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월이 되면 `잔인한 달`이라는 말을 한번쯤 듣게 된다. 영국 시인 T.S. 엘리어트가 1922년 쓴 `황무지(The Waste Land)`라는 시의 첫 구절에 등장하는 문구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est month)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제1차 세계대전이 종료되고 3년뒤 쓰여진 이 시는 전후 유럽의 절망적 상황을 표현했고 엘리어트는 1948년 노벨문학상을 거머쥐었다. 한국 현대사의 제주 4·3사건과 4.19혁명을 연상하며 매년 4월이 되면 친숙하게 듣게되는 구절이다.
그러나 주식시장에서 `잔인한 달`은 4월이 아니라 5월이다. 올해 5월을 앞두고도 한국은 물론 미국 증시에서도 주가급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주식시장에서 `5월은 잔인한 달`
한국 증시를 되돌아보면 5월 증시는 유독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2010년 이후 최근 3년동안 5월엔 주가가 예외없이 하락했다.
코스피가 연간 9.4% 상승한 2012년에도 5월엔 주가가 7% 하락했고 2011년에도 5월엔 주가가 2.3% 떨어졌다. 2010년에도 코스피는 21.9% 올랐지만 5월엔 주가가 5.8% 하락했다. 2009년 5월엔 코스피가 1.9% 상승했다. 하지만 그 해 주가가 연간 49.7% 상승한 걸 감안하면 5월 주가가 상승했다고 하기는 민망할 정도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도 최근 3년동안 5월엔 예외없이 하락했다. 2012년엔 6.3% 떨어졌고 2011년 1.4% 2010년 8.2% 하락했다. 이쯤 되면 주식시장에서 5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5월에 주가가 유독 약세를 보이는 현상이 그냥 우연일까. 월가에 `5월엔 팔고 떠나라(sell in May and go away)`라는 격언이 있는 걸 보면 단순히 우연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매년 5월엔 그해 주요 경제정책들이 모두 발표된 상태에서 기업들의 1분기 실적발표까지 완료된다. 연초 투자로 인한 성과를 점검하고 여름휴가를 준비하며 본격적으로 비수기에 접어드는 시기다.
미국의 증권투자자문 사이트인 `the Stock Trader`s Almanac` 자료를 보자. 1950년이래 다수존스 산업평균지수의 5월부터 10월까지 평균 상승률은 0.3%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11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평균 상승률은 7.5%에 이른다. 5월에 주식을 팔고 떠났다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1월에 다시 주식을 사들이라는 월가 격언이 근거없이 생긴 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수치다.
▶ 5월만 보지 말고 연초 주가도 보라
올해 주식시장에도 5월을 앞두고 온갖 악재들이 부각됐다. 우선 엔화 약세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의 강력한 양적완화 정책으로 달러당 100엔 돌파는 시간문제로 여겨질 정도다. 수출기업 경쟁력 약화와 실적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개성공단 가동중단에 따른 북한 리스크, STX조선해양 유동성 위기도 부담요인이다. 올해 5월도 잔인한 달이 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하지만 곰곰 따져보면 최근 몇 년동안 주가가 5월마다 부진했던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예를 들어 2012년5월에는 스페인 구제금융설과 그리스 유로존 탈퇴가능성이 확산되며 유럽 금융위기가 증폭되던 시기다. 2011년엔 일본 대지진 충격과 함께 그리스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이 대두되던 시기였다. 2010년 5월에도 미국 1차 양적완화 종료와 함께 유럽 재정위기가 부각되던 때였다. 우연히도 최근 몇 년간 5월엔 돌발악재가 많았던 셈이다.
1∼4월 증시가 상대적으로 강하다 보니 그 반작용으로 5월 주가가 부진했던 측면도 무시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2012년 1~4월 주가는 8.6% 상승했고 2011년에도 같은기간 6.9% 올랐다. 2010년에도 1~4월 3.5% 상승했다. 이처럼 최근 3년동안 증시는 1~4월 강세를 보인후 5월들어 반락하는 패턴을 보였다.
그런데 2013년엔 주가가 4월말까지 1.7% 하락했다. 연초에 주가가 상승한 상태에서 5월 주가가 하락하던 최근 몇년간의 패턴과는 정반대로 움직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1~4월 주가가 하락했던 2008년에는 5월 주가가 1.5% 상승한 전례가 있다.
▶ `가정의 달` 수혜주는 믿거나 말거나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스승의 날(15일) 등 각종 기념일이 집중돼 있다. 선물용품 판매가 늘어나면서 증시에서는 `가정의달 수혜주`로 백화점까지 포함시킬 정도다. 문구, 완구 등 어린이용품 회사는 말할 것도 없다. 손오공, 예림당, 오로라월드, 대원미디어 등이 4~5월 반짝 상승했다가 5월 중순 이후 주가가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