 두었는 지.. 낮익은 사진도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