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록의 사악한 용이 자리 잡은 곳. 그곳을 우리는 용산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이 용이란 표현도 가당치 않은 용산의 이무기, 악마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자, 온 세계를 속이던 그 자가 지난 12월 3일 밤에, 뭐라고 표현할까 고민 많이 했습니다... 지랄발광을 하였습니다.”
12월 9일 대전 성흥동 성당 시국강론에서 김용태 마태오 신부가 하신 말씀. SNS에서 돌고 있는 클립영상을 어젯밤에야 봤다.
묵시록 12장 3절에 출연하는 뿔 7개 달린 용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하늘에서 내쫓긴 용이 땅으로 떨어졌는데 그곳이 바로 용산이더라는 스토리 전개가 기발하고도 매끈하다. 어느 목사가 그 자를 예수에 비유했었다지. 아마도 그 카운터펀치인 듯하다. 오랜만에 통쾌했다.
김용태 신부가 김대건 신부의 먼 후손이라는 TMI도 함께 퍼지던데, 내 눈에 꽂힌 TMI는 김용태 신부가 강론을 한 대흥동 성당이다. 나는 가톨릭 신자는커녕 냉담자도 못 되지만 저 성당은 쫌 안다. 대전 성심당이 바로 저 성당에서 비롯되었다.
아시다시피 성심당은 피란민 가족이 일군 빵집이다. 성심당 창업주 고 임길순(1911∼97)은 가족을 데리고 바람 찬 흥남부두에서 미군 수송선을 타고 거제도까지 내려온다. 그러나 먹고 살 길이 막막해 상경을 결심한다. 1956년 임길순 가족이 진해에서 기차를 타고 상경하던 길. 운명의 장난이었는지 기차가 대전역에서 멈춰 선다. 기차가 서 버리면 하세월을 기다렸던 시절, 임길순은 하느님의 뜻으로 여기고 대전에서 살기로 작정한다. 서울이나 대전이나 타향이긴 매한가지였다.
이북에서도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임길순은 대전역에서 가장 가까운 성당부터 찾아간다. 그 성당이 대흥동 성당이다. 성당에서 오기선 신부가 임길순의 사정을 듣고 밀가루 두 포대를 준다. 그 밀가루로 임길순은 대전역 앞에 천막을 치고 찐빵을 만들어 판다. 그게 성심당의 시작이다. 성당(聖堂)이 하느님이 계신 곳이면, 성심당(聖心堂)은 하느님의 마음이 임한 집이다. 성심당은 역전 노점 시절부터 매일 빵이 남으면 주변에 나눠준다. 배 고픈 사람을 찾아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당시 대전역앞과 목척교 아래는 죄 거지 천지였다.
임길순은 2년 만에 대전역 앞에 월세로 가게를 얻는다. 그로부터 9년 뒤인 1967년 대흥동 성당 건너편인 지금의 자리로 옮긴다. 이유는 하나다. 성당 종소리를 듣고 싶어서였다. 지금은 번화가가 됐지만, 그 시절엔 성당만 덩그러니 선 벌판이었다. 아래에 포스팅한 사진이 작년 성심당문화원에서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촬영한 대흥동 성당이다.
임길순의 봉사활동은 대부분 대흥동 성당과 함께 이뤄졌다. 임길순의 봉사활동 파트너가 두봉 주교다(‘살아있는 성인’으로 불리는 그 분). 20대 초짜 신부였던 두봉은 임길순과 짝을 이뤄 ‘비밀 봉사활동’을 한다. 두봉 신부가 형편 어려운 이웃의 주소를 알아내 임길순에 알려주면, 임길순은 빵집 일을 다 끝내고 그 집들을 찾아다니며 몰래 빵을 넣어줬다. 두봉 신부는, 선행은 남 모르게 해야 한다고 임길순을 가르쳤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가 있다. 임길순은 성당에서 연령회 일에 진심이었다. 연령회는 성당에서 장례를 치러 주는 봉사단체다. 그 시절엔 장례도 못 치르는 사람이 많았다. 임길순은 성당 연령회장을 20년 넘게 맡았다. 장례 일 중에서 가장 궂은 일인 염을 주로 담당했다. 시신 씻기고 수의 입히고 염포로 싸서 입관하는 일까지 전 과정을 도맡았다. 빵 만드는 손으로 임길순은 시신을 닦았다.
대전에서 성심당을 취재하다 두봉 신부를 알게 되었는데, 안동에서 권정생 선생을 취재하다 두봉 신부, 아니 이제 두봉 주교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권정생 선생과 두봉 주교의 인연은 대충 알고 있었으나, 두봉 주교가 명맥 끊겼던 하회별신굿탈놀이(하회탈춤)를 복원한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그때 처음 알았다. 하회마을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결정적 이유 중 하나가 마을 전통놀이가 오늘도 계승되고 있어서다. 앞서 적었듯이, 두봉 주교의 선행은 늘 남 모르게 이뤄졌다.
세상은 인연으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세상은, 알고 보면 좋은 사람들의 좋은 인연으로 이어져 있다. 123 계엄 사태를 통렬히 꾸짖은 김용태 신부의 강론도 다 저 고운 인연들이 내려온 것일 테다. 시국미사가 열렸던 날에도 임길순의 뜻을 물려 받은 성심당 식구들이 성당에 앉아 있었을 것이고. 하늘에서 추방된 사악한 용만 제 무리가 있는 게 아니다.
두봉 주교를 아직 한번도 못 뵈었다. 1929년생이니까 내년이면 96세다. 안동 아래 의성에 작은 처소 마련해 조용히 살고 계시다던데. 꼭 한번은 뵙고 싶다. 좋은 사람과 좋은 일만 생각해야지, 올 겨울은 좋게 살기가 너무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