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편일률(千篇一律) - 천권의 책 내용이 하나의 법칙처럼 똑같다.
[일천 천(十/1) 책 편(竹/9) 한 일(一/0) 법칙 률(彳/6)]
‘사람의 마음은 하루에도 열두 번’으로 朝變夕改(조변석개)한다. 물론 ‘임 향한 一片丹心(일편단심)’처럼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 소수의 충신과 열사들은 영원히 기림을 받는다. 그러나 변하지 않아 식상한 것이 있으니 천 권이나 되는 많은 글(千篇)이 모두 한 가지 법칙(一律)처럼 운율이 같다면 읽는 사람은 고통이다.
여러 시문의 작품이 내용이 모두 비슷비슷해 독특한 개성이 없다는 데서 유래했다. 어떤 일을 처리하는데 모두가 판에 박은 듯 같거나 다른 사람이 예상한 데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면 舊態依然(구태의연)하다며 외면 받는다. 一律千篇(일률천편)이라 해도 같다.
글자의 뜻대로 풀어 쓴 때문인지 따르는 고사는 없이 시문을 평하면서 비유로 여러 곳에 나온다. 앞선 시대부터 몇 곳만 보자. 중국 魏晉南北朝(위진남북조)시대의 문학가 鍾嶸(종영, 468?~518, 嶸은 가파를 영)의 ‘詩品(시품)’에 먼저 등장한다.
중국시의 발전에 공헌했다는 평을 받는 종영은 漢(한)나라에서 시작하여 梁(양)나라에 이르기까지 五言詩(오언시)의 작자 122명을 품평한 이 책으로 전문적인 시론의 대가가 됐다고 한다. 西晉(서진)의 문학가 張華(장화)의 작품을 화려하고 아름답다고 칭찬하면서 평한 글이 실려 있다. ‘장화는 비록 천 편을 쓴다 해도, 역시 하나의 문체이다(張公雖復千篇 猶一體耳/ 장공수부천편 유일체이).’
宋(송)나라 문호 蘇軾(소식, 1037~1101)이 과거시험에 제출하는 답안들에 대해 말한다. ‘오늘날 시험에 제출한 문장들은 천 사람의 글이 하나의 격률이어서 채점하는 관리들도 역겨워한다(今程試文字 千人一律 考官亦厭之/ 금정시문자 천인일률 고관역염지).’ 조카에게 독서의 방법을 조언하는 ‘答王庠書(답왕상서)’에 나오는 내용이라 한다.
明(명)의 문학가로 격조를 소중히 여기는 擬古主義(의고주의)의 王世貞(왕세정, 1526~1590)은 唐詩(당시) 대가를 존경하면서도 白樂天(백낙천)에 한마디 남겼다. ‘나이가 들어 다시 만족할 줄 알라는 글을 썼는데 모든 작품이 한결같았다(晩更作知足語 千篇一律/ 만경작지족어 천편일률).’ 그의 예술론이 담겼다는 ‘藝苑卮言(예원치언)’에서다. 卮는 술잔 치.
함께 모여 사는 사회에서 너무 모가 나면 손가락질 받지만 기본 규칙을 지키면 잘 화합한다. 그러는 중에서 大同小異(대동소이)란 말과 같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넘어서 조금 차이가 나는 개성을 잘 살린다면 특출하다고 칭찬받는다. 여기서의 조금 다른 것이 개성인 셈이다. 문장에서 이전과 유사한 문체라면 약간 달라도 좋은 평을 못 받는다. 이름난 문장가의 애송되고 있는 글도 한 가지 문체나 율조로 변함이 적고 단조롭다면 크게 본받을 게 없다는 이야기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지만 보는데 따라 달리 보인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