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성찬례는 이기심에서 사랑으로 나아가는 새 세상에 대한 예언”
프란치스코 교황이 9월 25일 마테라 ‘벤투노(XXI) 세템브레 시립 스타디움’에서 열린 제27차 전국 성체대회의 폐막 미사 강론에서 “하느님을 경배하는 이는 그 누구의 노예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고통받는 이의 상처 앞에서 연민을 느끼지 않는다면 참된 성찬례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교황은 악천후로 인해 바티칸에서 헬기로 출발하지 못하고 로마 참피노 공항에서 이륙했다. 목적지에 무사히 착륙한 교황은 차량을 타고 마테라로 이동했다. 미사를 마친 후에는 바티칸으로 돌아왔다.
Paolo Ondarza / 번역 이창욱
“빵이 세상의 식탁에서 항상 공평하게 나눠지지는 않습니다. 친교의 향기가 항상 풍겨나오는 것도 아니고, 빵이 항상 의로움 안에서 쪼개지는 것도 아닙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빵의 도시’ 마테라에서 거행된 성체대회 폐막 미사 강론을 통해 약 1만2000명의 신자들 앞에서 일상적인 불의, 불공평, 매일 취약한 이들에게 가해진 횡포, 가난한 이들에 대한 무관심에 대해 ‘부끄러워’ 하자고 말했다. 교황은 이날 전례의 복음을 설명하면서, 한편에는 호화로운 생활을 과시하며 잔치를 벌이는 부자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지내며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라는 가난한 이, 곧 라자로가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러한 모순 앞에서 그리스도인 삶의 원천이자 정점인 성체성사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자문해보자고 초대했다.
마테라에서 거행된 미사의 시작 행렬
하느님을 우선해야 합니다
성찬례는 우리에게 하느님을 우선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운다. 교황은 비유에 나오는 부자가 하느님을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하느님을 위한 자리도 마련하지 않으면서, 오직 자신의 행복과 세속적인 재물만 생각하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복음은 이 사람에 대해 이름조차 기억하지 않는다. 그저 “부자”라는 말로 그를 부를 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혼동할 때, 소유의 많고 적음으로 사람들을 판단할 때, 겉으로 보여지는 직함이나 역할 혹은 입고 있는 옷의 상표로 사람들을 판단하는 오늘날에도 이러한 현실이 얼마나 슬픈지 모릅니다. 종종 ‘소유와 겉치레의 종교’가 이 세상의 무대를 지배하지만, 그런 것들은 결국 우리를 빈털터리로 만듭니다.”
마테라에서 성체대회 폐막 미사를 주례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하느님은 중심이십니다
하지만 가난한 이는 ‘라자로’라는 이름이 있다. 라자로는 “하느님께서 도우신다”는 뜻이다. 교황은 그가 “가난한 처지에서도 하느님과 관계를 맺으며 살았기에 자신의 존엄을 온전히 지킬 수 있었다”며, 그에게 있어 하느님이 “삶의 흔들리지 않는 희망”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성찬례가 우리 각자의 삶에 제기한 도전이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을 경배하고, 자기 자신의 허영심이 아니라 그분을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숭배한다면 우리는 작은 자아로 질식해 죽어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재물을 숭배한다면 그 재물이 우리를 지배하고 우리를 노예로 삼아 버릴 것입니다. 우리가 겉으로 드러나는 우상을 숭배하고 방탕한 삶에 취한다면 머잖아 삶 자체가 우리에게 대가를 요구할 것입니다.”
삶에 대한 새로운 시야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경배할 때 우리는 우리 삶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얻는다.
“나는 내가 소유한 것이나 내가 성취한 성공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내 삶의 가치는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보여주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비록 내가 실패와 좌절을 맛보더라도 내 삶의 가치는 훼손되지 않습니다.”
성찬례는 형제자매를 사랑하라고 요구합니다
교황은 성찬례가 형제자매를 사랑하라고 요구한다고 말했다. 복음에 나오는 그 부자는 이 같은 이웃사랑에 실패했다. 그는 주님께서 자신의 운명을 뒤집어 놓으셨을 때 비로소 라자로를 알아보지만, 자신과 라자로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건너갈 수 없었다. 교황은 “지상에서 사는 동안 자신과 라자로 사이에 구렁을 팠던 사람은 바로 그 부자였다”며 “이제 영원한 삶에서 그 구렁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사실 우리의 영원한 미래는 이 현재의 삶에 달려 있다. “우리 자신과 형제자매들 사이에 깊은 구렁을 파낸다면, 그것은 나중을 위한 무덤을 파내고 있는 셈입니다. 지금 형제자매들 사이에 장벽을 쌓아 올린다면, 나중에 우리는 외로움과 죽음에 갇힌 채로 남을 것입니다.”
불의와 우리의 무관심
교황은 이 비유가 실제로 우리 시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경고했다.
“불의, 불공평, 부당한 방식으로 분배된 땅의 자원, 약자에 대한 강자의 횡포,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에 대한 무관심, 소외감을 느끼며 나날이 파헤치고 있는 깊은 구렁은 우리를 무관심하게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다 함께 성찬례가 새 세상에 대한 예언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무관심에서 연민으로, 낭비에서 나눔으로, 이기심에서 사랑으로, 개인주의에서 형제애로 회심하는 것과 같은 효과적인 회심이 일어나도록 노력하라고 요구하시는 예수님의 현존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성체성사적 교회를 꿈꿉니다
교황은 이 지점에서 우리가 성체성사적 교회를 꿈꿔야 한다고 초대했다. “성체 앞에 무릎을 꿇고 경이로운 마음으로 성체 안에 계시는 주님을 경배하는 교회입니다. 또한 고통받는 이들의 상처 앞에서 연민과 온유한 사랑으로 몸을 굽힐 줄 알며, 가난한 이들을 위로하고, 눈물을 닦아주며, 모든 이에게 희망과 기쁨의 빵이 되어주는 교회입니다.”
“‘빵의 도시’인 이곳 마테라에서 저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께로 돌아갑시다. 성체성사로 돌아갑시다. 빵의 맛으로 돌아갑시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랑과 희망에 굶주려 있거나 삶의 고단함과 고통으로 부서질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먹이고 치유하는 음식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빵의 맛으로 돌아갑시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불의와 차별이 세상에서 계속되는 동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나눔의 빵(성체)을 주시고 우리를 날마다 형제애의 사도, 정의의 사도, 평화의 사도로 파견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로 돌아갑시다
교황은 희망이 사라지고 마음의 외로움, 내적 피로, 죄의 고통, 성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닥칠 때마다 예수님께로 돌아가 그분을 경배하고 그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성체성사의 맛, “빵의 맛”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직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삶을 언제나 새롭게 하시기 때문이다.
‘빵의 도시’에서 열린 성체대회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방문한 지 31년 만에 암벽의 도시를 짧은 일정으로 방문한 교황을 이탈리아 주교회의 의장 마테오 마리아 주피(Matteo Maria Zuppi) 추기경, 마테라-이르시나대교구장 안토니오 주세페 카이아초(Antonio Giuseppe Caiazzo) 대주교, 지역 시민단체가 기쁘게 맞이했다. 성체대회는 이곳 마테라 시에서 지난 9월 22일부터 25일까지 “빵의 맛으로 돌아갑시다: 성체성사적 교회와 시노드 여정의 교회를 위하여”라는 주제로 열렸다. 이탈리아의 166개 교구에서 약 800명의 대표들이 참가한 이번 대회는 80여 명의 주교들과 함께 4일 동안 기도와 묵상을 하며 성체성사의 중요성을 다뤘다.
이탈리아 교회의 감사인사
주피 추기경은 인사말을 통해 “항상 미소 짓는 얼굴로” 기꺼이 “힘든” 여행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감사를 전했다. “이번 단계를 통해 우리의 시노드 여정 둘째 해를 시작하게 된 것은 은총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할 때에만, 주님의 말씀(Verbum Domini)과 주님의 성체(Corpus Domini)로 길러질 때에만, 오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함께 출발할 수 있고 함께 걸어갈 수 있습니다.”
마테라 성체대회 폐막 미사의 한 장면
주피 추기경 “개인주의는 친교의 맛을 없애는 바이러스”
“미각을 잃으면 맛을 느끼지 못하고, 만사에 의욕이 없으며, 인간미가 없고, 좋아하는 것도 찾지 못합니다. 코로나19에 걸린 많은 사람들은 한때 미각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개인주의라는 또 다른 위험한 바이러스 때문에 빵의 맛을 잃어버립니다.” 주피 추기경은 개인주의가 분열을 일으키고 죽음을 낳는 전쟁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전쟁은 형제를 원수로 만듭니다
“전쟁은 밀밭을 불태우고 빵을 빼앗아 굶어 죽게 하며 형제를 원수로 만듭니다. 그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성찬례가 항상 우리에게 주는 빵의 맛, 곧 우리 형제자매를 위해 사랑이 되신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랑의 열매를 발견했습니다.” 주피 추기경은 “빵의 맛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체적이고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가 길러진다는 것을 뜻한다”며 “가난하고 진실한 사랑, 인격적이고 모든 이를 위한 사랑, 그러한 단순하고 무상적인 사랑의 기쁨을 재발견하는 것”이라고 마무리했다.
https://www.vaticannews.va/ko/pope/news/2022-09/papa-francesco-congresso-eucaristico-matera-messa.html