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호수
박정미
집에서 20분 정도만 달려가도 시원한 대청호반을 만날 수 있다. 이런 천혜의 환경이 조성된 곳에서 사는 나 또한 자연의 일부이다. 이런 환경과 잘 조화를 이루고 산다는 것은 내가 그들을 발견할 때만이 가능하다. 내가 먹고 마시는 물과 숨 쉬고 살아가는 자연의 고마움을 발견하는 순간 나의 존재도 의미가 있다. 대청호반에 깃들여 사는 것은 텃새와 철새만이 아니다. 수많은 어종과 식물들만이 아니다.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산과 들만이 아니다. 여름이면 만날 수 있다는 청렴한 선비로 알려진 백로만이 아니다. 나도 이 대청호반에 깃들여 사는 존재임에 새삼 놀랍다. 이러한 사실을 발견하기까지 얼마나 형편없이 무지했던가!
이 아름다운 대청호반은 인위적인 호수로 한국에서 3번째 규모로 알려졌다. 저수 면적 72.8㎢, 호수길이 80km, 저수량 15억t에 이르는 대형 호반이다. 이 대청호반 의 발원지는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에서부터 시작된다. 충청북도를 거쳐 군산만으로 흘러드는 금강의 지류로 충북의 청주시, 옥천군, 보은군을 아우른다. 그리고 내가 사는 대전광역시에 이르는 3대 도시를 연합하는 강이 된 것이다. 이 대청호의 조성을 위해 많은 마을이 수몰지구가 되어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아픈 사연이 있다. 고향이 그리워 찾아온다면 수몰지구를 기념하기 위해 기와집으로 조성된 기념관에 와야 한다.
1,526만 평에 4,075세대의 2만 6천여 명이 이주하면서 물의 도시를 형성하게 된다. 마을은 깊은 대청호반 아래 잠겨지고 주민들의 추억도 물속에서 꿈을 꾸는 신비한 강마을이 된 것이다. 이주민들이 많은 것을 양보하고 나눠주는 것은 사람에게 필요한 식수만이 아니다. 공업용수 및 만경강 유역의 농경지에 연간 3억 5,000만㎥의 관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최대출력 600㎾의 전력과 연간 2억 600만kWh의 발전량을 만들어내고 있다. 호수 주변 산천의 수많은 생물의 생명줄이 되어 준 것이다. 자신의 터전을 내어 주고 맞이한 생명체들에게 낙원을 꾸며주었다.
거대한 인공호수는 1975년 3월부터 1980년 12월의 공기 5년이 걸렸다. 대청호는 금강 수계 최초의 다목적 인공 저수지로 대전광역시와 충청북도 청주시에 걸친 협곡에 건설되었다. 높이 72m, 길이 495m의 필 댐이다. 이 호수 안에 다양한 어종들이 뛰어노는 강이 만들어진 것이다. 대전광역시 깃대종 3종은 하늘다람쥐, 이끼도룡뇽, 감돌고기이다. 금강 여울도 토종물고기 꾸구리, 퉁사리와 함께 귀한 보호종인 감돌고기가 산다. 이 대청호에도 멸종위기종 감돌고기며 칼납자루, 참중고기, 치리, 얼룩동사리 뱀장어, 빙어, 쏘가리, 은어, 다슬기가 주인이 되었다. 쇠딱따구리, 파랑새 등 23종의 새들의 서식지가 되었다. 대청댐이 있는 수문 가까이 사진사들의 관찰로 찍은 백로의 날갯짓은 천상의 흔적을 목격하게 만든다.
봄이면 대청호로 가는 오백 리 길에 세상에서 가장 긴 벚꽃이 피어난다. 이 길에 조성된 벚꽃은 분홍빛이 감돌아 더 황홀하다. 화이트빛의 벚꽃은 모든 마음의 먼지들이 흩어지게 만든다. 꽃을 보고 꽃의 느낌을 먹으며 이 거리를 달리는 동안 누구라도 죄와 무관한 사람들이 된다. 벚꽃길 주변으로 이야기를 주렁주렁 이어나갈 카페들이 있다. 카페에서 내려다보는 전경들이 모두 아름다운 전원이다. 강들이 주는 기운과 이름 모를 무성한 풀들조차 주변과 어울려 마음을 위로한다. 올해는 집으로 가는 길처럼 자주 대청호 주변을 오게 된다. 마음이 무거운 사람을 위로하고자 온다. 내 마음을 전하기 위해 호수를 바라보며 푸른 강을 함께 마신다.
자주 오다 보니 우연히 잘 꾸며진 천상 공원에 들르게 되었다. 벚꽃이 나비처럼 흩어지며 반긴다. 나무 위에 팻말을 붙여놓았다. ‘침묵하세요.’ ‘바람이 지나가는 길.’ 지금 내게 꼭 필요한 말을 써놓았다. 그렇지, 잠시 바람처럼 지나갈 일인데 지금 형무소에 끌려가는 심정인 것이다. 형벌의 순간순간을 살고 있는 나를 바람처럼 내려놓았다. 내 마음이 아프고 누군가가 상처로 아파할 일에 잠을 설치고 가슴이 조여와서 그냥 목숨이 멎을 것 같다. 며칠 후에 다시 가 보니 홍도화가 붉은 꽃으로 만발했다. 내 정원처럼 또다시 올라가 보니 바위 위 다리 난간으로 오르던 칡 순 같은 새싹에서 흰 꽃들이 피어났다. 이름을 알고 보니 흰등이다. 아카시아 같기도 한데 향기마저 짙게 안정제같이 마음을 마취시켰다.
루피너스도 한 무리 지어 예쁘게 피어나서 근심 가득한 나의 얼굴을 펴준다. 철쭉은 곧 흐드러지게 퍼져나갈 기색을 하고 있다. 튤립은 벌써 고개 숙이며 자신의 시간을 정리하고 있다. 사람 키만큼 커서 하얀 꽃으로 피어난 작약이 너무 깨끗하다. 대청호를 내려다보며 자란 나무들도 신비한 꽃들이 피어있다. 바위 위에 뿌리가 엉키며 곧게 뻗어 올라간 소나무를 보니 숨이 멎는다. 어디서 저렇게 살아갈 의지가 생겼던 건지 묻고 싶다. 사랑이 없는 척박함 속에서도 자신을 사랑한 소나무를 보니 눈물이 난다. “저렇게 살 수 없겠니?”라고 말해줄 아이의 손을 이끌고 말없이 소나무를 바라본다. 그 아이가 저 소나무처럼 스스로가 사랑이 되어 살아가길 바랐다. 그 아이가 울고 있는 아픔들을 씻어 주고 싶어 마음에 호수를 담는다.
수국은 곧 눈을 뜰 예정이다. 강아지가 태어나 한 달간 눈을 감고 있듯이 수국이 입도 다물고 눈도 감고 있다. 수국꽃이 눈을 떠 바라보는 순간 아름다움에 서로가 부둥켜안고 기뻐할 것이다. 근심으로 접힌 내 마음도 수국꽃을 보고 있노라면 서로를 안아줄 것이다. 사람 사이에서 수없이 울고 있는 그 아이도 더 큰 마음의 눈이 떠질 것이다. 조용히 마음을 띄워 보낼 기쁨의 호수로 다시 올 것이다. 꽃 한 송이를 보며 자기를 닮은 꽃처럼 활짝 웃기를 바란다. 자신이 얼마나 예쁜지, 얼마나 향기로운지를 알게 하고 싶다. 아픈 어른이 자연에게 와서 꽃이 되어 웃어 보고 강처럼 한 몸으로 흘러가는 삶이 되기를 바란다. 여름날이면 저 푸른 강물마다 태양 빛에 반짝이는 보석을 낳듯이 마음의 호수에도 아픈 자리마다 보석이 담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