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스타 차범근은 지금으로부터 50년전인 1972년, 19살에 국가대표로 처음 뽑혔다. 1978년까지 대표팀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던 그는 1980년부터 1989년까지 10년간 서독 분데스리가에서도 기량을 뽐냈다. 1986년에는 잠시 대표팀에 복귀해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하기도 했다. 국가대표로 A매치 136경기에 나서 홍명보와 함께 한국 남자 선수 최다 출전 공동 1위에 올라있다. 그가 갖고 있는 A매치 58골 득점은 남자 대표팀에서는 당분간 깨기 힘든 대기록이다. 차범근이 대표선수로 활약하던 그 시절의 사진을 구했다.
잡지 표지 촬영을 위해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슈팅 포즈를 취한 차범근.
고려대 선수로 연세대와의 경기에 출전했을 때.
1972년 대표팀 막내로 들어온 차범근을 격려하는 이회택
1976년 3월 몬트리올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강슛을 쏘는 순간. 오른쪽에 허정무의 모습도 보인다. 사철잔디가 아니었던 당시 서울 동대문운동장은 봄에는 누런 잔디에다 공을 차면 흙먼지가 날렸다.
1976년 9월 박대통령컵 국제축구대회 결승전에서 상파울루 선발팀(브라질)을 맞아 공격을 시도하는 차범근. 이때만 해도 대표팀 유니폼에는 태극마크 외에는 어떠한 디자인도 없었다.
1977년 봄에 열린 아르헨티나 월드컵 아시아 예선 이스라엘과의 경기를 앞둔 차범근. 왼쪽부터 김호곤, 김황호 골키퍼, 차범근, 조영증. 1골 2도움을 기록한 차범근의 활약으로 이날 한국은 이스라엘을 3-1로 격파했다.
1977년 7월 부산 구덕운동장에서 열린 아르헨티나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이란전에서 상대 수비의 태클을 뛰어넘는 모습. 당시 차범근은 공군 복무중이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출전을 앞두고 현지에서 훈련중 공격 파트너 최순호와 이야기를 나누는 차범근. 그 무렵 언론에서는 두 선수의 이름 영문 이니셜을 따라 ‘C-C 투톱’이라고 불렀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첫 경기 아르헨티나전에서 상대 진영을 돌파하는 장면. 차범근의 트레이드 마크인 튼튼한 허벅지가 눈에 띈다.
1980년대 중반 분데스리가 시즌을 끝내고 귀국해 가족들과 경기도 화성에 있는 부모님 집을 찾았다. 왼쪽부터 딸 차하나, 차범근의 어머니와 아버지, 부인 오은미 씨, 차범근, 아들 차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