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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부가 빗으로 머리를 곱게 빗으며 말했다. 이 남자에게는 긴장감이 전혀 없었다.
에르메스 양복에 샤넬 선글라스. 이라부의 잘 차려입은 모습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실제로 거리를 걸어가자 사람들이 그를 피해 갔다.
“선생님. 미간을 찌푸리고.”
“이렇게?”
아무리해도 잡히지 않는다. 산수 문제를 풀지 못하는 초등학생처럼 보였다.
“그럼, 눈앞의 간식을 빼앗겼다고 상상해보세요.”
“이렇게?” 그제야 박력이 있어 보였다.
“네네. 꼭 침묵을 지키시고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다짐을 놓았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문을 열어보니 생각했던 대로 일반 손님은 한명도 없고 요시야스와 청년 두 명이 안쪽 테이블에 떡 버티고 앉아 있었다.
“왜 혹이 붙었냐?” 요시야스가 떫은 목소리로 말했다.
“말조심해. 여기 계신 분은 우리가 여러모로 신세지고 있는 정신과의, 아니, 정신회 이라부 선생님이시다.”
“정신회? 어디 단체냐?” 요시야스가 턱을 불쑥 내밀며 말했다.
“이봐, 요시야스. 개망신 당해 볼래? 아무리 작은 세력권에 사는 인간이라도 이렇게 세상모를 수가.”
세이지가 큰소리쳤다. 그리고 “선생님, 누추한 곳에서 죄송합니다.” 하며 이라부에게 머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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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부가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고 가슴을 젖혔다. 그 위엄 있는 모습에 요시야스는 말문이 막혔다.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이블에 앉기 전에 몸수색을 당했다. 청년들이 겨드랑이와 허리춤를 뒤지다가 이라부의 상의 안쪽 주머니에서 주사기가 나왔다. 세이지가 눈을 부라렸다. 그걸 왜 가지고 다니는 거야~.
“어이, 지저분한 손으로 선생님을 만지면 안 되지.” 세이지가 선수를 쳐 입을 열었다.
“이라부 선생님은 각 단체를 돌아다니며 젊은이들에게 약의 해로움을 강의하고 계시다. 그 교재다.” 정말이지 구차한 변명을 했다. 이라부는 태연하게 버티고 있었다.
“…뭐, 됐고. 선생님, 우리가 맡아두겠습니다.” 요시야스가 집어 들었다.
“야, 이쪽도 그쪽 몸수색을 해야지.” 세이지가 요구하자 요시야스는 얼굴이 굳어지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노, 입장을 잘 모르는 거 아냐? 시비를 걸어온 건 너야.”
“까불지 마. 트집을 잡은 건 그쪽이야. 피차일반이야.”
다가가서 요시야스의 허리춤을 더듬적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단도가 바지춤에 꽂혀 있었다. 칼집에 꽂혀있기는 했지만 강철 칼날을 떠올리자 핏기가 싹 가셨다. 만약 칼을 뽑는다면 이쪽은 패닉 상태가 된다.
“이봐, 이건 어떻게 된 거지? 교섭할 생각이 없으면 돌아간다.” 세이지가 험악한 눈초리로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