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8년 5월 27일.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에 담배 한 보루 크기의 소포를 대학 교수가 주차장에서 발견하고
경비실에 맡겼습니다. 경비원은 그 소포를 수취인불명으로 확인하고 소포를 개봉하는 순간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지만 경비원은 경미한 부상만을 입습니다.
하루 뒤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의 심리학교수에게 담배곽크기의 소포가 도착합니다. 교수가 소포를
개봉하는 순간 굉장한 불길이 치솟았지만 살짝 다친 정도의 부상만을 입게됩니다.
이때까지도 이 두번의 우편물폭탄사건은 세간의 주목을 끌지 못하였습니다.
1979년 8월 15일.
이 날의 이 사건의 중대한 터닝포인트가 됩니다.
시카고에서 출발하려던 아메리칸 에어라인의 보잉747기가 이륙하였고 수시간이 지나자 747기 우편물보관실에서 엄청난양의 연기가 피어났습니다.?
연기가 객실을 가득메우고 아비규환이 되자 747기는 비상착륙을 하게됩니다.?
FBI의 수사결과 밀봉결함에 의한 작동불량으로인해 연기만이 발생했다고 결론짓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이 세 사건이 모두 동일범의 소행이라고 단정짓고 수사에 착수합니다.
1) 세가지의 폭탄 모두 제조된 방식이 동일하다.
2) 세가지의 폭탄 모두 제조에 들어간 재료가 동일하다.
- 건전지, 구리전선, 성냥개비의 머리, 무연화약, 겉상자가 나무로 되었다는 것,
- 그리고 747기 사건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FC"라고 표시되어 어떠한 폭발에도 견딜수
있게 만들어진 하나의 쇠로 된 표식.
초기 FBI는 이 모든 재료들을 가장 쉽게 구할수 있는 자동차정비업체를 타겟으로 삼았으나
일말의 성과도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네번째 폭탄이 도착합니다.
1979년 9월.
이번 유나바머의 대상은 놀랍게도 아메리칸 에어라인의 사장이였습니다. 얼굴과 온몸에
수많은 파편이 박히는 중상에도 불구하고 생존하게 됩니다. FBI는 이 사건 역시 동일범의
소행으로 판단하고 그 대상이 "아메리칸 에어라인"항공사인것으로 판단하게됩니다.
피해자가 되였던 사장은 불과 얼마전 수천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한 인물로써
FBI의 초기 수사 방향을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데도 말이죠.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그의 폭탄 제조 방식이 날이 갈수록 정교해지고 진화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파편으로 살해하고자 하는 목적이 명백하였으며 초기 나무나 철의 파편을
사용했던 반면에 날이 갈수록 못,면도날,알루미늄 등이 사용되기 시작한것입니다.
실제로 추후에 일어난 여러 사건중에 FBI의 폭탄처리반이 6시간에 걸려 해체해야했을정도
였으니까요.
어쨌든 FBI의 엉터리 수사를 조롱하기라도 하듯 미국 전역 곳곳에서 우편물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1980년 7월.
레이크 포레스트의 한 사무실에 소포 한통이 도착합니다.
의심없이 뜯은 주민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게 됩니다. 첫번째 희생자가 발생하게 된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FBI는 범인이 남긴 첫번째 유효 단서를 수확하게 됩니다.
바로 "목격자"가 있었던 것이죠.
블라인드가 쳐진 창 밖으로 주민 중 한명이 소포를 두고 가는 유나바머의 인상착의를
발견한것입니다. FBI는 즉시 몽타주 작성에 들어갔고 최초 발생으로부터 4년이 경과할 무렵
이 사건을 공개 지명수배로 전환하며 최초 현상금 2만5천달러를 내걸게 됩니다.
24시간 핫센터를 운영하면서 시민들의 제보를 필요로 하였고 엄청난 전화량을 감당하면서
하루하루 시간이 흘렀지만 매번 헛수고였죠.
1982년 밴더비트 대학.
한 물리공학 박사에게 소포가 도착합니다.
이 소포는 중상으로 끝이 났지만 중요한 단서 하나를 추가하게됩니다.
바로 범인의 대상이 주로 대학(Univercity)과 항공사(Airline)를 타겟으로 한다는 점이였죠
그래서 사람들은 앞글자를 따 UN A Bomber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 3년동안 미국 전역에 소포폭탄이 도착합니다. 이때부턴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죠.
개봉과 동시에 즉사를 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더이상 유나바머는 직접적인 형태가
아니라 우편을 통해 소포를 배송하게 됩니다.
심지어 우표에 지문이 남을것을 우려한 나머지 지문채취가 불가능하도록 뒷처리까지 하는
정교함을 선보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발생합니다.
1987년을 끝으로 6년간 해당범죄는 일어나지 않게되죠.
자연스레 수사열기는 식어갔고 많은 사람들은 그가 자연사했거나 자살, 혹은 병명을 알수
없는 질병으로 사망했을것이라 추측합니다. 실제로 연쇄살인범의 경우 그 생애가 무척이나
짧다는 선례들로 미루어볼때 그의 마음이 바뀌었거나 사망했을것으로 단정짓고 사실상
수사를 포기하게됩니다.
1993년. 유나바머는 놀랍게도 다시 미국에 나타났습니다.
예일대학의 한 심리학교수는 커다란 크기의 소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조심성이 많았던
이 교수는 소포를 뜯지 않았죠. 이 폭탄을 해체하는데 FBI 폭탄해체팀이 도착하였고 무려 17시간에 걸쳐 해체하게 됩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발견됩니다.
1) 더이상 파편이 아닌 폭발 그 자체의 엄청난 압력과 순간적인 위력으로 사살하도록 설계
2) 최초 성냥개비의 머리나 무연화약과 같은 원시적 재료에서 알루미늄 주조물, 질산나트륨 등의 화공약품으로 진화
3) 폭탄의 크기가 커져가고 그 위력이 강해졌음.
FBI는 직감적으로 이 사건의 범인이 유나바머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됩니다. 급기야 동시기 미국의 국무장관은 이 사건의 처리를 최우선 과제로 삼게되고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하는
세 팀을 연합하여 "유나바머 수사본부"를 다시 구성하고 추진하게 됩니다.
1993년 1월 예일대학 폭탄사건을 시작으로 무려 1월 한달에만 동시다발적으로 4건의
우편물 폭발 사고가 일어났고 유나바머의 기세는 맹렬하여 미 전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이때 당시 최초 2만5천달러였던 그의 현상금은 이미 100만달러에
육박하게 됩니다.
매일 수천명의 시민들이 자신들의 친척, 가족, 친구, 직장상사 등을 범인이라며 제보했고
번번히 조사에 나섰지만 매번 헛수고이기 일쑤였죠.
1994년. 한동안 잠잠하던 유나바머의 폭탄 소포가 다시 등장합니다. 이번엔 미국 서부지역에서 동부지역 끝으로 넘어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때까지도 FBI는 전혀 손쓸 방도없이
무려 2천명 이상의 용의자만 조사햇을뿐 아무런 물증도 잡지 못했죠.
그러던중 사건은 중대 계기를 맞게 됩니다.
995년 캘리포니아의 새크라멘토에서 터진 소포폭탄을 계기로 유나바머는 뉴욕타임즈,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 주요 언론에 일제히 A4 54페이지 분량의 논문을 보내게 됩니다.
[기술사회와 미래]라는 제목의 이 논문에서 처음으로 유나바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들어내게 됩니다. 현대 사회의 기술/물질 주의적 관행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과학자 및 심리학자에게 강한 적대심을 들어내면서 [비기술주의]를 서술한 것이죠.
사람들은 이것을 [유나바머 성명서]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유나바머는 자신의 이 성명서를
1996년 1월까지 출판해주지 않으면 계속해서 폭탄테러를 자행하겠다고 선언합니다.
미국 시민들은 지금까지 추악한 미치광이 범죄자일줄만 알았던 그에게서 사상과 직결된
논문을 접하자 그의 사상에 동참하는 이들이 생겨나면서 더이상 유나바머는 단순 미치광이
살인범이 아닌 고도의 정치운동가로 변모하게 됩니다.
유나바머 수사본부는 크게 고심하게됩니다. 이것을 출판한다면 전례없는 "테러범의 제안 수락"이라는 불명예를 남길것이고 이것을 거부한다면 또 다른 피해자들이 속출하게 될것이니까요. 하지만 수사본부는 결국 이 책을 출판해주기로 결정합니다.
한편.
매일 실용성없이 고액의 현상금을 노리는 전화들이 빗발치는 가운데 익명을 요구한 한 남자가 전화를 걸어옵니다. 그는 범인이 자신의 형인것 같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형이 남겼던 편지와 유나바머의 논문을 인터넷과 편지를 번갈아가며 부인과 함께 조사했다고 합니다.
그 남자는 유나바머의 동생인 데릭 카진스키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인이 이 성명서를 보자마자 남편인 자신에게 "아무래도 유나바머가 형인것 같다."라고 했고 처음엔 우습게 넘겼지만 아내의 권유로 인해 꼼꼼히 살펴본결과
1) 냉혹한 두뇌의 과학자들
2) 두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을순 없다.
라는 두가지 표현은 자신의 형이 늘상 하던 말이라는것을 발견하게됩니다.
하지만 이것이 결정적 증거가 되기엔 역부족이였습니다. 단지 정황증거일뿐이였죠.
보다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던 FBI에게 데릭은 자신의 형 "씨어도르 카진스키"가 갓 대학생이 되었을때 작성했다는 23페이지의 또 다른 논문을 제시하였고 이 두 논문은 FBI 최고의 행동심리학자의 손에 넘겨졌으며 또한 필적감정 역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 결과 두 논문 사이에 공통점이 일치한다는 것을 판단하고 유나바머의 수색에 착수하게
되죠.
좌측이 형 "시어도르 카진스키 / 우측이 동생 "데릭 카진스키">
데릭이 밝힌 유나바머 '씨어도르 카진스키'의 경력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 초등학교 4학년때 아이큐 검사 결과 167 이상으로 판명
- 15세에 당시 세계 최고권위의 하버드 입학
- 18세에 당시 불혹의 교수들조차 고개를 흔들던 수학 난제들을 해결
- 20세에 이미 박사 학위 취득
- 22세에 6편의 수학 관련 논문이 책으로 출판
또한 그의 성장과정에서 형이 이렇게 되기까지 원인이 될만한 사건들을 제시합니다
- 생후 9개월때 극심한 두드러기로 부모로부터 10일간 강제격리되었던 기록
- 하버드 1학년때 미정부가 비밀리에 실험하던 맨츄리안 캔디데이트 관련 실험에서
고도의 스트레스 장애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하기 위해 정신상태가 불안정한 실험대상을 선정하던 도중 씨어도르 카진스키가 적합자로 선정됩니다.
- 그는 각 전공과별 학생들이라고 위장한 법학생도 4명과 함께 밀실에 갇혀 서로의 주장에
반박하거나 동의하는 등 자유 토론을 실시합니다. 이 과정에서 법학생도 4명은 미리 지시 받기를 "시어도르를 자극할 것"이라 들었고 그대로 한 결과 씨어도르는 이 실험의 정체에 대해 훗날 알게 되었을때 극심한 분노와 함께 "첨단기술과 정부의 지원을 받는 과학/심리학자들"에 대해 엄청난 반발심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실제로 유나바머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대다수가 대학교수, 심리학자, 과학자 등이였죠. 그는 22세를 마지막으로 깊은 링콘시티 외곽의 산 속에 허름한 오두막을 짓고 세상을 등지게 됩니다.
마침내 그의 동생 데릭 카진스키는 지도상의 한 점을 가르켰고 FBI와 산림경비대 등이 참여한 이 작전에서 카진스키를 체포하게 됩니다. 그가 체포된 곳은 놀랍게도..
산 깊숙한 곳에서 전기,수도도 없이 난방기구라고는 작은 난로 하나가 전부인 허름한 오두막이였습니다. 그의 집안에서는 결정적 물증인 각종 화약들과 화공약품들이 발견되었으며 그의 범죄일지 역시 발견되면서 그의 체포로 유나바머 사건은 종결됩니다.
데릭 카진스키의 말에 따르면 그는 평생 친구가 하나도 없었으며 남들보다 2,3살 어린 나이에 당시 세계에서 가장 고상하다고 알려졌던 1950년대의 하버드에 입학하여 그중에서도 최고로 고상하다는 기숙사에 배정받았다고 합니다. 한 차례의 충격적인 실험속 생쥐가 된 후 기술문명사회는 잘못되어가고 있다라는 자신의 사상에 동참할 지식인들을 포섭해보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그는 세간의 중심을 끌기 위해 살인을 저질러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형량을 결정하는 재판이 시작되었고 검사측에서는
1) 그가 오두막을 사전에 준비했다는것
2)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했다는 것
등의 사유를 들어 "사형"선고를 주장하였습니다. 씨어도르 카진스키 측의 변호인단은
그의 사형을 면할수 있는 방법은 그가 미쳤다고 주장하는것뿐이였습니다.
1) 그의 오두막이 굉장히 어둡다는것은 곧 그의 정신상태를 의미
2) 그의 대학교 시절 정부의 비밀실험에 희생되었다는 것
등의 사유를 들어 사형을 면하고자 했죠.
하지만 변호인단의 이러한 시도는 첫 재판에서 산산히 조각나고 맙니다.
자신을 변호하는 변호인단의 첫 변론을 듣자마자 씨어도르 카진스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에 들고 있던 연필을 내동댕이치며
"당신들이 지금 나더러 미쳤다고 했소?"
라고 소리쳤으며 그 즉시 재판장에게 변호인단을 전원해고하고 스스로 변호하겠다고 요구.
결국 변호인단은 손 써보지도 못한채 재판장을 떠날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재판장은 그의 정신감정을 의뢰했고 그 결과 "망상성 정신분열"이라고 판명됩니다.
결국 재판 결과는 그의 종신형으로 끝이났지만 사실 그에겐 사형보다 더욱 잔혹한 집행이였습니다. 그의 53페이지 분량의 성명서 중 한 내용을 주목해보면..
"추악한 기술사회에서 사상을 잃느니 사상을 지키다 죽는것이 낫다."
라고 했는데 그에겐 사형으로 죽는것보다 지평선조차 보이지 않는 플로리다 교도소에서
여생을 마쳐야만 하는것이 더욱 지옥과 같은 일이니까요.
이로써 20년간 FBI와 정부를 농락하며 미국 역사상 최악의 지명수배자 중 한명으로
손꼽히는 연쇄 우편폭탄 살인범 유나바머의 사건이 종결되었습니다.
첫댓글 아직 살아 있겠죠?
아직 살아 있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