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인구론>의 맬서스가 인구과잉에 따른 빈곤의 위기를 경고했던 18세기 말의 세계 인구는 10억이 채 되지 않았다. 그의 예측대로 세계 인구는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200여년 사이에 8배가 됐다. 농경사회 이후 인구가 10억을 넘는 데 걸린 기간은 1만년이지만, 이후 10억이 더 늘어나는 데는 불과 한 세기 남짓이면 족했다. 60억에서 70억이 되는 덴 1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6년 후엔 80억을 넘어선다.
그러나 맬서스의 우려와는 달리 인류는 이 엄청난 인구를 먹여 살리는 다양한 방법을 개발해왔다. 삶의 질도 좋아졌다. 과학기술 문명은 지구를 망가뜨리지 않고도 이 많은 인구가 질 높은 삶을 계속 누릴 수 있게 해줄까? 영국 리즈대 연구진이 이런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찾아나섰다. 최근 과학저널 <네이처 지속가능성>에 발표한 결론은 그러나 우울한 한마디 `노'였다.
연구진은 150여 나라의 자원 이용과 삶의 질에 대한 데이터를 살펴봤다.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도 자원을 적절히 이용하는 나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런 나라는 없었다고 한다. 유일하게 베트남이 두가지 조건에 가까운 나라로 나왔다. 연구진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삶의 질을 제공하려면 자원이 2~6배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설상가상이랄까, 세계 인구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다. 유엔은 2100년 110억 안팎에서 세계 인구가 정점을 맞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삶의 질 향상과 함께 1인당 자원 요구량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지구 지속가능성을 해치지 않는 적정인구는 과연 얼마일까? 적정인구는 우리가 선택한 목표에서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있는 인구 규모를 말한다. 따라서 단순한 숫자 문제가 아니다.
적정인구를 말하려면 먼저 원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그런 다음 그것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을 지구의 현재 상황과 비교하면 답이 나올 것이다. 지구 생태보호를 목적으로 개발된 생태발자국 개념도 하나의 접근 방법이 될 수 있다. 생태발자국이란 우리가 소비하는 자원의 양을 그 자원 생산에 필요한 땅 면적으로 환산한 것이다.
국제생태발자국네트워크의 계산치를 적용할 경우, 모든 사람이 프랑스인처럼 살려면 2.5개의 지구가 필요하다. 프랑스인의 삶을 기준으로 할 경우 30억명이 적정 수준이라는 얘기다. 미국인과 한국인을 기준으로 삼으면 각각 15억, 22억까지 줄여야 한다. 인구를 줄이고 싶지 않다면? 생태발자국을 줄여 인도인처럼 사는 방법이 있다.
<인구 폭탄>의 저자인 진화생물학자 폴 얼리크가 1994년에 계산한 세계 적정인구는 15억~20억이었다. 얼리크가 적정인구 계산을 위해 선택한 목표는 5가지였다. 모든 사람이 알맞은 부와 기본권을 누리고, 문화 및 생물 다양성이 보장되며 사람들의 창의성이 잘 발현되는 상태다. 한국에서도 몇차례 적정인구 논의가 있었다. 2005년 한국인구학회가 내놓은 한국의 적정인구는 4600만~5100만명이다.
경제·복지·환경 등 4가지 측면에서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 추정했다. 국토도시학계에선 에너지 등 9가지 변수를 고려해 4350만~4950만명을 제시했다. 보건사회연구원은 4300만(2080년)~5000만명(2020년)이란 수를 내놨다. 연구원의 추정 기준은 `지속가능하면서도 대외적 위상을 유지해주는 경제·복지가 가능한 인구 규모'다.
한국 경제가 호황을 누렸던 1980년대 후반의 ‘4000만명대 초반’을 적정인구로 보는 사람도 있다. 통계청은 세계 최저수준의 저출산 현실을 근거로 2065년 한국 인구를 4300만명으로 예상한다. 어떤 추정치가 더 현실적이고 바람직한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뭘 기준으로 삼든 대체로 지금 인구보다는 적다. 올 2월 현재 인구(주민등록 기준)는 5178만명이다. 이는 적정인구론의 핵심은 임박한 인구 감소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관건이라는 걸 뜻한다.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적정인구는 사실 없다. 인구 문제의 본질은 크기가 아니라 삶의 질과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 록펠러대의 인구통계학자 조엘 코언은 적정인구 문제는 “지구에서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이어받아 메릴랜드대의 얼 엘리스 교수는 “지구를 인간만의 행성으로 만들 것인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계를 원하는가?”라고 묻는다.
인간은 다행성 종족이 돼야 할까? 모든 사람은 의식주 자원을 평등하게 누려야 할까? 전통적 성별 역할 분담은 유지돼야 할까? 양육과 부양의 책임은 가족이 계속 져야 할까? 늙으면 쉬어야 할까? 인간 노동 없이도 부가가치를 내는 인공지능·로봇 시대에도 사람 수에 기반한 셈법은 유용할까? 거대한 지구 시스템에서부터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적정인구라는 화두는 미래의 삶을 결정하는 질문들을 줄줄이 쏟아낸다. 우리는 어떤 답변들을 선택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