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何謂知言 曰 詖辭知其所蔽 淫辭知其所陷 邪辭知其所離 遁辭知其所窮 生於其心 害於其政 發於其政 害於其事 聖人復起 必從吾言矣 (공손추가 묻기를,) “무엇을 일러 말을 안다고 하십니까?”라고 하니,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편벽된 말에서 그 가린 바를 알며 방탕한 말에서 그 빠진 바를 알며 간사한 말에서 그 괴리된 바를 알며 도피하는 말에서 궁지에 몰린 바를 알 수 있으니 마음에서 생겨나 정사에 해를 끼치며 정사에서 나타나 그 일에 해를 끼치니 성인이 다시 나오셔도 반드시 내 말을 따르실 것이다.”라고 하셨다. 詖, 彼寄反. 復, 扶又反.
○ 此公孫丑復問而孟子答之也. 詖, 偏陂也. 淫, 放蕩也. 邪, 邪僻也. 遁, 逃避也. 四者相因, 言之病也. 蔽, 遮隔也. 陷, 沈溺也. 離, 叛去也. 窮, 困屈也. 四者亦相因, 則心之失也. 人之有言, 皆本於心. 其心明乎正理而無蔽, 然後其言平正通達而無病; 苟爲不然, 則必有是四者之病矣. 이는 공손추가 다시 묻고 맹자가 그에 대답한 것이다. 詖란 편파적(치우친)인 것이다. 淫이란 방탕한 것이다. 邪란 사특하고 편벽됨이다. 遁이라 도피한다는 것이다. 넷은 서로 원인이 되므로, 말의 병폐다. 蔽란 가려졌단 말이다. 陷이란 빠져들었다는 말이다. 離란 배반하고 떠났다는 말이다. 窮이란 곤궁하여 굴복한 것이다. 이 넷 또한 연관된 것이니, 곧 마음의 허물이다. 사람이 말을 하는 것은 모두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 마음이 바른 이치에 밝아서 가려짐이 없다면, 그런 연후에 그 말은 공평하고 바르며, 두루 통달하여 병폐가 없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이 네 가지의 병폐가 생겨나게 될 것이다.
朱子曰 詖淫邪遁 蔽陷離窮四者 相因 心有所蔽 只見一邊不見一邊 如楊氏爲我墨氏兼愛 各只見一邊 故其辭詖 詖是偏陂 此理本平正 他只說得一邊 字凡從皮 皆是一邊意 如跛是脚一長一短 坡是山一邊斜 蔽則陷(陷深入之義也) 是身陷在那裏 如陷溺於水 只見水不見岸了 故其辭放蕩而過 說得週遮浩翰 纔恁也 陷入深了 於是一向背却正路開去 愈遠遂與正路相離了 故其辭邪 旣離去了正路 他那物事不成 物事畢竟用不得 遂至於窮 窮是說不去了 故其辭遁 遁是旣離後走脚底話 如楊子本是不拔一毛以利天下 却說天下非一毛所能利 夷子本說愛無差等 却說施由親始 佛氏本無父母 却說父母經 皆是遁辭 주자가 말하길, “詖淫邪遁(치우치고 방탕하고 간사하고 회피함)에 있어서, 蔽陷離窮(가려지고 빠져들고 멀어지고 곤궁함)의 4가지는 서로 원인이 되는 것이다. 마음에 가려진 바가 있으면, 그저 한쪽만 볼 뿐 다른 한쪽은 보지 못한다.예컨대, 양씨의 爲我설과 묵씨의 兼愛설이 각자 그저 한쪽만 보았기 때문이 그 말이 편파적이었듯이 말이다. 詖는 편파적이라는 말이다. 이 이치가 본래는 공평하고 바른 것이었지만, 그들은 그저 한쪽만 말했다는 것이다. 글자는 무릇 皮자를 부수로 하면, 모두 한쪽이라는 뜻이 있다. 예컨대 跛자는 다리가 하나는 길고 하나는 짧다는 것이고, 坡자는 산의 비탈진 한쪽이다. 가려지면 곧 빠져드니(陷이란 깊이 들어간다는 뜻이다), 제 몸이 그곳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예컨대, 물에 빠져들면, 그저 물만 볼 뿐 벼랑은 보지 않는 않는 것과 같다. 그래서 그 말이 방탕하고 지나쳐서, 두루 감추면서 호탕하게 말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이렇게 된다면, 깊숙이 빠져드는 것이다. 이에 줄곧 바른 길과 등지고 가버리는데, 멀리 갈수록 도리어 바른 길과는 서로 멀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말이 사특한 것이다. 기왕에 바른 길로부터 멀어졌으니, 그의 저 물건과 일는 이루어지지 못하여, 물사를 결국 쓸 수가 없어서, 마침내 곤궁함에 이를 것이다. 궁하면 말을 해나갈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 말이 도망쳐 회피하는 것이다. 도망치는 말이란 기왕에 정도에서 벗어난 후에 더 나아가서 하는 말이니, 예컨대, 양자가 한 말은 본래 터럭 하나를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할지라도 뽑지 않겠다는 것이었는데, 도리어 말하길, 천하는 터럭 하나로 능히 이롭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고, 夷子는 본래 사랑에는 차등이 없다고 말했지만, 도리어 사랑을 베푸는 것은 부모부터 시작한다고 말했으며, 불씨는 본래 부모를 무시하였지만, 도리어 부모경을 말했으니, 이런 것들은 전부 遁辭다.”라고 하였다.
問楊墨似詖 莊列似淫 儀秦似邪 佛似遁 曰 不必如此分別 有則四者俱有 其序自如此 누군가 묻기를, “양주와 묵적은 치우친 것 같고, 장자와 열자는 방탕한 것 같으며, 장의와 소진은 사특한 것 같고, 불씨는 도망치는 것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이와 같이 나누어 구별할 필요는 없다. 있으면 네 가지가 다 있는 것이지만, 그 차례는 저절로 이와 같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此一章專以知言爲言 若不知言 則自以爲義而未必是義 自以爲直而未必是直 是非且莫辨矣 然說知言 又只說知詖淫邪遁四者 蓋天下事只有一箇是與不是而已 若辨得那不是底 則便識得那是底了 然非見得道理十分分明 則不能辨得親切 且如集義皆是見得道理分明 則動靜去處 皆循道理 無非集義也 이 한 章은 오로지 知言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만약 말을 알지 못하면, 스스로 義라고 여기지만 반드시 義가 아닐 수도 있고, 스스로 곧다고 여기지만 반드시 곧은 것이 아닐 수도 있으니, 是非도 또한 분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말을 안다고 말할지라도, 또한 말의 詖淫邪遁이라는 이 네 가지를 안다고 말할 따름이다. 대체로 천하의 일에는 단지 하나의 옳거나 옳지 않음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만약 저 옳지 않은 것을 변별할 수 있다면, 곧바로 저 옳은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리를 매우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친근하고 절실하게 변별할 수 없으니, 또한 마치 集義함에 있어, 항상 도리를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다면, 動靜과 去處가 모두 도리를 따라서 集義가 아님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蔡氏曰 知言 則善惡邪正 皆當知之 此之所知 獨詖淫邪遁之辭 何也 蓋孟子之時 楊墨之言 盈天下 正人心息邪說 莫此爲急 故曰 楊墨之道不息 孔子之道不著 此其意也 채씨가 말하길, “말을 알면, 善惡과 邪正도 모두 마땅히 알아야 한다. 여기에서는 알아야 할 바가 단지 詖淫邪遁의 말이라 하였으니, 어째서인가? 대체로 맹자의 시대에는 양주와 묵적의 말이 천하에 가득 차서, 인심을 바로잡고 사특한 학설을 종식시켜야 했는데, 이것보다 급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말하길, 양주와 묵적의 도가 그치지 않으면, 공자의 도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했던 것이니, 이것이 바로 그 뜻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言形於外 故以病言 心存於中 故以失言 경원보씨가 말하길, “말은 밖으로 형체화되기 때문에 病을 가지고 말한 것이고, 마음은 흉중에 보존되는 것이기 때문에, 잃는다는 것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詖淫邪遁 雖是四件 却只是兩件 詖淫屬陽 邪遁屬陰 蓋詖尙有一邊是道理 邪則幷這一邊 亦離了 淫是詖之深 遁是邪之極 如楊墨初以爲我兼愛爲仁義 雖非仁義之全體 猶自見得仁義之一偏 其終也至於無父無君 則其離仁義也遠矣 天下道理好底四件不好底亦四件 元亨利貞仁義禮智是好底 詖淫邪遁意必固我是不好底 好底相因 不好底亦相因 元亨利貞起於元 仁義禮智起於仁 意必固我起於意 詖淫邪遁起於詖 當看四箇所字 如看病相似 詖淫邪遁是病證 蔽陷離窮是病源 所蔽所陷所離所窮 是病源之所在 墨氏之蔽在於見仁而不見義 楊氏之蔽在於見義而不見仁 其蔽雖同 而所以蔽則異 孟子知言 如明醫然 纔見病證 便說病源在何處 欲治蔽陷離窮之病 在先去其蔽 無所蔽便無下面三件 蔽之源不一 有爲氣稟所蔽 有爲物欲所蔽 有爲學述所蔽有爲習俗所蔽 問去蔽之道 當如何 曰 孔子嘗謂六言六蔽 皆基於不好學 欲去蔽者 當自好聖賢之學始 쌍봉요씨가 말하길, “詖淫邪遁은 비록 4건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저 2건일 뿐이다. 詖淫은 양에 속하고, 邪遁은 음에 속한다. 대체로 치우침에는 그래도 한쪽이 도리인 점이 있지만, 사특함에는 곧 이 한쪽마저 또한 정도에서 벗어난 것이다. 淫이란 치우침이 깊은 것이고, 遁이란 사특함이 지극한 것이다. 예컨대 양주와 묵적은 처음에 爲我와 兼愛를 仁義라고 여겼는데, 비록 그것이 仁義의 온전한 體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仁義의 한쪽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끝에는 아비도 없고 임금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것이 仁義에서 벗어남이 매우 멀었던 것이다. 천하의 도리 중에 좋은 것이 4건이고, 좋지 않은 것이 4건인데, 元亨利貞과 仁義禮智는 좋은 것이고, 詖淫邪遁과 意必固我(선입견, 기필함, 고집함, 이기심)는 나쁜 것이다. 좋은 것은 서로 원인으로 하고, 나쁜 것도 역시 서로를 원인으로 삼는다. 元亨利貞은 元에서 일어나고, 仁義禮智는 仁에서 기인하며, 意必固我는 선입견에서 기인하고, 詖淫邪遁은 치우침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마땅히 4개의 所자를 잘 살펴보아야 하는데, 예컨대 병을 살펴보면 서로 비슷하지만, 詖淫邪遁은 병의 증세이고, 蔽陷離窮은 병의 원인이며, 가리는 바와 빠지는 바, 벗어난 바와 곤궁한 바는 병의 원인이 존재하는 곳이다. 묵씨의 가려짐은 仁을 보았을 뿐 義를 보지 못한 것에 있었고, 양씨의 가려짐은 義를 보았을 뿐 仁을 보지 못한 것에 있었으니, 그 가려짐은 비록 같았지만, 가려진 것은 달랐던 것이다. 맹자가 말을 안 것은 마치 명의가 그러한 것과 같았으니, 조금이라도 병의 증세를 보면, 곧바로 병의 원인이 어느 곳에 있는지 말했던 것이다. 蔽陷離窮의 병을 치료하고자 하면, 먼저 그 가려짐를 제거함에 달려 있으니, 가려지는 바를 없앤다면, 곧바로 아래 3건도 없어질 것이다. 가려짐의 근원은 하나가 아니니, 氣稟에 의해 가려진 바도 있고, 물욕에 의해 가려진 바도 있으며, 학술에 의해 가려진 바도 있고, 습속에 의해 가려진 바도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누군가 묻기를, “가려짐을 제거하는 방도는 마땅히 어떠해야 합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공자께서 일찍이 6言과 6蔽를 말씀하셨는데, 이 모두가 배움을 좋아하지 않음에 터잡은 것이다. 가려짐을 제거하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성현의 학문을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集註釋我知言曰 識其是非得失之所以然 此所謂言之病者 其然也 所謂心之失者 則所以然也 特上文汎指天下之言 故兼是非得失而知之 此則似指告子之言 故專於其失者而知之也 운봉호씨가 말하길, “집주에서 ‘나는 말을 안다’는 것을 풀어서 말하길, 그 是非得失이 그렇게 된 까닭을 안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말한 소위 ‘말의 병폐’라는 것은 그것이 그렇다는 것이고, 이른바 ‘마음을 잃었다’는 것은 곧 그렇게 된 까닭인 것이다. 단지 윗글에서는 천하의 말을 가리켰기 때문에, 시비와 득실을 겸하여 그것을 안다고 하였고, 여기에서는 고자의 말을 가리켜 말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오로지 그 잘못에 대해서 그것을 안다고 하였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集註旣釋蔽陷離窮四者 而下文則曰 其心明乎正理而無蔽 然後其言平正通達而無病 又提出蔽之一字者 蓋四者之失 必起於蔽 饒氏謂無所蔽 便無下面三件 亦其深得集註之意者歟 신안진씨가 말하길, “집주에서 이미 蔽陷離窮 이 네 가지를 풀이하였음에도, 아랫글에서는 ‘그 마음이 바른 이치에 밝아서 가려짐이 없게 된 연후에 그 말이 공평하고 올바르며 통달하여 병폐가 없게 된다고 말하면서, 또한 가려진다는 한 글자만 제출한 것은 대체로 4가지의 잘못이 반드시 가려짐에서 기인하기 때문일 것이다. 쌍봉요씨는 가려지는 바가 없다면, 곧 아래 3건도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 역시 집주의 뜻을 깊이 터득한 것이리라!”라고 하였다.
卽其言之病, 而知其心之失, 又知其害於政事之決然而不可易者如此. 非心通於道, 而無疑於天下之理, 其孰能之? 그 말의 병폐에 나아가, 그 마음의 허물을 알고, 또한 그것이 정사에 해가 됨이 결정적임을 알고서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이와 같으니, 마음이 도에 통하여 천하의 이치에 조금도 의심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누가 이것을 할 수 있겠는가?
問孟子知言處說 生於其心害於其政 先政而後事 闢楊墨處說 作於其心害於其事 先事而後政 朱子曰 先事而後政 是自微而至著 先政而後事 是自大綱而至節目 누군가 묻기를, “맹자의 知言 부분에서 말하길, 그 마음에서 생겨나 그 정사에 해가 된다고 하여, 정사를 앞세우고 일을 뒤로하였는데, 양주와 묵적을 내친 부분에서는 말하길, 그 마음에서 일어나 그 일에 해가 된다고 하여, 일을 앞세우고 정사를 뒤로 돌렸습니다.”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일을 앞세우고 정사를 뒤로한 것은 은미한 것으로부터 현저한 것에 이르는 것이고, 정사를 앞세우고 일을 뒤로 돌린 것은 큰 벼리에서부터 작은 절목으로 이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孟子之所以能知言也 因其言之病而知其心之失 是卽其用而知其體也 又知其害於政事之決然而不可易者如此 是據其始而知其終也 非心與理一 其於天下之事 如燭照數計 略無所疑者 何能如是哉 不然 則知其用者 或不知其體 見其始者 或不見其終者 有矣 경원보씨가 말하길, “맹자가 능히 말을 알 수 있었던 까닭은, 그 말의 병폐로 인하여 그 마음의 잘못을 알았기 때문이니, 이는 그 用에 나아가 그 體를 안 것이다. 또한 그것이 정사에 해가 됨이 결정적임을 알면서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이와 같다는 것은 그 처음을 근거로 해서 그 끝을 아는 것이다. 마음이 이치와 더불어 하나여서, 천하의 모든 일에 대하여 마치 촛불로 비추고 자주 헤아려서 의심하는 바가 조금도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 이와 같이 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 用을 아는 자가 혹여 그 體를 알지 못하고, 그 시작을 알아보는 자가 혹여 그 끝을 알아보지 못한 경우도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政者事之大體 事者政之條目 心纔不正 到處有害 政事皆心之所發 於大體旣有害 則小者可知 故曰 發於其政害於其事 後篇說 作於其事害於其政 是條目上旣有害 則大者亦可知 쌍봉요씨가 말하길, “정사라는 것은 일의 大體이고, 일이라는 것은 정사의 조목이다. 마음이 조금이라도 바르지 않다면, 도처에 해침이 있는 법이다. 정사와 일은 모두 마음이 발현된 것이니, 대체에 이미 해침이 있다면, 작은 것도 어떠할 지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말하길, ’그 정사에 발현되어 그 일에 해가 된다‘고 했던 것이다. 뒤편에서 말하길, ’그 일에서 일어나 그 정사에 해가 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조목 위에 이미 해침이 있다면, 큰 것도 또한 알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所謂害者皆指異端之害而言 詖淫邪遁之言 卽異端之言也 其害或先政而後事 或先事而後政 但言無大無小 無不有害 不必拘先後也 운봉호씨가 말하길, “이른바 害라는 것은 모두 이단의 해를 가리켜 말한 것이니, 詖淫邪遁의 말은 곧 이단의 말이다. 그 害는 간혹 정사를 앞세워서 일을 뒤로하거나, 혹은 일을 앞세워 정사를 뒤로하지만, 크고 작은 것과 상관없이 모두 해침이 있지 않음이 없으니, 반드시 선후에 구애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彼告子者, 不得於言而不肯求之於心; 至爲義外之說, 則自不免於四者之病, 其何以知天下之言而無所疑哉? 저 고자란 사람은 말에서 얻지 못하면 마음에서 구하려 하지 않다가, 의는 밖이라는 설을 하기에 이르렀으니, 그렇다면 자연히 이 네 가지의 병폐를 면하지 못하였으니, 그가 어찌 천하의 말을 다 알아서 의혹하는 바가 없겠는가?
新安陳氏曰 集註於養氣知言兩節皆解 上告子身上 以終前不得於言至勿求於心不可之說事 신안진씨가 말하길, “집주는 養氣와 知言의 두 절에 대하여 모두 풀이함에 있어, 고자의 몸 위로 올라가, 앞의 ‘말에서 터득하지 못한다는 것’에서부터 ‘마음에서 구하지 말라는 것은 안 된다’는 말에 관한 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끝맺음하였다.”라고 하였다.
○ 程子曰: “心通乎道, 然後能辨是非, 如持權衡以較輕重, 孟子所謂知言 是也.” 정자가 말했다. “마음이 도에 통달한 연후에 능히 시비를 분별할 수 있는데, 마치 저울과 저울추를 가지고 경중을 따지는 것과 같으니, 맹자가 말한 이른바 말을 안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又曰: “孟子知言, 正如人在堂上, 方能辨堂下人曲直. 若猶未免雜於堂下衆人之中, 則不能辨決矣.” 다시 말했다. “맹자의 말을 안다고 하는 것은 곧바로 마치 사람이 당상에 있어야만, 비로소 당하에 있는 사람의 굽고 곧음을 능히 분별할 수 있고, 만약 오히려 당하에서 여러 사람들 가운데 섞여 있음을 면하지 못한다면, 그 곡직을 분별하여 결단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新安陳氏曰 此言必有超於衆人之見 然後能知衆人之言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여기서는 반드시 뭇사람의 소견을 초월함이 있어야만, 그 연후에 능히 뭇사람의 말을 알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程子之說莫直是喩心通於道者否 朱子曰 此只是言見識高似他方能辨他是非得失 若見識與他一般 如何能辨得他 누군가 묻기를, “정자의 말은 곧이곧대로 마음이 도에 통하는 사람을 비유한 것은 아닐까요?”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여기서는 그저 식견이 그보다 높아야만 바야흐로 능히 그의 시비와 득실을 분별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만약 식견이 그와 더불어 동일하다면, 어떻게 능히 그를 분별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知言當如何用功 程子心通乎道之說 便是發明知言之要 亦須格物上做來 道便是箇權衡 以道觀人 如持權衡以較輕重 無有能逃之者 知言便是知道 孟子不欲以知道自謂 所以只說知言 告子以義爲外 所以只取必於口 全不反求諸心 如杞柳之說 孟子闢之 則又移爲湍水之說 第一說用不得 又換第二說 是之謂遁辭 쌍봉요씨가 말하길, “말을 알려면, 마땅히 어떻게 공력을 들여야 하는가? 정자의 ‘마음이 도에 통해야 한다’는 말은 곧 知言의 요체를 드러내어 밝힌 것이니, 또한 반드시 格物 위에서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道는 곧 추와 저울이니, 道로써 사람을 살펴보는 것은 마치 저울과 추를 붙잡고서 경중을 비교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에서 능히 도망칠 수 있는 자는 없는 것이다. 말을 아는 것은 곧바로 도를 아는 것이지만, 맹자는 도를 안다고 스스로 말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그저 말을 안다고 말했을 뿐이다. 고자는 義를 밖에 있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래서 그저 입에서 기필함만 취하였을 뿐, 전혀 마음에 돌이켜 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예컨대 杞柳之說과 같은 경우, 맹자가 이를 물리치자, 다시 옮겨서 湍水之說을 주장했으니, 첫 번째 말이 통용되지 않자 다시 두 번째 말로 바꾸는 것, 이것을 일컬어 遁辭라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此章甚長頭緖頗多 其要旨未易究也 知言養氣下集註標出綱令而未及所以能知言養氣之本 朱子與郭冲卿帖云 孟子之學 蓋以窮理集義爲始 不動心爲效 蓋惟窮理爲能知言 惟集義爲能養氣 理明而無所疑 氣充而無所懼 故能當大任而不動心 考於本章次第 可見矣 此章要指 惟此帖盡之 而無餘蘊 集義故能養氣 孟子所已言 窮理故能知言 孟子所未言 心通乎道而無疑於天下之理 程子固言之而提綱挈領以示後學 未有如朱子此帖之明的周備者也 明理以知言 知之之事 集義以養氣 行之之事 不出乎知行二者而已 此章雖未終於此而正意止於此 신안진씨가 말하길, “이 장은 매우 길고, 두서가 대단히 많아서, 그 요지를 쉽게 궁구할 수가 없다. 知言과 養氣의 경우, 집주를 기재하여 그 줄거리을 표출하였을 뿐, 능히 知言과 養氣를 할 수 있는 근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주자가 곽충경에게 帖을 써주면서 이르길, ‘맹자의 학문은 대체로 이치를 궁구하고 의로움을 집적하는 것을 처음으로 삼고, 부동심을 그 효과로 삼는다. 대체로 오직 이치를 궁구해야만 능히 말을 알 수 있다고 여기고, 오직 集義해야만 능히 養氣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니, 이치에 밝아서 의심하는 바가 없고, 호연지기가 충만하여 두려워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능히 大任을 감당하면서도 부동심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本章의 차례를 고찰해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장에서 가리키고자 하는 것은 오직 이 첩에서 다 해버렸기에 더 남은 내용이 없다. 集義하기 때문에 능히 養氣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맹자가 이미 말한 바이지만, 이치를 궁구하기 때문에 능히 말을 알 수 있다는 것은 맹자가 미처 말하지 않았던 바이다. 마음이 도에 통하여 천하의 이치에 대하여 의심하는 바가 없다는 것은, 정자가 진실로 이것을 말하였지만, 그 강령을 붙잡아 이끌어서 후학들에게 보여줌에 있어서, 주자가 이 첩에서 밝게 지적하고 두루 갖춘 것과 같은 것은 일찍이 없었다. 이치를 밝힘으로써 말을 아는 것은 아는 것의 일이고, 義를 집적하여 氣를 기르는 것은 행하는 것의 일이니, 知行 이 두 가지를 벗어나지 않을 따름이다. 이 장은 비록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지만, 올바른 뜻은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2 宰我子貢善爲說辭 冉牛閔子顔淵善言德行 孔子兼之 曰 我於辭命則不能也 然則夫子旣聖矣乎 (공손추가 묻기를,) “자아와 자공은 말을 잘하고 염우와 민자건과 안연은 덕행을 잘 말하였는데, 공자께서는 이것을 겸비하셨는데도 ‘나는 사명에 있어서는 잘 하지 못하였다.’고 하셨으니,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이미 성인이십니다.”라고 하니, 行, 去聲.
○ 此一節, 林氏以爲皆公孫丑之問, 是也. 說辭, 言語也. 德行, 得於心而見於行事者也. 三子善言德行者, 身有之, 故言之親切而有味也. 公孫丑言數子各有所長, 而孔子兼之, 然猶自謂不能於辭命. 今孟子乃自謂我能知言, 又善養氣, 則是兼言語德行而有之, 然則豈不旣聖矣乎? 此夫子, 指孟子也. 이 절에 대해서, 임씨는 모두 공손추의 질문이라고 여겼는데, 옳다. 說辭는 언어다. 덕행이란 마음에서 얻어서 일을 행함에 드러나는 것이다. 덕행을 잘 말했던 제자 세 분은 자신의 몸에 덕행을 가지고 있기에 그에 대한 말이 친절하고 맛이 있었던 것이다. 공손추는 여러 제자들이 각자 자신이 잘하는 바를 갖고 있었으나 공자님은 그것을 모두 겸비하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스스로 사명에는 잘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였는데, 지금 맹자는 도리어 스스로 말하길 자신이 말을 알 수 있고 또한 기운을 잘 기른다고 하였으므로, 이는 곧 언어와 덕행을 같이 갖추고 있는 것이니, 그렇다면 어찌 이미 성인이 아니겠느냐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夫子는 맹자를 지칭한 것이다.
林氏名之奇 字少穎 三山人 임씨는 이름이 지기이고, 자는 소영이며, 삼산 사람이다.
說如字 或讀如稅字 非 說은 원래 글자대로 읽는다. 혹자는 稅자처럼 읽기도 하는데, 잘못된 것이다.
問善爲說辭 則於德行或有所未至 善言德行 則所言皆其自己分上事也 朱子曰 得之 누군가 묻기를, “말을 잘한다면, 덕행에 대해서는 간혹 지극하지 못한 바가 있기도 하지만, 덕행을 잘 말한다면, 말하는 바가 모두 자기의 분수 위의 일인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잘 터득하였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知言 則在我在人一也 知其如此 則於言語辭命 何患不能 養氣 自集義生 豈非德行乎 경원보씨가 말하길, “말을 안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나 남에게 있어서나 동일한 것이다. 그것이 이와 같다는 것을 안다면, 언어와 사명에 있어서 어찌 잘하지 못함을 걱정하겠는가? 호연지기를 기른다는 것은 集義로부터 생기는 것이니, 어찌 덕행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 程子曰: “孔子自謂不能於辭命者, 欲使學者務本而已.” 정자가 말했다. “공자님이 사명에 잘하지 못한다고 스스로 말한 것은 배우는 사람들로 하여금 근본에 힘쓰도록 하고자 하였을 따름이다.”
雲峯胡氏曰 此以後因公孫丑提出一聖字爲問 故專發明一聖字 운봉호씨가 말하길, “여기 이후는 공손추가 하나의 聖자를 제출하여 질문으로 삼았기 때문에, 오로지 聖자 하나를 드러내어 밝힌 것이다.”라고 하였다.
3 曰 惡 是何言也 昔者子貢問於孔子曰 夫子聖矣乎 孔子曰 聖則吾不能 我學不厭而敎不倦也 子貢曰 學不厭 智也 敎不倦 仁也 仁且智 夫子旣聖矣 夫聖 孔子不居 是何言也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니, 이것이 무슨 말인가. 옛날에 자공이 공자에게 묻기를, ‘스승님은 성인이십니까?’ 하니 공자께서 ‘성인은 내 능히 하지 못하거니와 나는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고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노라.’ 하시니, 자공이 말하기를,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음은 지혜요,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음은 인자함이니, 인자하고도 지혜로우니 스승님은 이미 성인이십니다.’라고 하였다. 성인은 공자께서도 자처하지 않았으니 이게 무슨 말인가.”라고 하셨다. 惡, 平聲. 夫聖之夫, 音扶.
○ 惡, 驚歎辭也. 昔者以下, 孟子不敢當丑之言, 而引孔子ㆍ子貢問答之辭以告之也. 此夫子, 指孔子也. 學不厭者, 智之所以自明; 敎不倦者, 仁之所以及物. 再言“是何言也”, 以深拒之. 惡(오)는 놀라는 감탄사다. 昔者 이하는 맹자가 감히 공손추의 말을 감당하지 못하고서, 공자와 자공이 문답한 말을 인용하여 공손추에게 알려준 것이다. 여기서 부자는 공자님을 가리킨 것이다.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는 것은 지혜가 절로 밝아지는 방법이고,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은 仁이 남에게 미치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거듭 말한 것은 심하게 거부한 것이다.
朱子曰 中庸 成己 仁也是體 成物 智也是用 此學不厭 智也是體 敎不倦 仁也是用 주자가 말하길, “중용에서 成己(자기를 이룸)는 仁이자 體이고, 成物(남을 이루어줌)은 智이자 用이다. 여기에서 배움에 싫증 내지 않는다는 것은 智이자 體이고,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다는 것은 仁이자 用이다.”라고 하였다.
潛室陳氏曰 仁智互爲體用 義精仁熟之後 道理縱看橫看皆可 智爲體則仁爲用 仁爲體則智爲用 잠실진씨가 말하길, “仁과 智는 서로 體와 用이 되니, 義가 정밀해지고 仁이 무르익은 뒤에는, 道理를 세로로 보아도 가로로 보아도 모두 괜찮은 것이다. 智가 體가 된다면 仁은 用이 되는 것이고, 仁이 體가 된다면, 智는 體가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不厭不倦 須粘上聖字說 言學聖人之道而不厭 又以聖人之道敎人而不倦 쌍봉요씨가 말하길, “싫증내지 않고 게으르지 않다는 것은 반드시 聖자와 붙여서 말해야 한다. 聖人之道를 배우면서 싫증내지 않고, 또한 聖人之道로 남을 가르치면서 게으르지 않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子貢此言與中庸不同 詳見中庸第二十五章 章句或問輯釋論之 자공의 이 말은 중용과 더불어 같지 않다. 중용 제25장에 상세히 보이니, 장구와 혹문, 그리고 집석에서 그것을 논했다.
4 昔者竊聞之 子夏子游子張皆有聖人之一體 冉牛閔子顔淵則具體而微 敢問所安 (공손추가 말하기를,) “옛날에 제가 들으니 ‘자하와 자유와 자장은 모두 성인의 일부분을 가지고 있었고, 염우와 민자건과 안연은 전체를 갖추고 있었으나 미약하다.’고 했습니다. 감히 선생님께서 자처하시는 바를 묻겠습니다.” 하니
此一節, 林氏亦以爲皆公孫丑之問, 是也. 一體, 猶一肢也. 具體而微, 謂有其全體, 但未廣大耳. 安, 處也. 公孫丑復問孟子旣不敢比孔子, 則於此數子欲何所處也. 임씨는 이 한 절도 역시 모두 공손추의 질문이라고 여겼는데, 옳다. 一體란 하나의 지체와 같다. 具體而微란 그 전체를 갖추었지만 다만 아직 넓고 크지 못함을 일컫는 말이다. 安이란 處한다는 말이다. 공손추는 맹자가 이미 감히 공자와 비교할 수 없다면, 이 여러 제자들에 비하여 어떤 곳에 처하고 싶으신지 다시 물은 것이다.
朱子曰 聖人道大而能博 如游夏得其文學 子張得其威儀 皆一體也 惟顔淵冉閔氣質不偏 理義完具 獨能具有聖人之全體 但未若聖人之大而化之無限量之可言 故以爲具體而微耳 주자가 말하길, “성인께서는 그 도가 크고 능히 넓을 수 있었다. 예컨대 자유나 자하는 그 문학을 터득하였고, 자장은 그 威儀를 터득했는데, 이는 모두 하나의 지체일 뿐이다. 오직 안연과 염옹, 민자건만이 기질이 치우치지 않았고, 理와 義가 완전히 갖추어졌기에, 유독 능히 성인의 온전한 체를 갖출 수 있었지만, 성인의 위대하여 교화시킴의 무한량을 말할 수 있음과는 같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體를 갖추었지만 미흡했다고 여겼던 것일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5 曰 姑舍是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우선 이것은 버려 두어라.”고 하셨다. 舍, 上聲.
○ 孟子言且置是者, 不欲以數子所至者自處也. 맹자가 잠시 이것을 놓아두자고 말한 것은 여러 제자들이 이른 곳으로써 자처하고 싶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陵陽李氏曰 問如集註之說 則孟子猶有不足於顔子歟 天台潘氏曰 孟子之志 願學孔子 是誠有不足於顔子者 蓋非不足於顔子 以顔子不幸短命而未至於聖人之域 前輩云 纔遜第一等事 與別人做 便是自棄 故人之志大率如此 然立志之後 須要力行以酬其志 不可徒有此志也 능양이씨가 말하길, “누군가 묻기를, ‘집주의 말과 같다면, 맹자는 그래도 안자를 부족하다고 여김이 있는 것인가요?’라고 하였다. 천태반씨가 말하길, ‘맹자의 뜻은 공자를 따라 배우길 원했으니, 이는 정말로 안자에게 부족함이 있다고 여긴 점이 있는 것이다. 이는 대체로 안자를 부족하다고 여긴 것이 아니라, 안자가 불행하게도 단명하여 성인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라고 하였다. 선배들이 이르길, ‘첫 번째 가는 일을 조금이라도 양보하여 남에게 주어서 하도록 한다면, 이는 곧 스스로를 버리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옛사람의 뜻은 대략 이와 같았다. 그러나 뜻을 세운 후에는 모름지기 힘써 행함으로써 그 뜻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지, 헛되이 이 뜻만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6 曰 伯夷伊尹何如 曰 不同道 非其君不事 非其民不使 治則進 亂則退 伯夷也 何事非君 何使非民 治亦進 亂亦進 伊尹也 可以仕則仕 可以止則止 可以久則久 可以速則速 孔子也 皆古聖人也 吾未能有行焉 乃所願 則學孔子也 (공손추가) 말하기를, “백이와 이윤은 어떻습니까?” 하니,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도가 같지 않으니, 섬길 만한 군주가 아니면 섬기지 않으며, 부릴 만한 백성이 아니면 부리지 않아서 세상이 다스려지면 나아가고 어지러워지면 물러간 것은 백이였고, 누구를 섬긴들 주군이 아니며 누구를 부린들 내 백성이 아니겠는가 하여 다스려져도 나아가고 혼란스러워도 나아간 것은 이윤이였고, 벼슬할 만하면 벼슬하고 그만둘 만하면 그만두며 오래 머무를 만하면 오래 머물고 빨리 떠날 만하면 빨리 떠나신 것은 공자이니, 모두 옛 성인이다. 내가 행함이 없지마는 내가 원하는 것은 공자를 배우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治, 去聲.
○ 伯夷, 孤竹君之長子. 兄弟遜國, 避紂隱居, 聞文王之德而歸之. 及武王伐紂, 去而餓死. 伊尹, 有莘之處士. 湯聘而用之, 使之就桀. 桀不能用, 復歸於湯. 如是者五, 乃相湯而伐桀也. 三聖人事, 詳見此篇之末及「萬章」下篇. 백이는 고죽국 임금의 큰아들이다. 형제가 나라를 양보하고 주왕을 피해 은거하였다가, 문왕의 덕을 듣고 귀의하였다. 무왕이 주왕을 정벌함에 이르러, 무왕을 떠나가서 굶어 죽었다. 이윤은 유신 땅의 처사다. 탕임금이 초빙하여 기용하였는데, 그로 하여금 걸왕에게 나아가도록 하였지만 걸왕이 기용하지 못하였고, 다시 탕임금에게 되돌아왔다. 이와 같이 한 것이 5번이었는데, 마침내 탕임금을 도와 걸왕을 정벌하였다. 세 성인의 일은 이 편의 끝 내지 만장 하편에 상세히 보인다. 魯齋王氏曰 乃所願則學孔子 後四段 盡在此句 노재왕씨가 말하길, “그래도 바라는 것은 공자를 따를 배우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뒤의 4단락은 모두 이 구절에 다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孟子以顔子具聖人之體而未極其大 故欲學其大者 以伯夷伊尹有聖人之德而未極其全 故欲學其全者 故此以下 則專言夫子之聖 운봉호씨가 말하길, “맹자는 안자가 성인의 체를 갖추었지만 그 큼에는 미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큰 것을 배우고자 하였고, 백이와 이윤이 성인의 덕을 가지고 있지만 그 온전함에는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온전한 것을 배우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여기 이하로는 공자님의 성스러움을 오로지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