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겹의 창
이설빈
이제 한 겹의 눈부심을 밀면, 우리, 알 수 있을까? 내가 비추는 이곳이 어느 자오선에 걸쳐 있는지. 어느 예리한 시간이 첨탑 끝에 째깍 이며 또 하나의 절망을 손에 쥔 사과처럼 끊이지 않게 돌려 깎는지. 알 수 없으나 나는 비춰볼 수 있다. 그때 태양은 태양이 비추는 칼날보다 깊이가 없었다. 어떠한 빛도 모든 열쇠구멍을 들여다보진 못했으니 남아있는 신비들은 각자의 어둠으로 굳게 잠긴다. 들어설 수 없으나 나는 드리울 수 있다. 내 눈은 가장 자명하고도 황홀한 폐쇄이기에. 내 앞의 너는 너에게만 없다. 어디로부터일까? 너는 나를 강제하고 있다. 나는 내가 비집고 들어선 시간들에만 가까스로 꽂혀 있는데. 우리의 어린 회환은 너무 가까운 웅덩이에서 텀벙거리고 용서는 언제나 다 헤진 바짓단 끌며 먹구름처럼 우리를 배웅해왔다. 눈인가, 지금 양어깨를 감싸 안는 침묵은? 이제 붉은빛과 푸른빛의 교차를 메우는 한 장 구겨진 어둠으로 너는 창밖에 어려 있다.
다시 한 겹의 어두움을 밀면, 우리, 뉘우칠 수 있을까? 심지를 북돋으며 네가 말했다, 커다란 그림자 아래로 위문 온 작은 그늘처럼. 함부로 나, 고개 들지 못하겠어. 가려져 명멸하는 저 빛 깊숙이 아프게 꽂힐까봐. 이 봐, 하지만…… 너는 걸음을 멈춘다. 마치 침묵이라는 게 질문을 멈추기 위해 시작된다는 듯이. 말없이 너는 불빛 가까이로 다가갔다, 불빛에 매몰되듯이. 너의 뒤에 서 있던 내가 완전히 어둠에 잠길 때까지. 이게 뭐지? 공포가 빗겨간 가로등 아래 아직도 너의 손이 들려있다. 촉감도 없이. 지금 젖은 주머니 속 구겨진 손바닥을 꺼내 펴 보이면 반짝 돌아보며 사라지는 골목들. 무성한 규칙의 잎 저편의 미소들. 비인가, 내 작은 창에 점묘로 찍히는 기척들. 벗어든 안경에 비춰 누군가 속삭인다. 너는 빈 열쇠고리의 서글픈 윤기야…… 나는 누굴 열고 들어선 걸까? 너는 너에게만, 내 뒤의 너에게만 너는 없는데. 눈 감아도 여전히 같은 눈빛의 궤도를 돌고 있다. 고개를 들면
계간 『포엠포엠』 2015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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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빈 시인
1989년 서울에서 출생. 강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 2014년 제14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시문단에 데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